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일일 데이트 주간 파노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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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논란은 있었지만, 제가 일곱 명 모두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한 다음 날, 일곱 분과의 일일 데이트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첫날에는, 파노스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애님, 첫 상대가 저여도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파노스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파노스는 저와 함께하는 일일 데이트의 첫 번째 상대가 된 게 마음에 안 드나요?”
“그건 아니지만, 전 당연히 니콜라스 형님이 먼저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파노스.”
저는 파노스의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살포시 막았습니다.
“지금 제 애인은 파노스잖아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실례했습니다, 영애님.”
기왕 제가 애인 역할을 해드리는데, 파노스도 조금 더 몰입해주면 좋겠네요.
“에잇!”
확실하게 지금 파노스의 애인은 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파노스의 왼팔을 잡고 팔짱을 끼었습니다.
“여, 영애님?!”
예상하지 못한 건지, 놀란 모습이 역력하네요.
“애인끼리 이 정도는 평범하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도 괜찮으신가요.”
아직도 딱딱한 느낌이 다 빠지지 않았네요. 능글능글한 척 여유를 부리는 파노스는, 오히려 제가 다가가면 숙맥처럼 변할 때가 많으니까요.
오늘도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하기 전 준비한 게 몇 가지 있습니다.
“파노스, 혹시나 해서 여쭤볼게요. 오늘 저와의 데이트에서 절대 바뀌면 안 되는 계획이 있나요?”
“영애님을 위해 준비한 데이트 플랜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만약 파노스가 절대로 진행해야만 한다는 데이트 같은 게 있었으면, 제가 준비한 계획을 사용하지 못할 뻔했으니까요.
“파노스, 지금부터 한 시간 뒤에, 옷을 갈아입고 학교 정문에서 볼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드레스 코드는 어떻게 맞추면 좋을까요.”
“최대한 서민답게, 라고 말씀하시면 아시겠죠?”
“서민답게, 라는 말씀은…….”
“네, 맞아요.”
파노스에게, 오늘 데이트의 일정을 밝혔습니다.
“오늘은 파노스하고, 서민 데이트할 거예요.”
한 시간 정도 뒤, 파노스가 약속한 대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괜찮아요, 별로 안 기다렸는걸요.”
저는 당연히 오늘을 위해 입을 옷과 스타일까지 미리 준비해 놨으니까요. 미리 준비한 저보다 늦어지는 건 당연하겠죠.
파노스는 바지와 조끼, 코트를 같은 색으로 맞춘 스리피스 복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얼핏 보면 고위 귀족처럼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신발은 구두 대신 단화를 신고, 장갑도 흰색이나 검은색이 아닌 갈색 장갑을 껴서 귀족보다는 부유한 서민 자제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네요.
물론 중절모로 눈에 띄는 머리카락 색을 감추고, 렌즈가 없는 안경으로 첫인상의 이미지도 바꾼 상태입니다.
여덟 살 때 프레타리아에서 봤던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파노스의 서민 복장과는 다르게, 듬직하면서도 자상할 것 같은 이미지의 복장이네요.
“파노스, 옷 잘 어울리네요. 단호하고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에요.”
“칭찬 감사합니다, 영애님, 영애님의 못도 대단히 아름답고 멋지십니다.”
참고로 제 옷차림은, 검소한 레이스가 달린 남색 원피스와, 같은 색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습니다. 붉은 장밋빛의 제 머리카락도 너무 눈에 띌 것 같아, 마리에게 부탁해서 길게 땋아 말아 올린 뒤 모자로 감추었습니다.
“그럼 출발하죠, 가 아니라, 서민 말투로 바꾸는 게 좋겠네.”
“그래, 아그네스.”
“가자, 파노스……아니. 이걸로는 조금 부족해.”
평소처럼 파노스라고 부르려다가, 갑자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데?”
“파노스는, 너무 이름이 유명해. 물론, 파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야 서민 중에도 수십 명은 있겠지만, 그래도 파노스 정도로 키가 크고 듬직하고 잘생긴 파노스는 또 없을 테니까.”
“키가 크고 듬직하고 잘생긴…….”
“혹시라도 너를 파노스라고 불렀다가, 다른 사람에게서 의심의 시선이 들어올 수도 있잖아? 파노스는 서민 중에서도 인기가 높으니까, 하마터면 데이트가 엉망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아그네스, 지금 질투하는 거야? 혹시 내가 서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게 싫어?”
파노스가 능글능글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응, 싫어. 파노스는 내 애인이니까. 내 미래의 남편이 될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 난 네가 다른 영애들에게 질투 같은 걸 하지 않는 것 같길래, 딱히 신경 안 쓰는 줄 알았어.”
파노스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는 물론 그랬지. 하지만 알게 된 이후로는, 솔직히 말해서 질투하고 있어. 분명 파노스는 나를 좋아하는데, 왜 다른 여자한테도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
하지만 나도 일곱 명 전원을 사랑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으니, 파노스가 다른 여자와 즐겁게 이야기하고 묘한 분위기가 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냥 참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없이.”
“…….”
용기를 내서 파노스에게 속마음을 고백했는데, 파노스는 당황했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게 네가 질리는 것도 당연해. 나는 당당하게 일곱 다리를 걸치겠다고 말해 놓고, 네게 다가오는 여자한테는 질투하는 이기적인 여자니까. 하지만 이것이 내 솔직한 감정인걸. 특히, 일주일에 하루뿐인 너와의 데이트 날을 망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놀랐어, 아그네스.”
파노스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그네스 네가 일곱 명 모두를 사랑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어. 나 또한 다른 영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진정한 사랑의 대상으로는 항상 너를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항상 사랑이라는 것은 일대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그네스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솔직한 심정을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나에게 질투를 느껴줬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큰 행복이야.”
“……환멸 안 해?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내 배우자는 일곱 명을 두고 싶으면서도, 그 일곱 명의 배우자들에게는 연인이나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여자라니까?”
“아그네스의 진심을 들은 것만으로 감동이야. 네가 말했던 일곱 명의 배우자에 관한 이야기, 나는 벌써 아그네스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저는 솔직하게 파노스에게 제 심정을 말했을 뿐인데, 파노스는 벌써 제가 했던 제안에 동의 의사를 내뱉었습니다.
“어, 어쨌든! 파노스가 동의했다고 해도 오늘 데이트는 예정대로 할 거야. 파노스와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니까.”
“나도 오늘 마지막 한 장소만큼은 아그네스와 가야 하는 곳이 있으니까, 데이트는 포기할 생각 없어.”
이렇게 얘기만 하다가는 교문 앞에서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아, 파노스에게 진짜 하려고 했던 얘기의 본론을 말했습니다.
“파에톤, 이라고 부를게,”
“파에톤?”
“파노스라는 이름은 너무 유명하잖아. 애칭 같은 느낌으로, 데이트하는 동안에는 파에톤이라고 부를게. 어때?”
“애칭…….”
파노스, 아니, 파에톤은 잠시 고민한 뒤,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네스.”
“응?”
“나도 너를 애칭으로, 아네스라고 부르게 해 준다면.”
“나도 가명을 쓰라고?”
“아그네스 너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네 이름은 네 상상보다도 훨씬 유명하고 멀리 퍼져 있어. 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 중에도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 그래……?”
“그러니까, 잘못해서 알아봤을 때 데이트를 망치게 되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나도 널 애칭으로 부를게, 아네스.”
조금 간질거리는 느낌의 이름이지만, 나쁘지 않네요.
“알았어, 파에톤.”
그렇게 말한 저는 다시 파에톤의 팔짱을 끼고, 왕도 거리로 단둘이 걸어갔습니다.
조금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왔습니다.
참고로 호위는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마리만 혼자 붙어 있습니다. 물론, 저와 파노스, 아니, 파에톤의 데이트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걷고 있지만요.
식사를 마치고 난 뒤, 파에톤과 둘이서 조금 거리를 산책했습니다. 당연히 파에톤의 왼팔에는, 제가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이고요.
30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원래의 데이트 계획이었던 장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네스, 여기는?”
“옷 가게야. 정확히는 서민의 옷 가게.”
“그야 보면 알지만…….”
파에톤은 왜 자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의문이라는 표정이네요.
“그 이유는, 내가 파에톤을 애인으로 사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니까.”
아직 의문을 가진 파에톤을, 일단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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