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가짜 성녀
* * *
"성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앙겔로크라티카 국민의 믿음이 약해졌어."
베네쿠스로 오고 나서 애런은 미호와 정령과 계약을 하였고, 도로시는 마법의 수련을 꾸준히 해서 전보다 성장하였다.
이제 앙겔로크라티카에 붙잡혀 고통을 받고 있을 이자벨라를 구하러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가기 위해서 카펠라에게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천사에 대한 믿음이 성녀 때문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본 교황청은 그 대타로 가짜 성녀를 내세워서 믿음을 사로 잡았다고 해."
"가짜 성녀?"
"응, 성녀에 버금가는 신성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네요. 그 정도라면 아마 사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어."
사도도 아니고, 성녀도 아닌데 누가 그 정도의 신성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일까. 애런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성 마법은 애런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믿음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기에 접근성은 좋다.
하지만 접근성이 좋은 만큼 마법의 위력은 다른 것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애초에 신성 마법이 남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천사들이 자신에게 믿음이 생기기 위해 일으켜주는 기적인 만큼 살상보다는 치료, 신성함, 방어 위주의 마법인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신성 마법을 다른 마법의 위력 이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천사들에게 힘을 부여받은 사도나 성녀, 용사가 아닌 이상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신앙심이 깊은 고위 성직자인 건 아닐까요?"
얘기를 듣고 있던 도로시가 물었다. 카펠라는 고개를 저으며 마법으로 푸른 화면을 만들어냈다.
화면에는 긴 밤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수녀복을 입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린 여성이 두 손을 모아서 기도를 하는 것이 비쳤다.
그리고 주변에는 작은 천사들이 내려와서 축복하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고위 성직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보이는 대로 나이가 적어."
"카펠라, 너처럼 늙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어?"
"없을 거예요. 적어도 난 신앙심이 깊다고 늙지 않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그래. 생각하고 있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가서 확인할게."
애런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앙겔로크라티카의 현황은 대충 파악했다. 천사에 대한 믿음을 퍼뜨려야 할 놈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믿음을 잃게 생겨서 조급해하는 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그놈들이 저지르고 있을 짓, 이자벨라에게 고문을 하는 것은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고 화가 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확신할 수 있다. 이자벨라는 1년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고문을 당하고, 상상 이상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악마 같은 광신도들은 살려둘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웃었다가 정색했다가 감정 변화가 큰 녀석이로고…"
"사춘기 소년이라서 그래."
"이미 다 지나가지 않았느냐. 카펠라, 현재 앙겔로크라티카에 있는 사도는 파악했느냐?"
미호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자연스럽게 애런의 등에 매달리면서 물었다.
"확인한 바로는 제1, 3, 4 사도가 있어."
"가브리엘과 교황이고 마지막은 이단심문관이겠군."
"확인한 녀석들만이야. 더 있을지도 모르니 방심하지는 말고."
"네가 와줬으면 걱정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카펠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베네쿠스의 대마법사인 카펠라가 나서게 된다면 그건 나라 간의 분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도와주지는 못 한다고 한다.
가장 큰 전력인 카펠라가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로시, 그 모습 그대로 갈 생각은 아니었지?"
"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당연히 있지. 너는 지하실에 갇혀 지내느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하지만, 네 쌍둥이 언니인 이자벨라는 그러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자벨라와 똑같이 생긴 너는 너무 눈에 띄어."
카펠라가 영창을 하고 도로시에게 손을 대자 모습이 천천히 변해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여성이 되었다.
눈에 띄던 은발은 애런과 비슷한 흑발이 되었고, 키도 조금 작아진 느낌이었다.
도로시는 변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네요. 체형도 조금 바뀌었고 그것 때문에 시야도 달라졌어요… 마치 타인의 몸에 들어온 느낌이네요."
"그 상태로 지내다 보면 적응이 될 거야. 그래도 네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제대로 활용하도록 해."
"네, 알겠어요."
"네 언니를 구했으면 좋겠네."
카펠라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이제 가보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
"미호, 마나는 충분해?"
"음… 충분하다."
미호는 꼬리 9개를 펼쳐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애런은 미호에개 로브를 둘러주며, 후드까지 푹 덮어쓰게 해서 귀를 가렸다.
"앙겔로크라티카에서는 로브 벗지 마. 네 모습은 눈에 띄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
"알겠다."
"거기 가서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 모르니까 지금 미리 자둬."
"확실히 미리 충분히 자두는 편이 나을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며 미호는 애런의 어깨에 기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도로시는 피식 웃었다.
"애런 님, 언제부터 미호 님이랑 그런 부모자식같은 사이가 되신 건가요?"
"네? 그렇게 보였나요?"
"네, 얌전하게 있으니까 미호 님도 꽤 귀엽네요. 얌전히만 있으면요… 쓸데없는 짓만 안 한다면요."
도로시는 알몸으로 애런의 옆에 누워있던 것을 떠올리며 얇게 뜬 눈으로 자고 있는 미호를 흘겨봤다.
카펠라는 그러려니 해도 미호까지 그럴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그걸 봤을 때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 으허?!"
"뭐야,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냐?"
"아니,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착각인가?"
미호는 자다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가,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베네쿠스부터 출발했던 기차가 어느새 앙겔로크라티카에 도착했다.
애런이 기차를 타고 이곳에 오는 것은 벌써 세 번째인데, 이때까지 왔을 때와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 사람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이 느껴지네요."
기차에서 내린 도로시가 사람들을 살펴보고 말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네, 사람들의 눈빛이나 느껴지는 신성력 같은 거로 알 수 있어요. 애런 님도 금방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요?"
"제가 알려드릴 수도 있어요!"
도로시는 애런의 등에 업혀있는 미호의 얼굴을 가리켰다.
"보세요. 미호 님의 이 흐리멍덩한 눈, 반쯤 벌려진 입. 흔히 믿음이 부족한 자들의 모습이네요."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은 맞다만… 이건 자다 일어나서 그런 것이니라…"
"맞추기는 맞췄네요."
그렇게 말하고 애런은 거리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성직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성 마법을 보여주며 신앙심을 돋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꼴사납네."
[동감이다.]
쇼를 도와주는 천사나, 구질구질하게 거리에 나와서 저러고 있는 성직자를 보니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애런 님, 저기는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있을까요?"
광장 쪽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가득 모여있었다.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
그곳에는 십자가에 악마의 아이가 묶여있었고,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저건… 저건 뭘 하는 걸까요?"
도로시는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폭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마왕이 될 수 있는 악마의 아이지만, 아직은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정화의 불을 이용할 텐데, 저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자신들의 감정을 담아 더 고통을 주기 위해서 돌로 때려죽이고 있는 꼴이라니. 거기다가 마치 구경거리인 것처럼 사람들 앞에 내걸어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단 심판이지."
미호가 말했다.
"다만, 그 목적은 이단 심판이 아닌 다른 것에 있는 것이겠군.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통합시키려는 것이겠지."
"공동의 적이요?"
"그래, 신앙심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많이 생겨나지. 그러니 사람들에게 악마의 아이라는 두려운 것을 보여주고, 천사의 비호를 받은 자신들이 심판하여 신앙심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천사님의 말씀에 반하는 행동이에요."
도로시는 입을 꾹 다물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과연 이렇게 신앙심을 만들어내는 것이 옳단 말인가.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죽이기 위해서 천사를 믿는 것이 천사가 바라는 것일까.
천사의 말을 곡해하고 포교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성녀인 자신이 바로잡아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도로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라즈니 성녀님이다…!"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러 오셨어."
"아아… 어찌 저리 신성하실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애런에게도 들렸고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밤색 머리의 가짜 성녀, 라즈니가 보였다.
그녀의 곁에는 호위를 하는 성기사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이단심문관도 동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악마의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사,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성녀님!!"
돌에 맞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악마의 아이가 울면서 외쳤다.
라즈니는 고개를 들어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악마의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악마 주제에 사람 흉내를 꽤 잘 내네요. 순수한 사람들을 속여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일까요?"
"무슨 소리예요! 저는 악마가 아니고 사람이에요!"
"사람이라면… 악마만을 불태우는 정회의 불에 타지 않겠죠."
거짓이다. 정화의 불은 악마만 태우는 것이 아닌 사람도 불태우는 불이다.
저 가짜 성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어이가 없는 녀석이네."
"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다니… 이건 악마가 하는 행동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도로시는 자신을 성녀라 칭하면서도 그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라즈니를 보고 이를 갈았다.
"전능하신 천사님, 제 앞에 있는 자가 악마의 아이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불을 내려주시옵소서. 인간이라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시고, 악마라면 몸을 태워 정화하여 주소서."
라즈니의 기도가 마법으로 확대되어 광장에 울려 퍼졌다.
화륵! 곧 악마의 아이의 몸에 불이 붙더니, 활활 타오르며 몸을 녹이고, 태웠다.
"아아… 역시 악마였습니다. 감히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려 들다니… 역시 악마처럼 추악하고 더러운 수법을 쓰는군요."
사람들은 라즈니의 말을 듣고 이미 불타 죽어가고 있는 악마의 아이를 향해 돌을 던졌다.
사람들을 속이는 가짜 성녀와 그에 속아 넘어가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앙겔로크라티카의 썩었던 상류의 물이 하류의 물마저 썩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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