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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7화 (77/92)

〈 77화 〉 대성당

* * *

마기를 둘러 검은 갑옷을 두른 애런과는 상반되는 대성당의 환한 빛.

그것에는 정화의 효과가 있었는지 마기가 스륵스륵 사라지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애런은 마기가 흩날려 사라지지 않도록 집중을 했고, 더욱더 끈적해진 마기를 몸에 둘렀다.

"들어가죠."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이제 가로막는 것은 없다.

남는 것은 제1사도인 가브리엘과 제3사도인 교황뿐.

도로시는 긴장을 풀지 않고 능력을 발동했다.

이 중에서 가장 약한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신성한 곳이네요…"

도로시는 화려한 조각이 되어있는 대리석 기둥과 천장의 12개의 돔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대성당 내부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화려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건 추악한 자신들의 모습을 가리기 위한 빛이에요."

애런이 말했다.

앙겔로크라티카는 옛날부터 썩어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자벨라나 라즈니 일로 확신이 들었다.

이 광신도들은 비인간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악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마족보다도 가까이 있는 이 광신도들이 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광기를 전염 시켜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런 내부부터 인류를 좀먹는 것이 외부에서 침략을 하는 것보다도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분명 천사를 믿고 사용하는 신성 마법은 도움이 되지만, 인류를 위해서 사용될 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성 마법을 사람들의 믿음을 모으기 위해서 사용한 순간부터 인류는 천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자신들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들이 없으면 무력한 존재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앙겔로크라티카의 시민들은 천사의 힘을 사용하는 성기사들이 없으면 제 몸을 지키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시민이 성기사가 없다고 악마의 아이를 상대할 생각조차 못 하고 대성당에 몰려온 것이 그걸 증명했다.

그러니 이 이상으로 천사가 인류를 좀먹기 전에, 광신도들이 광기를 전염시키기 전에 끝을 내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천사를 대행하는 사도들부터 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자벨라를 구하는 것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어느새 애런은 그들을 죽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니 대성당의 넓은 홀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하늘 덮개라 불리는 거대한 바퀴, 천개가 애런을 반겨주는 것 같았다.

"..."

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신성력은 가시처럼 돋아나 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의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세상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제1사도 천사의 검 가브리엘 플라벨룸.

그가 이 대성당 안에서 침입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터벅터벅.

아무도 없는 대성당에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도로시는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들리는 걸 느꼈다.

이제 이자벨라를 만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인 뇌와 눈을 돌려받고 이자벨라를 깨울 거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이 먼저 다가가 언니를 껴안아 줄 거라 다짐하면서 목에 걸고 있는 펙토랄레를 꽉 쥐었다.

"기어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까."

치천사 미카엘과 똑 닮은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가브리엘이 대성당의 넓은 홀에 홀로 서 있었고, 그 뒤에는 교황이 금빛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빛나는 검을 바닥에 꽂은 채로 홀을 가득 채울 것처럼 거대한 날개 6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온 상대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그런 거짓된 모습으로 있을 겁니까. 도로시 마이어."

가브리엘은 얇게 뜬 눈으로 모습을 바꾼 도로시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옛날처럼 깊은 바다색 같은 것이 아닌, 도로시의 눈동자와 같은 푸른 눈동자였다.

도로시는 자신에게 걸린 카펠라의 마법을 해제했다.

검은 머리는 끝부터 색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은발이 되었고, 키도 조금 더 커졌다.

"언니를 돌려주세요."

도로시는 가브리엘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한 발자국 나서서 말했다.

"그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입니다. 이미 성녀에 어울리지 않는 당신들은 신성력을 공급하는 신체를 내놓는 것이 역할입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성녀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당신들이 판단할 것이 아니에요."

자신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도구 취급하는 것이 도로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타인을 위해 살았으며, 고생했는 이자벨라가 성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평가였고, 있어서도 안 되는 평가다.

"아니, 저희가 판단하는 겁니다. 천사에게 선택받은 대행자인 저희가 말입니다. 그것이 곧 천사의 뜻입니다. 실제로 이자벨라 마이어의 몸을 조각을 내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곧 천사는 저희의 방법을 긍정한다는 뜻입니다."

광신도의 곡해가 들어간 헛소리가 시작되었다.

그걸 들어줄 생각이 없는 도로시는 이미 싸울 준비를 끝마쳤다.

사르르.

신성하고 찬란한 빛들이 도로시의 몸을 둘러쌌다가, 애런에게로 양도되었다.

"전보다 심상 기도로 일으키는 기적의 수준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저희를 보살피시기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가브리엘은 여유가 넘친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애런은 저번에 싸웠을 때는 두 성녀의 신성 마법으로 몸을 강화했어도 밀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작 도로시 한 명에게서 신성 마법을 부여받았으니, 깔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모르고 있다.

도로시는 치천사에게 선택받은 성녀이고, 자신과 똑같은 6장의 날개를 펼치는 걸 허락받은 자라는 것을.

그걸 알았더라면 저렇게 여유를 부리지는 않았겠지.

애런은 도로시 한 명에게 신성 마법을 부여받았을 뿐이지만, 저번 이상으로 몸이 잘 움직여지는 것을 느꼈다.

베네쿠스에서 1년간 피나도록 노력한 도로시의 성장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애런도 미호와 계약을 하고, 아르카나와도 계약을 했으니 이제는 가브리엘과도 싸워볼 만은 하다.

아직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가망이 아예 없었던 1년 전과 비교하면 희망적인 상황이다.

미호의 영창이 끝나고 몸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

애런은 톡톡 검은 갑옷을 두른 채로 제자리에서 몇 번 뛰어보고, 마검을 꺼내서 가브리엘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애런은 히죽 웃으며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너의 그 오만함이 오늘 너를 죽일 거다."

까앙!

어두운 마검과 빛나는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대성당의 홀을 가득 채웠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터져나가는 마기와 신성력은 대성당을 점점 부숴가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제서야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애런을 크게 뜬 눈으로 노려봤다.

1년 전에는 검을 막아내는 것도 힘겨워하던 사내가 어떻게?

고작 성녀 한 명의 신성 마법을 짊어지고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이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냉정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가브리엘은 여전히 자신이 천사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자신이 더더욱 천사의 기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당장 비등하더라도 결국에는 천사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것이 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지 않았다.

"과연 1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한 모양입니다!"

펄럭­!

가브리엘이 6장의 날개를 힘껏 날갯짓했다.

2장의 날개에서는 강철과도 같은 날개들이, 또 다른 2장의 날개에서는 작은 태양과도 같은 구체들이, 마지막 2장의 날개에서는 대성당을 가득 채울 거대한 태양을 만들어냈다.

"Ooue owo viwolu."

미호의 영창에 허공에 수많은 푸른 불꽃들이 피어났다.

그것들은 작았지만 날아오는 날개들을 불태워 없애고, 작은 태양을 집어삼켰고, 거대한 태양마저도 부숴버렸다.

"..."

자신의 신성 마법을 너무나도 쉽게 공략당한 가브리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교황, 어쩔 수 없지만 대성당은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홀에 있는 금빛 의자에 앉아있는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과과과광­!

대성당의 천장이 힘없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돔을 부수고 떨어지는 것은 거대한 육각 기둥.

지천사들이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쿵! 쿵! 쿵!

기둥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어느덧 대성당은 천장이 뻥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이게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지 하늘에는 떠돌아다니는 구름 한 점도 없었고, 태양이 빛을 환하게 내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지상과 이어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만들어져있었다.

그 계단을 통해 새하얀 날개 4장을 펼친 지천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를 벌한 검과 창을 들고 있었고, 그 뒤에는 아기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등장했다.

"미호, 이다음에 떨어지는 태양은 부탁한다."

"맡기거라."

지천사까지 불렀다는 얘기는 전처럼 앙겔로크라티카에 가는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태양을 떨어뜨리겠다는 얘기였다.

그 생각대로 금빛 방어막이 대성당을 둘러싸고 하늘에는 수많은 태양이 생겨났다.

"신벌."

가브리엘의 손짓에 태양들은 일제히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성당은 열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아가며 형체를 잃었고, 대기 중에 있던 수분들이 모조리 사라져가며 공기가 건조해졌다.

공간이 휘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태양은 그 수는 이미 셀 수도 없을 정도였고, 온몸의 털이 돋구치는 살의가 담겨있었다.

저번이라면 이걸 보고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애런은 미호의 공유되는 자신감에 저걸 막아낼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Gaooo gaane viwone lui."

후우웅­!

허공이 갈라지며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카펠라가 만들었던 블랙홀과는 달리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저것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두운 공간은 더 크게 아가리를 벌리듯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어느새 금빛 방어막을 사이로 태양이 있는 공간과 대성당이 있는 공간을 나누어놨다.

수많은 태양은 어두운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었고, 그 압도적인 신성력들은 그 공간을 지나오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던 태양들을 막아낸 것이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가브리엘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에 답하듯 하늘과 지상을 잇는 계단에서 금빛을 띠는 신성력들이 내려와 가브리엘에게 공급되었다.

"보셨습니까. 미카엘 님은 제가 당신들에게 쓰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의 몸에 있는 성흔들이 일제히 빛나며 공급된 신성력을 받아들였다.

몸에서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낼 정도로 신성력이 흘러넘치는 가브리엘은 아까 전보다도 괴물이 되어갔다.

저만한 신성력을 몸에 받아들였는데도 정신이 망가지지 않는 걸 보니 그런 부분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애런, 이제는 더 긴장하거라."

미호도 그의 위험성을 알아차렸는지, 애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알겠어, 아르카나."

애런은 조용히 계약한 정령을 불렀다.

그리고 아르카나는 그에 대답하듯 애런의 머리에 두 개의 불길한 뿔을 만들어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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