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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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제1 왕자로 태어났다.
짧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많은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2개월 뒤에 태어난 제2 왕자 동생도 있지만, 왕위 분쟁을 막기 위해 기본적으로는 장자인 내가 차기 왕위를 잇는 것이 원칙이다. 게다가 동생은 후궁에게서 태어난 서자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제2 왕자인 동생과의 교육의 양을 비교하면 제1 왕자인 내게 월등히 많은 교육량을 요구했다. 동생은 지금 예법과 교양, 스타렌스어 정도만 겨우 터득한 상태지만, 나는 이미 그것은 물론이고 사교댄스와 정치, 군사, 프레타리아어에 관한 교육까지 배웠었으니까. 심지어 왕족이라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인 사교댄스를 동생은 대인기피증이 있다는 이유로 아직 미루고 있다. 제1 왕자인 내가 저런 나약한 소리를 했다면 분명 혼이 잔뜩 났을 테지.
그렇기에 언제나 할당되는 교육은 최선을 다해서 임했다.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는 왕가 서고에서 몰래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다음 날 교육에서 졸음이 쏟아진 적도 있었지만, 나는 모두의 기대를 받는 제1 왕자이기에 어떻게든 버텨내곤 했다.
일곱 살이 되자마자 달라진 것은, 여러 유력 귀족들의 딸과 만남이 잦아진 것일까. 대부분이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영애들로, 수십 명의 영애 중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귀족의 교양이 있는 영애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심지어는 그런 영애들조차도 대화를 몇 마디 나누기만 해도 급조한 교양이 티가 날 정도였고.
제1 왕자인 나에게 어중간한 딸이나 붙여서 벼락출세나 노려보려고 하다니, 제1 왕자인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물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그런 귀족들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씩 핑계를 대며 줄여갔다.
그러던 와중 아버님은, 나의 그런 태도를 보고 정식 약혼자를 서둘러 정하려고 하셨다. 아마 이대로라면 온갖 귀족들의 영애를 끊임없이 상대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여 유력 귀족 영애 하나를 방패막이로 세우시려는 것이겠지.
나로서도 여러 영애를 상대하는 것보다 편할 것으로 예상했기에 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우선 약혼자 후보로 생각되고 있던 유력 귀족 중, 가장 먼저 앙겔로풀로스의 영애를 만나는 일정이 잡혔다.
앙겔로풀로스 공작은 상당히 큰 정통 귀족으로, 대대로 주요 관리를 배출하거나 영지 사업 경영을 통한 수익으로 상당한 기부금을 내는 대귀족이다. 교육열은 높지만, 그 외에는 방임주의라고 하니 아마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영애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성격의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니다. 까탈스럽고, 다루기 어렵고, 뭐든지 자기 뜻대로 흘러갈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적당한 핑계를 대서 거절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으니 어느새 앙겔로풀로스 공작의 저택에 도착했다. 공작 가문에서는 렌드로 앙겔로풀로스 공작과 로렌나 앙겔로풀로스 공작부인, 그리고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가 맞이했다.
현재 앙겔로풀로스의 가주인 렌드로 공작이 인사를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그네스 공작 영애가 입을 열었다.
“평안하신지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님,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입니다. 오늘은 저희 앙겔로풀로스 공작가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추한 곳이지만 성심성의껏 모실 테니 아무쪼록 계실 동안 자유롭게 지내주시길 바랍니다.”
“서, 성대한 환영에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아,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 호의에 감사하며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쪽에서 나온 인삿말에 조금 당황했던 걸까, 게다가 지금까지 만난 영애 중에서 가장 예법과 화법이 잘 정돈되어있기까지 했기에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는 실수까지 하고 말았다.
이후 앙겔로풀로스 공작은 나와 전속 집사인 잭, 아그네스 영애와 전속 하녀로 보이는 여자만 응접실에 두고 자리를 비웠다. 이런 자리에서는 형식적으로나마 남자 측에서 말문을 열어야 하기에 먼저 아그네스 영애를 칭찬하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 오늘 저희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방금의 그 인사말도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귀족 자제분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인사말이었습니다.”
보통 영애들은 나를 처음 만나서는 굉장히 잘생겼다거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식의 칭찬을 하거나, 아니면 부끄럼을 타서 아무 말도 못 한다던가의 반응이 대부분이니 그런 반응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그네스 영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저희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격식 차리지 않도록 하죠. 보아하니 아직 니콜라스 제1 왕자님께서는 예의범절이 어색하신 모양이니까요. 그리고 저희 마리···사용인은 입이 무겁기도 하고요. 그쪽의 집사분도 니콜라스 왕자님의 전속이신 것 같은데, 왕자님의 사생활을 아무에게나 떠벌리고 다닐 위인은 아니시죠?”
도저히 공작 영애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고 건방진 말이 튀어나왔다. 예의를 생략하겠다는 도도함과 그것을 내 핑계로 대는 뻔뻔스러움까지. 당장 자리를 일어나고 싶을 정도의 모욕감을 느꼈지만 여기서 나만 당한 채로 헤어지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지 않은가.
“공작 영애치고는 꽤 오만하시네요. 앙겔로풀로스의 방침인가요?”
일부러 가문을 모욕하는 말로 물어보았지만, 아그네스 영애는 한층 더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죠. 전 이미 공작 영애로서의 수준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으니까요. 예의, 사교댄스, 교양, 스타렌스어 정도는 이미 어지간한 귀족의 수준을 웃돌고 있습니다.”
겨우 그 정도 지식으로 저렇게 오만할 수 있다니, 난 더 넓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지냈기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 군사, 과학, 경제, 프레타리아어에 관한 지식은 아직이겠죠?”
“어머, 그건 마치 왕자님께서는 깨우치고 계신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당연합니다. 물론 아그네스 영애분이 아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지식의 깊이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방금은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스타렌스어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연을 만나다’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아시나요?”
그러자 아그네스 영애는 일부러 어려운 표현을 섞은 문장을 스타렌스어로 번역할 수 있냐며 도발했다. 하지만 스타렌스어 심화 과정을 이미 끝내놓았던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지식이었고, 별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틱 카두 네가이디타 비에타’ 맞습니까?”
“흐응,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아그네스 영애가 여유로운 척 대답했지만, 꽤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아까 전의 모욕을 갚아 줄 기회겠지.
“제 차례입니까? 아그네스 영애는 ‘아는 척 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를 프레타리아어로 말할 수 있으십니까?”
스타렌스어에 관한 문제를 낼까도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골려주려고 일부러 프레타리아어를 골랐다. 예문을 통해 모욕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고.
아그네스 영애는 예상대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못하고, 그 억울한 감정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냈다.
“이 정도도 모르십니까? 아그네스 영애도 ‘에나스 일리디오스 포우 제레이 포노 포스 나 프로스피이테’이신 모양입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겠지. 아그네스 영애의 분해하는 표정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그네스 영애는 화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대신,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곱 살인데도 대단하시네요.”
“······대단하다고요?”
“네, 대단하세요. 고작 일곱 살의 나이인데도 나라의 국운을 이끌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시네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전 외국어를 배울 때 너무 어려워서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왕자님은 제 배 이상의 지식을 배웠다는 사실이 감탄스럽네요.”
이번에는 갑자기 칭찬하면서 자신의 부끄러운 기억까지 꺼내놓았다. 놀라운 것은 칭찬할 때도 치부를 드러낼 때도 말투가 전혀 바뀌지 않고 당연히 할 말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점일까.
“감탄스럽다니, 저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는 물론 왕족 앞에서도 당당한 영애분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실제로 조금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모자란 것을 알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도 저렇게 자신만만하다는 것이.
“전 왕자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충분히 당당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겨우 일곱 살에 예의 사교댄스 교양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만으로 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백작 가문의 영애는 저와 같은 나이에서 2가지라도 배웠을지 모르겠네요. 자작 가문은 어떨까요? 남작 가문은 어떨까요? 서민의 아이라면 7살의 나이에 글이라도 읽고 쓰면 대단한 정도지요. 오히려 왕자님은 저보다도 오만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만해지라는 말입니까?”
조신하고 겸손해지라는 교육을 받을 터인 공작 영애의 입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말이겠지.
“제1 왕자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지만, 일곱 살은 아직 한참 어린 나이잖아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실패해도 괜찮고 어떻게 만회해야 하는지 알 기회가 주어지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겨우 일곱 살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치중한다면, 남들에게 군림했을 때는 실수한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어요? 지금 시기가 오만하고 뻔뻔해질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하네요. 왕자님을 아무도 지적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일곱 살이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라니,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그네스 영애는 지금까지 생각조차 못 해본 조언을 했다. 나는 제1 왕자이기에 내가 많은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해 고생한 것도, 실패하기 두려워서 완벽해지려고 했던 것을 이 영애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못했던 내 처지를 위로하는 듯해서, 처음으로 지금까지 만난 다른 영애들과는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전 좀 더 당당하고 일곱 살 다운 뻔뻔함을 가진 사람이 취향이니까요. 니콜라스 제1 왕자님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담을 수 없는 여자는 싫어하시죠? 오늘 약혼 얘기는 왕자님께서 잘 말씀해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아그네스 영애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게다가 아그네스 영애는 ‘제 이상으로 당당해지지 않으면 제 약혼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라는 의미까지 함축해서 말하다니, 제1 왕자를 상대로 얼마나 당당한가. 하지만 그 당당함이 오히려 지금까지 만난 영애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이때 이미 나는 마음이 넘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감정을 일단은 부정하면서 약혼자로 삼을 만한 재목의 영애가 나타나면 할 질문을 아그네스 영애에게 던졌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아그네스 공작 영애,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보고 결정하죠.”
“만약 제가 왕이 되어 모두가 제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도, 당신은 제가 잘못했을 때 지적할 수 있으십니까?”
이것은 당연히 ‘왕비의 자질’이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설마 아그네스 영애한테 이 질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당연하지 않나요? 전 제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이상한 질문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완벽한 대답이었다. 이것이면 충분하겠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는 반드시 내 약혼자로 삼겠다. 아그네스 영애에게 내가 아직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이 약혼을 미루면 저런 좋은 여자는 분명히 다른 남자가 채갈 테니까. 그렇기에 조금 억지스럽지만, 아그네스 영애의 동의 없이 약혼을 진행하기로 할까.
반드시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반려가 되겠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사틱 카두 네가이디타 비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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