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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83화 (83/92)

〈 83화 〉 대성당

* * *

무너진 대성당.

애런은 숨겨뒀던 이자벨라의 신체를 무너진 대성당으로 들고 와서 눕혔다.

눈을 감은 상태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편안하게 잠에 든 것만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애런의 손에 있는 뇌와 눈을 마저 넣어주지 않는다면, 잠에서 깨어날 일은 없을 거다.

"애런 님!"

교황과 가브리엘과 싸우면서 무리를 한 도로시는 다리가 풀려서 일어서지 못하고 팔로 몸을 질질 끌면서 왔다.

사실 애런이 데리고 와도 되는 거였지만, 그만큼 기다리지를 못하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도로시는 벌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애런은 이자벨라의 두 눈동자와 뇌를 도로시에게 건네주었다.

마지막으로 언니를 깨우는 것은 동생이 하라는 작은 배려였다.

"감사합니다…."

도로시는 두 손으로 이자벨라를 소중히 받아들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텅텅 빈 검은 구멍에 눈알을 집어넣고, 뇌는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면서 얼굴을 만지고 있으니 뇌가 꿈틀거리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제 부족한 부분은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깨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도로시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자벨라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옆에 앉아있는 애런과 미호도 쌍둥이를 조용히 바라봤다.

"..."

하지만 이자벨라는 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로시는 5분… 10분… 하염없이 이자벨라의 손을 붙잡고 이마에 갖다 대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언니… 이제 깨어나…."

15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슬슬 이상함을 느낀 애런과 미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거 왜 이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애런, 도로시의 언니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건지 알겠느냐?"

"그건 내가 묻고 싶어."

둘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나, 육체는 죽지 않더라도 정신은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생인 도로시가 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계약으로 어느 정도 생각만 공유했다.

"언니…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도로시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며 눈물이 이자벨라의 얼굴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할 때.

바람이 불면서 이자벨라의 머리카락이 사르르 휘날렸다.

그 순간 아주 조금.

미세하게 떨리는 입꼬리를 애런을 볼 수 있었다.

"또 저러시네."

"응? 무슨 소리냐."

미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있거든. 전에도 죽은 척을 하면서 나를 놀라게 한 적이."

목이 뜯겨 나갔는데도 히죽 웃으면서 자신의 반응을 즐겼던 이자벨라가 떠올랐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상이 갔다.

벌떡.

이자벨라가 갑작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시체가 좀비가 되어 일어난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도로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니?" 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도로시 마이어."

이자벨라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눈을 번뜩 뜨고 도로시를 바라봤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빛은 눈 부셨는지 눈살을 찌푸린 상태였다.

"제가 이자벨라 마이어로 보입니까?"

마치 가브리엘의 성대모사를 하듯,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도로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만 깜빡거렸다.

언니가 아닌가?

말투는 가브리엘의 것인데?

혹시 뇌에도 무슨 수작을 부려놔서 언니가 아닌, 가브리엘이 깨어난 건가?

라는 생각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미호도 질렸다는 듯이 겨우 다시 생겨난 꼬리 하나를 흔들면서 싸울 준비를 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애런은 피식 웃으면서 미호의 꼬리를 확 잡았다.

"으앙?! 애, 애런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

꼬리를 붙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는 듯 낑낑대보지만, 어린애의 모습을 한 미호가 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지켜보고 있어. 본인도 쑥스러워서 저러는 모양이니까."

너무 진지한 분위기라면 자신도 모르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것 같으니, 괜히 연기를 하고 유쾌하게 나오려는 것 같았지만….

주륵.

이자벨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려왔다.

이미 연기를 하기에는 본인도 감정이 벅차오르는 모양이었다.

"언니…?"

그걸 본 도로시도 이제 눈치를 챘는지, 조심스레 다가가 눈치를 살폈다.

"미안해. 나야."

이자벨라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도로시는 전에 생각했던 대로 주저하지 않고 먼저 이자벨라를 와락 껴안았다.

"왜, 왜 이런 장난을 친 거야?!"

이자벨라는 품에 안긴 도로시를 등을 토닥여 주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 나도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 만나자마자 우는 건 꼴사납잖아?"

"벌써 울고 있으면서…."

도로시의 말대로였다.

이미 둘 다 얼굴은 터져 나온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울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분명 눈물과 울음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눈과 입은 어떻게 봐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말이야."

이자벨라는 도로시의 볼에 얼굴을 비비면서 우느라 거칠어진 숨을 다시 진정시켰다.

"말보다는 지금 이대로 있어도 좋아. 이제는 지하실에 있을 때처럼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평소 더 성숙해 보였던 이자벨라는 어쩔 줄 몰라하는데, 상대적으로 도로시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똑같이 생긴 둘이 성격이 바뀐 것처럼 보이니 순간 누가 도로시고 이자벨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 이제는 자유니까. 우리를 옭아매던 교황도 가브리엘도 모두 죽었으니까."

둘 다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웃다가 이상한 광경이기는 했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울음이 그쳐갈 때 즈음,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닦고 이자벨라가 일어섰다.

"애런 님도 고마워요."

오랜만에 걷는 것이라 그런지, 이자벨라는 처음 걷는 아기처럼 몸을 뒤뚱거리며 걸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불안한 모습이어서 애런이 부축을 해주려고 하니, 그 상태로 몸을 던져 품속에 안겨 왔다.

"이자벨라 님?"

"죄송해요. 정신은 깨어있었는데 제가 움직일 수 있던 몸이 없어서 어떻게 걸었던 건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런 거라면 뭐, 기대고 계세요."

이게 여우짓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구별이 안 가는 미호는 그저 입을 벌리고 애런의 어깨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이유도 없었을 텐데…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뭘요. 이자벨라 님이 아일라 돌봐줬던 것도 있고 제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자벨라 님 덕이잖아요?"

애런은 어색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탓에, 이렇게까지 감사를 받을 정도의 일이었나 싶었다.

전생에는 수도 없이 들었던 감사 인사지만, 지금에 와서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들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고작 그런 거로 받기에는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는걸요. 뒤에 있는 분…."

이자벨라는 애런의 등에 매달려 어깨에 머리를 받치고 있는 미호를 고개만 들어서 올려다봤다.

"미호니라."

"미호 님도 고마워요."

"나는 애런을 도운 것밖에 없다."

무심하게 말하는 미호를 보고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애 취급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턱으로 애런의 어깨를 꾹 누르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 이래 보여도 이 중 누구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구미호란 말이다!"

"그런가요?"

이자벨라는 미호의 반응을 보고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장난을 쳤을 때 반응이 좋을 것 같은 아일라를 봤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한동안은 미호 때문에 시끄러워지겠구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어, 언니 조금 떨어져…."

아직 눈시울이 붉은 도로시가 애런에게 안겨있는 이자벨라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잡아당겼다.

걷는 게 어렵다고 했던 이자벨라는 어디에 기대지 않더라도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었다.

"응?"

의외라는 표정으로 끌려 나온 이자벨라는 도로시와 애런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

그리고 히죽 웃으면서 도로시의 머리카락이 다 헝클어질 때까지 쓰다듬었다.

"으이구, 이제 다 컸다고 언니도 견제하는 거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견제? 내가 그런 걸 할 이유가 없잖아. 언니가 뭔가 착각을 했나 보네!"

허공에 이리저리 손짓하면서 허겁지겁 설명하는 도로시에게 이자벨라는 침착하게 말했다.

"도로시, 그렇게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조금 솔직해지는 게 어때?"

"어, 어, 언니가 뭘 알아?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지 말고 그건 나중에 하자. 응?"

"이런… 네가 이러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답답하다. 대충 봐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은데, 이래서는 도저히 희망이 안 보이는걸."

조금 전까지 울면서 껴안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도로시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이자벨라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짜증을 냈다.

"그만. 그만해. 언니가 참견 안 해도 내가 알아서 할거거든? 이제 나도 어린애가 아니야. 합법적으로도 성인이라고."

"그래? 그런데 하는 짓은 완전 어린애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성인이면 성인답게 굴면 좋잖아."

"그만해!"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끝없이 떠들어대는 이자벨라가 야속하게 느껴진 도로시는 결국 손으로 이자벨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것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언니는 평소처럼 응원이나 해주면 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면 진짜로 나 화낼 거야. 알아들었지?"

"..."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줘."

도로시는 이자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놓아줬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지만, 왜 이렇게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지… 애런 님에게 고마운 마음은 알겠지만, 꼬리 치는 것도 아니고 안기는 건 뭐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도로시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이자벨라는 벌써 놀려먹기 좋은 사람이 2명이나 생겨서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땅에 털썩 주저앉아 오랜만에 움직이는 다리를 쉬게 해주었다.

쌍둥이가 대화하는 걸 지켜보고 있던 미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런… 도로시 언니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만, 도로시의 마음도 이해가 되어서 뭐라 말을 못 하겠군."

"뭔 소리야?"

애런은 미호의 공유된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됐다… 어차피 너는 그런 놈이니까 말이지. 뭐, 나는 이대로인 편이 좋기는 하다만. 더 늘어나봤자 좋을 게 없단 말이지."

"조금 전부터 무슨 혼잣말을 하는 거야? 나도 좀 알자."

자꾸 말을 무시하는 미호의 뺨을 주욱 잡아당겼다.

미호는 자기 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신경도 안 쓰는지 그 상태로 말을 이어갔다.

"애런, 네가 문제라는 말이다. 내가 카펠라한테 받은 몫이 줄어들면 어떡할 거란 말이냐."

"무슨 소리인지 영 알아듣기 어렵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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