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85화 (85/120)

〈 85화 〉 방학식

* * *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입학식 때와 똑같은 천장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곳을 내리쬐는 햇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볕은 피부가 익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사계절이라는 구분이 없는 테오도르지만, 어느 정도 구분을 할 수는 있었다. 특히 오늘같이 쨍한 햇볕을 계속해서 쬐고 있으면 아무리 둔감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습도가 높아져서 끈적해지는 피부와 햇볕이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기의 존재였다.

그놈의 모기 때문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깼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만큼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만큼은 달랐다. 이 세계에서는 모기가, 모기의 역할을 하는 곤충이 존재하지 않았다.

피를 빨아먹는 박쥐는 있을지언정 모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

이 소설을 썼던 작가 또한 모기를 누구보다 혐오했던 것이겠지. 나는 이 세계가 누군가가 창작한 세계라는 것에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장의 말은 그리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없었다. 어느 곳이나 교장의 말이란 그리 쓸 곳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앞에는 칼 엘과 다니아가 나란히 교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타이렌이 내 앞에 나타났던 이후에 어째서인지 엘과 다니아는 나에게 계속해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들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밀어내었지만, 한동안 계속되는 그들의 사과에 차마 계속해서 밀어낼 수가 없었다.

칼 엘과 다니아 모두 사과문의 정석이라고 할까, 너무나 깔끔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기에 나로서는 딱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내가 그들의 사과를 받아주고 얼마 뒤부터 그들은 천천히 나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의 시간 전에 인사를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안녕….”

“네……. 안녕하세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서로 말을 놓게 되었고.

“천문학 수업도 들어……?”

“아……… 그냥 궁금해서.”

이제는 같이 밥을 먹으러 갈 정도가 되었다.

“.....끝나고 뭐해?”

“별거 없지.”

“같이 밥이나 먹을래?”

처음에는 그들과 엮이는 것이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리 상관없었다. 그 사건 이후에 그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 사람은 그들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주위에 있는 노엘이나 소니아는 난리였지만, 나는 그들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보았다. 비록 처음에는 오해로 안 좋은 사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서로 좋은 관계를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졸업식이 끝나자 학생들은 물밀듯이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나 또한 나아가면서 내 옆에 있는 이들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넌 방학 동안 뭐할 거야?”

엘은 나를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엘리시아 쪽을 한번 가보려고.”

“바다를 보려고?”

다니아는 엘의 옆에서 소심하게 물었다.

“ㅇ, 어. 에메랄드빛 바다라는데 궁금하더라고.”

“조심해.”

엘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을 테니까.”

엘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아무리 지금은 잘 지낸다고 해도, 브레토니아와 엘리시아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브레토니아의 귀족 영애인 내가 관광만을 위해서 간다고 해도 그리 고운 시선만 있지는 않겠지.

“응…… 고마워.”

그렇기에 나는 엘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며 앞으로 걸었다.

여름 방학이 되어도 바뀌지 않는 곳이 있었다. 내가 아는 곳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바로 노엘의 실험실이었다.

이곳에는 노엘과 소니아, 그리고 내가 익숙한 듯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약품은 온도 때문에 노엘의 냉동고에 들어가 있었기에 실험실의 책상은 상당히 깨끗해져 있었다.

“너네는 방학 동안 계획 같은 거 있어?”

나는 그들에게 방학 동안 세워 두었던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소설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료 계획은 무엇일까.

나는 궁금증을 눌러 담아 그들의 얼굴을 마주치며 물어보았다.

“나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지.”

노엘같은 경우는 연금술사답게 이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연금술사들은 한번 자리 잡은 곳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 연구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정확하게 말을 해줄 수는 없지만, 완성되면 네가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을 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가슴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들릴 데가 있어.”

소니아의 대답은 내게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라면은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을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노엘 또한 놀란 얼굴로 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어디에?”

노엘은 소니아가 움직인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란 듯 했다. 나 또한 놀랍지만, 그녀의 동료인 노엘이 이 정도로 반응할 정도라니. 과연 소니아는 어떤 인간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궁금점이 더욱 깊어져 가는 듯 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당할 것 같아서 말이지.”

소니아는 이를 갈며 말했다.

“아하………. 그럼 인정이지.”

노엘은 대충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소니아를 바라보면서 씩 웃기까지 했다.

뭐랄까, 자랑스러운 자식의 성장을 지켜본 부모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안 가 노엘은 소니아에게 맞아서 고꾸라졌지만, 노엘의 얼굴의 그대로였다.

나는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에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뭐 예정 없어?”

소니아는 노엘을 쓰러트리고 난 뒤에 나에게 물었다.

“아……. 나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가씨.”

“바로 엘리시아로 가자.”

나는 엘리시아를 가고 싶었다. 그 어느 곳보다 말이다.

“하지만…… 한번은 본가에 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엘리사의 말이 맞았다. 한번은 본가로 가서 벨리타 가문의 가주도 한번 보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벨리타 가문의 가주, 벨리타 자스민의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를 만난다고 해봤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의 관점에서 나는 딸의 몸을 빼앗은 놈일 뿐이었다. 나는 벨리타 자스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스민과 가필드의 사이에 껴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지 제 3자일 뿐이었다.

내가 그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내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나는 죄인 아닌가. 다시는 본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여행을 계획했다. 원래 한 번쯤은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고, 지금 여름일 때 딱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가도 괜찮을 거 같아.”

‘하지만………….”

엘리사는 무언가 말을 할 게 있었던 것 같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엘리사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대답에 겨우 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고마워 엘리사.”

여행을 가는 데에는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입을 옷과 적당한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여행이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엘리사. 너무 많이 챙기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이 정도는 되야……….”

일단 엘리시아로 가기 위한 신분증이 필요했다. 나는 브레토니아의 귀족이었기에 신분증과 더불어 많은 서류가 필요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갈수록 엘리사의 가방 속에는 별의별 것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여벌 옷들이라든가, 나를 종이라던가, 내가 알 수도 없는 것들이 계속해서 가방 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엘리사 전부 들고 갈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산만한 가방을 드는 엘리사의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평소에 보여주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녀에게는 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내려놓자. 그냥 관광하러 가는 거잖아.”

그래도 나는 그녀를 설득해서 그녀의 가방을 최소한 가법에 만들었다. 분명 나는 관광을 하는 건데 그녀는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엘리사, 왜 이렇게 긴장한 거야.”

나는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노파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너무 긴장하는걸.”

그동안 엘리사를 많이 봐 왔다. 그렇기에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엘리사가 어떤 마음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엘리사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그녀 스스로 행동하는 이유는 감 같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유는 뚜렷하게 말을 할 수 없는 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럼…… 이제 출발하자.”

“네, 아가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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