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아카데미 탐정놀이(2)
* * *
레이시와 클레아는 벨라레 가문의 돈으로 지어진 행정관 쪽을 살피고 있었다.
"후…. 이래가지고는 진척이 없습니다. 저기를 한번 찾아보는게 어떤가요?"
레이시는 저 옆에 보이는 자물쇠로 막힌 정비창고실이라는 곳을 가리켰다.
"안돼요. 저기는 출입하는 것이 금지된 장소입니다. 아무리 조사 차원이라도 규칙을 어겨서는…."
덜컥….
레이시는 자물쇠를 만능락픽으로 열어버렸다.
"흠…. 어쩔 수 없이 열려버렸네요. 조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아…."
황녀는 말괄량이인 레이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클레아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조금은 있었다.
"조금만 탐색하다 바로 나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황녀님."
레이시는 에픽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 이주 열정적으로 탐사했다.
에픽퀘스트의 달성목적인 수상한 사람을 잡거나 처치하라는 말은 모호하기 짝이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물건이 발견되면 황녀한테 조르르 달려가서 물어보았다.
"황녀님 이거!"
"토테미즘 형식에 장식품이에요."
"이게 진짜 수상해요!"
"하아…. 그냥 소환술사가 쓰는 촉매제에요."
"황녀님! 황녀님!"
"....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로 와보세요!"
레이시의 격한 손짓에 황녀는 마지 못해 레이시가 손짓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여길 보세요!"
레이시가 가리키는 곳에는 카펫이 있었고 카펫을 치우니 지하로 가는 문이 보였다.
"이건……."
"아무래도 찾은 것 같죠? 황녀님?"
바닥에 있는 문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
황녀는 생각했다. 만약 유다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면….
게다가 지하실이 벨라레 가문의 치부라면….
'자세히 알 가능성은 발견했을 때 지금밖에 없어.'
안정적인 방법으로 아카데미 측에 알리는 방법이 있지만, 유다의 손길로 인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다.
'내려가서…. 확실한 증거를 찾는 거야.'
황녀가 내려가자는 뜻을 비쳤고 레이시는 당연히 수락했다.
돌로 된 계단을 내려가서 레이시가 보게 된 것은 실험실 같은 분위기였다.
"여기는…."
황녀도 놀랐는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제국법상 불법실험은 극형에 처하지요. 아무래도 법을 어기면 어겼지 지킨 것 같지는 않네요."
황녀는 준비해둔 영상기록구를 작동시켰다.
'증거는 차고 넘칠 테지.'
흰색 방에는 어디론가 또다시 이어지는 문이 있었지만, 황녀와 레이시는 일단 이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과 알 수 없는 단어로 기록된 일지. 영문모를 도구들까지.
그렇게 황녀와 레이시가 흰색 방을 조사한지 5분이 지날 무렵에.
끼이이익…….
누군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서로를 바라본 레이시와 클레아는 고개를 끄덕거린 후 통로 바로 옆에서 대기했다. 레이시는 특히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를 철제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뚜벅뚜벅뚜벅….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이는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무려 교관이 아니라 교수였다.
"음…. 침입의 흔적이 있군!"
빠르게 클레아를 발견하고 손을 뻗으려던 찰나 문 옆에서 대기하던 레이시의 타격이 이어졌다.
퍼억!
털쎡….
몽둥이질을 맞은 교수는 그대로 머리에 피 분수를 흘리며 쓰러졌고 레이시도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에 지쳐 자리에 앉아버렸다.
"허억…. 허억…."
"이 사람 본 적이 있군요. 3학년을 가르치던 사람일 거에요.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죠."
황녀는 쓰러진 교수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죽었네요.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게 아쉽지만 대처해줘서 고마워요. 레이시 양."
클레아는 넘어진 레이시에게 손을 뻗었고 레이시는 그런 클레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단은 더 여기 있으면 위험할 것 같으니 나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황녀님."
그렇게 클레아와 레이시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도중 레이시는 문득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맞아. 저 교수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진리구제회의 스파이!'
아카데미 첫 번째 습격 때 나서서 퇴장하는 놈이었지만….
'아직도 활동하고 있었다니….'
레이시는 시간이 흐르면서 원작을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적어두었기에 다행이지….'
'잠깐…. 교수 놈이 살아있다는 것은….'
불안한 기분이 레이시의 몸을 관통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뭔 일이 있어도 유다가 알아서 해주겠지.'
그렇게 황녀와 레이시는 지하에서 안전하게 지상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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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널…. 교수가 죽었군."
더널 교수의 고유능력 [최후의 통보]으로 더널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막기에는 이미 늦었군."
더널교수의 죽음과 함께 아카데미는 멸절의 길로 쳐들 것이다.
따가가각….
어두운 방 안에 뼛조각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면 쓴 남자는 일어섰다.
"마침 아카데미 안에 학장도 없군.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겠어……. 모든 사람의 회개를 위하여…."
아카데미 구본관 쪽에서 시체들로 이루어진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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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생활관 옥상
마성은 오늘도 역시 무료하게 관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뭐…. 시간은 많아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기다리게는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유다."
유다에게 기대하고는 있지만 딱 그뿐. 그가 성공한다면 그 대열에 갈아타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여태까지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마성은 절대 손해 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스으으으윽….
"흠…. 더러운 사기가 느껴지는데."
제국 7성이고 중앙마탑주인 그녀의 탐지범위는 어마어마했다. 그녀는 거의 1인 결계라 할 정도로 무방했다.
"슬프네…. 습격받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또다시 습격이라니…."
루시는 안타까운 듯 쓰윽하고 옥상 난간을 훑었다.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 상관없나…."
마성은 동전을 꺼냈다.
"그래도 아카데미가 습격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무성이랑 황제 둘이 지랄할 것 같으니…."
"앞면이 나오면 처리해주고…. 뒷면이 나오면 살려줘야지~"
그녀는 항상 철저한 방관자였지만 오늘만큼은 동전의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튕!
동전은 튕겨 나갔고.
빙그르르르르….
탁! 하고 바닥 사이에 있는 틈에 꽂혀버렸다.
"어머? 이러면 앞면도 뒷면도 아닌데…."
"절반씩 타협해야겠지?"
마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자들의 군단에 절반이 사라졌다.
마성이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이 정해졌다는 뜻이었다. 이미 아카데미는 마성이 만든 크고 작은 결계 17개와 1230개의 마법으로 도배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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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
제나는 유다의 방에서 쫓겨났다. 업무를 핑계로 몸을 자꾸 만져대었다는 이유였다.
"유다…. 꽤 화나 보이던데…."
아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야 유다의 화가 가라앉을 것이다.
한때 흉성을 뛰어넘을 만큼의 사령술 실력을 갖춘 그녀였지만 마력을 전부 잃어버렸다.
그렇기에 제나는 유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마력을 평소에 열심히 모았다.
평소라면 방에서 쫓겨났을 때는 마력을 모으면서 유다의 방앞에 앉아 유다를 관찰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사기가 느껴지네?"
사령술이라면 그녀의 전문 분야였다. 흉성마저도 인정한 그녀의 재능은 마력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해서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제나는 여유롭게 사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도착했다.
그곳에는 대항하는 교수진들과 학생 그리고 스켈레톤들이 엉켜있었다.
"뭐야…. 무슨 처리도 안 되고 저급한 시체들이잖아."
제나는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유다의 화를 풀 기회였다.
'대충 시체들도 처리하고 유다가 평소에 싫어하던 교관들의 방을 부수면 기뻐해 주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면 유다가 싫어하는 교관들을 사고로 죽여도 상관없었다.
'마침 저기 교관 한 명이 있네.'
제나의 마력 양은 극도로 적었기에 시체 완전지배는 지금 상태에서 불가능했다.
"하지만 명령권 탈취라면."
시전자가 상대방보다 실력적으로 완전우위에 있을 때 적은 마력으로 명령권 체계를 바꿀 수 있었다.
물론 시체를 움직이는 마력은 상대방한테 나오므로 상대방이 마력을 끊어버린다면 수용 없는 짓이기는 했다.
상대방의 마력으로 시체를 움직이는 명령권 탈취는 과거에 뛰어난 사령술사가 하위 사령술사를 부리며 세계를 위협하게 만든 기술이었다.
그 고난이도의 기술을 제나는 아주 손쉽게 해냈다.
'집중 공격.'
푹!
스켈레톤들이 진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유다가 싫어하는 교관을 죽였다.
물론 교환비가 처절하기는 한데 별 알 바 아니었다.
"그나저나 스켈레톤 하나만큼은 많네…."
제나가 손짓하자 스켈레톤은 뒤로 물러났다. 이제서야 이 스켈레톤을 부리고 있는 가면 쓴 사람은 이상함을 깨달았다.
"자…. 자…. 일단 후퇴하자. 나도 궁금한 게 있는 말이지~"
제나의 손짓에 따라 스켈레톤 무리는 아카데미를 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켈레톤 무리는 자신에게 마력을 공급해주는 시전지까지 끌고 나갔다.
아카데미 내부에 스켈레톤이 사라지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추적하기보다 휴식하기를 택했다.
'여기는 처리되었으니….'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나는 가면 쓴 남자와 만나보기로 했다.
아카데미 밖에서 수많은 구울과 스켈레톤이 그 남자를 가운데로 지키고 있었지만, 제나의 손짓 한 번에 바닷물이 열리듯이 길을 비켜주었다.
제나는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가면 쓴 남자가 쓰고 있는 사령술의 형태는 아리아나의 형태와 비슷했다.
"안녕?"
"너는 아까 무슨 짓을 한 거냐!"
"건방지네."
명령권 탈취를 강하게 몰아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상대방은 마력을 내고 자신이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면 마력을 뽑아낼 수 있다.
"끄아아아아악."
마력이 전부 뽑히고 생명조차 뽑힌다. 흉성이 없기에 제나보다 사령술이 뛰어난 사람은 세계에 없었다. 제나는 이 순간 모든 사령술사의 천적이 되었다.
“그러게 주제를 알았어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