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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54화 (54/86)

〈 54화 〉 엘렉트라 영애도 입학했습니다

* * *

두 번째 달의 마지막 주 일곱 번째 요일. 저는 한참이나 제 방에서, 마리와 함께 부단히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내일이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입학일이기 때문입니다.

“어, 어떡하죠? 사복은 몇 벌이나 챙겨가는 편이 좋죠? 무도회용 옷도 챙겨야 하나요?”

“옷은 제가 다 챙겨 놓았습니다, 아그네스 님.”

“기수복도요? 아, 근데 입학한 후에는 헬렌을 탈 여유가 없을까요? 아, 헬렌의 털 손질용 도구도 챙겨야 하는데…….”

“기수복도 안장도 헬렌의 빗도, 어제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또……현금! 현금은 얼만 가져가야 하죠? 제 용돈을 다 가져가면 너무 많지 않을까요? 그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는 하니까…….”

“어차피 주말에는 돌아오시잖아요. 현금은 일주일 동안 쓸 만큼만 가져가세요. 잊은 물건도 다음 주에 가지러 오시면 되잖습니까.”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에리나와 에리자, 제이스와 약속했으니까요. 매주 주말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오기로요.

니콜라스 왕자는 지금까지 매주 세 번씩 왕복하던 길이었으니, 조금 피곤하기는 해도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닙니다.

매주 여섯 번째 요일에 항상 해왔던 정산 회의도 있고, 제이스의 연구를 돕는 것도 일곱 번째 요일로 바꾸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매주 주말에는 앙겔로풀로스로 돌아오긴 해야겠죠.

참고로 마리도, 한 사람 당 단 한 명씩 동행시킬 수 있는 사용인으로서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같이 갑니다.

“항상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마리. 그래도……마리가 아니면 조금 불안해서…….”

마리의 나이는 벌써 스물넷이고,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혼인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이제라도 마리의 대신으로 다른 시종을 구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이미 마리의 너무 유능한 서비스에 길든 제가 도저히 다른 시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제가 가지 않으면, 누가 아그네스 님이 삼등분으로 나눠지는 것을 막겠어요.”

삼등분이요? 무슨 말이죠? 아, 혹시 마리가 아니면 제가 너무 바빠서 몸이 끊어질 정도가 된다……그런 이야기인가요? 마리의 비유법은 단번에 알아듣기가 조금 힘드네요.

“마리의 결혼 상대는 제가 어떻게든 알아봐 드릴게요!”

장래에 프레타리아에 가면……의외로 나이를 크게 신경 안 쓰는 남성분이 있으실 수도 있고……. 애초에 마리는 미인이니까요. 마망계 히로인, 아, 아니, 모성애에 자극받는 남성분들도 분명 있을테니까요.

“…….”

제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니, 마리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미안해요. 마리에게는 조금 민감한 주제였나요?”

“제가 민감한 주제는 아니고…….”

마리는 진심으로 저를 향해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그네스 님이야말로, 결혼식까지 조심해주세요. 잘못하면, 선상 결혼식을 하실지도 모르니까요.”

“선상 결혼식이요?”

마리가 하는 농담은, 가끔 이해하기 힘드네요.

첫 등교일, 아리아나와 함께 교문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일면식이 있는 일부 자제분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신입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엘렉트라 영애, 무사히 입학했겠죠?

“아그네스 님? 왜 그렇게 두리번거리세요? 누구 찾고 계시는 분이 있나요?”

“아, 아니에요, 아리아나.”

하긴, 입학했든 아니든 인제 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냥 교실에 들어서 확인이나 하는 것밖에 없겠죠.

“아얏!”

그렇게 생각을 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교문 앞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어머, 거지 자작 영애, 실수, 엘렉트라 자작 영애 아니신가요?”

“호호, 가난한 자작 아니랄까 봐 흙먼지가 잔뜩 묻은 교복을 입고 오셨네요?”

“……죄송하지만 조금 떨어져 주시겠어요? 말똥 냄새가 심해서 근처에 있을 수가 없네요.”

교문 앞에서 무언가 싸움이 일어난 것 같네요. 싸움을 거는 쪽은……공작이나 백작 가문의 영애인 것 같고……. 넘어져 있는 쪽은……엘렉트라 영애?! 아, 입학하긴 했군요! 다행이네요!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어떡하죠? 입학 첫날부터 저런 꼴을 당하면, 마음씨 여린 엘렉트라 영애가 등교 거부를 할지도 모르는데…….

아, 생각났어요. 생각해 보니 이것도 이벤트였네요. 시기는 3년 빠르기는 하지만요.

입학 첫날, 오만할 대로 오만해진 아그네스는, 자신의 추종자인 백작 영애 둘과 함께 엘렉트라 영애를 괴롭힙니다. 참고로 아그네스가 엘렉트라 영애를 괴롭힌 것은, 특별한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같이 등교하던 사람 중 가장 만만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잠깐 그렇다는 것은? 앗, 제, 제 이벤트를 뺏겼잖아요! 원래 제가 저기서 엘렉트라 영애를 괴롭히고 있어야 하는데! 엘렉트라 영애에게 미움을 받고 니콜라스 왕자에게 파혼을 당해야 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괴롭히면 제 옆에 있는 아리아나도 같이 평가가 안 좋아질 거 아니에요. 어쩌면 원래 아그네스와 같이 괴롭히는 영애의 포지션이 될지도……에이, 설마요. 아리아나같이 착한 아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죠.

어쨌든 여기서 제가 저 사람들에게 끼어들어서 엘렉트라 영애를 같이 괴롭히면, 아리아나의 평가에 본의 아니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그럼 니콜라스 왕자와 이어주기 어려워지고…….

으아, 괜히 아리아나와 동거하자고 한 걸지도……처음에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아나가 제 옆에 항상 붙어 있으면 악행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깜빡했어요.

그래도 중요한 이벤트가 생략되지 않고 진행된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제 니콜라스 왕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엘렉트라 영애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아그네스, 또 남을 괴롭히고 있는 거냐? 악취미군.’ 하고 매도하고, 아, 아그네스가 아니죠. 아그네스는 저였죠. 아무튼, 그렇게 구해주기만 하면 되겠네요.

“왜,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요? 당신 같은 거지 귀족이 학교에 다니면 학교의 품위가 떨어지니까요! 파노스 왕자님께서 열심히 만든 결실인데, 당신 같은 사람이 물을 흐리는 게 맘에 안 든다고요!”

“꺄악!”

저 영애분은 파노스 왕자를 사모하는 일원 같은 건가 보네요.

그건 그렇고, 흙, 흙먼지를 엘렉트라 영애의 얼굴에……이, 이 정도로 괴롭힘이 심했었나요? 이렇게 심해지기 전에 원래대로라면 니콜라스 왕자가 슬슬 나타나야 하는데요.

“그 교복도 당신에게는 아깝다고요! 품위가 떨어지니까 없애버리겠어요!”

추종자로 보이는 영애 둘이 엘렉트라 영애의 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리더로 보이는 영애가 가위를 들고…….

“아, 안돼요! 잠시만요! 그만두어주세요!”

이 이상은 심하잖아요! 여기서 안 멈추면 엘렉트라 영애한테 트라우마가 생길 게 분명하잖아요! 니콜라스 왕자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예요!

“당신, 누구예요?”

어, 어떡하죠?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죠? 일단 위험할 것 같아서 막기는 했는데…….

“무,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누구인지! 지금 중요한 건 여러분이 하는 행위가 도가 지나쳤다는 거예요!”

여기서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라는 이름을 밝혀버리면, 나중에 엘렉트라 영애를 괴롭히기 힘들어지잖아요! 호감 영애가 되어버린다고요!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니, 어딘가의 남작이나 자작 영애분이신가 보죠? 끼리끼리 어울리시네요.”

오해하게 해서 죄송해요, 사실 공작 영애에 니콜라스 왕자의 약혼자예요.

사실 이 사람들도 게임 시스템상으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하필 니콜라스 왕자가 지각하는 바람에…….

“감히 제 앞을 가로막으셨다는 건, 대신이 되겠다……그런 의미이신가요?”

“네?”

추종자분들이 갑자기 제 양팔을 잡았습니다.

“네에?!”

그리고 이름 모를 공작 영애분의 가위가 제 옷으로 향했습니다. 아, 안 된다고요! 교복이 망가지는 거야 둘째 치고, 오늘은 입학식만 하고 끝날 줄 알고 교복 안에 침의를 그대로 입고 왔단 말이에요!

공작 영애가 귀찮아서 교복 안에 침의를 그대로 입고 있다는 걸 들키면 대대적인 망신이라고요!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저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우선, 눈을 꼭 감은 뒤…….

‘타악!’

양팔을 잡은 영애분들을 지지대 삼아, 높게 점프를 뛰었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기!

제 미사일 드롭킥이 공작 영애분의 얼굴에 작렬했습니다.

“크아악!”

……공작 영애다운 비명은 아니시네요.

“이, 이이익!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요! 제가 어느 집안의 사람인지 아세요?!”

“아그네스 님!”

제가 엘렉트라 영애를 지키기 위해 달려간 뒤 얼마 후, 뒤늦게 아리아나가 제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습니다.

“아그네스 님 괜찮으세요?!”

“네……저는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건 흙먼지를 뒤집어쓴 엘렉트라 영애와……제 미사일 드롭킥을 맞은 공작 영애분이시겠죠.

승마하면서 단련된 하체를 이럴 때 쓰게 되다니…….

“아그네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그 화상 치료 물약의…….”

제 이름을 듣고 갑자기 주변의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이에요? 그 니콜라스 왕자님의 약혼자인?”

제게 맞고 넘어져 있던 영애도, 제 정체를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읽고 양팔을 잡았던 백작 영애분들의 압박도 스르르 풀렸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만회해야 하죠?

일단 1초 정도 고민하고, 오른쪽에는 아리아나, 왼쪽에는 엘렉트라 영애의 손을 잡았습니다.

“도, 도망쳐요! 두 사람도 같이!”

아아아아 난 몰라! 어떻게든 되겠죠! 저는 두 사람의 손을 꽉 잡고, 군중의 시선 속에서 달아났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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