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011. 첫 번째 토끼 (2)
* * *
랑을 내려놓았다.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참이었느니라. 설명하지 않으면 그대와도 불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앞서 짐의 이름을 밝혀두는 것이 좋겠구나. 그대들은 짐을 갈룸이라고 부르면 된다.”
갈룸.
어감 상으로는 남자의 이름처럼 느껴진다.
사실 남자니 여자니 따지기 이전에, 사람의 이름 같지 않았다. 정체불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합당했다.
그러나 이름의 출처라든지 진위여부 같은 것은 따질 겨를이 없었다.
다음에 이어진 갈룸의 말이 나의 생각을 온통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짐은 하젠야크트이다.”
그 말을 일부분이나마 이해하는 데 거의 30초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말이 상당 부분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다시 30초가 필요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그 말을 들으니까 무슨 상황인지 더 모르겠는데.”
“혼란스럽겠지. 이해한다. 짐이라고 해도 혼란스러울 것이니라. 그대가 본 하젠야크트의 모습은 ‘신사’의 형상이었고 짐은 이와 같이 제왕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으냐. 다른 것을 같다고 일컫는 우인이 눈앞에 있으니 어느 누구라고 해도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두어라.”
갈룸은 말했다.
“하나의 형상을 한 여럿이 있는 것처럼 여럿의 형상을 한 하나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짐과 그 수족들의 특성이다.”
수족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자 갈룸은 드물게 웃음기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표현이니라. 짐이 이곳에서 그대의 팔과 다리를 잘라 분리시킨다고 가정하겠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그대의 좌완과 우완, 좌족과 우족이 각각 다른 형상을 갖추고 흩어져 있겠지.
그러나 그것들은 분명하게 ‘그대’라는 개인의 조각이다. 여기서 짐이 ‘일부’라는 표현 대신 조각이라는 표현을 썼음에 유의하라.
그것들은 모두 동등하게 그대일 자격을 갖추면서도, 하나로서는 완전하지 못한 조각이다.”
“퍼즐은 조각으로 나누어놓아도 퍼즐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로 합쳐져 있지 않으면 완전하지 못하다…… 이런 얘기?”
“부드럽게 비유하자면 그러하느니라.”
“부드럽게 비유해. 긴장하고 있으니까.”
“아, 그렇군. 안심하도록 하여라. 짐이 그대를 해칠 일은 전혀 없느니라. 짐은 인간을 해칠 의사가 없다. 이것이 짐의 정념이다.”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한 것이다! 하면서 상당히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파계종을 본 적이 있어서 말이야.”
심지어는 그런 타입의 인간까지 봤다.
“그대들의 관점에서 그대들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방치한다, 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오히려 그대들이 바라는 것이겠지. 어찌됐든 약속하건대 그대를 공격하지 않겠다. 안심하고 이야기를 들으라.”
“일단은…… 그럴게.”
“좋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더라…….
아아, 짐이 하젠야크트의 한 형상이라고 설명한 것이로군. 거의 다 왔다. 이제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은 이것뿐이다.
그대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즉, 하나의 존재가 여러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떻게 지금과 같이 입장을 바꿀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해 답할 시간이다.”
갈룸은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 질문은 답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짐과 그 수족들은 실제로 하나의 존재로서 실존했다. 변신은 가능했어도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니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짐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네가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그것이 짐의 능력이다.”
파계종은 후드를 벗었다.
파계종은 실로 아름다웠다.
그 눈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생채기로 가득한 루비처럼 탁하게 빛났고, 그 보석을 강조하듯 하얗고 단정한 피부는 부드러웠다.
또한 먹물을 뿌려 그대로 덮어놓은 듯한 머리카락조차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들은 후드를 벗기 전에도 대강 인지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후드를 벗은 지금에 이르러 내게 남겨진 인상은 뿔이 달린 괴물이었다.
그 뿔은 물질이라기보다도, 위압이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만들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다른 형상으로서 존재하는 여러 마리의 하젠야크트처럼.
하젠야크트의 조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은 허공에서 가시를 쏘아내지도, 정보를 실물처럼 만들어 주고받지도 못한다. 인간들의 거대도시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지도 못한다.
그러나 똑똑히 알아두어라. 짐은 그것들을 모조리 갈라놓을 수 있다. 하나의 존재에 묶여 있던 것을 모조리 떨어뜨려놓을 수 있다. 짐은 무엇도 죽이지 못하고 무엇도 빼내지 못하나, 자기 자신만큼은 분명히 토막 내어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하젠야크트라는 존재를 분리시켰다는 거야?”
“그러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어렵지만 어떻게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니까 갈룸의 말은, 하젠야크트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러 형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라면 변신까지만 가능했을 그들을 갈룸이 직접 독립적인 개체로 떨어뜨려놓았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의문이 시작된다.
갈룸이라는 형상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쳐도 왜 굳이 그 능력을 사용해버렸단 말인가.
하나의 몸뚱어리에 붙어있던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은 패널티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물음 끝에 갈룸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갈룸의 대답은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즉, 갈룸은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왔다니, 그렇지 않으니라.”
나의 지적에 갈룸은 받아쳤다.
하지만 녀석이 틀렸다. 실제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화를 개시했던 처음 시점으로, 그녀가한월에게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대목으로 재귀한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에 갈룸은 고개를 저었다.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것과 죽어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같으냐?”
“그게 그거잖아.”
“우둔하기는. 그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니라.”
“어떻게 다른데?”
“예정과 청원이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흠.
흠흠.
아하.
“그러니까…… 너는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그전에 한월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제야 이야기가 통하는군. 하지만 여전히 짚어줘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짐은 딱히 그 무례한 작자에게만 죽임을 당하고 싶다는 로맨티스트가 아니다. 다만 짐은, 짐을 죽이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어떤 이에게 죽임 당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요컨대 선수를 치자는 것이니라.”
“선수를 친다고. 네 죽음을.”
“짐의 죽음을.”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로 갈룸은 말했다.
새삼스러운 소감을 말하자면, 그녀는 실로 파계종이었다.
즉, 인간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차이의 범위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질 법한, 아니 생물로서의 자질과도 같은 몇몇 본능까지 담겨 있다.
그러니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내가 추측한 사실. 그것들을 갈룸에게 들려줬다.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지만 짐에게든 누구에게든 소멸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짐과 그대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예정조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짐은 어차피 곧 살해당하거나 소멸할 처지인데, 기왕이면 원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고 싶다는 것이지.”
“너무 태연해서 납득을 못할 정도야. 더 자세하게 말해주겠어? 누가 널 살해한다는 건지, 네가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타 등등.”
“그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지금은 어렵겠군.”
“지금은 어렵다니, 무슨 말이야?”
“청각이 둔하구나, 인간.”
갈룸이 나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그녀는 내 머리를 벽면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귀를 틀어막았을 때 특유의 우우웅, 하는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벽면 너머 혹은 아주 멀리서부터 흘러나오는 온갖 소리가 사로잡혔다.
머지않아 나는 갈룸이 무슨 의도로 내게 듣기를 권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현관 너머로부터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사람이 웅성거리며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온 것이니라.”
“왔다니, 누가?”
“귀찮은 것들이다. 짐은 일단 숨어있을 테니 그대가 대강 쫓아내도록.”
“잠깐, 잠깐만! 더 정확히 설명을 해달라니까!”
“그대는 구차한 설명을 들어서 소녀의 목숨을 구하는 남자였던가.”
“그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서 망연하게 중얼거린다.
안방 너머 베란다까지 후다닥 도망가던 갈룸은 짤막하게 남겼다.
“세상을 구하고 싶으면 짐을 도와라. 일단은 이렇게만 말해두겠노라.”
그런 건 한월이한테 시키라고 내가 한 다섯 번은 얘기했지.
그러거나 말거나 갈룸은 정말로 몸을 숨겨버렸다.
실제 집 주인인 랑은 급격한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황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한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굳이 가능한 걸 찾자면, 글쎄, 때마침 초인종이 울리기에 거실의 홈 디스플레이를 살피는 정도.
이윽고 나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아는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새카만 칼날 팀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정말 유감스럽게도 친분이 있는 유도 사정설명을 하면 일단 물러가줄 한월도, 그렇다고 경찰을 불러서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재인도 아니었다.
협상의 여지가 있는 마베 꼬마도 아니었다.
바깥에는 무뢰한이 서 있었다.
무뢰한 백승도. 지난번에 나타난 하젠야크트를 가뿐하게 제압한 S등급 지정능력자.
실로 오래간만에 그 얼굴을 보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무뢰한이라는 이명답게 그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 조금의 양보도 가하지 않는다.
전심전력으로, 어쩌다가 눈에 밟히고 발에 채는 게 있으면 철저히 뭉개버리고 돌파하는 이른 바 상남자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냥 순순히 문을 열어주고 갈룸을 내어주는 안전책을 골랐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니 어쩌니 하는 갈룸의 말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주고 나서 갈룸을 내어주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또 ‘갈룸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이 의문의 꼬리를 물 듯이 ‘그냥 갈룸을 숨겨주는 게 불가능한 것 같으니까 갈룸이 나를 속인다고 괜한 의심을 하는 거 아니야?’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안에 아무도 없는 척한다! 라는 작전이 떠올랐다.
문제는.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왔다.”
쩌렁쩌렁 울리듯, 현관문 너머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돌파하겠다.”
바로 거기까지였다.
현관문은 어린아이의 색종이처럼 찢겨나갔다.
그는 말 그대로 무뢰한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