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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55화 (55/86)

〈 55화 〉 장난감으로 삼았습니다

* * *

……여기까지 도망쳤으니 괜찮겠죠? 일단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목격자가 너무 많았는데요. 이러면 제가 마치 엘렉트라 영애를 도와준 것처럼 되어버리잖아요.

저는 이제부터 4년, 아니, 기초학교부터니까 7년 내내 엘렉트라 영애를 집요하게 괴롭혀야 하니까요.

니콜라스 왕자와 파혼하는 데는, 엘렉트라 영애의 증언이 필수입니다. 엘렉트라 영애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를 콕 집어 지목하면서, 학창 시절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그 순간 다른 주요 인물들도 아그네스를 비난하는 데 동조합니다.

그렇게 파혼을 당한 뒤에는, 국외 추방을 당합니다. 아마 여기에서는 아리아나가 마련해 둔 별장이 되겠네요.

하지만 엘렉트라 영애는 니콜라스 왕자 루트가 아니면 증언하지 않으니까……아리아나와 니콜라스 왕자를 이어주면서 엘렉트라 영애의 증언을 받으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그야말로, ‘어떻게든 저 여자가 파멸했으면 좋겠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 맞으시죠?”

방금의 이야기를 들었던 엘렉트라 영애가, 저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옆에 아리아나도 있고, 어차피 학창 시절 내내 집요하게 얼굴을 마주할 사이니까, 거짓말은 의미 없겠죠.

“네. 맞아요. 제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입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이시라면, 유명하신 분 맞죠? 화상 치료의 물약을 판매하시고, 외국의 경마 대회에서 우승하신 적도 있으시고…….”

프레타리아의 경마 대회 우승은, 아마 재작년 대회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때는 전년도 우승자도 성인부로 넘어가고, 파노스 왕자도 기초학교의 개교 때문에 바빠서 참가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어째선지 프레타리아에 방문할 때마다 당연히 참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참가했고, 마땅한 경쟁자가 없어서 처음으로 유소년 부에서 우승하기는 했었죠. 작년에는 나이가 차서 성인부라고 하시길래 무서워서 정중히 거절했지만요.

“맞아요, 제가 그 아름답고 위대한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입니다.”

여기에선 일부러 거만한 척을 할 필요가 있겠네요. 조금이라도 첫인상 이미지를 깎아 줘야 하니까요.

“그,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왜 저 같은 아이를 도와주셨는지…….”

역시 도와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대로라면 엘렉트라 영애한테 완전 호감 영애가 되어버리겠어요. 첫인상 이론에 따르면, 처음 만났을 때 가진 호감은 이후에는 어지간히 나쁜 인상을 줘도 잘 사라지지 않아서 큰일이니까요.

어떡하죠? 뭔가, 도와줬다는 것이 의도되었다는 식으로, 최대한 나쁜 핑곗거리를 생각해야…….

“차, 착각하지 마세요, 엘렉트라 멜리나! 제가 설마 당신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 역시 그러시겠죠? 제게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저희 집안은 가난해서 드릴 수 있을 만한 게…….”

“당신이 가난한 귀족 출신이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제가 당신을 구해준 것은,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 것은! 제 장난감에 누군가 손을 대는 게 싫었을 뿐이거든요!”

“자, 장난감이요?”

“그래요! 당신은 오늘부터 제 장난감이에요! 그래서 다른 영애들이 제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에요! 아시겠어요?”

“아, 네…….”

좋아요. 확실히 엘렉트라 영애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어요. 앗, 지금 보니 얼굴에 바닥에 긁힌 상처가…….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제이스에게 받은, 항상 휴대하고 다니라고 당부받은 상처 치유의 물약을 꺼냈습니다. 물약 병의 내용물 중 반 정도를 받아, 얼굴의 긁힌 상처에 발랐습니다.

“앙겔로풀로스 님?”

“상처 치유의 물약이에요. 이대로 가만히 5분 정도만 두면 상처가 가라앉을 거예요. 흉터가 질 수 있으니 그사이에 문지르거나 씻으면 안 돼요!”

저런 상처가 있으면 다른 공략 캐릭터들에게 호감을 쌓기 힘들어지니까요.

“알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 장난감이 망가지는 게 싫을 뿐이거든요! 내일부터 각오하도록 하세요! 제가 마음대로 엘렉트라 영애를 굴리고 다닐 테니까요. 아리아나, 가죠.”

그렇게 엘렉트라 영애를 혼자 남겨두고 아리아나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저, 나름 악역 영애 같았을까요? 어찌어찌 잘 넘긴 것 같긴 한데요.

엘렉트라 영애에게서 멀어지자, 아리아나가 볼을 부풀렸습니다.

“아리아나? 무슨 일이에요?”

“너무하세요, 아그네스 님!”

아, 제가 엘렉트라 영애를 괴롭히는 걸 보고 실망한 모양이네요. 아리아나에게는 제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었겠죠. 제가 왜 이러는지는 자세히 설명을…….

“아리아나, 여기에는 사정이…….”

“왜 오늘 처음 만난 엘렉트라 양은 장난감으로 삼아주시면서, 저는 장난감으로 삼아주시지 않는 건가요!”

“……네?”

“저도 아그네스 님의 소유물이 되고, 매일 같이 아그네스 님에게 끌려다니고, 아그네스 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싶다고요!”

“…….”

요즘 아리아나의 심리는……이해하기 힘드네요.

결국, 아리아나를 장난감으로 삼아주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하느라, 엘렉트라 영애에 대한 설명은 흐지부지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첫날 예상치 못하게 좋은 인상을 줄 뻔했으니, 한동안은 최대한 괴롭혀서 인상을 지울 필요가 있겠네요.

“엘렉트라 영애? 지금 그 허접스러운 식사 예절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요?”

“죄, 죄송합니다, 아그네스 님……. 저희 집안에는 테이블 매너를 가르쳐 주실 만한 분이 없어서…….”

“당신의 그 평민 같은 식습관이, 겨우 죄송하다고 말로 끝날 것 같아요? 제 옆에서 그렇게 식사를 하시면 제 교양까지 의심을 받는다고요!”

“죄송해요……. 저는 아그네스 님의 결함이 되지 않게 멀리 떨어져서 앉겠으니…….”

“제 장난감 주제에 어딜 맘대로 가신다는 건가요! 똑바로 다시 자리에 앉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잖아요! 물잔을 왼쪽에 놓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물잔은 접시의 오른쪽! 빵은 접시의 왼쪽! 아아앗! 세상에 수프를 통째로 들고 마시는 영애가 대체 어딨어요! 수프는 손잡이가 달린 접시가 아니면 스푼으로 한 수저씩 드시라고요! 그렇게 얼굴을 처박고 먹지 말고요!”

“엘렉트라 영애?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네? 저, 전 아무것도…….”

“걸음걸이 말이에요, 걸, 음, 걸, 이! 그런 막돼먹은 걸음걸이로 그렇게 당당하게 걸어 다니면, 오히려 옆에 있는 제 걸음걸이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뒤에서 걸을게요…….”

“당신이 제 뒤에 있으면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완벽하게 교정하기 전까지는 한 걸음도 못 움직일 줄 아세요! 일단, 대체 어떤 영애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걷나요! 그리고 걸을 때마다 고릴라처럼 어깨를 건들거리지 마시라고요! 여기가 당신이 계시던 시골 농장인 줄 아세요? 팔은 자연스럽게 흔들고요! 에에잇! 팔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반대쪽 허리에 대고 계시던가요!”

“방금 하신 행동은 뭐죠, 엘렉트라 영애?”

“앗, 그, 그게 조금 피곤해서…….”

“어떤 영애가 그렇게 이빨을 다 드러내면서 크게 하품을 하는 거예요? 손수건으로 가리라고요!”

“소, 손수건이요? 손수건은 준비하라는 공문을 받지 못해서…….”

“귀족 영애면 손수건 정도는 색깔별로 들고 다니는 게 당연하죠! 안 그래도 너무 낡아서 버리려고 했던 것이 있으니, 마음대로 주워 쓰던가 하세요! 그리고 하품이 나올 것 같으면 혀를 입술 안쪽에 가져다 대시라고요! 그걸로 참을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몇 주간, 일부러 엘렉트라 영애의 콤플렉스인 교양 부족과 가난한 집안을 들먹이며 잔뜩 괴롭혀줬습니다. 덤으로 몸에 밴 시골풍 교양도 교정했으니, 나중에 다른 귀족과 결혼해도 교양을 의심받을 일도 없겠죠?

일단 첫 만남 때의 좋은 인상은 충분히 상쇄시켰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원작에서의 아그네스 영애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학원에 있는 내내 끌고 다니면서 괴롭혔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니콜라스 왕자에게 파혼당하려면 아직도 모자라니까요. 자,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엘렉트라 영애를……아, 마침 저기 보이네요.

“엘렉트라……!”

“아그네스 님.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 아, 아아……네…….”

……뭔가요? 평소처럼 화들짝 놀라지 않고, 이 무언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은…….

“잠깐만요! 엘렉트라 양! 요즘 아그네스 님이 관심을 두신다고 너무 가까우신 거 아니에요? 아그네스 님의 제1호 추종자는 제 자리에요! 함부로 넘보지 마시라고요!”

“네? 하지만 저는 아그네스 님의 장난감이니까, 아그네스 님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하는걸요?”

“그런 게 어딨어요! 아그네스 님도 뭐라고 좀 말해주세요!”

“저, 저요?”

어째선지 아리아나가 엘렉트라 영애에게 화를 내고, 저한테 뭔가를 바라는 눈빛이시네요. 지금 상황에서 제가 엘렉트라 영애에게 할 만한 말이……아!

“엘렉트라 영애! 넥타이가 삐뚤어졌잖아요! 바보같이 뭐하시는 거예요? 당신 방에는 거울도 시종도 없나요? 제가 고쳐줄 테니 가까이 오세요.”

“언제나 부족한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그네스 님은 바람둥이! 팜므파탈! 경국지색!”

“아, 아리아나? 혼자 어디 가요?!”

어째선지 아리아나는 저를 버리고 먼저 학교 안으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정말 요즘 아리아나의 심리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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