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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69화 (69/92)

〈 69화 〉 모노크롬

* * *

이자벨라가 갇혀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지낸 지도 며칠이 지났다.

이 역겨운 광신도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장에서 악마의 아이에게 돌을 던지고, 불로 태웠다.

이제는 시체가 타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에도 적응이 되어갈 때 즈음, 성녀가 포교 겸 이단 심판을 위해서 앙겔로크라티카를 떠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건 기회네요."

가짜라고는 하나 성녀인 라즈니를 호위하기 위해서 많은 성기사가 앙겔로크라티카를 벗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의 감시가 소홀해져 이자벨라가 갇혀있는 곳을 찾는 것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테다.

"며칠 동안 전혀 단서를 찾지 못했으니, 성기사 수가 줄었을 때 많이 조사해보도록 하죠."

"네…"

도로시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앙겔로크라티카에 돌아왔음에도 전혀 이자벨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도로시에게 초조함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죽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죽어서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자벨라 님은 죽지 않았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아니, 많이 고통받기는 했겠지만 살아있기만 한다면 행복해질 기회가 있다는 걸 알만한 분이에요."

"그럴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때까지 고문을 당했다면…"

도로시는 창 넘어 광장에서 사람들이 던진 돌을 맞고 있는 악마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악마임을 인정하고 빨리 죽여달라고 하는 외침이 마천루에 울려 퍼졌다.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로시는 자신도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로시 님은 믿어주셔야죠. 이자벨라 님은 도로시 님을 생각하면서 버티실 텐데, 믿어주지 못한다면 어떡해요?"

"...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이자벨라 님을 믿고 있는 건 도로시 님이잖아요."

"제가요…?"

"네, 그러니까 계속 열심히 하셨던 거잖아요."

베네쿠스에 있는 동안 도로시는 항상 카펠라의 곁에 붙어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

매일매일 방에 박혀서 밤늦게까지 마법 수련을 하고, 기도를 올리며 노력해왔다.

앙겔로크라티카에 돌아오고 나서도 발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돌아다니며 이자벨라에 대한 정보를 모으려고 했는데, 이게 이자벨라가 살아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뭐겠는가.

그러니 애런은 누구보다 도로시가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안 가본 곳은 이제 별로 없네요."

평범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둘러봤다. 이제 남은 곳은 교황이 지내는 대성당이나, 악마의 아이를 찾아내기 위한 모노크롬뿐이었다.

두 곳 모두 항상 경비가 삼엄한 곳이지만, 제1사도인 가브리엘이 지키고 있을 대성당만큼은 모노크롬일지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다.

"모노크롬으로 가보죠."

*

"아니,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아일라는 악마의 아이를 베면서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모노크롬에 있는 성기사들이 악마의 아이를 정화했지만, 며칠 전부터 수가 너무 많다며 용사인 아일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한가했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수가 많았다.

끽해봐야 하루에 한두 명이나 생기던 악마의 아이가 시체를 모은다면 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비정상적이다.

아일라는 마왕이 부활하기 직전까지 갔던 헬슨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는 부활 직전인 마왕이 흩뿌린 짙은 마기가 모노크롬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면서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조금 강해진 것 같은데?"

그때와 다른 것은 또 있었다. 마왕이 애런의 몸에 봉인되면서 다른 악마의 아이들은 급격히 약해졌었는데, 지금은 하나하나가 꽤 강한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평범한 성기사 한 명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정화에 나서는 상황이다.

"아니, 성녀도 아닌 사람을 호위하는데 무슨 기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대?"

이자벨라가 안 보이기 시작하고 곧 모노크롬에 라즈니라는 여성이 자신을 성녀라 칭하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이자벨라와 견줄 수 있는 신성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건 진짜 성녀가 아니라는 것을 아일라는 알 수 있었다.

용사나 성녀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자벨라는 죽지 않으니, 라즈니는 가짜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브리엘은 라즈니가 진짜 성녀라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겠지.

아무튼, 가짜 성녀 때문에 기사가 빠진 상황에 악마의 아이가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것은 누군가가 노린 것만 같았다.

불안한 것은 그것이다.

"분명 오빠가 오르도 왕국에서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는 자가 있다고 했지."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니, 분명 애런은 그 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했다.

"... 확인해봐야겠어."

아일라는 오르도 왕국에 대한 일이라면 잘 알 만한 녀석을 찾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가는 길에 있는 악마의 아이들은 모조리 정화했다.

*

"헤드릭!"

콰직!

아일라는 헤드릭의 방문을 노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문을 발로 걷어차서 부숴버렸다.

"아, 아일라 님?"

방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나온 것은 헤드릭의 동생인 레오였다. 레오는 샤워를 하다 나왔는지, 물기가 젖은 머리에 수건만을 두르고 있었다.

아일라를 보고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진 채로 자기 몸을 두 팔로 감쌌다. 아일라는 고개를 홱 돌리고 사과를 했다.

"미안해, 너도 같은 방이었지. 그건 그렇고 여기에 헤드릭 없어?"

"아, 저야말로 보기 흉한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형님이라면 어제부터 방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님이 돌아오신 줄 알고 이렇게 나온 것이었는데…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레오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샤워실로 들어가더니, 하얀 가운을 입고 나왔다.

가운을 입었더라도 가슴팍이 보이고, 조금 짧아서 맨다리가 보이기는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보다 너 여자도 아니면서 왜 상체를 가려? 보통 밑을 가리지 않나?"

아일라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보여주기 싫은 흉터라도 있나?

"아… 너무 갑자기 놀라서 그랬나봅니다…"

"그래? 어쨌든 헤드릭이 언제 돌아올지는 너도 모른다는 소리지?"

"네, 저도 자세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애초에 저에게 그런 것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헤드릭이 없으면… 뭐, 너도 괜찮아.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셔주세요."

레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일라는 소파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자 냄새가 엄청나게 나는구나…"

호르몬 냄새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애런과 지낼 때는 못 맡았던 냄새가 났다. 헤드릭의 냄새라고 생각을 하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으윽… 그냥 숨 쉬지 말까."

용사의 초월적인 신체 능력이라면 안 쉬어도 될 것만 같았다. 아니면 냄새를 맡지 않도록 입으로 숨을 쉴까?

아니, 그건 또 입안에 헤드릭의 냄새가 배인다고 생각하니 더 싫었다.

"조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평범한 체육복을 입고 나온 레오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일라는 자신이 잘못한 일인데도 고개를 숙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손사래를 쳤다.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그러지 마."

"네, 그런데 아일라 님이 헤드릭 형님과 하실 얘기가 있으십니까? 형님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대화도 하기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 그건 맞지. 헤드릭 싫어. 생각해보니까 헤드릭 말고 너를 찾아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야."

헤드릭 말고도 오르도 왕국을 잘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하며 아일라는 혀를 찼다.

"뭐, 할 얘기라는 게…"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오르도 왕국이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도 되는 걸까? 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런이 말하기를 오르도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마왕이 꾸민 일이라고 하였으니 레오는 모를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숨기는 편이 좋은 일인 것 같으니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얘기라는 게…?"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저에게 말씀하시는 건 곤란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형님이 오신다면 아일라 님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야. 내가 착각을 했던 모양이니 굳이 안 알려줘도 돼. 나는 이만 가볼게."

아일라가 돌아가기 위해서 일어나니 레오도 따라서 일어났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게 한 것도 미안했기에 말했다.

"마중은 괜찮으니까 그냥 앉아있어."

"하하… 그래도 문이 부서져버렸으니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용사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난 문은 누가 봐도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괜찮습니다."

*

우웅­.

애런이 가진 수정 구슬이 빛이 나며, 아일라가 가진 수정 구슬과 연결이 되었다.

콰아앙­!! 구슬에 아일라의 모습은 비추어지고 있지만, 근처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때문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일라가 입 모양으로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화면이 몇 번 크게 흔들리고 근처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사라졌다.

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보니 악마의 아이를 정화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낮에 연락하는 건 드문데… 웬일이래?"

아일라에게 연락은 주기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오늘 한 이유는 모노크롬에 잠입하기 전에 그쪽 상황은 어떤지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악마의 아이 정화 중이었어?"

"응, 갑자기 많이 나오네. 하루에 백 명이 넘게 악마의 아이로 변하는 것 같아."

"백 명씩이나?"

"백 명이 아니라 이백 명도 되겠어. 거기다가 평상시보다 세기도 해서,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누가 일부러 만들어낸 건 아닌가 싶다니까?"

애런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셀러스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악마에게 실험을 그만두라고 했고, 이단심문관이 되어서 다시 갔을 때는 전에 실험했던 것들만 남아있었고, 실험을 계속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럼 모노크롬에 있는 성기사들도 바쁘겠네?"

"그렇지 뭐. 일은 대부분 내가 하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아일라는 투덜거리면서 뒤에서 뛰어오던 악마의 아이를 베어내었고, 목의 단면에서 후두둑 떨어진 피를 뒤집어썼다.

"알겠어.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하자."

"만나서? 모노크롬에 들어오게?"

"응, 이제 이자벨라 님의 흔적을 찾지 않은 곳은 모노크롬이랑 대성당만 남았거든."

"알겠어, 빨리 정리해놓을게!"

아일라의 밝은 대답과 함께 콰가가가강­!!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애런은 피식 웃으면서 연락을 끝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으신가 봐요."

"네, 1년 만에 보는 거니까요."

"1년…"

도로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신이 이자벨라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1년이 지났다.

헤어지기 전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다. 가브리엘에게 짓이겨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던 언니의 머리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저도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차갑고 어두운 지하실이 아닌 지상에서 느긋하게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7살 때부터 이어져 오던 도로시의 작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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