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014. 두 마리의 자라 (3)
* * *
인원 탓에 택시는 두 대로 나뉘었다.
앞서 나가는 검은 차량에는 한월과 갈룸이 탔고, 그 뒤를 쫓는 하얀 차량에 마베 꼬마와 재인이 탔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각 차량의 휴대폰끼리 서로 통화를 연결해놓았다.앞 차량에서 한월의 휴대폰이, 뒤 차량에서 재인의 휴대폰이 그들을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앞뒤 택시기사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손님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차량은 조금 전에 서인천 IC를 가로질렀다.
한월은 통화 상태는 유지한 채로 문자 수신함을 들락날락거렸다.
아까 전에 무뢰한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메시지를 다시 읽어 내렸다.
관리국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제갈랑의 자택에서 갈룸의 확보에 실패했으나 그 이후 관리국 내부에서 수상한 정황이 파악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 수상한 정황이란───
거기까지 설명하는 시점에서 메시지의 전송이 끊겼다.
“마베 꼬마, 아저씨한테는 아직 연락이 안돼?”
유감스럽게도.
한월은 머리를 감싸 맸다.
그들은 현재 아공간의 위치를 탐색하기 위해 관리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뢰한의 말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지금의 관리국이 한월을 위한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도움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월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관리국 내부의 혼란까지는 차후에 해결할 수 있겠지. 진정한 문제는 시간이다.
나진이 갈룸을 죽이는 방식을 택하려 한 탓에 한월은 인천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재인이 혼자서 찾아올 수 있다고 했지만 걱정을 견딜 수가 없어 아예 발걸음을 반대로 해 중간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갈룸은 한월에게 되돌아왔지만 한월에게 협력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마베 꼬마가 갈룸을 기절시켜 놓은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물론, 갈룸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설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월은 설득에 성공할 자신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요를 벌이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후에,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한월은 갈룸에게 살아갈 것을 부탁해야 했다.
앞으로 4시간 10분.
30분 안에 종로에 도착하고 다시 1시간 안에 아공간의 위치를 파악한다.
신사는 많은 피를 원하므로 분명 인구가 많은 서울 안에 아공간을 축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2시간가량을 대기했다가 그 너머로 신사를 돌려보내면 된다.
하지만 한월아. 아공간이 더 먼 곳에 있으면? 가령, 부산에 있으면? 시간에 맞출 수 있니?
수화기 너머로 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 지역에 도움을 요구할 거야.”
요구가 거절당하면?
재인 양, 그만하게.
마르그리트, 이건 방해가 아니란다. 나는 한월이의 의견을 물으려는 거야.
재인은 약간의 호흡과 함께 다시 말했다.
한월아, 난관이 많다는 건 알아둬야 해. 가령, 마베 꼬마는 현재 바니걸의 위치를 탐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바니걸이 어쩌면 현재 죽은 상태일지도 몰라. 그러면 일은 더 복잡해지겠지. 신사의 발을 묶어놓은 채 바니걸이 다시 살아나길 기다려야 하니까. 어쩌면 그런 상황에 아공간의 위치가 아주 먼 곳에 있다는 가능성마저 겹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너를 믿어.
재인은 말했다.
왜냐하면 너는 믿어줄 이유도, 필요도…… 타당성도 없는 내 이야기를 믿어줬으니까. 네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으니까. 네가 뭘 어떻게 하고 싶다고 느끼더라도 내가 곁에 있어줄게.
한월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월은 스피커 모드를 켜놓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경도된 한월은 할 말을 잃었다.
이어서 마베 꼬마가 ‘앗, 이쪽도 믿고 있소! 걱정 마시오!’ 같은 얘기를 했지만 그것마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였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투두두두두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가 뻗쳐왔다.
지나치게 크게.
택시기사가 당황 섞인 신음을 토하고 핸들을 쥐락펴락했다.
그런데도 프로펠러 소리는 멎지 않았다. 한월이 살며시 창문을 열자, 새카맣게 도색된 헬리콥터가 그를 반겼다.
어둠처럼 칠해진 옆면 한 가운데에 ‘재갈을 물린 개’가 그려져 있었다.
한월 공.
“내가 나설게.”
무슨 소리요, 내가 갈 거요. 심지어는 공중이잖소.
“저쪽에서 내려올 거야. 갈룸을 데려가려고 할 테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한월 공은 거기 있는 것이 좋겠소. 갈룸이 언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고…….
“아무튼 너는 안 돼. 애초에 너는 바니걸을 조종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여러 지정능력자에 동시에 맞서는 게 불리해. 아무리 B등급이라지만 저쪽은 일단 둘이니까, 차라리 내가 빠르게 정리하고 오는 게.”
그렇지만 갈룸만 혼자 두는 것은 위험하오! 그리고 나는 이래 뵈도 A등급이오! B등급 둘 정도야 어렵지 않게── 꺄아악?!
“무슨 일이야?!”
한월이 다급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대답은 없고, 그저 무엇인가가 우당탕탕 움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마베 꼬마가 계속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멀리 떨어진 느낌과 함께 들려왔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나고서야 마베 꼬마는 들리는 말을 내뱉었다.
재인 양이오.
“재인이가 무슨?”
재인 양이 나갔단 말이오! 상의도 없이!
***
“재인 언니가 나왔어요!”
말하지 않아도 이쪽에서 알 수 있었다. 재인은 타고 있던 흰색 택시 바깥으로 나와 그 천장을 밟고 섰다.
조금의 위태로움도 느껴지지 않는, 기품이 가득한 자세로. 재인은 빗겨 매고 있던 에코백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 모습에 유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야?”
“표지가 검은색이잖아요!”
“검은색, 검은색, 그런데?”
“저거 올해 국방부 무기 구매 내역서 사본이에요!”
“그걸 왜 쟤가 갖고 있어?!”
“특별히 허가를 받아서!”
허가의 합법성을 따지기도 전에 재인의 주변에 M16 소총이 두 자루 떠올랐다.
각각의 총은 아무렇지도 않게 발포를 시작했다. 탄환은 위압이 뭉쳐진 덩어리였다.
그것들이 그대로 헬기의 측면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쟤는 대체 왜 저렇게 과감해?! 생각이 없대니?!”
“저 언니가 원래 좀─── 앗, 순수 위압탄이라면 다행이네요. 타력이 조정되거든요. 장갑만 뚫고 사람은 살려주겠죠?”
아무래도 둘이 알고 있는 재인이의 버전이 판이하게 다른 모양이었다.내가 아는 버전에서는 사람만 골라서 쏴 죽이는데.
그러나 기묘하게도 대부분의 탄환이 빗겨나갔다.
그것은 재인의 사격 실력이 떨어지는 탓이라기보다는 헬기가 조종되는 솜씨 덕분이었다.
랑의 명령을 받고 출동한 헬기 기사는 헬기를 모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신을 항공 장구로 둘둘 감싸 맨 비주얼도 예사롭지 않았으나 그것에 집중할 때는 아니었다.
한 탄창이 바닥나자 재인은 다시 쥐고 있던 사본을 뒤적거렸다.
뭘 하는가 가만히 내려다보았더니, 이윽고 탄창이 허공에서 다시 솟아났다.
생각보다는 작은 스케일이로군. 혹시나 싶어 나는 물었다.
“쟤 탱크 같은 것도 몰 수 있어?”
유는 짧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만드는 건 할 줄 알아요.”
상식적이지 못한 대답을 내놓은 유는 어쩌다가 헬기에 날아드는 탄환을 염동력으로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제가 묻고 싶네요. 어떻게 할까요?”
“누가 보기에도 저지하는 게 우선인데, 너 저기까지 염동력으로 어떻게 못하냐?”
“닿긴 하는데 저쪽이 위압을 두르고 있어서 효과적이질 못해요!”
유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부터 사방에 지휘봉을 휘둘러댔다.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원거리에 뭔가 날리는 능력이 없을뿐더러, 아마 재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넘어뜨리는 거라면 어떻게 안 될까?”
“노력 중이잖아요!”
그래, 계속 휘두르고 있었지.
번뜩 생각이 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근데 쟤 저기서 넘어뜨리면 도로에 떨어지잖아! 다치는 거 아냐?”
“다치겠죠! 그런데 괜찮아요. 국방부 보급품에 매트리스도 많으니까! 적정선에서 다칠 거예요.”
“그래도 속도를 감안하면 여기서 떨어뜨리는 건 너무 위험하겠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다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 위에서 떨어지면 다치는 걸 넘어서서 죽을 수도 있다
아마 매트리스를 적절하게 불러내지 못하면 정말로 죽을 것이다.
물론 재인은 줄곧 나를 모질게 대했고, 어느 정도의 벌을 받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죽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재인도 한월에게 있어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한월이 아닌 그 누구라도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그 바람 때문에 총알이 빗발치는 하늘에서 곡예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누구 하나가 내려서 어떻게 좀 하자!”
“하나로는 모자랄 것 같아요!”
유는 이를 바득 깨물었다.
“지금에 와서 밝히기 쪽팔리지만요, 오빠, 제가 저희 팀에서 제일 약해요.”
“지금 이 타이밍에 위로해주자니 좀 그렇지만, 나는 재인이하고 여기 있느니 너랑 있는 게 훨씬 낫다!”
“입만 살았어요!”
유가 웃음도 터뜨리지 못하고 그렇게 타박했다.
나는 말했다.
“좋아, 내가 내려갈게.”
“아뇨, 제가 가죠.”
“아니, 됐어. 다치지 않는 쪽이 내려가는 게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가능성이 높잖아. 넌 그냥 착지하는 것만 도와줘.”
“멋있는 척하지 말아요! 여자는 이런 상황 자체를 연출 안 하는 남자를 좋아해요!”
그러면서 유가 지휘봉을 들고 직접 뛰어내리려던 순간이었다.
돌연, 무엇인가가 우리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따라잡지도 못했다.
그러나 유가 무심결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나와는 달리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떡해요.”
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멍청이가 내려갔어요!”
“랑이? 자고 있었잖아!”
“어떡해, 어떡해요?”
나는 아래를 휙 내려다보았다. 세찬 바람과 함께 재인이 탄 차량이 조금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월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택시가 있었고, 검은 택시 위에 마찬가지로 무엇인가가 착지했다.
양팔이 건틀릿에 감싸인 랑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조종간 쪽으로 다가갔다.
“검은 차 쪽으로 내려가 주세요! 되돌아오게 만들어야 해요!”
조종사는 착용하고 있던 헤드셋을 빼냈다.
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흐트러뜨렸으나 말 자체는 분명히 들려왔다.
“본인이 바란 일입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어린애잖아요! 누군가가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게 해야 해요!”
“그러면 다시 내려가겠죠.”
“그쪽이 어떻게 확신해요? 저 아이가 없으면 제가 지시자에요. 제 옆에는 당신 주인의 언니가 있구요. 당장 고도를 낮춰요!”
“고도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씀 잘 하셨습니다. 큰 아가씨, 헬기 모는 법은 이제 전부 익히셨겠지요?”
흘러가는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던 유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종사는 조종간에서 손을 떼더니 그곳에 유를 앉혔다.
유는 당황스러워하고 있었으나, 헬기 조종하는 것을 당황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유는 그 조종사가 일어선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예요, 뭐 하시려고요?”
“제가 내려갑니다.”
“당신이 내려간다고요?”
“네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다.
“당신이 누군데요?”
조종사는 두터운 헬멧을 벗고, 그 안의 금발을 드러냈다.
“언니2입니다.”
직후, 언니2는 낙하산을 터뜨리며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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