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나를 증오해주세요(3)
* * *
"누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유다님."
에스투스는 유다의 조종하는 데로 이끌렸다.
'연비가 극악이긴 해도 쓸만하니까.'
아마 쓰고 나서 다시 수개월 동안 여동생인 이사벨한테 다시 부탁해야 할 것이다.
유다가 킹. 아자젤이 퀸 에스투스가 비숍이 된다.
제나가 흑이기 때문에 백인 유다가 먼저 기물을 움직인다.
F1에 있던 에스투스를 C4로 이동시킨다.
제나가 킹의 앞에 있던 폰을 앞으로 1칸 이동시켰다. E7이 E6로 움직였다.
제나는 명백히 유다를 도발 중이었다.
'왜 킹 앞에 폰을 제거해준 것이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이 방법 말고는 유다가 단 한 번이라도 공격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었다.
유다는 퀸을 D1에서 F3로 움직였다.
이게 전생에서 유명했던 스콜라 메이트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유다의 기물이 현저히 부족하기에 약식으로 사용되었지만, 제나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했다.
*스콜라 메이트: 체스에서 4수안에 체크메이트를 하는 기보. 일명 뉴비 제초기
하지만 그런 유다의 위협과는 별개로 편안히 나이트를 움직이는 제나였다.
참고로 이세계의 체스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놀이였다.
유다가 헤이스트 상단을 통해 만든 새로운 게임이었다. 체스와 비슷한 게임은 있었지만, 유다가 체스라는 새로운 게임을 소개하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제나도 유다에게 체스를 제안한 까닭이었다.
'제나가 스콜라메이트를 눈치채지 못했다?'
제나와 유다는 예전에 체스를 둔 적이 있었다. 그때의 제나는 유다가 체스를 손수 알려준지 며칠 만에 엄청난 실력이 되어서 돌아왔다.
유다가 생각에 빠져 퀸을 움직일까 고민하던 도중 제나가 말했다.
"유다. 잘 들어 이 게임은 평범한 체스가 아니야. 공격한 기물이 역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게임이지. 참고로 내 체스의 킹은 제국 7성 중 한 명인 내 아버지야."
유다가 퀸을 움직이려던 손을 가만둔 것은 그 까닭이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제국 7성인 킹이 누나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누나. 혹시 평범한 상태에서 제국 7성을 이길 수 있어?"
유다의 말에 볼을 긁적이는 아자젤이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아자젤이었지만 이번에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공격하는 입장도 아니고 공격받는 입장에서는 디버프까지 받으니 힘들 것이다.
'킹을 잡는 것은 포기해야 하나.'
노선을 빠르게 돌린다.
'이래서 제나가 기물 10개를 잡아도 좋다고 말한 것이구나.
"누나 그러면 다른 흑기사들은 이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신체 능력이 최대로 떨어질 때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유다는 곧바로 활동을 개시했다.
퀸을 움직인다. 폰의 목이 달아난다.
제나는 유다가 퀸을 움직일 때마다 킹을 움직였다.
제나의 킹은 유다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유다와 제나의 킹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누나. 약화한 제국 7성하고 버프 받은 누나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아자젤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길 것 같습니다."
아자젤에게 말에 제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상대는 제국 7성 중 투성인데? 1대1로는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제국의 별인데?"
제나가 의문을 담아 물어보았지만, 유다는 아자젤을 믿었다.
유다가 아자젤을 바라보았고 아자젤도 유다를 바라보았다. 선명한 신뢰가 느껴졌다.
"퀸. C7에서 C2로."
아자젤과 제국 7성의 정면 대결. 설령 제국 7성이 약화되고 아자젤이 강화된다고 해도 승패를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유다가 이런 선택을 내린 것은 아자젤이 보여준 신뢰의 감각 때문.
유다는 전생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신뢰라는 감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감정이었다.
제나가 킹을 움직였고 유다도 퀸을 움직였다.
그리고 유다의 퀸이 제나의 킹을 덮쳤다.
아자젤과 제국 7성인 제나의 아버지 이에텔 테낙스가 부딪혔다.
아자젤의 검은 체내의 모든 신성력을 짜냈는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자젤의 모습은 평소처럼 대검 하나만 꺼내든 모습이 아니라 손목 안쪽에 빛이 번쩍거릴 만큼의 날붙이와 신발 쪽에 수납한 단검을 따로 꺼내 들고 있었다.
유다의 눈에는 잔상밖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대검이 머리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투성을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대검을 높이 치들었고 내리꽂았다.
기기기기긱!
팔을 들어 올린 투성의 방어를 가볍게 찢어발길 것만 같은 참격은 푸른 불꽃만을 뿜어낸 채 튕겨 나갔다.
쿠궁….
하필 튕겨 나간 공격 때문에 한쪽 기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미친. 저게 사람 피부인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유다는 경악의 감정만 비칠 수 있었다.
아자젤의 강맹한 공격이 들어가고 투성의 팔은 근육이 수축하듯이 펌핑되고 엄청난 바람이 그의 주먹에 모였다.
그리고 단 일격.
펑!
유다도 보았다. 그 공격이 아자젤에게 닿지 않았음을.
닿지 않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자젤의 흉갑은 조금 찌그러졌다.
'저게 어딜 봐서 시체인 거야.'
투성의 실력도 놀라웠지만 그런 투성이 온전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제나에게는 더더욱 놀랐다.
아자젤은 품속에서 스크롤을 한 장 찢었다.
유다도 알고 있는 감각둔화라는 스크롤이었다.
아자젤은 자신한테가 아닌 시체한테도 아닌 제나한테 사용했다.
'확실히 시체를 조종하는 자를 공격하는 방법도 좋기는 하지.'
그런 의미에서 아자젤은 제나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제나한테 고작 저런 주문서 1장 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제나는 씩 미소지었다.
"겨우 감각둔화 따위가 통할 것 같아?"
"1장이 아니야."
아자젤은 그런 제나의 말에 화답한 후 공간에서 주문서 수십 장을 꺼냈다.
"자…. 잠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제나는 급하게 투성을 빠르게 조종했지만, 잠시동안 시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감각에 혼란이 왔다.
아자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신성 폭발]
신성력을 때려 박아 강제로 휘저어 터트리는 아자젤의 기술이었다. 시전자도 무사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투성이 받는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콰과과과쾅!!
바닥에 장식된 체스판이 설탕 조각처럼 깨지고 유리로 된 벽과 천장은 거대한 진동에 알아서 깨지기 시작했다.
쨍그랑!
까만색 연기가 진하게 일어났고. 유다는 무심결에 말했다.
"해치웠나?"
투둑….
잔해 부스러기가 밟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투성이 자욱한 연기를 뚫고 나왔다.
"하…."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해버린 줄 알았지만, 아자젤의 손은 아직도 굳세게 검을 쥐어 들고 있었다.
잠시 후 투성의 몸이 붉은색으로 부풀더니 바닥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다리근육이 팽창했다.'
쿠콰콰쾅!
귀가 얼얼한 소닉붐이 일어났고 투성의 몸은 한순간에 아자젤의 앞까지 도착했다.
깡!
아자젤은 접근한 투성의 몸체를 신성력으로 점칠 된 대검으로 쳐냈다.
'인간의 몸에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데.'
투성의 몸을 쳐낸 아자젤의 검은 거대한 충격에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휘어져 있었다.
한순간의 격돌 이후 투성의 몸 중에 다시 팔이 팽창되더니 그대로 반파된 바닥을 때렸다.
쾅!
바닥은 금이 가며 폭발했고 10m는 넘게 떨어져 있는 아자젤이 있는 장소에도 영향을 끼쳤다.
유다는 바닥에 흔들림을 느끼며 제나한테 소리쳤다.
"제나!"
"아니 그게 어차피 파괴된 바닥을 신경 쓸 이유가 없는걸."
유다의 말에 질린 나머지 제나는 조용히 구시렁댔다.
다행히 바닥이 폭발한 반경에 든 아자젤은 점프해서 회피했다.
지금 현재 상황으로는 투성의 몸체에 너덜너덜한 신성력 충격을 받았고 아자젤의 검은 휘어져 있는 상태였다.
둘 다 상태가 메롱 해서 누가 이길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휘어진 검이 최종전을 준비하듯 빛을 발한다. 투성도 온몸이 붉어져서는 몸 사이로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얏!"
아자젤의 기합 소리와 함께 휘어진 검과 투성의 주먹이 부딪혔다. 세상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여졌다.
디잉!
마치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공간 자체를 진동시켰다.
빛이 사라지고 나서 보이는 장면은 투성이 쓰러져 있었고 투성의 몸에는 단검 4개가 부채꼴 형태로 꽂혀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경악하는 제나.
"무기가 대검 말고는 없다고 안 했잖아."
제나를 향해 담담하게 말하는 아자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졌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유다님."
그렇게 말하면서 쓰러지는 김에 명상하는 누나였다.
3승2패
이제 6번째와 7번째의 게임이 남았다. 사실 게임이고 뭐고 지금은 그냥 쉬고 싶었다.
6번째 게임: 상재
간단히 말해서 장부에서 이상 있는 문제를 찾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왜 이게 진짜 장부 같지?'
테낙스 가의 명부가 적혀있었다.
"제나. 너 이거"
유다는 제나에게 말하려다가 제나가 소리를 죽여 입을 막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거…. 도대체…."
"별것 아니야 유다. 방금 조금 무리해서 그래. 그리고 친한 척 말 걸지 말아줄래?"
제나가 묘하게 쌀쌀 맡았다.
유다는 그렇게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고 제나한테 패배했다.
7번째 게임: 무력
"휴 겨우 여기까지 도착했네."
제나는 후련해 보였다.
"..."
"유다. 이곳의 승부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워보자."
불길한 기분이 유다를 강타한다.
"유다. 너의 부모님 누가 죽였는지 알려줄까?"
"누군데…."
기분 나쁜 끈적거림이 몸을 덮친다. 부디 예상했던 진실이 아니기를 바랬다.
"내가 죽였어. 처리하는 데 꽤 힘들었지."
제나는 유다의 부모님을 죽인 것은 자신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나의 음성을 듣고서야 유다는 웃을 수 있었다.
"거짓말."
그녀와 같이 지낸 시간이 자그마치 10년이다. 거짓말을 구별하는 것 따위는 쉬웠다.
그녀는 명백히 거짓말을 말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