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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33화 (33/112)

〈 33화 〉 006. 쪼그마한 게 발랑 까져서는 (3)

* * *

하젠야크트.

처음 명명된 독일어로 표기하자면 Hasenjadg이다. 뜻풀이를 하자면 토끼사냥.

다소 중의적인 명칭이다. 토끼사냥이란 단어는 하젠야크트의 토끼를 닮은 외관을 묘사하는 동시에 독일어 비유에서 흔히 ‘학살’을 함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상 같은 것이지.”

마베 꼬마는 단언했다.

“그대도 알겠지만 하젠야크트 정도의 위압과 권능을 지닌 파계종은 차원에서 차지하는 부피 탓에, 약소한 파계종이 전부 이쪽 세계로 넘어온 이후에 나타나게 돼 있소.

특히 하젠야크트는 특유의 비대한 파계부피로 인해 단독출몰이 더더욱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소.”

“지난번에는 대단한 징조 없이 나타났는데.”

“그건 이 나라의 지정능력관리원에서 분석 중인 것으로 알고 있소.

하지만 그대가 지적한 것처럼 인천에서의 출몰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 또한 자명하지.하젠야크트는 독일에서 나타났을 때는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다른 파계종과 떼거지로 나타났단 말이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독일인들이 그런 명칭을 사용한 것이오. 함부르크가 거의 황폐화되는 동안 그쪽 기관에서는 정확히 어떤 개체가 파계종들의 중심에 서 있을 하젠야크트인지 식별하지 못했소. 다만위압의 크기를 기반으로 ‘추측’했을 뿐이오.

요컨대 한국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격파당한 하젠야크트가 자체로서는 거의 처음 제대로 관측된 사례란 말이지.”

“그래서 나도 지금 그걸 얘기하려던 참인데……. 하젠야크트는 격파됐잖아. 너희 팀원이 어떻게 했다고 들었는데?”

“맞소. 격파했지. 하지만 그게 찝찝하다는 것이오.”

마베 꼬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무뢰한 나리가 강인하다고 한들, 준최상위(A+)급의 파계종을 일격에 박살 낼 수는 없소. 게다가 그때 관측된 하젠야크트는 집중적이고 국소적인 형태의 능력만을 사용했지.이 또한 독일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행태요.”

“하젠야크트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지만, 위압의 수준은 한월 공과 무뢰한 나리 둘 모두가 하젠야크트의 격에 걸맞는다고 증언하셨소. 그래서 지정능력관리원과 우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오.

“어떤 식으로.”

“아까 하젠야크트는 차원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비대하다고 했지. 그걸 조금 다르게 가정한 것이오.”

“가령.”

“여러 겹이 겹쳐 있다는 식으로.”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되겠지.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으니 독일에서 본래의 모습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던 거요. 이번에 나타난 형태 혹은 모든 형태가 위압의 격에 비해서는 약하기에 무뢰한에게 제압당할 수 있었던 거고. 또 다른 형태에서는 광범위한 피해를 낳을 수 있어 함부르크를 무너뜨린 것이겠지.”

“그리고 그 결론으로, 하젠야크트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다?”

“그렇소.”

나는 잠깐 마베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적발의 주근깨 가득한 소녀는 한껏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편의점 테이블 위에 놓인 과자 봉지와 빈 맥주 캔이 마치 핵미사일의 발사장치라도 되는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빙성이 있는 얘기라고는 생각해. 그런데, 그 얘기를 나한테 해주는 이유가 뭐야?”

“바롱이 그대가 보호하고 있는 낭자를 노렸다고 들었소.”

낭자라면 랑을 말하는 것인가. 가지가지 하는 말투로군.

“차원이 어떻게 연결되어 유럽에서 아시아 동부까지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유럽에 나타났던 개체이니 그 인근에서 다시 출몰하는 것은 개연성이 높은 일일 것이오.

그런데 그대가 그 낭자와 함께 유럽으로 가고자 한다는 사실을 유 아가씨로부터 들었소.”

“가지 말라고 말하는 거야? 하젠야크트가 바롱과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 셈이지.”

팔짱을 꼈다.

가능성을 따져보자.

설명만 들어보면 하젠야크트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또, 어쨌거나 하젠야크트와 바롱이 모종의 동맹을 맺고 한꺼번에 우리와 새카만 칼날들을 급습했다는 사실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바롱의 정신 나간 정의론에 하젠야크트가 동조하고 있거나 최소한 협력했을 가능성 또한 제법 높다.

물론 이것들은 다 추측에 불과하다

하젠야크트가 우리 일정을 하나하나 파악해서 영국까지 따라오긴 어려울 것이라는 점까지 따지면 상황은 반전된다.

결국 잠재적이고 불확실한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까지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의 이야기가 되는데…….

“이건 내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야.”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듣자하니 그 낭자에게 고용되셨다고.”

“맞아. 애초에 이건 출장 같은 거고, 그냥 취소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출장이기도 해. 그 아이가 처음으로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퍼포먼스 같은 거니까.

그래서 말하는데, 설령 랑에게 네가 말한 사실들을 전달한다고 해도 우리 일정이 취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럼 나는 그대에게 짐을 지웠군.”

“아니, 절대 짐 같은 건 아니고…….”

말을 흐리고 다물었다.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째서 기다리는가 하면, 하젠야크트의 관한 얘기가 나오기에 앞서 마베 꼬마가 ‘드릴 말씀’이 두 가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하나를 들었다.

이제부터 다른 하나가 튀어 나오겠지.

다만 저쪽에서는 상당히 망설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얼른 말하라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베 꼬마는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지적했다.

“주머니에 넣어 놓은 거 그냥 꺼내지?”

“……이런. 다 들켰군.”

소녀는 감정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버릇이 창피하다는 것처럼 투덜댔다.

그보다는 아까부터 코트 주머니 속에 손을 꽂아 넣고 꼼지락 거리고 계셨거든요.

일단 들켜버린 마베 꼬마는 감춰 있던 것을 내려 놓았다.

조그마한 플라스크.

안에는 포르말린 비스무리한, 그보다는 조금 진하고 탁한 색상의 액체가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액체가 보호하고 있는 물체.

“눈알?”

쳐다보기도 께름칙하게 생긴 안구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두운 회색 바탕에 새빨간 동공과 홍채가 자리잡은, 일반적인 동물의 것이 아닌 기괴한 형상이다.

어쩌면 단순한 희귀동물의 표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지극히 당연한 발상보다도 앞서서, 나는 눈알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잊어버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몇 주 전에 벌였던 치열한 싸움과, 그 적수를.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유감스럽게도 그거 맞소.”

“바롱의 눈알이라고?”

마베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붉은 눈동자는 내가 알던 그 바롱의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소유물도 마베 꼬마의 소유물도 아니다.

언젠가 언급했던 것처럼 대체복무자가 파계종을 처치한 이후 얻게 되는 전리품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회수하게 돼 있다.

물론 처치되는 수가 많고 가치는 적은 잡몹의 전리품은 관리받지 않는다. 나도 스컬터의 발톱 따위는 일관되게 암시장에 팔아치우곤 했고.

그러나 지명도가 있는 바롱의 전리품을 몰래 빼돌릴 수는 없었다. 대신 시체 자체를 온전히 정부에 반환했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마 늘 그렇듯이 무기로 개조되거나 실험 목적으로 사용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또한 불법적으로 빼돌린 것이오.”

“그래도 되냐?”

“A­등급 지정자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

아, 그러냐.

“그래서 이걸 뭐 어쩌려고 갖고 왔어? 공범 만들기?”

“그보다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것이지.”

“그게 공범 만들기지. 그리고 이쪽은 이제 겨우 B등급을 달아서 그거 하나 잘못 훔치다가 걸리면 처벌 받거든? 공무원도 아니라서 버틸 연줄도 없고.”

“농담이나 하자고 갖고 온 것이 아니요.”

“그러면?”

마베 꼬마는 슬그머니 플라스크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뭐 어쩌라는 것인가 싶어서 잠깐 그 꼬맹이를 흘겼다. 녀석은 중학교에서 개구리 해부나 할 것 같은 손가락으로 플라스크 내부를 가리켰다.

시선이 손가락의 끝을 따라가고, 안구의 후면에서 뻗어 나온 신경다발의 끝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어랍쇼.”

몸서리를 쳤다.

신경다발의 끝은 엄밀히 말하자면 끝이라고 할 수 없었다.다발은 플라스크 유리면에, 즉 내부의 벽면에 연결돼 있었다.

이 연결이란 단순히 맞닿아 있다는 게 아니다. 신경다발 자체가 유리면과 하나가 돼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어느 지점부터인가 신경의 끝이 유리와 구분할 수 없는 물질로 변해 융합돼 있었고 그 이후 본래의 유리가 이어졌다고 받아들이면 간단할 것이다.

“몇몇 파계종의 잔흔으로부터 발견되는 특성이오. 주변 물체와 융합해서 기능을 갖추려는 성질이지.”

“찝찝해서 당장 터뜨려버리고 싶은데. 그래서 이딴 건 왜?”

“쓰시오.”

허어.

“쓰라니?”

“사용하라는 뜻의 명령형 동사요.”

“아니, 프랑스인에게 어법적 분석을 듣고 싶지 않고…….”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이걸 쓰라는 게 어떤 뜻이냐고.”

“아, 모르시는 모양이군. 이런 식으로 융합하는 기능의 파계종 신체는, 인간의 신체에 결합시키는 것도 가능하오.”

“이걸?”

“다시 말하자면 눈에 박아 넣으라는 뜻이지.”

“너 이거 지금 시비 거는 거지?”

머리카락 중앙의 가마를 툭 쳤다. 저질러놓고도 아마 상당히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부위에서 간지럼을 타는지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기겁을 하던 마베 꼬마가 이윽고 거칠게 항의했다.

“거, 거기는 한월 공 전용이오! 아앗! 젠장! 아직 한월 공한테도 들키지 않은 간지럼 스팟이었는데!”

“아니. 너희들 연애사와 네 말투가 가끔씩 돌아오는 설정은 관심 없어. 됐으니까 이거 설명이나 좀…….”

“흠, 흠!”

기다렸다.

“……그러니까 사용하라는 표현을 쓴 것 아니겠소. 그걸 신체에 결합시키면 파계종이 휘두르던 권능의 일부를 재현할 수 있소.”

잠시 당황했다.

“바롱은 염동력으로 유를 압도했는데, 그 정도의 힘을 쓸 수 있다고? 그건 너무 거짓말 같은데. 들어본 적도 없고.”

“반박할 사유가 세 가지로군. 우선 바롱의 힘 전부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오. 동시에 극비리에 논문으로도 돌아다니고 있는 사안이며, 마지막으로 내 눈으로 직접 본 사례가 있소.

다만 위험성이 너무 커서 공개되지도 권장되지도 않을 뿐이오.”

“어떤 위험?”

“일단 확인되지 않은 세포와 세균반응으로 인해 감염이 일어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환청을 비롯한 정신과적 피해가 상당수요. 내가 생각하기에 그걸 눈에 결합하면 1년 이상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군.”

“즉 너는 1년 안에 날더러 죽으라는 얘기인데.”

“그러니까 최후의 방편이지.”

마베 꼬마는 끊어내듯 말했다.

“그대의 방어능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하지만 동시에 공격능력이 형편없다는 것도 들었소.

그러나 대저 싸움이란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무너뜨리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오. 오로지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거나 버티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어떻게 낭자를 지킬 수 있겠소.”

“그거 굉장히 멋있는 말인데. 삼국지, 수호지?”

“짜, 짬뽕했소…….”

이 녀석도 폴트랑 비슷한 느낌으로 한국어에 정말 능통하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아주 위급한 일이 생기면 이걸 써라, 이런 느낌?”

“그렇소.”

야아.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얘기 안하는데.

이거 기가 막힌 플래그 같은데…….

“뭐, 받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런데 이거 훔친 게 걸리면 네가 덤터기쓰는 거다?”

“졸렬하시군.”

“네가 훔쳐왔으니까.”

플라스크를 코트 주머니 안에 고이 집어넣었다.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 이야기 다 끝났냐?”

“물론이오.”

“그럼 잘 가라. 도움 고맙고.”

빈 캔과 둘이서 까먹은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대강 집어넣고 돌아섰다.

하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았다는 것처럼 마베 꼬마는 나를 응시한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어 이쪽도 가만히 쳐다보자, 마베 꼬마는 넌지시 말했다.

“그대는 한월 공과 매우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르군.”

대답은 없었고 취업휴학계를 낸 대학생은 돌아섰다.

마침 헤어지기 좋은 노을이 달과 함께 하늘에 걸려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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