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대성당
* * *
"... 애런 님은 분발하고 계시네요."
도로시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성당의 홀 중앙, 금빛 의자에 앉아있는 교황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끌끌끌… 네년이 무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냐."
교황은 오만하게 의자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움직이는 것은 그저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생긴 입뿐이었다.
"제가 아무것도 못 하리라 생각하나요?"
도로시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능력을 발동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도로시의 몸 주변의 빛과 공기가 소멸하며 이질적인 광경을 만들어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교황은 눈살을 찌푸리고 비쩍 마른 손을 들었다.
"막아라."
그의 말에 대성당을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이 타닥타닥 뛰어와 대성당의 홀을 감쌌다.
그들은 이미 세뇌당한 교황만을 지키는 성기사인 것이었다.
눈의 초점은 흐릿하고, 반쯤 벌린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몸 안에 한계를 넘는 신성력을 받아들였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무얼, 사람들을 지킬 힘을 바랐기에 주었을 뿐이다."
교황의 말에 성기사들의 몸이 일제히 빛났다.
환한 빛은 형체를 잃어버린 대성당 바깥까지도 퍼져나가 마치 지상에 있는 태양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 성흔."
성기사들의 몸에는 공통적인 상처가 있었다.
갑옷을 두르고 있지만, 손과 발에 생긴 구멍을 가리지는 못하고 뻥 뚫려있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교황에게서 뻗어 나온 금빛 입자들이 주입되며 성기사들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로시는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사용하는 교황에게 불쾌감을 느꼈다.
성녀인 자신과 이자벨라도 정신을 잃지 않았을 뿐, 그에게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하는 대로 움직였으니, 동질감을 느꼈다.
"불쌍한 사람들이네요."
교황의 신성력을 주입받았다고 한들, 성기사들의 검이 도로시에게 닿는 일 따위는 없다.
결국 도로시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사도급의 신성력을 가져야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스르르르…
도로시에게 달려든 성기사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저런… 성녀라는 자가 굽어살펴야 할 인간들을 소멸시키는 꼴이라니."
교황이 일어섰다.
그 순간 대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성기사들은 이제 주입받은 신성력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무너져 서 있는 것조차도 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역시 어렸을 때 죽여놓아야 했는데 후회가 되는군."
교황의 쭈글쭈글했던 피부가 탱탱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던 마물 같았던 얼굴이 사람처럼 바뀌었다.
몸 안에 솟구치는 신성력이 교황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에 살이 붙는 것은 아니었다.
피부가 되돌아왔다고 한들, 아직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기도하라."
교황의 말.
그 말은 도로시에게도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대성당을 중심으로 앙겔로크라티카로 뻗어나갔다.
"아아! 믿습니다!"
그리고 대성당의 밖에서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똑같은 말로 기도를 올리며, 마치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가 착각하게 했다.
"전지전능한 천사님을 믿고 찬양하라."
교황에 대답하듯 앙겔로크라티카의 국민은 교황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전지전능한 천사님을 믿습니다!"
국민의 믿음이, 신앙심이 신성력이 되어 끝없이 교황에게 공급되었다.
그럴수록 교황에게서는 생명력이 넘쳐흘렀고 점점 그 모습도 젊어지고 있었다.
"믿음을 보여라."
그 말에.
대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성기사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푹! 푹! 푹!
성기사들은 넋이 나간 채 그들을 찔렀다.
사람 몸만 한 장검에 몸이 하나둘 꽂히면서 꼬치를 연상시켰다.
사람들은 검에 찔리면서도 흰자를 드러내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 그들은 대성당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한 줄기의 빛을 보았다.
"아아! 천사님이 강림하셨다…!"
승화.
젊어질 대로 젊어진 교황은 천사를 상징하는 순백의 날개를 4장 펼쳤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검에 찔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천사를 부르짖었다.
"천사님! 천사님!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저희를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하여주시옵소서!"
"육신을 버리고 천사님을 따르겠나이다!"
저마다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도 하나같이 교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인지, 죽으려고 발악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광기 어린 광경에 도로시는 그저 눈물을 흘렸다.
성녀인데도… 자신은 저들을 구하지 못했다.
맡은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울며 멈추어 서지는 않을 것이다.
교황에게 대항하여, 이자벨라를 구해낼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교황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천사를 믿는다면… 죽음으로 믿음을 증명하라."
"아아아!"
푹푹푹푹!
사람들은 제 몸을 검에 꽂았다 뺐다 하기를 반복하였다.
검붉은 피가 앙겔로크라티카의 중심에서 퍼져나간다.
따뜻한 내장이 흘러나와 대성당을 장식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땅바닥에 쓰러졌다.
더 죽을 사람이 없자 성기사들은 자신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피 분수를 뿜으며 그들도 쓰러졌다.
악마의 아이, 앙겔로크라티카의 국민, 성기사들의 시체는 한데 어우러져 교황을 향해 머리를 박고 있었다.
신성했던 대성당은 천사에게 공물을 바치는 광기 어린 제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썩어빠진 사이비 종교의 것이었다.
"당신은… 악마예요."
도로시가 말했다.
"내가 악마다? 웃기는 소리."
교황은 크게 소리 내 웃었다.
쓰러져있는 시체들도 입을 벌리고 웃는 듯했다.
세상에 웃음소리가 가득해졌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긍정한다. 나를 믿고 찬양하고 신봉하지."
쓰러져있는 시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에 대한 많은 이들의 무한한 믿음이 보이지 않나. 누가 나를 악이라 칭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헛소리를."
"나는 곧 사람들이 따를 법이오, 그들이 믿는 천사요, 세상이 정한 선이다."
화아악!
도로시의 등에서 6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치천사에게 선택받았다는 증거이자, 그들의 대행자의 역할을 허락받은 자.
이제까지는 제1사도인 가브리엘 플라벨룸에게만 허락되었던 치천사의 대행자.
그걸 본 교황의 눈이 커졌다.
실핏줄이 터지며 눈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너 따위가 어떻게…!"
천사에게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공양했다.
성녀 이자벨라의 뇌를 머리에 이식하는 인간을 벗어나는 짓도 저질렀다.
그런데도 자신은 4장의 날개가 한계였다.
하지만 왜 눈앞에 있는 도로시에게는 6장의 날개란 말인가?
대체 왜?
누가?
어떤 치천사가 도로시에게 6장의 날개를 허락하였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늘에서 수많은 빛의 검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바늘과 같은 것부터, 건물만 한 크기까지 다양했다.
쿠구구구궁!
거대하고도 압축된 신성력들이 땅에 박히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빛의 검은 악마의 아이를 뚫고, 시민을 뚫고, 성기사를 뚫어내며 땅을 짓밟아놓았지만 도로시에게는 먼지조차 날리지 않게 했다.
그 사실에 교황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올라오더니 핏줄기를 뿜으며 터졌다.
"어째서…! 어째서 네년 따위가 나보다 상위 존재란 말이냐!"
"멍청하군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도로시의 말에 교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손톱으로 얼굴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몸의 한계를 넘어선 신성력의 부작용을 견디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벗겨진 피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눈알이 찢어지고 흐물거리며 안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성력에 의해 모든 것은 재생되었다.
그것이 반복되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천사를 믿고, 포교에 썼다고 생각하나?
10년, 20년, 30년… 60년을 넘어 100년… 그 이상의 세월이다.
그런데도 왜 자신에게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당신은 소모한 시간 동안 정말로 천사를 믿은 건가요?"
"..."
믿음.
그 말에 교황은 입에서 거품을 물고 다시 제 얼굴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가아아악가각!"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것은 천사를 믿고,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이 아닌.
"아으으윽! 으아아악!"
그저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고 교황이 되기 위함이었다.
교황이 되고 나서는?
치천사와 계약한 가브리엘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하여 12사도의 반열에 오르기 위함이었다.
12사도가 되고 나서는?
더더욱 높은 사도가 되기 위함이오,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늙은 몸뚱이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자신에게 순수한 믿음이 있었던 시간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그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풍선에 구멍이 터진 것처럼 온몸에 구멍이 펑펑 생기더니, 금빛의 신성력을 허공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자신이 해왔던 것이 신앙심이 없는 거짓된 믿음이었음을 자각한 광신도는 이제 12사도도 아니오, 교황도 아니오, 사람조차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광신도요, 살인자요, 성녀가 처단할 악이로다.
"분명 천사는 제게 당신을 소멸시키라고 이 힘을 준 것이겠죠."
"오, 오, 오, 오지, 오지, 오지? 오지 마? 오지 마라!"
이미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교황은 더 이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생기가 돌아왔던 피부는 다시 쭈글쭈글해졌고, 구멍이 생겨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당신의 권능은 회귀겠죠? 수많은 미래를 살고, 수많은 과거를 바꿔서 교황의 자리에 앉았어요."
"아니, 아니, 아니다. 나는 교황. 나는 적합한 교황이다. 그런 꼼수는 쓰지, 쓰지 않았다?"
도로시는 교황에게 다가가기 위해 날 필요조차 없었다.
그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인간이면서 감히 천사가 되려고 했던 교황은 결국 인간이 있어야 할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으로서 발동되는 모양이군요."
계속해서 자기 목을 조르며 자살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신성력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나에게 소멸당하는 거예요."
도로시는 교황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당신의 회귀 권능은 당신이 저지른 죄마저도 당신에게 회귀시킨 것이에요."
"안… 돼…"
소멸하는 것만큼은 안 된다…
죽음으로써 발동되는 회귀 권능은 도로시의 능력에 소멸당한다면 발동하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진작부터 도로시를 죽이려고 했던 것인데…
교황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소리를 낼 입이 사라졌으므로.
"언니."
교황은 입자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반쪽의 뇌였다.
"이제 애런 님만 이기신다면… 언니와 만날 수 있어…"
도로시는 작은 뇌를 소중하게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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