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5살, 사춘기
* * *
낮은 덥지만, 밤에 부는 바람은 차가워서 맞고 있으니 볼이 빨갛게 된다.
아니, 울어서 그런 건가? 모르겠다.
“...”
아일라는 벤치에 앉아서 그저 멍하니 밤하늘에 놓인 반짝이는 은하수를 쳐다본다. 평소에는 본 적 없는데 밤 하늘은 참 이쁘다고 생각한다.
애런과 이자벨라가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자신이 방해였을 거라 생각이 들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하아…”
이제는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오빠의 얼굴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치 없이 따라다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나? 아니면 나한테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라며 따져야 할까.
그렇게 되면 이제 오빠랑 성녀님이랑은 같이 돌아다니지 못 하는 걸까?
그렇게 되는 건 싫다…
오늘 하루 혼자 돌아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중 친한 사람은 없다.
친구야 만들면 되겠지만, 새로 친구를 만든다고 해서 오빠나 성녀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아아아아…”
그저 깊은 한숨만 푹푹 쉬어댈 뿐이다.
“검무의 아일라 님?”
그렇게 계속 한숨을 쉬고 있으니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건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헤드릭과 같은 회색 머리카락에 분위기도 비슷하지만 그렇게 살은 찌지 않은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다.
내가 말없이 그냥 쳐다보고 있자 잠깐 멍청하게 서 있다가 급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아, 아. 저는 레오 폰 오르도라고 합니다. 산책하고 있었는데 아일라 님이 한숨을 쉬고 계신 모습이 보이길래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습니다.”
“레오 폰 오르도? 헤드릭 동생이야?”
그 돼지 녀석하고는 다르게 멀쩡하게 생겨서 동생이라고 생각은 못 하겠지만.
“네, 헤드릭 폰 오르도는 제 형님이십니다.”
“그렇구나… 그 돼지 녀석이랑은 다르게 멀쩡하게 생겼구나.”
자신의 형을 욕해서 그런지 당황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다.
“제 형님이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됐어. 걔가 한 일 가지고 왜 네가 사과해.”
그 돼지 녀석이랑은 다르게 정상적인 애인 것 같다. 이런 동생이 있으면 좀 보고 본받았으면 좋겠다.
“혹시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응.”
레오는 조심스레 내 옆에 앉아서 곁눈질로 내 얼굴을 본다.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아… 그 눈물 자국이 있으셔서.”
“진짜?”
창피하게 무슨 일이람… 나는 급하게 손등으로 얼굴을 문댄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레오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안 좋은 일?”
이게 안 좋은 일인가? 오빠랑 성녀님이랑 사귀고 있다고 나에게 안 좋은 건… 그냥 같이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는 점? 그것 말고 나에게 피해는 없는데.
“안 좋은 일인 건지 잘 모르겠네. 오히려 축하해줘야 할 일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눈물을…”
“그러게.”
생각해보면 둘이 그런 사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랑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거기다 내가 방해였더라도 그건 말을 안 해준 둘의 잘못이지.
그렇겠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서 제3자인 레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이야기를 해줬다.
“흐음…”
레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턱을 만진다.
“아일라 님의 말씀대로 두 분이 교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응? 뭐가 달라?”
“제가 들으면서 생각하기로는 일단, 애런 님이 아일라 님에게서 도망치신 이유는… 아일라 님의 치료가 서툴러서 아팠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가?”
내가 조금 서툴기는 했는데. 그렇게 아팠나? 뭐, 땀을 좀 흘리기는 했었는데… 정말 아파서 도망친 거라면 내가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성녀님이 아일라 님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씀하신 것은 그저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으음… 그년, 아니 성녀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5년 동안 끊임없이 나를 놀려댄 여자니까.
“그리고 선물은… 제 추측일 뿐입니다만, 아일라 님이 화나신 것 같으니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선물을 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이렇게 듣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착각한 건가?
“깜짝 선물을 준비한 것이라면 아일라 님이 없을 때만 생기는 기회이기도 하니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 말이 되네.”
진짜 내 착각이었나..?
“선물 상자를 2개씩 들고 있던 이유는 각자의 동생에게 줄 선물을 하나씩 골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게 말이 된다. 그럼 나는 혼자서 착각해서 울고불고 난리 친 건가? 창피하게…
“그리고 우신 이유는.”
“응.”
“애런 님을 성녀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애런 님이 그 사실을 말 안 해줬다는 배신감 때문에 서운해서 우신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사이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형님과 그렇게 친하지 못한데 말입니다.”
응..?
“자기보다 머리 2개 정도는 더 큰 남성도 가차 없이 때려눕힌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 들었는데, 들었던 것과 다른 것 같습니다.”
“아으….”
너무 창피하다. 혼자 착각한 것도 모자라서 내가 운 이유가 오빠를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말을 안 해준 배신감 때문이라고? 거기다 이걸 남한테 듣고 알았다고? 거기다 헤드릭 녀석 이상한 소문이나 내고 있어.
얼굴에 열이 오른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귀까지 다 빨개졌을 것 같다.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형님과 다르게 입이 무겁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알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어, 응 그건 고마운데 너도 잊어주지 않을래?”
“잊으려고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뭔가 연하가 나를 달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창피하다.
“그리고 밤이 늦었습니다. 애런 님이 걱정하실 듯 하니 돌아가 보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응... 어쨌든 의견 고마워. 정말 내 착각이었을 것 같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너도 잘 들어가…”
아일라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터덜터덜 걸어서 방으로 돌아간다.
“형님이 푹 빠진 분이라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는데, 확실히 그럴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레오는 아일라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
아일라는 문을 여는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끼익…!
“아.”
하지만 평소에 그냥 열때는 아무 소리도 안 나던 문은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아일라?”
소리를 듣고 나온 애런을 보고 마치 못된 짓을 하다 걸린 것처럼 화들짝 몸을 떨며 놀란다.
“오빠…”
“너 말도 없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편지라도 써놓고 가면 안 돼? 밤늦게까지 안 들어와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 거야?”
난생 처음 듣는 애런의 화가 난듯한 목소리에 주눅들어 고개를 숙이는 아일라.
‘아니, 왜 내가 혼나고 있는거지?’
하지만 사춘기인 아일라는 자신을 걱정해 화를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쓴소리하는 애런에게 반항을 하고 싶다.
“내가 애도 아니고. 혼자 나갔다가 좀 늦게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 왜 화를 내?”
“걱정해서 하는 소리잖아.”
“하…”
자기가 걱정해줄 때는 도망쳐놓고… 기가 막혀 한숨을 쉬는 아일라.
“나도 오빠 걱정해서 팔 치료해준다고 했는데, 오빠는 어떻게 했더라?”
아일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성녀님! 이러면서 나 뿌리치고 도망쳐놓고, 오빠가 걱정해서 하는 소리는 잠자코 들으라는 거야?”
“그건…”
그 말에 당황하는 애런. 아일라는 격양된 목소리로 이제껏 서운했던 것들을 말한다.
“거기다 귀여운 오징어는 뭔데? 너는 여동생한테 오징어라고 하고 싶어?! 그리고 그거, 네 눈이 삔 거거든? 모노크롬에 나 좋아하는 팬클럽도 있는데 걔들한테 물어보면 다 나 예쁘다고 할걸?”
“...”
이제껏 애런을 오빠라고 부르던 아일라가 너라고 부른 것에 충격을 받은 애런은 넋을 잃은 표정이다.
“그리고 마법 못 쓴다고 조금 놀렸다고 악마의 아이가 돼버린다고? 내 앞에서 그딴소리가 나와? 악마의 아이가 돼서 성기사들한테 죽을 거야?”
왈칵 눈물을 쏟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죽어서 혼자 남을 내 생각은 안 해..? 이 나쁜 놈아… 씨발… 개새끼야… 존나 싫어…”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욕을 어색하게 입 밖으로 내뱉는다. 자신이 욕을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마음이 더 아픈 것인가.
봇물 터진 듯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 머리를 애런의 가슴에 박은 채 주먹을 쥐고 몸을 힘없이 때린다.
“미안해.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
가슴을 때리는 아일라를 끌어안자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일라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 없어서 좋다고 성녀랑 둘이서 놀러 갔으면서… 둘이 취향 같다고… 성녀한테 선물 받고 웃으면서 돌아갔으면서…”
레오에게 들었던 말로 그게 어떤 선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애런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다. 이자벨라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직접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건… 깜짝 선물은 네가 없을 때 선물을 사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거고. 성녀님이랑 너한테 줄 선물을 고르다가 취향이 비슷하다고 했던 거야.”
울어서 빨개진 아일라의 눈이 커진다. 정말 자신을 위해서 샀던 선물이었던 것이다.
“아일라?”
애런의 품속에 있는 아일라는 때리던 팔을 내려 애런을 껴안는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욕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흐느끼는 소리뿐이다.
“흐윽… 아으…”
애런은 아일라가 진정할 때까지 말없이 안아줬다.
조금 진정이 된 아일라는 코를 훌쩍거리며 입을 뗀다.
“나도… 나도 미안해…”
….
“진정됐어?”
“응…”
실컷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보여주기 싫은 아일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한다.
“선물 뜯어볼래?”
“응…”
애런은 푸른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되어있는 하얀 상자를 들고 온다.
“이쪽이 내가 고른 선물이고, 이 쪽이 성녀님이 고른 선물이야. 뭐, 돈은 성녀님이 다 냈지만.”
“응…”
조심스레 이자벨라가 준비한 선물을 열어본다. 안에 편지가 들어있어 그것부터 꺼내 읽어본다.
[친애하는 아일라 님에게.
일단 편지를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두서없이 쓰는 것 죄송해요.
아일라 님을 놀리는데 재미가 들려서 그만 애런 님을 이용해서 친 장난이 선을 넘어버렸네요. 죄송해요.
… 오늘 아일라 님이 없으니 평소와 달리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아일라 님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별 건 아니지만 사과의 의미로 자그마한 선물을 보내요. 아일라 님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는데 마음에 들면 좋겠어요.
내일은 제가 선물한 머리핀을 꽂고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일라 님의 친구 이자벨라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러게 왜 장난을 쳐가지고…”
아일라는 편지를 읽으니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아서 괜히 투덜거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 있는 푸른색의 별 모양의 머리핀을 꺼내서 머리에 꽂아본다.
거울로 보니 검은 머리카락은 밤하늘을, 푸른 별 모양의 머리핀은 은하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성녀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져서 피식 웃는다.
“오빠, 어울려?”
“응, 잘 어울려.”
그다음으로는 애런이 준비한 선물도 열어본다.
푸른 빛을 띠는 보석이 박힌 반지가 들어있다.
‘어느 손가락에 끼지..?’
반지를 낄 수 있는 손가락은 10개인데 반지는 하나다. 어디에 껴야할지 몰라 잠깐 반지와 손가락을 번갈아 가며 보는 아일라.
그러다가 엄마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던 것을 떠올리고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다.
애런은 아일라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는 것을 보고 놀라 살짝 눈이 커진다.
반지는 아일라의 손가락보다 조금 큰 줄 알았는데 반지가 스스로 줄어들며 손가락에 꼭 맞도록 조절이 되었다.
그리고 반지와 손가락이 한 몸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어?”
이상한 느낌에 반지를 빼보려고 했으나 몸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 어? 오빠, 이거 안 빠지는데?”
“반지가 왜 안 빠져?”
애런이 아일라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보려고 했으나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네. 그냥 계속 끼고 있어야지.”
“왼손 약지인데? 계속 끼고 있어도 되겠어?”
“응? 뭐 문제라도 있어?”
애런의 질문에 아일라는 순수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니야… 나중에 반지 뺄 방법이나 찾아보자.”
“응.”
아일라는 반지와 머리핀을 보면서 히히 소리 내서 웃는다.
“고마워 오빠.”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오빠랑 성녀님이 나 생각하면서 고른 거잖아?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지.”
배시시 웃으며 침대에 발라당 눕는 아일라.
“오빠, 화해한 의미로 오랜만에 같이 자도 돼?”
“이제는 10살 때랑 다르게 둘이 눕기에는 침대가 좁을 텐데.”
“안 돼?”
침대에서 턱을 괴고 애런을 쳐다본다.
“네가 괜찮으면 그러든가.”
"헤헤."
애런이 침대에 눕자 바짝 달라붙는 아일라.
“조금 더운데.”
“내가 마법 걸어줄게.”
아일라의 마법 덕에 곧 딱 좋을 정도로 시원해진다. 1인용 침대라 좁아서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