〈 52화 〉 전면전?(3)
* * *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른 윈프레드는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쨍그랑!
그리고 책상을 뒤집어엎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장식된 유리 자기 마저 깨뜨려버린 윈프레드였다.
"씨발것들…. 무능한 것들…."
"주인님 진정하시는게…."
"닥쳐!"
퍽!
바타치스의 노집사가 윈프레드를 말려보지만 노집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둔탁한 도장이었다.
주륵….
이마에 도장을 맞아 이제는 피까지 흐르지만 노집사는 수십 년간 해온 프로정신을 발휘했다. 바로 자신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는 충언을 올리는 것이었다.
'수십 년간 이 가문의 녹을 먹었다. 그러니 나도 가문을 위해 행동해야 될 터.'
"주인님. 이렇게 화만 내시다가 상황이 더욱 악화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를 가라앉히시고 대책을 구상해보는 것이…."
"루벨!"
"넵 주인님."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윈프레드의 화를 제어할 수 없다. 판단한 집사는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윈프레드가 저렇게 화를 내는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돈을 빌려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전부 날려 먹었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 연회 당시에 누군가에게 속아 비밀금고 열쇠를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비밀금고를 열 수가 없는데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은 줄어들고 있었다.
사실 돈을 갚을 날을 미루고 미루고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비밀금고를 열 수가 없다는 점은 아주 치명적이게 다가왔다.
"루벨!"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윈프레드 바타치스는 집사를 불렀다.
언제나 바타치스 가를 보좌하는 총괄 집사 루벨은 윈프레드가 부르자마자 이마를 지혈하는 것을 멈추고 바로 튀어 나갔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지금 비밀금고에 침입자가 감지되었다는 정보는 없지?"
"있긴 했으나. 가문의 병력이 전부 격퇴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윈프레드의 비밀금고는 총 세 군데로 윈프레드만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열쇠를 잃어버렸기에 윈프레드를 습격한 범인들이 금고를 건드릴까 봐 비밀금고에 병력배치를 늘렸다.
"후…. 어떻게 비밀금고 위치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막았군."
"주인님 하지만 곧 납세날이 다가오는데…."
"나도 안다. 비밀금고만 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다만 비밀금고를 열 방법이 없기에 해체 기술자들이 금고를 파괴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금고를 파괴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못해도 2주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금고 한 개가?"
"한개당 말입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납부까지 남은 시간은?"
"그게…. 1주일 남았습니다."
집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우……."
역시나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금고는 현재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금고에 들어가려면 가장 중요한 열쇠와 여러 카드키가 필요했지만, 아마 자신에게서 열쇠를 훔쳐 간 이들이 다른 잠금을 풀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자들이 훔칠 수 없게…. 병력을 더더 늘려!"
"하지만…. 주인님…. 가문의 재정상태가 적자입니다."
"괜찮아…. 2주일만 버티면 된다…. 2주일만 버티면 돼…."
윈프레드는 간절해 보였다.
2주일 뒤면 여태까지 쌓아온 바타치스의 재보를 이용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주일 뒤에 상환 날짜라…. 더 연기는 안 되나?"
"그게…. 여태까지 너무 많이 밀어서 말입니다."
윈프레드의 머리에는 미리미리 갚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쩔 수 없군…. 급히 돈을 만들어야 하니."
상단에 돈을 빌리기에는 신용이 부족하다. 다른 공작가에게 빌리기에는 그들은 더 위험한 하이애나였다.
"가문의 물건을 일부만 정리하도록…."
윈프레드가 생각한 답은 가문에 쓸모없지만 귀한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오늘도 노집사는 윈프레드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
.
.
"역시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바타치스 가문이 유다가 별 수작을 부리지 않았지만 알아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
바타치스 가의 흔들림은 유다에게 매우 호재였다.
게다가 더 기쁜 소식은 헤이스트 상단을 움직이려고 하니 윈프레드 바타치스가 헤이스트 상단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헤이스트 상단과 협력하면…."
상처 없이 맹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관세를 올리고 물품을 규제해. 바타치스에 수입거부와 수출거부를 동시에 시행시켜."
"아…. 참고로 생필품만은 규제하지 말아줘."
유다는 생필품까지 규제할까 고민했지만 억울한 시민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취소했다.
유다는 캐시를 불러 전면전을 준비했다.
"기다려라. 바타치스…. 꼭 쳐부셔줄테니…."
원래 복수는 100배 이상으로 갚아 주는 것이었다.
"이제 전면전의 시작이야."
팔팔한 거대 공룡과, 흔들리는 공룡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둘의 상태는 어떻든 간에 주변이 초토화 될 것이 자명했다.
.
.
.
"주인님 큰일입니다!'
"나도 안다."
노집사가 윈프레드에게 중요 사실을 알리러 뛰어왔지만, 윈프레드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망할 것들. 벨라레 가문…. 유다 벨라레! 감히 나에게 전쟁 선포를 해?"
물론 실질적인 전쟁이나 영지전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건 총력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아악!"
윈프레드는 다시 화를 참지 못해 또다시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을 엎어버렸다.
"최악이야…. 루벨!"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에센을 불러와! 당장!"
윈프레드의 말에 집사 루벨은 에센을 부르기 위해 황급히 뛰쳐나갔다.
에센은 윈프레드의 친동생으로서 제국 7성의 암성에 자리에 있었다.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센이 어영부영하게 가주실로 걸어왔다.
"에센!"
"시끄럽습니다. 형님."
윈프레드는 느긋한 에센을 보고 손가락질했다.
"제국의 뒷세계를 장악한 놈이 이런 정보 하나조차 몰라?"
"애~ 결국 들커버린겁니까?"
"에센! 네 이놈!"
윈프레드의 말에 에센은 피식하고 웃었다.
"처음에는 들키면 죽겠다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죽이실 힘은 있으신지 모르겠네?"
에센의 말이 무례하다고 느낀 윈프레드의 뒤에 서 있던 호위기사 두 명이 순식간에 검을 꺼내 에센에게 휘둘렀다.
탱!
"너무하네…. 아무리 제국 7성 중 최약체라도 이렇게는 안 당한다고요. 기사 여러분."
"에센…. 네 이놈…."
"에헤이~ 노려보지 마요. 형님. 그리고 지금 절 죽이실 수 있겠어요? 가문의 위기인 만큼 같이 잘 헤쳐나가야지요~"
에센의 말은 정론이었다. 지금 가문의 상태가 안 좋은데 제 살 깎아 먹기로 에센까지 제거하려다가는 자멸할 수도 있었다.
'젠장 건방진 놈…. 두고 보자…. 모든 일이 끝나고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에센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국 뒷세계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제국 7성에 들어갔지만, 그의 효용 가치가 떨어진 이상 윈프레드가 에센을 제거할 것이다.
에센의 입장에는 일단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윈프레드를 도와 가문을 위기에서 구해내면 그의 목숨은 연장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문의 혼란한 이상 그냥 멀리 도망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센이 선택한 방법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미쳤다고 편안한 생활을 버릴까…. 어쩌면 이번이 나에게 온 기회일 수도 있어.'
가문의 흔들림 속에서 형님의 권위도 같이 흔들렸다. 에센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어쨌든 형님. 일단 가문을 같이 위기에서 구해보자고."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바타치스 가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다른 꿈을 꾼 채로 손을 잡았다.
.
.
.
노집사의 얼굴은 최근 일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더 주름이 많아졌다.
"주인님. 암시장에 도착했습니다."
가문에서 미리 상의한 대로 집사 루벨과 윈프레드 바타치스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가문에 쓸모없는 보물이라 하지만…. 그래도 보물을 판다는 것이 매우 기분이 나쁘군."
"주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이 끝나고 비밀 금고를 찾으면 판매한 보물 따위 얼마든지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다."
윈프레드 자신은 대 바타치스 가의 위대한 혈통이었다. 이 정도의 시련 따위 가뿐하게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윈프레드와 루벨 그리고 호위기사들이 경매장으로 향하던 도중 붉은 머리 여인과 부딪혔다.
쾅!
"가…. 감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악! 뭐냐 네년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 자세를 취했다.
최근에 안 좋은 기억이 있던 윈프레드는 자신의 품에서 소지품이 전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머리 여인은 윈프레드에 잘못을 빌며 사죄의 뜻으로 자신이 오늘 진한 서비스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 크흠흠…."
붉은 머리 여인의 육감적인 몸을 본 윈프레드는 최근 스트레스로 인해 해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그럼 오늘 한번 부탁하도록 하지…. 크흠흠."
"그리고 오늘 안내와 시중도 제가 들도록 하겠습니다."
윈프레드는 그런 붉은 머리 여인의 가슴을 쳐다보며 여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누구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기사들이 있는데 윈프레드와 여인이 부딪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기사들이 막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막지 '못'한 것이었다.
붉은 머리의 여인. 아델라는 웃었다.
'자신의 열쇠를 훔친 사람을 또다시 바로 옆에 두다니 참으로 불쌍하네요.'
시크릿 클랜의 작전 '호구'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