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13화 (13/112)

〈 13화 〉 002. 저는 일반인입니다. 쏘지 마세요 (7)

* * *

“따지시지 그랬습니까.”

사람이 화내고 흥분하는 모습은 추하다.

분노의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모습’이라 함은 3인칭을 전제로 놓고 쓰는 단어다.

화내는 사람이 있고 화받는 사람이 있다면 응당 그곳에는 화를 목격하는 무관한 제삼자가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오가는 분노는 민망하고, 꼴사납고 한심하며 ‘어휴 남사스러워’하고 탄식할 만한 것이다.

그게 분노의 속성이다. 또한 목격의 속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데 분노가 목격됐습니다…….

상대방이 다중화면이라는 것을 망각한 내 잘못일까.

내 잘못이겠지.

하긴, 나 같아도 무슨 일이 있는지 관찰하려 했을 것이다.

한월 대신 나를 부른 재인이가 도대체 어떤 말을 할지. 그리고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그것보다 궁금한 것은 흔치 않다.

폴트가 눈을 반달처럼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자 시선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옆으로 돌리자 폴트는 하아, 한숨을 흘렸다.

다소 영어적인 어조의 한숨이었다.

“저였다면 따졌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따질 자격도 없다고 말씀하고 싶으시겠지요.”

폴트는 내 가슴에 손가락을 꾹 찔렀다. 아프다.

이 여자는 보기보다 힘이 좋다.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압박하는 재주도 뛰어난 것 같다.

지난밤에 듣기로 그녀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메이드였다고 한다. 가문에 종속되어 영원히 시종으로 사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고.

그녀는 어떻게 보면 살아온 시간 내내 직장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그녀는 취직도 어려운 나와 다르게 사회인이고, 어른인 것이다.

내가 여기서 멈춰있는 동안 그녀는 항상 나아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건 2살이라는 격차를 메우고도 남아, 오히려 차고 넘칠 정도의 경력이다.

일단 우울한 생각이 들자 끊이질 않는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인간이란 그러한 법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으며 오늘도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왜 따질 자격이 없습니까.”

다시 꾸욱, 가슴을 누르는 손가락.

“확실히, 한나진 씨가 그때 도망쳤던 것은 한나진 씨의 실책입니다. 그건 한나진 씨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박한월 군에게 잘못이 없는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마저도 한나진 씨께서 모르실 리가 없지요. 다만.”

폴트는 말했다.

“이재인 양은 그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입니다. 죽은 당사자도 아니고, 한나진 씨 때문에 보고서 접근이 금지된 박한월 군도 아니며, 그날 인천지부에 지정자 할당을 망설였던 지부장도 아닙니다.

종합해서, 이재인 양에게 한나진 씨를 지적할 자격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는지요?”

“하지만……….”

“잘못하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까?”

폴트가 앞치마에서 담배를 꺼냈다. 여전히 내 것보다 독하다.

사무실 실내이지만 나도 그녀도 라이터를 꺼내드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작은 불꽃과 타는 냄새, 좋지 않지만 부드러운 연기가 숨결을 적신다.

가만히 들이마시던 폴트가 문득 내게 한 가피를 권했다.

망설이다가 받아들였다.

“저도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메이드의 목소리가 연기를 흐트러뜨렸다.

“지난밤에 말씀드렸지요. 영국에서는 다른 분을 섬겼다고. 그 말씀은 분명 사실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전 주인님께서는 저의 탓으로, 제가 지키지 못해 돌아가셨습니다.”

“폴트.”

“저는.”

말이 끊어진다.

“저는 힘이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특이지정자라서, 위압 말고는 파계종을 공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C+의 위압은 남을 지키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머즐드독스의 건틀릿만 있었더라도…… 주인을 갈아치운 메이드라는 오명은 뒤집어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지요.”

뭐, 그런 생각 탓에 지금의 주인님을 모시게 됐습니다만. 폴트는 덧붙였다.

폴트는 재떨이에 문지르던 담배의 종이를 펼쳤다.

문득 생각났다는 것처럼 폴트가 자기 이름을 썼다.

제니퍼 더 폴트(Jennifer the Fault). 내가 유럽권 사람은 아니지만 그 작명법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이름 뒤에 the+명사를 붙이는 용법은 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별칭을 쓰는 것이다.

“본래 저는 주인으로부터 성을 하사받은 성씨를 썼습니다만, 주인을 잃은 주제에 뻔뻔하게 같은 성씨를 고집할 수는 없었지요.

저는 제 성을 버리고 대신 지금의 단어를 집어넣었습니다. 잘못(Fault)으로요.”

폴트가 덥썩 내 손을 낚아챘다. 쥐고 있던 거의 다 핀 담배가 책상으로 떨어졌으나 폴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내 눈을 마주하고 나와 같은 타이밍에 호흡하며 나랑 같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폴트는, 잘못이라는 여자는 말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내 손을 어루만지고.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채 성을 바꾸는 것. 제게 남겨진 유일한 수가 그것이었습니다. 한나진 씨에게는 도망치는 것이었겠지요.”

“폴트,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호흡.

호흡.

그리고 호흡.

“경험적으로 깨달은 사실입니다.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고, 반성한다고 해서 용서해주지 않습니다. 돌아본다고 해서 거기 서 있지도 않고 눈물을 흘린대서 닦아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닿지 않는 곳에 계속 있다는 인상만 남겨줍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그 인상 안에 갇혀 있지요.”

이것으로.

“지금 이것으로 영원히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잃고 나서.

“그러고 나서 주저앉아 자기 다리를 부러뜨리고 불구가 되면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고작 한 걸음, 한 걸음 잘못 밟아 그곳에서 끝나야 하겠습니까?”

폴트가 눈웃음을 지었다.

“대답을 들려주실 차례입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끝낼 수는 없지요.”

“그러면 답은 정해졌군요.”

메이드가 경쾌하게 말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바람과 달빛 조금을 들여왔다.

스치듯 겨울공기가 실내로 들어왔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메이드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큰 아가씨께서 본가로 돌아오시려면 당신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다시 손을 맞잡는다.

“작은 아가씨와 아무 연관도 없는 박한월 군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에게만 가능한, 한나진 씨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를 설득했나. 자매를 화해시키려고.

과연 웃기는 사람이다. 고작 그런 것을 위해서 그녀는 자기 잘못을 들추었다.

어쩌면 폴트는 폴트만의 방법대로 흥분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흥분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채로…… 수치심 같은 것을 내던지고.

당신도 이기적인 사람이고.

제법 멋있다.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간다고 달라질까요.”

“그러니 오셔야 합니다. 오지 않으셔도 달라지는 게 없을 테니까요.”

“재인이랑 싸우기는 싫은데…….”

“남자는 지는 걸 알더라도 싸워야만 한다, 그런 속담이 한국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뇨,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배운 거야.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결정을 번복할 정도는 아니네요.”

차분하게 소파에 전신을 내던졌다. 피곤과 울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몰려와 서로의 주장을 떠들어댔다.

그 뒤죽박죽의 감각이 오히려 나았다. 둘이 뒤섞이더니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즉, 나는 딱히 지쳐서 뻗지도 울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내 앞에 다른 누군가가 있어서.

혼자가 아닌 것이다.

혼자였다면 도망쳤을 지금의 순간에 폴트가 있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내 은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사무실이 떠들썩해져서 일견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실로 괜찮은 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빼면.

“그런데 폴트, 어쨌거나 저는 유의 편을 들러 나가는 거잖아요. 물론 자기편이 있어야 유가 테이블에 앉기는 하겠죠.

그래도 이건 좀 궁금한데, 그 녀석이 끝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글쎄요.”

폴트는 불안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때는 총수님의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 대답 때문일까.

주말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

시녀는 홀로 남았다.

업무가 산적했다. 시녀의 위에는 모셔야 할 주인이 있었고 주인을 모시라고 지시한 총수가 있었다.

두 상급자의 명령은 대부분 일치했으나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시녀는 둘 사이를 조율하거나 한쪽의 명령을 따랐다.

주로 총수의 명령을.

문서를 사방으로 펼쳐놓았다. ‘제갈유: 능력의 활용’, ‘하젠야크트: 출현 시기와 대응방식’, ‘바롱: 출현 시기와 목적’ 모든 것들이 불분명했다.

바롱은 시녀의 주인을 죽이려 하고 그 와중에 하젠야크트는 난잡하게 끼어들었다.

그리고 제갈유도.

그녀가 이 상황에 지금의 방식으로 끼어있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시녀는 분명 총수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미권 사람으로서 자식을 훈육하는 올바른 방법에 관한 견해였다.

그러나 시녀는 시녀였으므로 총수는 틀린 동시에 옳았다.

총수는 자기 딸을 찾아오길 명령했고 시녀는 따를 뿐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갈유를 데려와라.

큰딸은 작은딸보다 뛰어나고.

나는 뛰어난 것을 원하니.

메이드는 책상 위에 수트케이스를 올렸다.

섬세한 태도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검은 상자 안으로부터 포장된 선물을 끄집어낸다.

건틀릿. 시녀의 안면에 회한이 감돈다.

이것만 있었더라도 주인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아냐아냐. 분명히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이것을 방어기제로 써먹지 않겠다.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다.

패장은 용납 받을 수 있으나 지시를 완료하지 못한 시녀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것이 시녀의 유일이자 최선.

혹은, 어린 주인을 향한 충성의 발현.

이것이야말로 어린 주인을 향한 유일한 충성인 것이다.

모든 것을 직접 끝내야 할 때가 다가오기 전에 기회를 주는 것.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깨달아 다시 돌아올 시간을 벌어주는 것…….

문득 시녀의 시선에 열린 창문이 겹쳤다.

깨닫기 전에는 괜찮았으나, 일이 벌어지고 나니 시녀는 몸이 떨렸다.

그녀의 메이드복은 오로지 영국 기후에 맞추어진 것이라서, 계절이 들쭉날쭉한 동아시아에서는 비효율적이다.

이곳의 겨울은 아직도 이렇게 춥구나.

시녀가 창문을 닫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려나.

그런 전경은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일본 영화에서 본 겨울의 강아지들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좋을지. 아니면 그냥 시녀답게 빗자루로 눈을 쓸어버리면 좋을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채로 날이 저문다.

주말은 금방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