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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32화 (32/112)

〈 32화 〉 006. 쪼그마한 게 발랑 까져서는 (2)

* * *

그날은 마베 꼬마를 마주친 날이었다.

마르그리트 베르디에(Marguerite Verdier).

한월을 비롯한 새카만 칼날들의 멤버들이 붙여놓은 별명은 마베 꼬마였다.

아마 마르그리트라고 부르든 베르디에라고 부르든 한국인 입장에선 똑같이 불편해서, 마베라고 앞글자만 따는 식으로 줄인 뒤 덩치에 걸맞게 꼬마를 붙인 모양이었다.

꼬마라는 비칭이 포함돼 있기에 불리는 입장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다만.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한월이 그랬거든.‘본인은 꼬마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다네요.’ 라면서 나도 괜찮으면 마베 꼬마라고 부르라고.

그녀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넘어왔다가 붙박이처럼 눌러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정확히는, 한월의 곁에 남기로 했다고.

대강 한월에게 호감을 가진 여자아이 2번 정도로 상정해 놓아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마베 꼬마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기억하건대 지금까지 두 차례 정도, 그마저도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

봉제인형처럼 윤기가 흐르는 짙게 붉은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하얀 피부, 얼룩처럼 탁한 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나이는 랑과 비슷한 진짜배기 꼬마였고.

어쨌거나 처음 만났을 때, 자주 보이지 않는 멤버라고 해도 일단은 한월의 팀원이니까 통성명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아주 어린애라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등을 구부리고 악수를 청했는데.

“안녕?”

“……반갑소.”

잠시 얼을 탔다.

한월을 올려다보자 그쪽에서는 난감하다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얘가 사극을 보고 우리말을 배워서요.”

“내 말투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오만.”

“보시다시피 고집이 세서 교정도 안 되고요.”

“한월 공은 사사건건 내 판단에 시비를 가리려 하시는군.”

“그래도 어떻게든 제대로 말할 수 있게 저희도 노력 중이에요. 당분간은 한국에 계속 머무를 텐데 이 상태로 내버려두는 건 저희 잘못이겠고.”

“그러냐…….”

저 꼬마가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는 차마 말해주지 못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혹여 마베 꼬마를 마주치더라도 나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거란족과 담판을 벌이는 서희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십대 초중반의 백인 꼬마아이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거든.

그냥 서로, 아 저놈 저기에 있구나 하고 인식하는 정도로 지냈다.

그래서 뭐. 접점이라고 할 건 없다.

그냥 이런 생물이 계속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정도의 관계로 지내 왔는데.

“반갑소.”

여전히 교정되지 않은 말투로, 그 꼬마는 내 앞에 나타났다.

***

그날은 기가 막히게 맥주가 땡기는 날이었다.

편의점을 들러서 아사히와 카스를 놓고 고민했다.애국심이 이기는가 맛이 이기는가.

내가 애국심을 추구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

좋아. 맛이다. 아사히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품에 안고 돌아섰다.

랑의 집에 짐을 풀어놓기 전의 일이었다.

이제부터 연수기간이라고 하니 담배는 몰라도 술은 어려울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저녁이 되어 이사를 끝내면 깰 수 있게 가볍게 한 캔.

청승맞지만 편의점 앞에서 혼자.

아마도, 제법 외로운 이별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자 봉지를 깠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그 이후에 어디선가 나타난 적발 금안의 꼬맹이가 “반갑소.” 라고 했을 때는, ‘아, 진짜 정육점이냐. 내 인생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어서는.

“누구세요.”

모르는 척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오? 그대의 나라에서 나와 같은 외모를 한 자가 흔할 리가 없지 않소?”

아. 젠장. 한월아. 더 열심히 해서 말투를 교정해줬어야지.

이제 갓 중학교 입학했을 것 같은 녀석이 논리는 매우 치밀하게 들이밀었다.

확실히, 여긴 일단 한국이고 코카서스 인종은 흔치 않지. 수상할 정도로 한국어를 잘 하는 영국인을 최근까지곁에 두고 있었다는 틀림없는 착각이 들지만 넘어가고.

“알아. 새카만 칼날들의 비정규 멤버. 맞지?”

“시치미를 떼셨군.”

이쪽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한국어네.

평범하게 더듬더듬 한국어를 사용하는 백인은 없냐?

없겠지. 못 봤으니까 없다고 치고.

“보호자라도 찾고 있니?”

친절한 어조로 슬쩍 말을 건네자, 휘이익! 하고 삭풍 같은 것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범위는 결코 바람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국소적인, 다시 말해서 매우 좁은 범위를 베어 가르는 듯한 기습이었다.

그 기습은 이미 뜯어놓은 과자 봉지를 날카롭게 갈랐다.

그리고 절삭된 봉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과자를 하나 집고서는.

“어린애로 취급하는 것이오?”

“아닙니다.”

분명 너는 어린애로 취급하고 있지. 그렇지만 내 목숨을 벌레 목숨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다.

상대는 A­등급의 지정능력자, ‘마녀’라는 이명이 달라붙은 그대로 동화 속 마법에 가까운 광범위한 이변을 다룬다.

뭐, 범위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에게도 모자랄지 모른다.

하지만 방금처럼 정밀한 동작성과 변용 수준은 A등급에 꿀릴 것 없다는 느낌. 한월의 묘사다.

그러니까 정육점이냐고 묻는 거다, 이 A급 소고기들아…….

“무슨 일로 오셨어요?”

“말을 낮추시오. 듣자하니 민망하군.”

남의 존칭법은 신경 쓸 줄 알면서 어째서 자신의 존칭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화적인 차이인가.

“……무슨 일로 왔는데?”

“뭐, 대단한 일은 아니오만.”

지나치게 쿨하게, 꼬마는 어깨까지 닿게 기른 옆머리를 찰랑이며 대답했다.

그런 과시적인 모습이 이미지상으로는 랑과 비슷하다. 자기애 수치를 살짝 높인 랑이라고나 할까.

까놓은 과자 봉지에서 은근슬쩍 과자를 훔쳐 먹는 모습까지 자기애의 상징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턱하고 손을 붙잡으니 마베 꼬마는 아무렇지 않게 반대쪽 손으로 내 손목을 툭 쳤다.성가시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과자 정도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랑이랑 좀 생활하다보니 저 또래 여자애들이 얼마나 먹는 걸 좋아하느니 체감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주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이번에는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문제라도 있소?”

“한국에서 미성년자의 음주는 불법이다.”

“어리석으시군. 미성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지, 사서 마시는 것은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라오. 게다가 지금 내 앞에는 성인인 보호자가 있으니 혹 지나가던 경관 나리께서 보시더라도 하등 문제가 없지.”

“그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남았는데.”

“어쨌든 내 행위는 지극히 합법적인 것이오. 나는 이미 판매된 술을 마실 뿐이니까.”

“내가 내 돈 주고 산 걸 훔치는 중이잖아?”

“훔치는 것이오? 잠시 빌리는 것이지.”

“갚을 수는 있냐?!”

“성인이 되면 한 캔 사서 갚겠소. 아니. 두 캔으로 크게 갚지.”

그때면 내가 서른일지도 모르겠군.

으음~ 서른까지는 아닌가. 나 아직 젊구나. 생각보다.

요 근래 영국인 하나를 제외하면 전부 중고등학생들이랑 어울려 다녀서 나도 모르게 내가 아주 늙은 것은 아닐까 걱정하곤 했는데.

아무튼 술은 안 된다.

“치사하시군. 돈이 아깝다면 내가 그냥 한 캔 값을 내겠소.”

“그 돈으로 직접 사오시든지.”

“아앗, 그냥 그대가 사오란 말이오. 이 멍청아!”

“너 욕할 때는 말투가 멀쩡하다?”

“헛!”

헛헛헛기침.

마베 꼬마는 일순간 당황한 듯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직후에는 당혹감을 거두어 없애고 누구보다 진지하고 사극적인 십대 백인 꼬마아이로 돌아왔다.

“아무튼 나 같은 사람을 상대로 술 한 잔 값을 아까워하다니 박복하시군. 서로에게 친해질 기회를 주려 했는데, 좋소, 그대가 용건만 간단히 하는 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소.”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태도가 매우 익숙하다.

물론 더 길게 말싸움하고 싶지 않다. 그냥 빨리 용건만 토해내게 하기로 했다.

“……재인 양에 관한 것이오.”

“그 녀석이 왜.”

“현재 의식이 없소.”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한월이가 그런 얘기는 안 했는데.”

“하지 않았을 것이오. 할 필요도 없었고,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을 테니까. 한월 공에게 그대와 재인 양 사이의 관계는 전무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겠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맥주 캔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나는 마베 꼬마에게 계속해서 발언권을 부여했다.

“자세한 사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무슨 문제가 있어 재인 양이 그대에게 굉장한 폐를 끼친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큰 상처를 입힌 것으로 알고 있소.

추측하건대 재인 양 특유의 비틀린 애정, 그대에게 받아들여지기에는 집착 같은 것의 탓일 것이오. 맞소?”

“일단은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니 별 것 아니군. 재인은 그냥 광팬인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찌질한 하류 인생이 증오스러워 죽이려고 시도할 정도의 광팬.

그게 재인이라는 인간의 본질이겠지.

“뭐, 그런 일들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네가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사과를 하고 싶소.”

말문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마베 꼬마는 발언을 이어가라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재인 양이 그대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고 싶다는 거요. 그녀를 대신해서 말이지.”

“일단 의문점이 너무 많은데.”

문장을 끝내고 헛기침을 했다.

나도 모르게 가라앉는 목소리가 싫었다.

상대방이 차라리 재인 본인이었다면. 그 보호자였다면.

하다못해 한월이었더라면 나는 감정적인 톤을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랑에 준하는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가 정확히 어떤 마음가짐과 판단으로 이곳에 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차근차근 하는 수밖에.

“첫째, 너는 이 사건과 아주 무관한 제삼자야. 너는 무시무시한 살해협박을 저지른 재인이도 아니고 그 협박을 당한 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박의 원인 중 하나로 낑겨 있는 한월이도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관계자 셋 중 둘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네가 사과하는 건 터무니없어.”

“내 사과는 받아주기 어렵다는 것이군.”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마베 꼬마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꼭 타인이 여기 끼어 들어서 못 들어주겠다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냥, 너는 그 아이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할 수가 없잖아.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어떻게 잘못했는지. 얼마나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그걸 대신해서 하겠다는 건 받아들여주기 어려워.”

“그, 그렇지 않소! 오히려 재인 양의 동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

“동기를? 네가?”

그렇게 되묻자 마베 꼬마는 입술을 앙 다문 채로 ‘으으…….’ 하고 신음했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마베 꼬마는 어울리지 않는 엄숙한 얼굴을 한 채로 단정하듯 말했다.

“재인 양은 불안정한 사람이오.”

불안정.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오. 그러나 그럼에도 더 확실하게 설명하자면, 그녀의 세계에는 그녀 자신밖에 없었소. 평생을 살아오며 불신과 망집을 쌓은 탓이지.

이유야 어쨌건 그녀는 그런 사람이라는 거요. 자기 자신밖에 알지 못했고, 알고 싶다고도 느끼지 못한 사람.”

자기 자신으로만 뒤섞여 있는.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그 어두운 밤이 개벽했다.

“그것은 순전히 한월 공의 덕분이오.”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유일하게 재인 양의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사람이오. 그녀가 시작한 맨 첫번째 변화였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아끼고 지키려고 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게 되었소. 재인 양은 한월 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소녀가 된 것이오.”

“그 변화가 위험을 끼쳤어. 이건 나만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얘기야.”

“그대의 말이 맞소. 재인 양이 달라져가고 있다고는 하나, 모든 점에서 부족하고 공격적이오.그것은 그대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용납받을 수 없는 것이고, 사과해야만 하는 일이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곧 재인 양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오.”

“비난의 화살을 너한테 돌리지 마라. 나는 널 욕하고 싶은 게 아니야. 재인이의 행동이 잘못됐고 일단 저지른 일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지.”

마베 꼬마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나는 멈출 의향이 없었다.

“아까 의문점에 관해, 그 의문의 첫째에 관해 말했지. 이게 둘째야. 사과를 하면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반드시 용서해줘야 하고, 이대로 싹 잊어줘야 하는 건가?”

오늘 아사히를 고른 것은 잘못이었다. 맛이 없는 편이 나았다.

그랬다면 이런 힐난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힐난의 정당함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말했다시피 나를 놓고 그 아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게 아니야. 결과만 놓고 봐서 나는 아무 해도 입지 않았어. 걔 때문에 다친 부위도 없고, 딱히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문제로 삼고 싶은 건 그 아이가 ‘아직’ 변화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 이외의 ‘더 많은’ 사람을 실제로 다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수그리고 움츠러든 꼬마의 어깨는 랑보다 조금 더 좁았다.

“당장 경찰을 부른다든지, 지정능력관리원에 신고하겠다는 게 아니야. 애초에 나는 일주일 있다가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그런 분쟁에 휘말릴 여유가 없어. 또 네 말대로 재인이가 의식불명이라면 당장에 뭔가 조치를 취하는 건 더더욱 어려워져.”

마베 꼬마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마, 울고 있는 듯햇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눈물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베 꼬마는 필사적으로 흐르는 눈물과 떨리는 어깨를 감춘다.

울고 있으면 그것은 곧 스스로의 감정을 팔아 나의 감정을 사겠다는 것이 되고, 이는 잘못으로 이어진다.

즉, 마베 꼬마는 재인과 다르게 올바른 것이다.

정직하게. 어떤 잡다한 술책도 벌이지 않고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너는.”

잠시 막혀오는 목구멍. 맥주 때문이었는지 숨결 때문이었는지 알기 어렵게.

“너는 왜 그렇게 하지?”

물었다.

“네가 사과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 네가 여기 오는 의미가 없다는 걸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재인이 얘기는 하지 말고, 네 얘기를 해봐. 왜 내게 찾아와서 관련도 없는 사람의 잘못을 사과하는 거야?”

“그것은…….”

아마, 저 꼬마도 마시지 못한 맥주 혹은 숨결 탓에 말을 잇기 어려운 것 같았다.

술기운 같은 호흡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답도.

“그것은 한월 공을 위해서요.”

아름다운 대답이었다.

“그 사람은 내게도 손을 뻗어줬으니까. 그렇게 조금이나마, 내가 그 사람에게 입은 은혜와 받은 친절을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서. 그래서 간청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렇다면 너는 어리구나.

얼굴을 붉히면서도, 사랑이라는 어휘 같은 것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다.

그래서 손을 뻗어줬다고 하는 것이다.

그게 너에게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랑에게도 적합한 단어일 것이고.

그러나 나는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확실하게 약속해.”

나의 단어는 이런 것들뿐이다.

“무엇을, 말이오?”

“네가 재인이를 단속해.”

말했다.

“이건 적당히 유도리를 살려서 동태 파악 좀 하고 나중에 또 일이 터지면 사과하고 다니라는 게 아니야.

그보다 훨씬 철저하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는 것은 물론이고 벌어질 우려조차 깔끔하게 사라질 정도로.”

물었다.

“네가 말한 대로 재인이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그 이전까지 누군가는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해.”

대답을 기다렸다.

“약속하겠소.”

끄덕였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건 내가 그 아이를 용서해주겠다는 의사표시가 아니야. 미뤄주겠다는 거지.

만일 네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재인이 본인이 와서 무릎을 꿇고 빌어도 아무것도 미뤄주지 않아. 알겠지?”

“……알겠소.”

“그럼 됐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터져 나오는 한숨.온몸이 쑤시듯 피곤하다.

오늘 맥주가 땡긴 것은 상당한 악재였다고 나를 주제로 하는 역사서 내지 자서전 내지 소설 속에 기록해두기로 하자.

“아무튼 얼른 재인이 감시나 하러 가봐라. 여기, 먹고 싶어하던 과자는 네가 가져가. 안주는 새로 사면 되니까.”

“앗…… 고맙소.”

분위기상 자제하지만, 기뻐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쨌거나 꼬마는 꼬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참 얄밉다고 해야 할까.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그래도 일단 안주거리 없이 술을 마시는 건 암만 맥주라도 부담스럽다.

또 취기가 잘 빠지지도 않으니까 다시 과자를 사려고 의자에서 일어섰는데.

“응?”

그 마베 꼬마는 아직도 내 옷깃을 붙잡고, 조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아직 드릴 말씀이 두 가지 남았소. 먼저───”

속삭였던 것이다.

“하젠야크트를 조심하시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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