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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84화 (84/92)

〈 84화 〉 마나 회복

* * *

이자벨라까지 구출한 애런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베네쿠스로 향했다.

앙겔로크라티카는 악마의 아이 사건과 가브리엘과 애런과의 전투로 반파되었기에, 기차는 타지 못해서 평범하게 걸어오다가 도중에 미호의 마법으로 이동했다.

"하아… 이제 마나 회복이 안 되느니라…."

애런의 등에 매달린 미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애런은 피식 웃었다.

"뭐야, 마나 회복시켜달라고 하는 거야?"

"뭐, 뭣?! 네놈은 머릿속에 든 것이 그것밖에 없는 것이냐? 정말로 네 안에 있는 마나가 바닥이 나서 회복이 안 된다는 말이다…!"

미호는 꼬리가 하나도 없으니 작은 손으로 애런의 뺨을 짝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힘을 실은 건 아니었기에 아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기분은 나빴다.

그게 미호의 공유된 감정이라면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구나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싫음 말로 하면 되잖아."

"... 싫다고 한 적은 없지 않느냐."

미호는 볼을 붉히고 도로시에게는 들이지 않도록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신체 접촉을 통해서 얻는 마나는 계약을 통해 받는 것보다는 적지만, 없는 것보다는 마나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미호 개인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으이구, 귀여운 녀석."

애런은 어깻죽지에 턱을 올려놓고 열을 올리고 있는 미호의 머리를 산발이 될 때까지 쓰다듬었다.

원래 이런 짓을 하면 싫어했지만, 오늘은 서로 공유되는 묘한 감정에 싫다고 말은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너도 한동안 하지 못해서 기대하는 느낌이지 않느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실제로 앙겔로크라티카에 있는 며칠 동안 도로시와 아일라도 있었기 때문에 관계를 맺은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때문에 애런도 욕구불만을 느끼고 있었기에 미호에게 그런 말을 한 거였다.

"원래는 안 이러고 잘 참았는데, 너랑 카펠라 때문에 영 조절이 안 되네."

애런은 전생 용사였을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몇 달 동안 해결하지 않고 서큐버스를 만나더라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럴 수 있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참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이 평범해지면서 인내심도 평범해졌기 때문인가 생각했다.

"카펠라한테는 마나 회복 때문이라고 말하고 허락받아 두겠다."

"그래그래. 그보다 카펠라한테 허락까지 받고 지킬 건 지키는구나."

"당연하지 않느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녀석의 배려 덕에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지."

애런은 가브리엘을 상대할 때 베네쿠스에서 도와준 카펠라를 떠올리며, 다시 만나거든 어떻게 칭찬해줘야 할지를 생각했다.

*

"왔네."

탁자 위에 엎드려 있던 카펠라는 마탑 정상을 가로막는 문이 열리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굴에는 웬일로 다크서클이 짙게 남아있었고, 오래 엎드려있던 탓에 볼에는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있었다.

어떻게 봐도 초췌해 보이는 이유는 베네쿠스의 마탑주가 5명이 되면서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일의 양이 늘었고, 앙겔로크라티카에 간 애런이 걱정되어서 잠도 안 자고 수시로 마법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대충 이유를 파악한 애런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게 다예요?"

카펠라는 불만스럽게 입을 비죽 내밀며 원하는 것을 표현했다.

"그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나중에 하면 안 돼?"

애런은 쭈뼛대며 서 있는 이자벨라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있는 도로시를 흘겨보고 물었다.

원하는 건 알겠고 해줄 수는 있지만, 때와 장소를 생각하면 조금 눈치가 보였다.

"해줘."

카펠라는 의자를 돌리고 팔을 활짝 펼쳤다.

"안 해줘요?"

애런은 곤란한 듯이 뒷목을 벅벅 긁더니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빠르게 입만 맞추려고 했다.

"읍…?"

하지만 카펠라는 그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다가온 애런의 머리를 잡아서 입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이자벨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신경 쓰지 않는 카펠라와 그걸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바라보고 있는 도로시나, 당연하게 애런의 옆에서 아직도 손을 잡고 있는 미호는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자신이 가브리엘에게 평가를 받고 고문을 받는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감도 안 오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도로시, 너 진짜 이대로 있으면 희망이 없겠는데 어떡할 거니?"

이자벨라는 조심스레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도로시에게 물었다.

"내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이래서는 안 된다니까.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언니, 조용히 해줘."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될 텐데.

이자벨라는 그리 생각하며 이 답답하고 귀여운 이 동생을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상황 파악도 해야 했고, 베네쿠스에 오면서 들었던 마왕의 침공이 곧 시작될 거란 것도 신경이 쓰였다.

"하아… 머리가 터질 것 같네."

"어? 왜? 가브리엘이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그냥 알아가야 할 것이 많아서 그렇게 말한 거였는데, 도로시는 진짜로 머리가 터지는 줄 알고 걱정스레 쳐다봤다.

이자벨라는 피식 웃으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다가 관뒀다.

때마침 카펠라가 애런을 붙잡고 있던 팔을 풀어주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하는 시기니 귀를 쫑긋 세웠다.

카펠라는 입가를 손등으로 한번 닦고 전에 약속했던 대로 배시시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아리아나 님은 어땠어요?"

"보였어?"

"뭐,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천개가 오랜만에 작동하는 것도 봤고, 12장의 날개를 펼친 것도 봤고, 마왕이 된 것도 봤고…."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완벽한 성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마기를 뿜고, 마왕이 된 것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그 사람이 적으로 나타난다면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자신의 손으로 은인이었던 아리아나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런 것들이 침울해진 카펠라의 표정에서 드러나왔다.

"어떻냐라…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안 괜찮은 느낌. 마치 전생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네."

"그래? 아리아나 님도 애런이랑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죠."

카펠라는 그리 말하며 혀를 찼다.

"그보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안 좋은 소식?"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어떤 소식인지 짐작이 갔다.

아리아나가 말했던 것처럼 탐욕의 마신이 된 베로니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겠지.

"베로니카가 인간계에 선전포고 했어."

"그럴 것 같더라…."

애런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평범한 몸은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데, 이놈의 세계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번에는 인간을 모조리 죽이거나 가축으로 만들 거라고 떵떵거리고 갔나 봐. 아무래도 저번에 있었던 전쟁보다도 더 공세가 격해지고, 마계와 인간계의 전면전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겠지."

7명의 마왕.

그리고 탐욕의 마신 베로니카.

그들이 모두 전쟁에 참여한다면 인간계는 버티는 것조차 버거울 것이다.

작은 전력이라도 소중할 시기에 인간계의 가장 큰 전력이었던 가브리엘과 교황은 죽었으니 그야말로 뼈가 아팠다.

'물론 그 개새끼들은 죽는 게 나았지만.'

애런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인간계는 이미 연합을 이루기로 했어. 마족의 공포는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고는 하나, 역사에는 남아있으니까요."

"그건 다행이네."

"그리고 성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용사의 출전도 결정된 모양이야."

"... 뭐?"

그 말을 들은 애런은 얼굴을 콱 구겼다.

"용사인 아일라가 전장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이제까지는 용사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공식적인 자리에 내세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미 다 들킨 상황에서 어쩌겠어요."

"이런 씨발."

아일라가 나서기 전에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용사가 벌써 움직인다면 아일라는 결국 개처럼 굴려질 것이 뻔히 보였다.

전생의 애런이 그러했듯이.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는데, 인간계의 판단은 상당히 빨랐다.

"대체 어떤 놈이 그걸 결정했대?"

"나도 자세한 것까지는 몰라. 그래도 아일라는 곧 오빠를 보겠다면서 좋아하던데요."

"하아… 걔는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애런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전쟁이 곧 일어난다면 파이몬도 인간계로 향할 테고 만나볼 수 있을 거다.

전에 말했던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인하고, 파이몬의 계획도 들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 전에 준비도 해야겠지. 베네쿠스의 마탑주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베네쿠스를 넘어서 인간계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진을 그릴 거야. 그 시간은 칼리고 제국과 오르도 왕국이 최대한 벌어보기로 했어."

"인간계 전체? 그게 가능해?"

"지금의 나라면 가능해. 괜히 힘을 길러왔던 게 아니니까."

카펠라는 자신 있다는 듯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괜히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애런도 준비 해둬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한데, 가브리엘이랑 싸우느라 많이 소모했잖아요?"

"응? 뭐를?"

"모르는 척하기는. 마나 말이에요. 지금 미호 상태를 보니까 거의 방전되었네. 미리미리 마나 회복시켜줘서 만전의 상태로 있으란 말이야."

그 말에 애런의 손을 붙잡고 있던 미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벌써 일어날 일을 상상이라도 했는지 귀까지 빨개져서는 애런를 올려다봤다.

"이 변태 년이."

그걸 본 카펠라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왜, 왜 그러느냐?! 내가, 내가 뭘 했다고?"

미호는 괜히 큰소리를 내며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애런의 뒤에 숨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며칠 동안은 저 변태 여우 년한테 마나나 회복시켜줘요. 마왕을 상대할 때는 가브리엘 때보다 훨씬 많은 마나가 필요할 거야."

카펠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큼 마왕의 존재는 위험하며, 애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가 갈릴 만큼 싫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미호의 도움은 중요했다.

"얼마면 되려나. 일주일? 아직 선전포고만 하고 준비를 하는 중인 것 같으니, 많지는 않아도 시간적 여유가 있기는 해요."

"일주일…."

미호는 카펠라의 말을 되뇌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 미친년이 오래 살면서 머리에 든 게 지식이 아니라 떡칠 생각밖에 없나? 뭘 자꾸 발정 난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면서 몸을 꼬는 거야? 죽고 싶어?"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카펠라가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미호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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