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그래도,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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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신없는 나머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네요.
파노스 왕자와 엘렉트라 영애가 만난 적이 있는지, 만약 없다면 어떻게 해서 니콜라스 왕자를 이길 수 있었는지, 니콜라스 왕자가 제게 했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입니다.
“……니! 아그네스 언니!”
여섯 번째 요일의 오후, 멍하니 정신을 놓고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던 저를 깨운 사람은, 정산 회의를 하기 위해 앙겔로풀로스에 방문한 에리나였습니다.
“아, 미안해요, 에리나, 에리자. 어디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화상 치료의 물약의 생산량은 유지하고, 상처 치유의 물약과 살 빠지는 물약의 생산량만 조금 늘리면 어떨지 이야기를 했어요.”
“아아, 맞아요. 그 이야기였죠. 에리자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공방에 시설과 사람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나요?”
“그것 때문에 고용인이랑 작업대를 더 구했다고 아까 말했는데!”
“아아, 죄송해요, 에리나. 제가 깜빡한 것 같아요…….”
두 사람에게 미안하게, 이런 실수를…….
“……아그네스 언니, 조금 피곤하신가요? 아니면 학교생활이 잘 풀리지 않는 게 있으신가요?”
“아그네스 언니가 힘들면 저희도 슬퍼요!”
학교생활에서 잘 풀리지 않는 것…….
순간적으로 아리아나, 아니, 아리아나 영애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떠오른 얼굴을 지워버렸습니다.
“괜찮아요, 에리나, 에리자. 두 사람에게 걱정을 끼쳤네요. 자, 다시 이야기하죠. 그러니까……공방의 사용인을 더 구인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아그네스 언니…….”
아리아나 영애와 엘렉트라 영애는,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걸까요.
역시 니콜라스 왕자를 두고 싸웠던 걸까요? 하지만, 원작에서 두 사람이 대립할 때는, 이런 흙먼지 나는 캣파이트가 아닌 조금 더 교양에 기반을 둔 머리싸움을 했던 것 같은데요. 이번 싸움은, 두 사람 다 최소한의 교양도 갖춰지지 않을 정도로 조급해 보였고…….
“……나! 아그네스 누나!”
“아, 아아, 네?!”
“빨리 거기서 손 떨어뜨리세요!”
램프 위에서 팔팔 끓는 물이 담긴 비커에, 어느새 제 손이 닿기 직전이었습니다. 제이스가 아니었다면, 큰 화상을 입을 뻔했네요.
“미, 미안해요, 제이스! 제가 그만 실수를…….”
“아닙니다. 아그네스 누나가 다치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하마터면, 작지 않은 사고가 날 뻔했네요.
“아그네스 누나, 제가 화상 치료의 물약을 만든 것은, 아그네스 누나의 오른손에 난 화상을 치료하고자 만든 것이지, 마음 놓고 다치시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말 미안해요, 제이스. 뭐라 할 말이 없어요…….”
“아그네스 누나, 혹시 피곤하십니까? 아니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셨습니까?”
학교에서, 무슨 일…….
잠깐, 엘렉트라 영애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어 흐려지게 했습니다.
“아니에요. 자, 다음은 로우니 잎의 중탕이죠?”
“……지금 아그네스 누나의 앞에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
“아그네스 누나, 나쁜 말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미안해요, 제이스. 도와준다고 하고 방해만 하고 말았네요…….”
그렇게, 세 사람에게 걱정만 끼친 채, 주말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일곱 번째 요일, 저녁 식사까지 마친 후, 아스토리아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마차는 두 시간 정도를 평이하게 달려,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정문에 도달했습니다.
“도착했습니다, 아그네스 님.”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기숙사 앞…….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결심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는 없는 만남이니까요.
2LDK 방들은 전부 3층에 있습니다. 301, 302, 303……방을 하나씩 지나 제 기숙사인 305호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어서 오세요.”
“…….”
“아그네스 님,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주말 동안에 프레타리아에서 여러 가지 간식을 구해왔는데, 혹시 드셔보시겠어요?”
“…….”
“목욕, 먼저 하시겠어요? 아니면 짐 푸는 것 도와드릴까요?”
“…….”
“……아그네스 님……제발, 아무 말씀이라도 좀 해주세요…….”
아리아나 영애가 거는 말을 전부 무시하고, 제 방으로 돌아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눕혔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지금 대화하실 기분이 아니십니다. 한동안은 자제해주십시오, 아리아나 님.”
“마, 마리 씨. 어떡해요. 아그네스 님의 기분은 어떻게 해야 풀리는 건가요?”
“저는 아그네스 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아리아나 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
문밖에서 희미하게 마리와 아리아나 영애의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마리의 부탁이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리아나 영애와 화해하라는 식으로 말하면 거절할 거니까요.
다음 날, 등교하는 교문 앞에서 누군가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
“가방 무거우시죠? 제가 들어드릴까요?”
“…….”
“주말 동안에 쿠키를 만들어 왔는데, 식사 후에 드시지 않으시겠어요?”
“…….”
“아, 아그네스 님…….”
이젠 신경 안 쓸 거예요. 아리아나 영애고 엘렉트라 영애고, 누구랑 어떻게 이어지든 알 게 뭐예요.
“엘렉트라 양, 저와 잠시 이야기해요.”
그리고 아침부터 제 주변에서 알짱거리던 엘렉트라 영애는, 아리아나 영애와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오전 수업 중, 평소라면 아리아나와 엘렉트라 영애를 양옆에 두고 앉았겠지만, 지금의 저는 도저히 두 사람의 얼굴을 같이 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혼자 앉았습니다.
“하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마음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네요. 두 사람이 없으면 니콜라스 왕자를 떠넘길 만한 사람도 없는데…….
하지만 두 사람이 제 말도 전혀 듣지 않고, 흙바닥에서 뒤엉켜가며 싸웠던 모습을 회상하니, 다시 또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라요. 니콜라스 왕자와 누가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저 두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니콜라스 왕자에게 아양을 떨어서 결혼 후 다가올 고문 강도를 조금이라도 낮추는 게 훨씬 낫겠네요.
니콜라스 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같은 생각을 하다가 오전 수업이 끝났습니다. 점심 때문에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아리아나 영애와 엘렉트라 영애 두 사람이 제 앞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무시하고 이동하려는 도중, 두 사람이 제게 동시에 말했습니다.
““저희 화해했어요, 아그네스 님!””
“……?”
화해했다고요? 그렇게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우던 두 사람이요?
거짓말이겠죠. 아마 제 눈치를 보려고 화해한 척을 하는 게 아닐까요.
“…….”
“…….”
“……정말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는 제가 있었습니다.
“네! 엘렉트라 양과 이해관계가 일치, 아, 아니, 마음이 맞는 것을 확인해서, 화해하기로 했어요!”
“아리아나 영애와는 전략적 동맹……이 아니라 검을 나눈 사이로써 더 깊은 우정이 싹텄어요, 아그네스 님!”
솔직히, 이 정도로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믿어도 돼요? 정말로?”
“네, 저희 이 정도로 친해졌어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사이가 좋아졌어요, 아그네스 님!”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나가 엘렉트라 영애에게 팔짱을 끼었습니다. ……조금 부자연스럽지만, 적어도 매시간 으르렁거리던 때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것은 맞는 것 같네요.
“……이번 한 번만이에요. 다음에도 그렇게 죽일 것처럼 치고받고 싸우면, 그때는 진짜 절교할 거니까요.”
“네, 네, 네!”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님!”
역시, 두 사람은 웃는 얼굴이 더 예쁘네요.
“식사하러 가죠! 아리아나, 엘렉트라!”
그렇게 말하며, 저는 두 사람의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체육 시간,
“그만, 거기까지!”
오디세우스 선생님의 호령에, 니콜라스 왕자와 파노스 왕자가 맞부딪치던 검을 내려놓았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아주 약간 밀리는 듯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선방하셨네요.
“수고하셨어요, 니콜라스 왕자.”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영애. 오늘은 다행히 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네요.”
“이기고 지고 가 중요하겠어요.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
“하긴, 아그네스 영애의 보살핌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없겠죠.”
니콜라스 왕자가, 다시금 아리아나를 질투시킬만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10분 정도 남았는데…….”
오디세우스 선생님께서는 남은 수업시간에 무엇을 할지 말씀하시려다가, 객석에 앉아 있는 영애분들을 한 번 둘러보시고는,
“……10분 일찍 끝내주겠다. 해산!”
드물게도 오늘은, 일찍 수업을 끝마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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