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1화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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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Prologue. 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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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도 길앞잡이 팀원 하나가 나가 떨어졌다.

최약체 선발대 길앞잡이. 아니나 다를까 D급 파계종에게 당하고 말았다.

스컬터라고 불리는 개를 닮은 파계종이었다. 놈은 일단 쓰러뜨린 인간을 지독하게 물고 늘어졌다.

저항할 겨를도 없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길앞잡이 팀원이 비명을 지르던 찰나,새카만 도신의 대검이 스컬터의 전신을 두 동강 냈다.

그 소년이었다.

소년은 올해로 18살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급부상할 만한 놈이다.

이름은 박한월이라고 하는데, 성씨의 발음이 멋있지 않다는 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

하지만 일상에 지친 고등학생이며, 특징은 없어도 잘 생긴 외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 가산점을 얻기 쉽다.

결정적으로, 우연히 엄청난 힘을 손에 넣고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는 여고생 몇 명을 얻었다. 그 대목에서 이미 어떤 역할에 배정됐는지는 결정된 셈이다.

[무구지정: 새카만 칼날]

한월은 양손으로 움켜잡고 있던 대검에 대고 읊조린다.

이윽고 빛을 먹어치우는 검은 위압이 그의 전신에, 특히 쥐고 있는 검신에 감돌았다.

‘쇄도??’라는 이명에 걸맞게, 한월은 압도적인 속력으로 검날을 스컬터의 머리통에 꽂아버린다.

‘행동지정’ 따위의 기술 없이, 오로지 일격만으로 파계종을 분쇄한다니. 먼저 쓰러진 지정능력자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황당해서 까무러칠 노릇이다.

“괜찮아요?”

“어어, 괜찮아…….”

대답을 듣자마자 한월은 돌아섰다.

한월이 멋대로 남을 구해주는 것은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었다.

한월은 이런 곳에서 힘을 낭비하면 안 된다.

몇 안 되는 A급 지정능력자인 한월이다. 그의 수준에 걸맞은 적들과 맞서야 할 것 아닌가.

스컬터에 급습당한 길앞잡이 지정능력자. 그는 결국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한월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앞으로 나타난 수많은 파계종들을 바라보며.

쓰러진 지정능력자에게, 그 괴수 무리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소년 한월에게, 그것들은 가뿐히 짓밟을 수 있는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은 검을 움켜 잡았다.

그대로 다섯 마리의 스컬터를 쳐죽여간다.

한월은 별다른 감상이 없었다.

미소녀 후배가 요구하는 힘에 걸맞은 책임감을 실현하겠다, 라는 대의명분은 없었다.

말수는 적지만 한월을 사랑하는 동급생 소녀를 위해 힘내겠다, 라는 결의도 없었다.

그저 우연이었다.

우연히주변의 사람들을 구원해낼 뿐이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도 우연찮게 죄다 미소녀들이라는 사실 정도는 넘어가기로 하고…….

어쨌거나 이곳에 나타난 파계지점─파계종이 나타날 거라는 공간적인 징후─이 사라지면 한월은 다시 소녀들에게 가겠지.

그리고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울고 있다면 달려가서 눈물을 닦아줄 것이고, 무릎 꿇고 있다면 손을 뻗어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 테니까.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이곳에 있었고, 그러니 영원히 이곳에 있겠지.

부드득 깨문 어금니 사이가 핏물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시큰하다.

등의 상처가 아려온다.

그래, 나는 여기에 있다.

네가 보지 못하는 그곳에, 어쩌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곳에 있다.

아니, 뭐…… 아직까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면, 그 왜 있잖아.

'방금도 길앞잡이 팀원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아까 꼴사납게 나가떨어진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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