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6화 (26/92)

〈 26화 〉 수련

* * *

“그러면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자벨라가 용사인 아일라의 수련을 도와달라며 가브리엘에게 부탁해서 성사된 대련.

텅 빈 운동장에는 아일라와 가브리엘만이 서 있다. 아일라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지만 가브리엘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쾅!!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것은 아일라다. 용사가 되고 신체 능력이 강화된 아일라의 걸음은 운동장의 땅바닥에 깊게 파인 발자국을 남기며 땅을 흔들어 놓는다. 발로 찬 흙이 날아가기도 전에 가브리엘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가브리엘은 그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아일라가 휘두른 검을 발은 움직이지 않고 상체만을 숙여서 피한다.

후웅!! 아일라가 그저 휘두르기만 했을 뿐인 검은 풍압만으로 땅을 베었다. 아일라는 자신이 휘둘렀지만, 생각 이상의 위력에 눈이 커졌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다.

죽는다. 가브리엘이 주먹을 쥐기만 했을 뿐인데 생명의 위험을 눈치챈 아일라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가브리엘의 팔을 걷어차고 그 상태로 빙글 돌아서 머리를 노린다.

“훌륭합니다.”

가브리엘은 가볍게 발을 한 손으로 막으며 살짝이지만, 몸이 밀려난다. 그리고 아직 공격을 하지도 않았는데 새어 나오는 살기만으로 어떤 공격을 가할지 파악하고 대처한 아일라에게 솔직하게 감탄한다.

아일라의 애런과 칼싸움을 통해 길러진 상대를 보는 시력. 애런과의 칼싸움은 격하지 않았다. 항상 서로의 다음 수를 미리 방어하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수읽기 싸움에서 이기는 쪽만이 공격이 가능했다.

수읽기 싸움으로는 애런에게 이기지 못했기에 아일라는 상대 근육의 움직임, 시선, 숨을 쉬는 것으로 근거를 가지고 다음에 어떤 공격이 올 것인지 예상했다. 그리고 방금, 가브리엘이 주먹을 쥐는 행동은 어떤 공격일지 예상이 되지 않았지만, 그저 위험하다는 것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이자벨라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아는 성기사 중에 가장 강하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 악마의 아이나 애런보다도 훨씬 강했다.

처음 만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벽에 아일라는 더욱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에 참으려고 해도 새어 나오는 흥분에 웃음이 나왔다.

“viwolu taia lua.”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쓰려는 아일라는 마법의 영창을 한다.

화륵­! 아일라의 등 뒤에서 파이어볼이 생겨났다. 하나, 둘, 셋…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새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일제히 가브리엘을 향해 날아간다.

콰아앙!! 운동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강한 후폭풍이 분다. 옆에서 관전하고 있던 이자벨라는 한쪽 팔로는 얼굴을 가리며 남은 팔로는 옆에 있는 나무를 잡아서 날아가지 않도록 버텼다.

“이래도 안 움직여?”

폭발이 일어난 곳에는 몸에 빛을 두른 가브리엘이 멀쩡하게 서 있었고 여전히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

가브리엘은 팔만을 움직여서 공기를 주먹으로 친다.

투웅!!! 공기가 진동하며 운동장을 휩쓸며 보이지 않는 공격이 날아간다. 마법은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단순하게 몸에서 마나를 방출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만큼의 엄청난 위력이었다.

아일라는 피하려고 하면 피할 수 있었지만, 왠지 저 공격을 막아보고 싶다는 오기가 들었다.

“천사 님, 강한 힘을.”

이제는 익숙해진 전투에 사용하기 위한 짧은 기도와 온몸의 마나를 검에 집중시킨다. 푸른 빛과 하얀빛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며 일렁인다. 그리고 공격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똑바로 휘두르자 보이지 않던 공격을 베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용사님을 너무 무시한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경험이 없는 용사라 움직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마저 막아내는 아일라를 보니 저 나이에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강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제대로 상대한다. 봐주면서 해서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확실하게 죽음의 직전까지 몰아서 극한의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이제는 힘 조절을 하지 않겠습니다. 용사님이라면 죽지 않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브리엘의 분위기가 바뀌며 몸에 두른 빛이 강해진다.

분명 신성한 기운이다. 그러나 아일라에게는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자신을 정말로 죽이려는 듯한 살의에 몸을 떨었다. 두렵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가브리엘이 진심을 내게 한 자신이 자랑스러워 떨리는 몸으로 자세를 잡는다.

한순간 가브리엘이 사라진다. 그리고 등에 강한 충격이 가해져 몸이 공중에 붕 뜬다. 아일라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뒤로 이동한 가브리엘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 보려 하지만 그것조차도 힘들다.

‘그렇다면 눈으로 좇는 것을 포기할 뿐이야.’

아일라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가브리엘의 모습으로 어디에 나타날지를 예상했다. 그렇게 하니 다른 풍경에서 찍은 사진을 빠르게 넘기며 보는 것 같았다.

“제 움직임에 익숙해지셨습니까?”

잘했다는 듯이 박수를 치는 가브리엘. 그리고 그다음으로 본 사진은 코앞까지 다가온 주먹이었다.

퍼억!! 얼굴만큼은 상처가 나기 싫었던 아일라는 겨우 팔로 주먹을 받아내지만 이후 추가로 가해지는 충격파에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검을 놓쳐버렸다.

“검이 없으셔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아일라는 가브리엘이 그랬던 것처럼 주먹에 마나를 담고 휘두른다. 사람을 죽이기에도 충분했던 가브리엘보다는 약했지만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성장하는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가브리엘은 날아오는 주먹을 모두 쳐낸다.

“viive norr.”

신성 마법에 더해 더욱더 신체를 강화한다. 너무 집중한 탓에 코피가 나지만 상관없다. 이제 가브리엘의 움직임도 단편적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다. 몸도 강화되어서 생각대로 움직여진다.

“좋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까먹고 가브리엘과의 난타전에만 집중한다. 슬슬 적응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니 가브리엘은 새로운 공격을 한다.

순백의 날개 2장을 펼치더니 칼날처럼 날카로운 깃털들이 아일라에게 날아온다. 손으로 쳐내기에는 수가 많다.

애초에 가브리엘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벅차기 때문에 깃털을 막기 위해 마법을 영창 하려고 했지만, 말하는 속도가 너무나도 느렸다.

한껏 물이 오른 집중력과 마법으로 강화된 신체에 비해서 마법의 발동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너무 느린 것이 문제였다.

파바박!! 깃털이 팔에 꽂힌다. 가브리엘의 공격을 막느라 깃털은 막지 못했고 깃털이 아일라의 몸에 박히며 공방의 균형은 깨졌다. 얼굴을 치지 않는 가브리엘의 작은 배려 덕에 배에 주먹이 꽂히며 아일라는 정신을 잃었다.

*

벨라는 애런의 말에 놀라서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재떨이에 넣어놓고는 애런의 어깨를 똑바로 바라본다.

“허… 진짜로 역십자가의 흉터가 있잖아.”

악마의 아이임을 나타내는 흉터. 어떻게 봐도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애런이 왜 무법지대에서 돌아다니는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이런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너 그거 괜찮은 거 맞냐? 마왕이 부활하는 거 아니야?”

“네, 몸에 마기가 흐르는 것만 빼면 괜찮아요.”

“그게 괜찮은 건가?”

애런은 벨라에게 수련을 도와달라고 하기에 앞서 자신이 악마의 아이라는 것을 밝혔다. 벨라를 신뢰해서 알린 것은 아니다. 그저 수련을 하다가 마기를 느낀 벨라가 자신을 죽일까 봐, 그게 걱정되어서 미리 말한 것이다.

“이건 뭐…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네.”

마왕이 부활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는 일이라고 모든 나라에서 동의를 했기에 앙겔로크라티카에 자식들을 보내서 악마의 아이가 생기는 것을 감시했다.

벨라도 어렸을 때 버려졌지만 마왕이 부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앙겔로크라티카까지 걸어가서 모노크롬에 들어갔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마왕이라는 위험한 존재에 대해서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들었으니 지금 애런을 죽여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아! 진짜.”

애런을 죽이면 자신의 복수가 언제까지 미뤄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버려 둬도 안 될 것 같다. 이 두 가지 생각이 엉키며 머리가 복잡해져서 머리를 긁는다.

“그래, 결정했다. 복수하고 오면 죽이자.”

“네?”

“씨발.”

생각으로만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답지 않은 실수를 한 벨라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퍽퍽 치면서 깊은 한숨을 쉰다.

‘미친년아… 그걸 말하면 도망칠 게 뻔하잖아.’

[저년이 너를 죽여버린다는데 어떡할 거냐.]

‘그러면 도망쳐야지. 선불로 돈을 주기는 했다만 금화 20닢만 있으면 1000닢은 줄 수 있어.’

애런은 괜히 말했다고 생각하며 후회했다. 다른 사람들의 마왕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하아… 됐다. 안 죽일 테니까, 내가 맡긴 의뢰나 제대로 해줘.”

“진짜요?”

“그래, 진짜야.”

“어떻게 믿죠?”

“못 믿으면 지금 여기서 죽이는 거고.”

“믿을게요.”

벨라의 협박에 애런은 하는 수 없이 믿는다고 말했지만 못 믿는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내가 도망쳐서 화가 난 벨라가 도로시를 암살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버리면? 그리고 애런을 죽이기 위해서 쫓아온다면? 그러면 최악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벨라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고 못 믿겠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리부터 바꿔볼까.”

벨라가 한숨을 쉬면서 의자에서 일어난다.

“자리요?”

“그래, 설마 여기서 싸울 생각이었냐?”

“그건 아닌데요.”

“성 지하에 시설이 있으니까 따라와.”

벨라의 성 지하에 내려가니 축구장 만한 크기의 시설이 나온다. 푸른색의 벽으로 사방이 막혀있고 바닥에는 격자 무늬가 있다.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벽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수련하기에는 딱 적당한 곳이네요.”

“수련? 우리 애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벨라는 몸을 이리저리 쭉쭉 펴서 풀며 말했다.

“가끔 짜증 나는 녀석들이 생기면 여기에 가둬놓고 사자한테 사냥당하게 내버려 두거든. 장애물이 없으니까 술래잡기나 하는 거지.”

“악취미네요.”

“나랑 너도 술래잡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사자고 술래겠지.”

애런은 무시당해서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벨라의 말대로 될 것 같아서 말을 뭐라 말을 하지는 않고 어깨에 있는 여우를 내려놓았다. 대신 공격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먹여줘야겠다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강자에게 말도 못 하는 꼴이라니 한심하군.]

‘시끄러워. 괜히 도발했다가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고 찡찡댈 거면서.’

[네가 언제부터 내 신경을 써 줬다는 거지? 그냥 네가 죽기 싫은 거잖냐.]

‘아, 이 새끼 자존심 세네. 그럼 뭐, 도발이라도 해?’

[할 수 있으면 해봐라. 물론 네 목숨이 아까워서 못 하겠지만.]

벨라에게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있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는데, 속에서 마왕마저 속을 긁어대니 짜증이 솟구쳤다.

“혹시 그 사자가 방에서 봤던 사자인가요?”

“맞아, 내가 기르는 녀석들.”

“게네들 뒤룩뒤룩 살찐 게 돼지 같던데 사냥이나 술래잡기는 가능한가요?”

“지금 도발하는 거니? 네가 나를?”

손가락으로 애런과 자신을 몇 번 가리키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애런의 도발때문에 벨라가 봐주면서 상대해 줄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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