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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81화 (81/86)

〈 81화 〉 사죄를 드렸습니다

* * *

제가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하니, 일곱 명의 시선이 동시에 제게 꽂혔습니다.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마리만을 제외하고요.

“아, 아그네스. 어서 와.”

“니콜라스? 학생회실이 되게 어수선하네요. 대청소라도 하셨어요?”

“대, 대충 그렇지 뭐.”

니콜라스가 은근히 제 시선을 피하네요. 뭔가 숨기는 게 있으신 건지…….

“아, 마리. 제가 전달해달라는 이야기는 다 전달했나요?”

“마지막 부분을 전달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일이 발생해서 아직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꽤 여유를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요……. 갑작스러운 일이 뭔가요?”

“아그네스 님께서 고민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여기 계신 일곱 분께서…….”

“아그네스 님! 서서 얘기하시지 마시고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주인님, 다과를 준비할 테니 자리에 앉아주시겠어요?”

아리아나와 엘렉트라가 제가 서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불편했는지 배려해주었습니다.

“괜찮아요.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서서 이야기하는 편이 편할 것 같으니까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부회장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면 모두에게 균일하게 이야기 내용이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래서,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얘기한 상태예요?”

“아그네스 님께서 일곱 분의 사랑을 모두 대응하기 힘들어하시는 것까지 전달했습니다.”

“그럼 그 이후부터만 말하면 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하필이면 제일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남았네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가 직접 말하는 편이 더 진정성이 있을 테니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아그네스, 진심이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게?”

“솔직히 말해서……반 정도는 그래요.”

“대체 왜? 내가 혹시 모르는 사이에 아그네스에게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매주 세 번씩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웠어? 아니면 내가 국왕이 되면 너에게 소홀해질까 봐 겁나서 그래?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왕위 계승권을 파노스에게 넘겨버리고…….”

“형님, 왜 제가 순순히 왕위 계승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부탁드릴 테니 저 때문에 후회할 만한 선택은 하지 말아주세요.”

“후회라고 하면 너를 놓치는 것보다 후회되는 일은 없을 거야.”

니콜라스가 이렇게 애절하게 매달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그만큼 저에게 진심이셨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전 니콜라스의 진심을 7년이 넘게 알아주지도 않았고……심지어 다른 분들도 비슷한 심정이시겠죠.

“니콜라스 왕자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오히려 아그네스 누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 뿐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건, 주인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해도 늦지 않겠죠.”

“……그래. 내가 너무 성급했다.”

니콜라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잡았던 제 두 손을 놓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일단 이야기하기에 앞서, 여러분에게 사과드려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허리를 깊게 숙여, 이 자리에 모인 전원에게 사죄를 드렸습니다.

“제가 마음대로 이상한 행동을 해서, 여러분이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어서 정말로 미안해요.”

“……뭐라고?”

“영애님?!”

“아, 아그네스 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주인님…….”

비록 착각하고 한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에 대한 질타를 피할 자격이 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좀 더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니콜라스는 저보다 더 좋은 영애분과 약혼하셨을 것이고, 파노스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아리아나도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쟁취했을 것이고, 제이스도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사람들, 아니, 사람과 결혼했을 것이고, 에리나와 에리자도 두 사람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과 혼약을 맺었을 것이고, 엘렉트라도 시종 일 같은 건 하지 않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상대를 찾았을 테니까요.

바뀌어버린 여러분의 미래를 제가 보상해드릴 순 없지만, 그래도 제 사죄를 받고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어요.”

그냥 제가 원래대로 악역 영애를 연기했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만 지냈더라도 모두는 충분히 각자의 행복을 얻을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요.

모든 관계에 제가 중간에 끼어들어 제멋대로 뒤섞어 놓은 데다가, 제가 마치 좋은 여자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서 냉정한 판단을 못 내리게 만들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숨을 쉴 입이 남아 있지 않겠죠.

“아니야!”

니콜라스가 갑자기,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여, 역시 그렇겠죠? 이런 무게감 없는 변명으로는 니콜라스의 인생을 보상할 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니콜라스는 제가 하는 말까지도 급하게 끊으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래.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중 절반은 여자니까, 전 세계 곳곳을 뒤지면 아그네스 너보다 좋은 사람은 분명 수도 없이 나오겠지! 그중에는 나와 만난 적이 있거나 만날 운명이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 약혼자 후보 중에도 있었을지도 몰라!”

“그, 그렇죠. 아니, 오히려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이 일곱 살의 어린 나에게!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밤을 새워서까지 공부하고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집착하고 있었던 나를 일깨워주고 올바르게 나아가게 한 건 바로 너야, 아그네스!”

“하, 하지만……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이고…….”

“다른 누군가가 했을 가능성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일곱 살의 그 순간 내게 다른 관점을 일깨워 준 사람이 너라는 게 중요한 거야! 네가 했고, 네가 날 바뀔 수 있게 만들었어.

대체 그 누가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후회한다는 거야.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훌륭한 판단이었어. 내 여덟 번째 탄생일에 네게 말했듯이,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너만큼은 나라와 바꿔서라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니콜라스…….”

니콜라스가 제게 해준 말에 감동을 받아,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애님.”

“……파노스?”

니콜라스의 열변이 끝나고, 이번에는 파노스가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그네스 영애님을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건 당연하게도 영애님을 만나서 잘못된 운명을 향해 나아갔다는 뜻이 아닌, 영애님 덕분에 이전까지의 작고, 소심하고, 말을 더듬는 과거의 제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애님이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영애님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가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아스토리아 기초학교 설립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도 의심하지 않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어차피 저는 더더욱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전제로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영애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제게는 다른 미래가 찾아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미래가 지금의 저보다 더 행복한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애님을 만나기 전에 다시 미래를 바꿀 기회가 백 번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저는 불확실한 행복이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보다는 평생 짝사랑만 하다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백 번 모두 아그네스 영애님을 만나는 미래를 선택하겠습니다.”

“파, 파노스…….”

아, 안 돼요. 파노스까지 이런 얘기를 하면 더 참을 수가…….

“저도예요, 아그네스 님!”

이번에는 아리아나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도회에서 아그네스 님을 처음 만난 그날, 세상 물정 모르고 겁도 없이 제1 왕자와 공작 영애에게 덤벼든 저를 용서해주시고, 제 잘못을 덮어주셨던 그 날의 아그네스 님을 언제까지나 회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아그네스 님과 친분을 쌓기 시작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제 생일을 축하하러 먼 프레타리아까지 발걸음을 옮겨주신 사람은 아그네스 님이 처음이었다고요!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매년, 매년 빠짐없이 프레타리아까지 방문해서 제가 생일을 혼자 보내는 적이 다시는 없도록 하셨잖아요!

아그네스 님이 저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제가 품고 있는 이 감정이 저 혼자만의 감정이라고 해도 좋아요! 힘들고 불가능해서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도 좋아요! 그래도 전 아그네스 님을 만난 일이 한 번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요!”

“아리아나아…….”

이미 한계였던 제 눈망울은, 아리아나의 말을 듣고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네스 누나.”

제이스도 제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앙겔로풀로스에 도착한 날을, 기억하십니까. 루바스 가문 내에서 형제간의 정치에 밀려 가문에서 고립되고, 가족도 사용인도 믿을 수 없는 성격이 된 상태에서 저는 앙겔로풀로스에 입양되어왔습니다.

앙겔로풀로스에 와서 좋은 부모님과 아그네스 누나를 만나고도, 여전히 저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성격은 그대로인 채, 염치없이 첫날부터 개인 연구실을 만들 수 있겠냐고 아그네스 누나에게 물었었죠. 마음씨 착한 아그네스 누나께서는 본인의 드레스룸을 양보하면서까지 제 연구실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뻔뻔하게도 아그네스 누나와 부모님에게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넘겨짚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그네스 누나께서 그렇게 주의하라고 예고했던 화재까지 일으켜버린 데다, 제가 낸 화재인데도 본인 일처럼 부모님을 설득해주셨고, 화재로 인해 오른손 손등에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됐던 큰 흉터까지 입으셨던 아그네스 누나는 한 번도 저를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신 아그네스 누나에게 연정을 품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감정이 빠진 인간일 것입니다. 대체 그 누가 저와 같은 상황에서 아그네스 누나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사람을 만났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아그네스 누나가 제게 주신 관심만큼 크고 따뜻한 관심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평생을 오직 아그네스 누나만을 위해서 사는 한이 있더라도, 제 분에 넘치는 과분한 행복을 가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 제이스으…….”

이제는……눈물이 물줄기처럼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에리나와 에리자도 울고 있는 저에게 대화를 신청했습니다.

“아그네스 언니는, 저와 에리자가 신의 실수라는 것을 아시고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저희를 도와줄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헤나로 만든 염색약으로 제 머리를 자주색 머리카락으로 바꿔주었어요.

덕분에 저는 에리자와 함께 다녀도 신의 실수라고 불리는 일이 없었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저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그네스 누나는 저와 에리자가 가진 잠재력도 눈치채고, 화상 치료의 물약을 만드는 것까지 의뢰했어요. 다섯 가지 이유를 더 말하면서까지요.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아그네스 언니가 우리를 신의 실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저도 에리자도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그네스 누나가 처음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줬어요.”

“에리나…….”

“그리고 아그네스 언니께서는, 말뿐만이 아닌 진심으로 저희를 동생처럼 여기고 저희를 아껴주셨어요.

화상 치료의 물약을 생산하기 시작한 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저와 에리나가 몸 상태 관리를 하지 못해 쓰러진 적이 있었죠. 저희의 잘못이었는데도, 아그네스 언니께서는 저희를 보살피느라 식사도 일일이 먹여주시고, 땀으로 더러워진 몸도 직접 닦아주셨어요.

심지어 저와 에리나가 쓰러진 것은 아그네스 언니의 잘못이라면서 사죄하시고, 저희가 다시는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일하는 시간과 생산량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주셨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하시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아그네스 언니가 저희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요.

아그네스 언니의 말대로, 저와 에리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자매라서 많은 시간을 항상 공유하는데도, 서로 대화할 때마다 다른 의견이 하루에도 몇십 번씩은 나와요. 하지만 그렇게 많이 나눈 이야기 중에서 단 한 번도 엇갈리지 않은 의견은, 저와 에리나를 진정한 사랑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그네스 언니뿐이라는 사실이에요.”

“에, 리자…….”

너무 많은 눈물이 나와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것조차도 포기했습니다.

“……주인님.”

마지막으로 고백한 사람은, 엘렉트라였습니다.

“제가 입학 첫날이었던 날, 저는 주인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제가 다른 귀족 영애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제 영웅처럼 등장하셔서 저를 도와주셨죠.

처음에는 주인님이 저를 장난감이라고 부르시며 끌고 다니시고, 제 교양 예절을 매도하며 저를 괴롭히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매도하는 것은 제 부족한 교양 예절을 가르치시는 행동이셨고, 저를 아무렇게나 데리고 다니시는 것은 다른 분들의 괴롭힘을 막아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주인님께서는 저희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생활비를 주실 명목으로 저를 고용해주셨어요. 제가 주인님의 시종이 된 이후로 주인님은 제가 하는 행동 모든 것을 하나하나 칭찬하고 기억해 주시며, 제가 모자랐던 부분인 자신감마저 채워주셨습니다.

주인님이 저를 평생 모시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감사한다는 말은 한 톨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셨으니, 제가 주인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이상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처음부터, 주인님에게서 많은 사랑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인님이 어느 사람과 결혼하셔도, 저는 평생을 주인님을 따라가며 모실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돈이 많고 명예가 드높은 분께서 저를 배우자로 맞이했더라도, 제게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의 시종으로 살아가는 것 이상의 행복은 줄 수 없을 겁니다.”

“엘렉트라……엘렉트라아…….”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질 뻔했던 것을 마리가 잡아주었습니다.

제가 잘못 처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게 만들어 버렸는데도, 그 누구도 저를 탓하지 않고 그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마리가 넘어질 뻔한 저를 잡아준 이후로 다른 사람들도 제게 다가와,

제 눈물이 그칠 때까지,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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