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010.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2)
* * *
“[쓸모도 없었을 탄환은, 결국 아무 쓸모도 없어졌군.]”
RPG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히 서 있는 사내를 공중에서 내려 보며 윌리엄은 중얼거렸다.
결박당한 소녀도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어쨌거나 쓰러지지 않는 종류의 힘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윌리엄은 미사일을 발포하며 특별한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말했다시피, 그 탄환은 애초부터 쓸모가 없었을 터였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 도시에는 아직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있다.
사원을 무너뜨려 그 안에 갇힌 죄수들을 몰살하는 것은 간단하지.
하지만 그 근처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아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지난밤에도 멜라니는 탄환을 쏴서 빠르게 처리하고 도주하는 쪽을 선택했지만 윌리엄은 무조건 슈트를 장착하고 직접 하나하나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꺼려하는 멜라니를 위해 윌리엄은 자신이 ‘다시’ 슈트를 입겠다고까지 했다.
노환을 걱정한 멜라니가 결국은 말리고 말았지만, 윌리엄은 그래도 그들이 죽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또한 그들이 무슨 죄로 수감되었는지 하나하나 파악해둔 자료를 이용해 확인했다.
그 행위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했다.
그랬던 그가 오늘밤에 이르러 다시 탄환을 발포하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적어도 그렇게 해야 신념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윌리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얼른 이 탄환을 다른 곳에 써버리라는 머릿속의 목소리로 변질됐다.
그 결과 원론으로 돌아와, 쓸모없을 탄환은 정말로 쓸모없게 되었다.
윌리엄은 후련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랑을 돌아보았다.
“[저 청년은 대단하군. 이런 관계만 아니었더라도 내가 먼저 술을 샀을 걸세.]”
“뭐, 뭐라는 거야.”
랑이 윌리엄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아, 이런, 영어를 못 했지?]”
“이, 잉글리시?”
단어 하나만 간신히 알아들은 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갸우뚱거렸다.
윌리엄은 그 모습이 딱 그 나이의 어린애 같다고 생각해서 다시 웃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어 웃음을 울음으로 뒤바꾸는 병적인 증세를 보이기 전에 윌리엄은 웃음을 거두었다.
또한 자네가 이곳에 갇힌 어린아이들 중 하나였더라면 나는 자네를 구하러 달려왔을 텐데, 같은 소리를 지껄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스마트폰을 들고 구글 번역기를 켰다.
자네가 설득해줄 수 없겠나?
실제로는 그런 깔끔한 문장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문법으로 번역된 문장, ‘당신은 저 청년을 설득하지 않습니까?’ 이었다.
어쨌거나 뜻을 알아먹은 랑은 어리둥절해서 윌리엄을 올려다보았다. 윌리엄은 표정없이 단말기만 내밀었다.
랑이 다시 한국어로 타자를 치고 영어로 번역했다.
싫어.
윌리엄이 쓴웃음을 지었다. 영어를 썼다.
자네 둘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겠네.
이 이야기는 다 끝났어. 애초에 내가 말려도 저 사람은 안 들어. 원래 저런 타입이야.
그런 타입 잘 알지. 내 젊었던 시절이 떠오르는군. 나는 저렇게 일어서서 버티면…… 누구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어쩌라는 거야. 아무튼 당신은 지금 쓰레기잖아.
정말로 그렇게 보이는가.
랑은 윌리엄을 노려보았다.
여기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윌리엄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다.
억지로 신사다움과 정갈함을 덧씌운 듯한 윌리엄의 표정만이 간신히 내면의 인상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윌리엄의 충혈된 눈동자나 며칠 정리되지 않은 수염은 그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자는 흉물이라고.
그럼에도 랑은 단언했다.
당신에게는 돈이 있었고 기회가 있었어. 사회적인 명망이 있었어. 이런 방식의 유효성은 둘째 치더라도, 어쨌거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좋게 바꾸려 해야만 했어.
그 모든 시도가 좌절되었다면 어떻게 할 건가?
윌리엄은 느릿느릿 타자를 쳐댔다.
내가 아무리 설파해도, 사람들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외치고 외쳐도 의미가 없었다면? 그러면 자네는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말할 건가? 아니면 멸망한 자네들 북쪽의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핵무기를 들고 협박이라도 해야만 했다고 주장할 건가?
나라면 깔끔하게 포기했어.
윌리엄은 멍한 눈으로 랑을 내려다보았다. 랑은 타자를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사람들은 호응해주지 않을 테니까. 만일 정말로 당신이 선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당신의 편에 서주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아무것도 구해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었어! 멜라니는, 내가 구해낸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말했어.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니까.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종속된 거야.
하지만 그들은…… 내게 고맙다고 했어.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그들이 평생 나를 잊고 나와 무관계한 사람이 된다고 해도 좋았단 말이네! 그저, 그저 내가 뻗은 손을 맞잡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 한마디면 충분했는데도…….
틀려, 당신은 당신이 사람을 죽이는 데 동조해달라고 외치고 다닌 거야. 당신이 하려는 일, 당신이 뒤집어쓰려는 죄, 거기에 용서를 달라고 빌고 다닌 거라고.
윌리엄은 손가락을 멈추었다.
거기서 ‘나는 동조 따위 바라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죽음이었어. 납득해줄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윌리엄은 하나님을 믿는 만큼 강하게 자신을 믿고 있었다.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서는 이미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도대체 틀린 것과 옳은 것을 어떻게 분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그가 제사장들에게 비난받는 예수의 마음을 따라야 하는지, 혹은 그 예수에게 반의를 표하고 일어선 사탄의 마음을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윌리엄은 그래서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
윌리엄은 아주 잠시, 정말로 짧은 시간동안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래야만 했다.
윌리엄은 그럴 수 없더라도 흉물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딱 하나만 부탁하지.
뭔데?
일이 잘 풀리면, 그러니까 모든 게 자네들 뜻대로 돌아가고 반대로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게 되면, 그 이후에 저 친구가…… 나와 같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게.
랑은 손가락을 멈추었다. 단말기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윌리엄은 거부했다. 길지 않은 기싸움 끝에 랑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럴 거면 당신이 먼저 변해.
나는 너무 늙었어. 변하기에는 용기가 모자라.
그럼, 알았어.
윌리엄은 어색하게 번역된 단문을 받아들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감정적인 자신이 웃음을 울음으로 뒤바꾸는 병적인 행동을 보이기 전에 웃음을 지워버렸다.
직후 윌리엄은 코트 주머니 안에서 바롱의 눈알을 꺼내들었다.
그것의 정체만큼은 알고 있는 랑이 한국어로라도 경고를 하기 전에 윌리엄은 헬기를 지상으로 몰기 시작했다.
***
“[공격 능력은 형편없네요.]”
잘린 손가락의 단면을 바라보며 멜라니는 중얼거렸다.
당해놓고 부리는 허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무기에 의해 공격을 당했는데도 베이는 선에서 그쳤다. 다시 말해서 나진에게는 폭발적인 공격을 자아낼 방도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냉병기를 냉병기답게 사용하는 것은 지정능력자로서는 실격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이……]”
거기서 말이 잘렸다. 멜라니가 왼팔을 길게 휘둘렀기 때문이다.
당황한 나진이 왜곡력을 발생시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위압의 흐름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나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간신히 풀려났다.
그러나 그 짧은 구속이 커다란 차이를 낳았다.
멜라니의 검완이 나진의 가슴을 죽 그어버렸다.
본래였다면 신체가 두 동강이 났을, 상처라기보다는 사인이라 칭해 마땅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은 가슴 중심을 얇은 커터칼로 벤 듯한 흔적이 전부.이번에도 공격은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멜라니는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여러 번의 상처가 중첩되면 제아무리 ‘조금씩만’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결국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하리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보다시피 제 오른팔은 일순간 상대방을 제압해요.]”
“[지정능력?]”
“[엄밀히 말하면 파계능력이에요.]”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고나라에서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났대?]”
“[직접 구하는 수밖에 없죠, 이런 건.]”
멜라니는 상냥하게 웃고는.
“[그런데 여유가 넘치네요. 상처가 반복되면 당신 정신이 버티지 못할 텐데요.]”
“[워낙 시답잖게 살아서 어지간하면 안 터질 멘탈인데.]”
“[그래요? 하긴, 사람은 자신이 다치는 것엔 무감각한 경향이 있죠. 그래서 첩보기관에서는 처자식 타령을 하는 거구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특별히 없어요.]”
멜라니는 오른팔을 들었다.
[영역지정: 짐승의 시선Gaze of Beast]
나진은 멜라니의 시선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 끝이 향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직후,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 굳음은 아까처럼 잠깐동안 발생하고 마는 척력 따위가 아니었다.
멜라니의 혼탁한 위압이 전신을 사로잡았고, 곧 그녀가 생각한 대로 지정한 영역이 나진을 아무런 행동조차 취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세울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정상궤도를 머물던 헬기가 어느새 나진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상에.
물론 헬기는 지상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있어서는 안 됐다. 무엇인가가 통째로 갈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헬기의 꼬리부분이 지면과 마찰했다.
그때 비로소 나진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늦었다. 시간적으로 구할 수가 없다. 나진은 쓰러지지 않지만 헬기를 멈춰 세울 힘이 없다.
그렇지만 랑은 헬기에 타고 있고, 이제 헬기와 함께 날아갈 것이다.
그때 어디에선가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공중에서 떨어 내린 윌리엄을 멜라니가 받아들고, 그렇게 해서 착지한 윌리엄이 나진을 비웃는 소리였다.
나진은 거기에 열불을 낼 틈이 없었다.
그보다도 오히려 나진은 그 비웃음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나중에서야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웃음 자체가 아니라, 비웃음 직전에 벌어진 행위에 감사함을 느낀 것이다.
떨어지는 것은 받아내면 된다.
나진은 이제 지면과 맞닿으려는 몸체 밑으로 달려들었다.
헬기가 통째로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나진은 비명을 질렀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제 헬기는 밑에 깔린 고작 몇 십 킬로그램짜리 단백질 덩어리를 짓누르며 바닥에 닿고, 폭발할 예정이었다.
그 운명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