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제1 왕자와 제2 왕자가 도착했습니다
* * *
“에리자,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니.”
사라졌던 에리자를 찾아서 메인 회장으로 돌아오니, 빅토르 남작이 곧장 에리자를 보고 다가왔습니다.
“죄송해요, 아빠.”
“게다가 입고 온 옷은 어디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거니.”
“그 옷은 제가 에리자에게 선물로 준 겁니다, 빅토르 솔론 님.”
제가 그렇게 말하자 빅토르 남작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그네스 님. 상당히 가격이 나가는 옷처럼 보이니, 옷에 대한 금액은 지급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제 탄생일 잔치에 찾아준 마음이 기뻐서 드리는 거예요. 어차피 저에게는 조금 작아져서 더 입을 일도 없을 테고, 안 그래도 옷이 많아져서 정리하고 싶었으니까요.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시기만 하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에리자 영애에게같은 디자인의 옷을 한 벌 더 드렸습니다.”
빅토르 남작이 제 이야기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여기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판단하신 건지 말을 삼키시네요.
“아그네스 누나. 이 아가씨가 에리자 솔론 영애입니까.”
“네, 맞아요. 서로는 인사가 아직이죠? 에리자 양, 이쪽은 제 남동생인 제이스 앙겔로풀로스에요. 같은 나이니까 친하게 지내주세요.”
“만나서 반가워, 제이스.”
“에리자, 나이가 같다고 해도 초면의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춰야 한단다.”
“저는 괜찮습니다, 빅토르 솔론 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에리자 솔론 영애.”
“나……저, 도 영광입니다.”
어찌어찌 제이스와 에리자의 만남 이벤트는 진행된 것 같네요. 얼굴을 익혀 놨으니 나중에 약혼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경계부터 하는 일은 없겠죠.
“아그네스 누나, 슬슬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그럼 준비해주세요.”
슬슬 먼저 돌아가려는 사람이 생기는 것 같으니, 사람이 줄어들기 전에 오늘 제 탄생일 잔치의 메인 행사를 시작해야겠죠.
“내빈 여러분, 잠시 후 오늘의 중요 행사가 있습니다. 또한, 오늘 방문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소정의 사례를 드리겠으니, 급한 용무가 있어서 먼저 돌아가셔야 하거나, 잠시 자리를 비우실 분들도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제이스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니, 자리를 뜨려던 사람들도 제이스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것인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행사를 시작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호쾌하게 메인 회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그네스 영애.”
그리고 그 문 뒤에서 나타난 인물에게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니콜라스 왕자가 나타났으니까요.
니콜라스 왕자가 등장하자마자 홀 안에 계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네요. 게다가 그 옆에는 더 예상하지 못한 인물도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님. 하마터면 너무 아름다워지셔서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파노스 왕자도 같이 등장했습니다.
원래부터 유명했던 니콜라스 제1 왕자에 이어, 최근 사교계 활동을 엄청나게 참여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파노스 제2 왕자까지 출현하니 장내 사람들의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왕자님, 오늘은 참여하지 못하실 줄 알았는데요.”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2주 전부터 일정에 차질이 없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이 늦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그런 초대장까지 보내셔놓고 어떻게 제가 참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 직설적인 내용의 초대장을 보냈으니 거절하면 왕자로서의 체면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 라는 의미겠죠. 니콜라스 왕자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지는 것을 보니 진절머리가 나게 하는 작전이 어느 정도 통한 것 같습니다. 유효타를 날렸네요.
“이제라도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콜라스 왕자님. 파란색 정복이 어울리시네요.”
“아그네스 영애의 모습도 정말 고우십니다.”
어쨌든 니콜라스 왕자가 와주었으니 귀족들 사이에서 귀찮은 소문이 돌 걱정은 줄었습니다.
“너무 형님만 이야기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니콜라스 왕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 뒤에서 파노스 왕자가 말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저도 오랜만에 드디어 아그네스 영애님의 존안을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몇 개월 만에 만난 파노스 왕자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의 자신감 없이 움츠러든 모습은 당당한 시선과 여유로운 미소로 바뀌었고, 말도 전혀 더듬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제가 만나 뵙지 못한 동안 아그네스 영애님을 위해 재밌는 장기를 하나 배워왔는데, 보여드릴까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궁금하기는 하네요.”
파노스 왕자는 서자라고는 하지만 왕족이고, 거절했을 때의 손해보다는 한 번 호응해 주는 것이 낫겠죠.
“그러면, 한쪽 손을 펼쳐서 내밀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상을 감추고 있는 오른손 대신, 왼쪽 손을 내밀어 펼쳤습니다.
“이 주화를 손에 담고 쥐여주세요.”
파노스 왕자가 건넨 동화를 왼손에 쥐었습니다. 마술이라도 보여주려는 걸까요.
“하나, 둘, 셋을 세어 주세요.”
손에 있는 동전이 사라지게 하는 마술인가 보네요. 이 마술의 속임수는 저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들어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사이에 몰래 동전을 빼내오는 마술이죠.
반대로 말하면 집중하기만 하면 속을 일도 없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저는 분위기를 읽을 줄 알기에, 속아 넘어가 드리는 척을 하며 숫자를 셌습니다.
“하나, 둘, 세와앗!”
셋을 세기 직전에 파노스 왕자가 갑자기 제 손을 잡고 끌어당겼고,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저는 그대로 딸려 들어가 파노스 왕자에게 안긴 꼴이 되었습니다.
“뭐, 뭐죠?!”
파노스 왕자의 가슴팍에서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습니다. 몇 개월 전에 봤을 때는 이런 느낌의 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팔뚝도 두꺼워진 것 같고, 키도 조금 큰 것 같기도…….
“무슨 짓이냐, 파노스!”
“지금 당장 떨어지세요!”
“아그네스 누나에게 뭘 하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세 사람의 고함과 함께 파노스 왕자에 품속에서 강제로 떨어뜨려 졌습니다.
“너무 화내지들 마시죠. 몇 개월 만에 겨우 만난 게 너무 기뻐서 그랬습니다. 형님도 그렇고,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영애도 그렇고, 남동생 군도 그렇고……평소에도 아그네스 영애님과 자주 만나시지 않습니까. 오늘 같은 날에는 양보하는 게 어떻습니까?”
“약혼자가 미래의 반려를 자주 만나는 것이 무슨 상관이지?”
“저는 아그네스 님의 추종……친구니까 당연하죠!”
“가족인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파노스 왕자의 갑작스러운 행동과 그 이후의 발언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험악해졌습니다. 대체 어떤 경위로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다들 그만해주세요. 파노스 왕자님은 제가넘어질 뻔한 것을 잡아주신 것뿐입니다. 여기서 더 길어지면 이후 행사에 지장이 생깁니다. 파노스 왕자님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행동과 발언을 조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앞으로공적인 자리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죠. 그리고 아그네스 영애님, 왼쪽 손을 펼쳐 보시겠습니까?”
왼쪽 손을 펼치니 어느새 동화가 사라지고 대신 금화가 들어있었습니다. ……정신없는 틈에 당했네요.
“감쪽같으시네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파노스 왕자는 그 소란을 일으켜놓고도 천연덕스러운 얼굴이네요. 니콜라스 왕자와 아리아나, 그리고 제이스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남았던 것 같지만 제가 말한 뒤로 발언을 삼켰습니다.
“아그네스 영애, 늦게 와서 이런 질문을 드리기에는 죄송하지만, ‘다음 행사’라는 건 무엇입니까?”
니콜라스 왕자가 물었습니다. 지각으로 인해 본인만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겠죠.어차피 곧 시작하므로 비밀로 할 이유도 없기에, 니콜라스 왕자에게는 다음 행사가 무엇인지 알려줘도 되겠죠.
“제 가족들이 제게 선물을 증여하는 행사입니다.”
물론, 단순한 선물 증정은 아니고, 이 행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원작 게임에서는 아마 나오지 않는 이벤트일 테지만, 제이스의 요청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남편인 저도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행사에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전 니콜라스 왕자의 미래의 아내가 될 생각이 없는데요.
“……니콜라스 왕자님에게 의향이 있으면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명분도 없고,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없으니 마지못해 허락할 수밖에요.
“그런 행사라면 저도 아그네스 영애님에게 드릴 선물이 있는데, 참여하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파노스 왕자 측에서 예상하지 못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지, 파노스?”
“뭘 그렇게 험악한 표정을 짓습니까, 형님. 아그네스 영애님이 형님과 결혼하면 저한테도 아그네스 영애님은 형수님이니까, 가족이 되지 않습니까. 형님, 혹시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셨습니까?”
“건방진 소리 하지 마라, 파노스.”
원작에서의 파노스 왕자는 니콜라스 왕자 앞에서 제대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오늘 만나는 파노스 왕자는 오히려 니콜라스 왕자를 압도하고 있네요.
저 뻔뻔한 표정으로 대놓고 모르는 척하며 말하는 기술을 따라 하면, 저도 니콜라스 왕자를 화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그네스 영애님, 어떻습니까. 저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니콜라스 왕자와 마찬가지로,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아그네스 님, 저도 참가하고 싶어요!”
“좋아요. 아리아나도 참가해주면 저도 기뻐요.”
“““아리아나 영애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습니까!”””
제 마음이에요. 아리아나는 제 가장 친한 친구니까 가족이나 마찬가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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