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41화 (41/112)

〈 41화 〉 007. 난리들 났네 (5)

* * *

“안 간다.”

“어째서죠?!”

“그럼 가겠냐고!”

토해내듯 소리쳤다. 그 바람에 랑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도.

기분이 참 이상해.

이 바니걸을 쳐다보고 있자니 울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LA에 있었을 때의 경험 따위를 줄줄 기술해야 할 것만 같다는 기묘한 충동에 휩싸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런던에 갈 생각이 없다. 그건 버밍엄에서 런던까지가 너무 멀어서도, 우리가 당분간은 몸을 숙이고 눈치를 살피리라는 방침을 정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말 그대로, 런던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앗! 인종차별입니다!”

“뭐가 인종차별이야, 위험하니까 안 간다는 거지.”

“그 위험하다는 전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지요? 그곳에 파계종이 있기 때문입니까?

렇지렇지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곳에 정부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수많은 난민들과 고아, 부랑배들이 있기 때문이죠!

당신은 파계종들보다도, 똑같은 인류인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즉, 런던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이미 혐오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아 시끄러워 죽겠네.

“하지만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는 걸 보여줘야 할 때! 무법과 혼란이 도사리는 도시 런던으로 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올바름을 실현할 기회가 아닐까, 감히 제안을 해봅니다☆”

“누가 그딴 거에 목숨을 걸어. 미친 변태야.”

그러자 바니걸은 연극적인 태도로 경악했다.

“핫. 끔찍하군요. 당신의 눈에는 불쌍한 난민들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전락하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었는지 와닿지 못하는 겁니까? 인권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군요!”

이게 지금 그 주제로 논할 사안은 아니지.

충동적으로 태클을 달려다가 관두었다.

근데 아까부터 쟤가 입만 열면 뭐라고 받아치고 싶어 미치겠네.

암만 그래도 런던으로 우릴 끌고 가겠다는 변태 바니걸에게 호응해줘서 아무 득볼 것도 없다.

함께 떠들다가 공복이라도 찾아오면 식비만 더 나가므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아앗! 지금 절 무시하고 버밍엄 한복판으로 빠져나가겠다는 겁니까아아! 어리석습니다.이곳에서 당신들 같은 똥양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저말고 더 남아있다고 착각하는 겁니까?! 그 착각, 16년은 정체돼 있습니다!”

아, 시끄러워.

“우와앗, 들어보시란 말입니다! 아, 진짜! 제가 아무리 끄럽끄럽시끄럽다지만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선 말씀드리는데,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런던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잠깐 멈추어줬다.

그러자 바니걸은 한바탕 신나게 웃어버리며.

“핫핫핫. 귀가 솔깃하겠군요. 아마 지금쯤 ‘무슨 개소리야?’하는 따분한 독백적 서술을 하고 있겠지요. 좋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그러니까, 이건 저 같은 영국의 고위 지정능력자들에게 돌아다니는 정보인데, 현재 런던 내부의 파계지점은 그렇게까지 크게 활성화돼 있지 않습니다.사실 버밍엄과 크게 다르지도 않단 말입니다!”

“근거가 있는 거야?”

“없습니다☆”

“넌 정말 쓸데없이 사람 귀찮게 하는 타입이구나.”

“아앗! 문서화된 근거가 없다는 거지 당신이 믿을 만한 자료라면 있습니다! 일단일단! 이것 좀 보시죠!”

내 앞을 가로막아서며 자기 휴대폰을 내미는 바니걸. 디스플레이에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의 광장 분수대 앞에서 찍은 듯한 일반적인 기념사진…… 아니, 길거리에서 바니걸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아무튼 주변환경적인 의미에서는 특별할 게 없는 사진이다.

“이게 뭔데?”

“이틀 전에 트라팔가 광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허어.”

물이 멎은 분수대와 변태 바니걸의 존재만 빼놓고 보면 실로 평범한 분위기였다.

부연설명이 없었다면 당연히 런던 내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흠흠. 보시다시피 내부에 파계종이 항상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치안을 유지할 조직도, 제도화된 지정능력자 집단도 없어서 일단 파계종이 나타났을 때 피해가 엄청날 뿐인 것이지요!

물론 그마저도 흉물이라는 별종이 발품을 팔아가며 난민보호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런던 내부의 실질적인 문제는 사람들끼리의 갈등입니다.”

“사람들끼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법지대라고.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저와 같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닌다면 30분 안에 임신하고 말겠지요☆”

“어린애가 듣고 있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어!”

“무, 무슨 의미?”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대화를 조금도 따라오지 못하고 있던 랑이 흘깃 되물었다. 나는 랑의 귀를 틀어막아버렸다.

“아무튼 그런 겁니다! 혐오세력의 조작질처럼 런던이라는 도시 내부에서는 사람들간의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와 영국 정부는 지금도 자국민 부양이 어려운 판국에 10년 넘게 미친 채 지속된 도시를 소탕하고 정화해가며 혐오세력의 일부라는 비난을 들을 이유도, 또 자국민도 아닌 사람들을 구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그것이 런던이라는 도시의 본질! 근본!”

“대강 아까 이 녀석하고 떠들었던 추측과 비슷하네.”

사정을 듣자하니 그 추측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 정부에서는 아직까지도 공공연하게 ‘런던에서는 파계종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 수복할 수가 없다.’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니걸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때 런던은 파계종에 의해 파괴되어 망했다기보다도, 인간들에 의해 버림받아 분리됐다고 말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미친 여자 말을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거지?

트라팔가 광장에서 찍은 사진 하나만으로 런던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건 좀 그렇잖아.

게다가 파계종만 없다뿐이지 통제되지 않는 부랑배들이 산재한다는 건 변하지도 않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사고의 절단.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비틀거리자, 바니걸은 웃음을 이어나갔다.

“핫핫핫!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런던으로 향합니다.”

“잠깐, 런던이 안전하단 네 말은 분명 사실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우린 런던으로 갈 이유가 없어.

우리는 일단 당분간 머무를 거처와 음식이 필요한 것분이야. 런던에 간다고 해서 어떻게 그걸 얻을 수 있다는 거야?”

“그건 정말로 어리석은 질문이군요!”

바니걸은 유쾌하게, 노래하듯 말했다.

“우리는 런던에 있는 폴트 양을 만나러 가는 겁니다☆”

***

택시에 올랐다.

바니걸은 앞자리를 꿰차 택시기사에게도 시끄러운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어. 실로 자연스러운 어조로 바니걸은 주절주절 택시기사에게 말을 붙였다.

말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영국의 시사에 관한 주제로 떠들고 있었다.

택시기사도 어지간히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꺼리는 기색도 없이 맞받아치고 있었다.

뒷자리에 탄 나와 랑은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폴트가 런던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그러게. 영국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또 만날 줄이야.”

잠시 창문을 열었다.

교과서에서 묘사되는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과 닮았다. 회색의 먼지와 짙푸른 안개로 휩싸인 탁한 도시.

오래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차내로 시선을 돌려 중얼댔다.

“그렇지만 다시 만나도 손쉽게 도와줄까 모르겠어. 진짜 염치없는 짓인데.”

“사정사정하는 것.”

“그래야지. 며칠만, 아니 하루만이라면 도와줄 거야.”

사람의 호의나 착한 성질에 기댄다니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무엇을 마다하랴. 울며 겨자가 아니라 복어 간이라도 먹어야지.

아무튼, 과정이야 어찌됐든 앞자리의 바니걸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저 녀석 수완이 상당히 뛰어나다. 버밍엄에서 런던까지 30파운드만으로 태워다 준다는 거짓말 같은 협상을 성사시켰다.

열차로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란 걸 감안하면 엄청난 화술이긴 한데…….

“왜 그래?”

꾹, 랑이 언제나처럼 옷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거의 반사적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이어서 “내 신경은 쓰지 말고 계속 여기저기에 연락을 넣어봐. 아직 아무도 안 받아?” 물었다.

랑은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답도 안 나오는 영국행이네.

의외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뭐랄까.

도대체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다. 여우 따위에게. 혹은 토끼.

그러나 찝찝함 이전에 피곤함이 더 컸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호흡하니, 졸음은 쏟아질듯 몰려와 온몸을 잠식했다.

그대로 깊게. 잠에 빠졌다.

런던에 닿을 때까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