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012. 두 번째 토끼 (6)
* * *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소. 무엇부터 듣고 싶소?”
정신지배를 역이용한 취조(?) 끝에 문간 너머로 돌아온 마베 꼬마는 먼저 그렇게 물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한월과 유는 서로를 돌아보다가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나쁜 소식을 먼저 들어야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더 기쁘다는 것이었다.
마베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럼 나쁜 소식부터” 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갈룸의 말은 사실이었소.”
한월이 인상을 구겼다.
“이들은 독일에서의 횡포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네 번째 형태를 소생시키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하오. 그러나 지난번 해킹을 통해 자신들과 관련된 자료를 모조리 획득했고, 이후 그 자료 안에서 네 번째 형태의 소생법과 그것을 막을 방도를 찾아냈다는군.”
“그리고 갈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그 막을 방도라는 게…….”
“세 개체를 모두 죽이는 것이지. 더는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한월은 머리를 감싸 맸다.
그러나 잠자코 듣고 있던 유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 되살아나는 텀은 어떻게 돼?”
“여덟 시간 정도. 부활 위치는 죽임당한 장소에서 그대로. 다만 한월 공과 유 양께서 이미 죽인 ‘신사’의 형태는 고도의 워프 능력이 있어서 그 위치를 사수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군.”
“즉, 여덟 시간이 지나면 그 신사를 다시 찾아내서 죽여야 한다는 거지?”
한월이 유를 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의 질문에는 세 개체를 모두 죽이는 갈룸의 방식대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한월이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마베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확히는 이제부터 6시간 정도일 것이오. 그자를 처치하고 이미 2시간 정도가 흘렀으니.” 하고 정정해주었다.
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니걸은 계속 우리에게 조종당하고 있지?”
“연기하는 게 아니라면. 또한 정신지배가 본래 내 능력이 아닌 고로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장담할 수 없소. 뭐, 묶어서 가둬놓는 것이야 간단하다만.”
“좋아. 그러면 이제 갈룸만 확보하면 돼. 그렇죠, 오빠?”
유의 말 그대로였다. 신사는 6시간 정도동안 죽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바니걸은 언제든 죽일 수 있다.
문제는 갈룸을 찾는 것인데, 이 부분은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6시간이나 남았다.
최근 비협조적으로 나서는 관리국이라고 해도 제대로 설명한다면 다른 지정능력자를 파견해 주겠지.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일 뿐 감정적인 호소가 되지는 못했다.
유는 사실 갈룸만 찾아내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갈룸을 죽여야 한다. 죽인다, 라는 어휘의 어감이 무색하게도 간단히 죽이는 것이다.
더욱이 당사자가 저항하지 않기에 그 과정은 마치 식사나 수면처럼 일상적일지도 모르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월은 입을 열었다.
“그게, 음…….”
“또 뭐예요.”
유 본인도 한월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억지로 그렇게 말을 끊어냈다.
유는 인상을 확 구겼다. 그녀라고 해서 갈룸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다. 그 아이가 겉으로는 고압적인 말투를 내뱉는다고는 해도 속내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을 안다.
또한 한월에게 들었기에 그 아이가 매일 밤마다 자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다.
게다가, 게다가…….
“결국 그 아이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갈룸이 누구도 속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는 알고 있다.
자신이 의심받으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파계종이고 나머지 모두는 인간이었다.자신이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사람들은 그녀를 압박해올 것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 압박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이었기에 갈룸은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두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고 비난받을 것임을 완벽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야기했다.
그것은 갈룸 스스로의 의지였다. 그녀는 정말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라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아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근거를 말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것을 말하려고 해도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저 파괴되는 것만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다짐했던 것은 아닐까.
만일 정말로 그랬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월은 그 파계종을 죽여야만 한다.
그 멍청한 파계종이 너무나 정직하게도, 어리석게도, 누구도 속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 파계종은 죽는다.
“내 생각이…… 이기적이라는 건 알아. 잘 알고 있어. 갈룸을…… 그 파계종을 동정할 필요는 없어. 그 아이가 자처한 길이고, 본인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래. 그 모든 사실이 괜찮다.
왜냐하면 한월은 사람들을 구해야 하니까. 그에게 A등급의 지정능력이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상 한월은 누군가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또한 설령 우연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힘이 주어진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한월에게 사실 정해진 운명 같은 게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꼭 일어서야만 하기에 일어서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버텨야만 하기에 버티는 것이 아니다.
일어설 수 있다면, 버틸 수 있다면, 고작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아마 그 누구라도 일어서서 버틸 것이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의 토대가 되어준다면.
그럴 수 있다.
그래, 이 길을 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해. 사람들을 살리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왜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길을 두고 억지를 부리는 걸까. 왜 망설이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되는 힘이 있는데도.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는대도 상관없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은.
“그럼 왜 울었던 거지?”
한월은 답을 얻고 싶었다.
왜 갈룸은 울고 있었지? 그것은 어쩌면 자신 혼자 모든 고통과 아픔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에 불과하지만, 만약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혹시라도 정말로 그랬다면?
그러면 지금의 한월은…… 모두의 불행을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몰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월 공.”
어느새, 마베 꼬마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한월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꼬마의 손은 너무나도 작았으나 양손을 썼을 때에도 한월의 손을 덮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따스함에 덮인 손 끝에서 목소리가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좋은 소식’을 말하지 않았소.”
마베 꼬마가 폴짝 뛰어 한월의 옷깃을 붙잡았다. 장난스럽게 끌어내려진 직후, 금색 눈동자가 한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동등한 높이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그것은 언젠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던 소녀에게 한월이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세상은 높이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네 번째 형태의 부활 조건이오.”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사가 어딘가에서 ‘아공간’을 만들고 있다는군.”
마베 꼬마는 다정하게 말했다.
“그자는 공간을 지배하는 파계종. 다른 어딘가에 있을 네 번째 형태를 자신만의 공간에 불러내어 좌표를 고정하고, 고정이 완료되면 네 번째 형태는 갈룸의 배를 가르고 나타난다. 이것이 조건이오.”
한월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베 꼬마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공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소. 터널 너머의 좌표를 알고 있는 신사는 이쪽에서 저 너머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오.
그런데 그 중요한 작업을 남겨놓고 축조를 담당하던 신사는 죽어버렸지. 물론 여섯 시간 뒤 되살아나 공사를 끝마칠 테지만.”
“그게 어디가 좋은 소식이라는 거야?”
유가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마베 꼬마는 다독이듯 양손을 휘저었다. 마베 꼬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신사는 이쪽에서 저 너머로 이동할 수 있는 상태’라오. 다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먼, 아마 우리와 아예 다른 차원일지도 모르는 어딘가에.
그런데, 막상 그 너머로 이동해버린 신사가 이곳의 좌표를 소실하고 아공간마저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되겠소?”
“그게, 무슨…….”
마베 꼬마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요.”
그것은 정말로,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신사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공간을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탐색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는 알고 있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서 이동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네 번째 형태 또한 거대한 중간지점을 만들고 좌표(갈룸의 체내)를 고정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간신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좌표도 알지 못하고 만들어놓은 중간지점조차 도로 메워진다면 신사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수단은 없어진다.
그는 죽지는 않으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정말로 간단하게, 거짓말처럼.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유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 터무니없는 망상을 깨부수려 했다.
“신사가 어떻게 좌표를 까먹겠어? 터널은 또 어떻게 부수고?”
“유 양, 표현을 조금 바꿔보지. 좌표라는 ‘기억’을 소거시키고 터널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라는 것으로.”
마베 꼬마는 잠긴 문을 돌아보았다. 바니걸이 있는 문을. 잠깐 생각에 잠겼던 한월은 손뼉을 짝 쳤다.
“저 파계종을 이용해서?”
“그렇소.”
마베 꼬마는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면 신사와 소피의 수준이 동등하다는 것이오. 애초에 바니걸이 신사를 완전히 조종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갈 것도 없이 ‘네 번째 형태를 불러오지도 말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도 말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끝났겠지.”
“즉, 네 말은…….”
“신사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신사를 충분히 약화시켜야 하오. 위압이 떨어질 때까지 한계로 몰아넣어서, 즉 완전히 제압해서 소피의 능력에 대한 저항을 막는 것이지.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명령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소. 그러니 아공간 너머로 이동시키고 직후 아공간을 다시 닫아버리게 만드는 것까지만 유효한 명령이 될 거요.”
“좌표에 대한 기억은 지우고 말이지?”
한월이 물었다. 마베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러니 신사는 아주 잠시 동안 조종당해서 아공간 너머로 이동한 뒤, 그걸 제 손으로 닫아버리고는 얼마 안 가서 정신을 차리겠지.
그리고 뭐, 당연한 얘기지만 화가 나서 미쳐 날뛸 거요. 갸아악!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아아!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같이 아공간 너머로 보내버린 소피의 멱살이나 붙잡고 있을 텐데, 우리가 알 바는 아니로군.
아, 덧붙여서 사소한 기억의 소거는 약화 같은 것도 필요없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하오.”
마베 꼬마는 그렇게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소. ‘좋은 소식’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시오?”
한월은 밝게 대답했다.
“좋은 소식이고말고! 그것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유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소식이 아니에요. 우리는 여섯 시간 안에 그 아공간이 있는 위치를 찾아내야 하고…… 그곳에서 신사를 제압하기까지 해야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
한월이 유를 막아서며 그렇게 말했다.
“유, 갈룸을 죽이지 않을 방법이 생긴 거야. 이것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
흠, 흠, 엣헴! 하고 마베 꼬마는 특유의 예스러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나 곧 헛기침은 모두 파묻혔다.한월이 마베 꼬마를 와락 끌어안아버린 것이다.
또 튀어나온 특유의 나쁜 버릇이었다. 마베 꼬마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앗, 앗! 수, 숨막히지 않소?!”하고 버둥거렸다.
이제는 언제나처럼 유가 끼어들어 한월을 질책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유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턱 끝을 매만졌다.
앞으로 5시간 53분. 그 이후 모든 것이 결정되겠지.
그러나 유는 그녀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들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의문은 한숨이 되어 열린 창문을 통해 하늘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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