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부 활동을 했습니다
* * *
“자, 헬렌. 배운 대로 하는 거예요.”
여름방학이 가까워지는 어느 날의 두 번째 요일, 저는 기수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뒤,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승마장에서 헬렌을 타고 있었습니다.
“자, 지금이에요!”
제 신호에 맞춰 헬렌이 첫 번째 점프를 뛰었습니다. 종합장애물의 첫 번째 평행횡목을 점프로 넘어간 이후, 이윽고 두 번째, 세 번째 허들까지 우아한 동작으로 넘었습니다.
‘히히힝!’
“서, 성공이에요, 파노스 왕자!”
만족스러운 헬렌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트리플 장애물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에 파노스 왕자의 앞에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영애님.”
제가 옷까지 갈아입고, 머리 모양까지 바꾼 후 학교의 승마장에서 헬렌과 함께 장애물을 넘고 있는 이유는, 매주 두 번째 요일은 승마부의 부 활동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부 활동이라고는 해도, 저와 파노스 왕자 두 사람뿐이지만요. 승마부에 들어오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을 탈 수 있을 것, 또 하나는 본인 소유의 말이 있을 것.
니콜라스 왕자와 아리아나는 말을 탈 수 없고, 엘렉트라는 본인 소유의 말이 없으니까요. 두 가지 다 충족이 되어야만 승마부의 승마부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실력이 좋아지십니다, 영애님.”
그래서 운이 좋게도 저는 승마 실력이 좋은 파노스 왕자의 개인 과외를 받으며, 헬렌과 함께 매주 승마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노스 왕자의 가르치는 방식이 좋은 거예요.”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승마부의 첫 부 활동 날, 파노스 왕자의 조언 덕에 제가 지금까지 고삐를 쥐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조언을 해준 덕에, 저와 헬렌의 호흡은 점점 좋아졌고요.
“헬렌과 스피로도 제법 친해진 것 같네요.”
제가 타는 말인 헬렌과 파노스 왕자의 스피로는, 저와 파노스 왕자의 승마용 말로써 매주 부 활동에서 마주쳤으니까요. 정이 싹트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죠.
“영애님, 오늘도 경주하시겠습니까? 코스는 늘 달리던 코스는 어떻습니까.”
“좋아요. 오늘은 지지 않을 거니까요.”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뒷산에 존재하는, 꼼꼼하게 정비된 산책로. 학교 소유의 부지인 데다가 지금은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을 시간이므로 마음껏 달려도 좋은 코스입니다.
“준비.”
마리가 스타트 지점에서 준비 신호를 하며 깃발을 들었습니다. 저와 파노스 왕자는, 각각 자신의 말의 고삐를 쥐고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출발!”
마리가 깃발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헬렌과 스피로가 출발했습니다. 시작은, 스피로가 아주 약간 더 빠르네요.
직선 주로의 활주에서는 스피로가 약간만 우세한 정도였지만, 첫 번째 코너를 돌고 나니 파노스 왕자가 약간 더 앞서는 것이 확실히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정된 일이니까요. 다시 한동안의 직선 주로 이후, 두 번째 코너가 나타났습니다.
코너에 맞춰, 헬렌의 고삐를 틀었습니다. 헬렌은 제 움직임에 반응하여, 두 번째 코스를 안쪽으로 손쉽게 돌아주었습니다.
코너를 돌고 나니, 이번에는 파노스 왕자가 제 뒤를 쫓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코너는 파노스 왕자가 안쪽이지만, 두 번째 코너는 제가 안쪽에서 도는 형식이니까요. 스피로의 직선 주행 능력은 좋지만, 코너링은 헬렌이 더 능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세 번째 코너, 그리고 마지막인 네 번째 코너를 돌고 나니, 파노스 왕자와의 거리가 조금 더 벌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의 직선 오르막 코스, 여기서 따라잡히지만 않으면 됩니다. 반 정도 주행했을 때, 파노스 왕자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짝 추격했습니다.
50m, 30m, 10m……그리고 마침내, 결승선을 두 명의 사람과 두 마리의 말이 통과했습니다.
“승자,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노스 왕자의 사용인이 제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잘 했어요, 헬렌!”
말에서 내려, 헬렌을 쓰다듬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걸로 6승 3패네요.”
마찬가지로 스피로에서 내려 제게 다가온 파노스 왕자가 말했습니다.
프레타리아에서도 그렇고, 원래대로라면 파노스 왕자와 경주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저이지만, 승마부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경주에서 가끔은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헬렌과 제 호흡이 좋아졌다는 이야기겠죠.
“수고하셨어요, 파노스 왕자.”
“영애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땀 흘리는 운동은, 역시 기분이 좋네요.
열심히 달리느라 고생한 헬렌과 스피로에게 소금물과 간식을 주는 동안, 파노스 왕자와 잠시 사담을 나눴습니다.
“파노스 왕자, 기말고사 준비는 잘 되어가시나요?”
이제 곧 첫 번째 학기의 기말고사가 다가옵니다. 기말고사만 지나면, 곧 여름방학이네요.
“저는 평소대로입니다. 영애님은 따로 준비하지는 않으십니까?”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아요. 저는 제 평소 실력을 알아본다는 데 의미를 두는 편이거든요.”
무엇보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의 시험 점수는 게임 스토리에 별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요. 시험을 대비하여 특별히 시간을 쏟는 것보다, 그 시간 동안 스토리에 도움이 되는 다른 것들을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엘렉트라에게 교양에 대한 주의를 시켜서 호감도를 떨어뜨리고, 니콜라스 왕자가 있을 만한 곳을 ‘우연히’ 아리아나와 산책하고, 파노스 왕자를 엘렉트라와 통성명을 하게 만드는 것 등이죠.
반년 뒤 제이스와 에리나, 에리자까지 입학한다면, 더욱 바빠지겠네요.
참고로 중간고사 성적은 니콜라스 왕자가 1위, 엘렉트라가 2위였습니다. 제가 엘렉트라를 너무 데리고 다니느라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엘렉트라는 멋진 두각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파노스 왕자와 아리아나도 10위 내이고, 저는 7위였습니다. 사실, 원래 게임에서의 아그네스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누적되어 부모님에게 신의를 잃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줄거리가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조금 마음에 걸렸으니까요.
150명 정도의 인원 중 상위 5%니, 기말고사에도 이 성적 정도만 유지한다면. 부모님도 실망하지는 않으시겠죠.
아, 그러고 보니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자마자 여름방학이니, 오늘이 파노스 왕자와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잖아요. 그렇다면 오늘이야말로 그것을 물어봐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파노스 왕자는 인기가 많으신데, 혹시 마음에 드시는 영애분은 있으신가요?”
엘렉트라가 파노스 왕자의 공략을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파노스 왕자는 아리아나에 빠져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방향성을 위해서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엘렉트라에게 직접 물어보아도 항상 ‘남성분 중에는 관심 있는 사람은 없어요’라며 얼버무리기만 해서 알아보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하렘 루트를 노리는 걸 숨기는 것일지도…….
“저는, 일곱 살 때 아그네스 영애님을 달빛 아래에서 처음 뵌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여성분에게 눈길을 준 적이 없습니다.”
역시, 쉽게 말씀하시지는 않네요. 단둘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실망하지 않을 만한 말만 골라서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저를 제외하고는요?”
“영애님을 제외하고 말입니까?”
파노스 왕자는 눈을 감고 깊게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하고.”
이 정도 뻔뻔함은 있어야 수십 명의 영애에게 사랑을 독차지 받을 수 있는 거겠죠.
더는 추궁해봤자 같은 대답만 돌아오겠죠. 결국, 엘렉트라가 누구를 공략하기로 한 건지는 미지수로 남은 채, 1학기의 마지막 부 활동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말시험이 끝난 날,
“수고하셨어요, 아그네스 님.”
언제나처럼 엘렉트라가 같이 하교하기 위해 제게 다가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엘렉트라.”
아마 다음 주쯤에는 시험 결과가 나오고, 바로 며칠 후면 여름방학이겠네요.
여름방학이라고 특별히 다른 일정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니콜라스 왕자가 이미 ‘여름방학에도 이전처럼 방문하겠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죠. 결국, 여름방학에도 주 3회 니콜라스 왕자를 상대하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아리아나도 매주 두 번째 요일에 오겠다고 하고……기초학교에 다닌다고 인간관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네요.
굳이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엘렉트라와 인연이 생긴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여름방학 동안에는 만나지 못하겠네요.
엘렉트라는 저희 영지의 위치도 모르고, 매번 마차를 타고 저희 영지까지 찾아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어려울 테니까요.
여름방학 동안에도 어떻게든 괴롭힐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의 엘렉트라는 솔직히, 제가 괴롭혔다는 사실을 니콜라스 왕자 앞에서 증언할 낌새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사실은 겉으로만 사근사근한 모습을 보이고, 속으로는 저에 대한 증오를 쌓고 천천히 증거를 모으고 있을 수도 있지만…….
조금, 확실히 하고 싶네요.
“엘렉트라.”
“네, 아그네스 님.”
“여름방학 동안, 잠시 일하지 않을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