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가문을 위하여(3)
* * *
"잘 들어라. 벨라레라고 했나? 너에게 가문 재판을 제안하겠다."
아자젤은 다울 벨라레에게 가문 재판을 신청했고 보는 눈이 많은 다울은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울에게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아마 앞에서는 수락한 채 뒤에서 수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교실 안에 수업은 아자젤이 만든 딱딱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고 교관들은 많이 불편해 보였다.
물론 그 불만을 대놓고 제기할 수 있는 교관은 아무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의 수업이 끝난 뒤 유다는 미리 조사해 둔 다울의 정보가 들어있는 서류를 꺼냈다.
"벨라레 가문 출신인데….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 황도 빈민가라…."
다울은 너무 수상했다. 어린 나이의 가주가 되고 난 후 유다는 혈족들을 정리하는데 매우 힘썼다. 그런데 다울 벨라레가 유다조차 모른 채 살아남았다?
'천운의 확률로 그럴 수 있겠지만….'
귀족사회에 의래 있는 경우인 가짜인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다울에 뒤에는 다울 벨라레를 조종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누가 있던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없었던 사람처럼 만들 것이고, 결투에 허튼 수를 쓰는 순간 그는 내일의 아침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유다가 다울 벨라레를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순간. 캐시의 보고가 들어왔다.
"주인님. 다울 벨라레가 아카데미를 나왔습니다."
다울 벨라레는 조급해졌고 결국 밖을 나서게 되었다. 다울 벨라레의 평소 생활 방식과는 매우 달랐다.
"다울 벨라레…. 너의 뒤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캐시. 지금 기용 가능한 벨라레가의 기사는 몇 명 있지?"
"황도 근처에 대기 중인 기사는 20명 정도 됩니다."
"그래? 그럼 오랜만에 직접 나서볼까."
유다는 캐시를 시켜 로브를 가져오게 했고 직접 그 뒤를 밟았다.
오늘 그의 행위에 따라 수명이 연장될지 안 될지 바뀔 것이다.
.
.
.
쾅!
하늘이 빙빙 돌았다.
'이것이 사도….'
단순 완력만으로도 다울을 압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등이 너무 아팠고 아자젤 벨라레가 가문 재판을 제안해왔다.
'진퇴양난이야….'
그냥 자신은 벨라레 가문의 적은 재산만 얻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일단 수락하고…. 그녀와 이야기 해봐야겠지.'
다울 벨라레. 그는 사실 벨라레 가문의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몰락한 귀족가의 출신으로 빈민가에서 자랐다.
다울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빈민가에서 받아들여져 살아갈 수 있었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를 공부할 수 있었다.
다울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대역'
잘나가는 가문을 먹어치우기 위한 대역.
그녀는 다울에게 약속했다. 모든 게 잘 풀린다면 그의 연인과 함께 평생을 안전하게 살아갈 자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울은 자신의 연인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그 길을 선택했다. 스스로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귀족들은 모를 것이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하고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모든게 잘 되면 좋겠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눈치의 연속이었다. 유다 벨라레의 앞에서 당당한 척해도 힘들었고 반의 다른 아이들에게 위협도 받았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카데미 숙소 안에서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였다.
마치 언제든지 다울의 목숨쯤을 빼앗을 수 있다는 기운을 풍기니 그가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음, 사회적 매장, 끔찍한 압박감, 조여오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문 재판이 제안되었다. 받아드리면 재판을 통한 죽음. 받아드리지 않으면 가문의 일원이 아니기에 매장.
다울은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을 아카데미에 넣어준 그녀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다울이 최악에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제국 7성이라 불리는…. 아리아나 윈터가 내 뒤에 있지.'
아리아나가 준 그녀를 부르는 신호를 하기 위해 다울은 아카데미에서 몰래 나와 빈민가로 빠져나갔다.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어.'
다울의 뒤에는 아리아나가 있다. 제국 7성인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에게 답을 알려줄 것이다.
.
.
.
"저게 몰래 이동하는 느낌인가?"
다울 벨라레는 제 딴에는 은신하며 간다고 생각했겠지만, 너무나 엉성했다.
유다는 다울 벨라레의 뒤에 바타치스 공작가나 두카스 공작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엉성했다.
"뭐지…?"
저렇게 엉성할 것이면 역풍을 대비해 일부러 그를 안 건드리고 기다린 보람이 없을 수준이었다.
유다와 캐시는 엉성하게 움직이는 다울의 뒤를 밟아서 이동했다.
"캐시. 일단은 계속 쫓아가도록 하자."
예전에 유다와 캐시가 들렸던 빈민가의 앞쪽보다 다울은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유다와 캐시는 은신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마법사와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감지하지 못하는 능력이 있었다.
빈민가의 안쪽은 공동묘지 같고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공동묘지에서 무언가를 찾던 다울을 향해 작은 물체가 도도도하고 달려왔다.
"오빠!"
다울을 향해 한 소녀가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니아…. 왜 여기 있어…. 집에서 좀 쉬지 그래."
다울은 소녀를 한번 안아주고 나서 그녀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오빠가 보이길래 나왔지!"
"그래. 나도 기뻐."
유다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는 유다의 반에서 당당하게 앞에 나서는 느낌을 들게 하는 그였지만, 이곳에서의 그는 전혀 달랐다.
아마 다울에게는 저 소녀가 가족 같은 느낌일 것이다.
저 틱틱거리는 모습. 오랜만에 아주 옛날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
.
.
오래전 유다에게도 가족 같은 인물이 2명 정도 있었다. 전생의 유다는 참으로 암울한 인생을 살았었다.
선천적으로 체격이 왜소하기에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했고 낮은 사교성은 그를 고립시켰다.
그리고 어느 날 우진은 평소와 같이 뒷골목에서 폭행당하던 도중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뭐냐…. 뭐 하는 꼬맹이길래 눈이 죽었냐?"
덥수룩한 수염에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사람은 폭행당하고 있는 유다에게 다가왔다.
"에잉…. 세상이 어쩌려고 같은 또래를 패고 있어?"
박씨 아저씨는 그 일진들을 훈계했다. 물론 훈계하는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진들이 달려들기는 했으나 아저씨는 생각보다 강했다.
"어린놈의 쉐끼들이…. 썩 안 꺼져?"
물론 아저씨가 일진들을 쓰러트렸다는 것에 유다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뿐.
박아저씨는 차가운 음료수 캔을 들고 볼에 대며 우진에게 물었다.
"야…. 이름이 뭐냐?"
"우진이요…."
"우진?"
"네…."
우진의 이름을 듣고 난 이후로 아저씨는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쯧쯔…. 어린놈의 쉐끼가 눈이 죽어가지고….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냐?"
"글쎄요….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우진의 순수한 질문에 아저씨는 오히려 당황했고 대답하지 못했다.
아저씨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우진한테 말했다.
"눈깔도 이 정도면 괜찮고…. 그러면 내 밑에서 일해볼래?"
그렇게 우진의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
.
.
"주인님…."
'그런데 왜…. 아저씨는….'
"주인님!"
상념에 빠진 유다의 정신을 깨운 것은 유다의 메이드 캐시였다.
"어어…. 듣고 있어."
"주인님. 현재 목표 대상이 움직이는 중입니다."
캐시의 말처럼 유다가 잠시 멍을 때린 시간에 다울이 움직였다.
다울은 어디에서 난 건지 모를 검은색 구슬을 가지고 공동묘지 중앙에 있는 제단에 올려놓았다.
"불길한 기분이 듭니다. 파괴할까요?"
캐시가 파괴하자는 제안을 건네왔다. 본래 평범한 상태의 유다였다면 당연히 파괴하자는 선택을 했겠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았다. 다울을 멈춰 세우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모르겠어….'
어쩌면 다울로 전생의 유다를 떠올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이미 예전 일은 잊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구나….'
"주인님. 혹시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캐시가 물어올 정도로 유다의 안색은 많이 좋지 않았다. 캐시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 유다는 결단을 내왔다.
'다울을 통해 내 전생을 투영하는 것이라면…. 내가 직접 그보다 나음을 증명하는 되는 것이야.'
인간은 누군가보다 위에 섬을 증명함에 따라 만족을 얻는다.
누구보다 뛰어나서 우월감을 얻고 행복을 얻는다. 위를 동경하기에 열심히 노력한다. 상위권에 들수록 자신감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유다는 증명하고자 했다. 전생의 자신보다 현생의 자신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아무리 다울 벨라레가 모든 패를 사용한다고 해서 지금의 자신보다 안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다지만 이번에는 심장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다울의 마법진이 그려졌고 발동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령술사인 아리아나 윈터님을 부르옵니다!“
‘여기서 아리아나가 왜 나와?’
다울은 이미 죽은 흉성을 부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