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진짜 에리자 영애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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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론 가문의 저택에 들어오니, 빅토르 남작과 에리자 영애, 그리고 뵌 적은 없지만, 빅토르 남작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께서 맞이하셨습니다. 그 중 당주인 빅토르 남작이 먼저 인사를 하시네요.
“어서 오십시오, 아그네스 님. 멀고 누추한 곳에 들르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빅토르 님.”
“제 딸인 에리자는 저번에 만나 뵈셨을 거고, 이쪽은 제 아내인 디아나 솔론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양.”
“처음 뵙습니다, 디아나 솔론 님.”
빅토르 님의 아내인 디아나 님은 상당히 미인이시네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녹색 머리와 맑고 갈색 눈동자는 마치 숲의 정령 같으셨습니다. 에리자 영애의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네요.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에리자 솔론 양.”
오랜만에 다시 만난 에리자 영애는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얌전하고 예의가 바른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 선물해 준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있네요.
“응접실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솔론 가문의 사람들을 따라서 들어간 곳은, 앙겔로풀로스와는 제법 다른 편안한 분위기의 방이었습니다.
응접실 내부는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많고 다양한 빛깔의 도자기, 색감이 풍부한 그림, 정교한 유리 공예품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굉장히 풍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의 방이네요.”
~아스토리아~ 세계관 기준으로는 다소 이질적인 실내 환경이네요. 중세 동양풍 느낌도 약간 나는 것 같고요.
“이 방에 있는 물건들은 거의 다 저희 영지 내에서 생산한 물건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빅토르 남작이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희 영지는 지반이 딱딱한 데다가, 토양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농업이나 임업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조상님께서 먼 나라에서 배워 온 기술이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오셨습니다. 다행히 이 까다로운 토양이 도자기를 굽기에는 적합한 듯했으니까요.”
“대단하신 선조분이시네요.”
“그 이후 세대를 거듭하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가마를 사용해서 유리를 생산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 흙에 섞인 여러 성분을 분류해서 물감을 만드는 법도 개발했습니다. 여전히 식량이나 가축을 기르는 것은 힘들어서 영지 경영으로 번 돈 대부분이 식료품과 의류 수입에 사용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희토류가 많이 섞인 토양을 그렇게 활용할 수도 있었군요. 그러고 보면 에리자 영애도 아스토리아 학원에서의 성적은 굉장히 좋았으니까요. 머리가 좋은 것이 솔론 가문의 집안 내력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답례품으로는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빅토르 남작이 전해 준 물건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서 내부가 완전하게 보이는 오르골이었습니다.
“최소한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저희 영지에서 직접 만든 유리로 만든 작품입니다. 저희 영지의 최고 장인들이 만든 기술의 집약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험 삼아서 살짝 돌려보니 굉장히 맑고 밝은 음악이 울렸습니다. 작은 별 변주곡과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네요.
“이런 아름다운 선물을 답례품으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님이 주신 것에 비하면 크지 않습니다.”
답례품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온 방문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맘에 드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편, 에리자 영애는 저와 빅토르 님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무언가 시선이 불안정하네요.
“에리자 양, 혹시 염려되는 일이 있나요?”
“……아닙니다, 아그네스 님.”
빅토르 남작도 제가 에리자 영애에게 관심을 가지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모양이시네요. 먼저 말씀하시기 쉽게끔, 제가 먼저 등을 떠밀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빅토르 님, 잘못된 추측이라면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여쭤보아도 될까요.”
“무엇을 여쭙고 싶으십니까.”
“여기 있는 에리자 양은……저번에 제 탄생일에 온 에리자 양이 아니죠?”
“…….”
“…….”
“아, 아니에요. 제가 저번 아그네스 님의 탄생일에 참석한 에리자입니다. 아그네스 님이 주신, 이 옷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님도 디아나 부인도 침묵하신 와중에, 에리자 영애만이 어설프게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만 됐다, 에리자. 이미 알고 계신 것 같구나.”
빅토르 님이 결심하신 것 같은 표정이네요.
“디아나, 에리나를 데리고 와 줘.”
디아나 부인이 응접실에서 나간 지 약 5분 후, 디아나 부인과 함께 한 영애가 들어왔습니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에리자 영애였습니다.
“……오랜만에 뵈어, 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역시 게임의 설정대로, 에리자 영애는 쌍둥이네요.
“아그네스 님이 예상하신 대로, 저희 딸들은 신의 실수로 생긴 아이입니다. 저번 탄생일 잔치에 참석한 이 아이가 에리나 솔론,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아이가 진짜 에리자 솔론입니다.”
신의 실수.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의 세계관에서 쌍둥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도플갱어에 관한 괴담은 전생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겠죠.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과 만나면 둘 중 한 사람은 죽는다’라는 내용의 괴담입니다.
~아스토리아~에도 비슷한 괴담이 있습니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한다’에서 끝나지 않고, 쌍둥이로 태어난 아이도 도플갱어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원래는 다른 먼 지역에서 태어날 운명이고 서로 만나면 안 되지만, 신의 실수로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스토리아의 세계관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는 한쪽의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죽이기도 하고,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버리거나, 먼 곳으로 입양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자란 쌍둥이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버려진 쪽의 아이가 상대방을 죽이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사건들이 덧붙여져서 도플갱어 괴담처럼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버려진 아이가 원래의 부모님에게 원한을 가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네요. 그 증오가 버려지지 않은 다른 형제에게 향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고요. 결과가 원인을 낳는 행동이 되어버린다는 거죠. 아무튼, 대부분 ‘신의 실수’의 부모는 위에 말한 대로 한 아이를 죽이는 것과 버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간혹, 어느 쪽의 아이도 죽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은 채 비밀리에 두 아이를 모두 키우는 부모님들도 물론 있습니다. 원작 게임에서의 대표적인 인물은 빅토르 솔론과 디아나 솔론 부인이겠네요.
빅토르 솔론은 차마 스스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뜨리는 것도 도플갱어 괴담 때문에 하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아내인 디아나 솔론과 상의해서, 어차피 둘 중 한 아이가 죽어야 할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면 두 아이를 비밀리에 모두 기르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만약 정말로 운명이 존재해서,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죽는다면……어차피 사교계에는 에리자 한 명밖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살아남은 아이를 에리자로 키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두 아이가 운명을 극복해서 잘 자라준다면, 한 아이는 시집을 보내고 다른 한 아이에게 영지를 물려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는 귀족이니까 할 수 있는 선택이겠죠. 저도 빅토르 남작의 처지에서는 제일 나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영지 경영이 어려워져서, 빚을 너무 많이 지고 말았습니다. 이래서는 아마 아이들이 크기 전에 빚 때문에 영지도 저택도 넘어가고 말 겁니다. 제가 가난한 귀족의 신분으로 추락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제 두 아이만은 마지막까지 행복했으면 합니다.”
원작에서는 제이스와 에리자가 약혼하면서, 솔론 남작의 영지는 앙겔로풀로스에서 대신 빚을 갚아 주고 앙겔로풀로스의 소유가 되고, 눈썰미가 좋은 제이스는 가끔 자신을 만나는 에리자 영애가 다른 사람임을 눈치채고 두 사람이 신의 실수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제이스는 에리자와 에리나를 신의 실수라고 비방하거나 매도하지 않고, 두 사람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에리자와 에리나는 그때부터 제이스만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의존하게 되죠.
그래서 제이스 루트를 공략할 때는 주인공이 직접 에리자와 에리나가 신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여 에리자와 에리나가 제이스와 이어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그때야 에리자와 에리나는 제이스를 놓아주고 주인공과의 사이를 응원해주니까요.
그리고 만약 제이스를 공략하지 않거나 실패했을 때, 제이스는 공식적으로는 에리자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셋이 함께할 수 있게 아주 특별한 물약을 만드는 데, 그것이 바로 ‘변신의 물약’입니다.
‘변신의 물약’은 마신 사람이 개로 변하는 물약입니다. 실제로 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물약을 마신 사람의 정체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개’로 여겨지는 것이죠. 즉, 다른 사람들이 '변신의 물약'을 마신 사람을 볼 때 집단 최면에 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마시면 해제하는 방법이 없기에 제이스가 두 사람에게 물약을 건네주면서도 고민합니다. 하지만 에리자와 에리나는 세 사람이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변신의 물약’을 마시고 기꺼이 ‘개’가 됩니다. 잡설이지만, 둘 중 누구를 ‘개’로 만들지도 선택지에 있고요.
그렇게 ‘개’가 되어버린 쪽 영애는 이후 정말로 개처럼 다뤄집니다. 식사할 때도 바닥에 엎드려서 먹고, 용변도 개가 쓰는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목줄이 달린 채 매일 한 번씩 네 발로 산책하러 나갑니다. 그리고 몸은 ‘개’가 되었지만, 옷까지 최면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서, 이 모든 행위는 알몸……으로 행해진다는 거죠.
어쨌든 원작 게임에서는 개가 된 쪽도, 되지 않은 쪽도, 제이스도 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니까요. 우연히 솔론 가문 쌍둥이의 성적 취향이 그런 방향일 수도 있고요. 어찌 보면 단죄 연출 중에서는 가장 무난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물론, 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미래와는 방향성이 많이 다르지만요
“아그네스 님, 정말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탁드립니다. 에리자와 에리나 중 한 아이만이라도 좋으니, 아그네스 님의 시종으로 삼아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저희 아이들의 ‘신의 실수’임을 아시고도 차별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분은 아그네스 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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