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화 개인교습 2차전(2)
* * *
“어, 어때?”
“흠.”
나는 팔짱 낀 채 턱에 손을 비비며 집중했다.
정면에는 거울에 비친 듯 내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실제로 이는 내 행동을 따라 했다.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 느리긴 하지만 날 따라 하려는 모습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환영 마법.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시에라에게 행한 개인교습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내가 손을 뻗어 만지려 들자 그 부위만이 신기루처럼 흐려졌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정말?”
“기초는 뗐어. 더 심화해서 들어가면 질감이나 움직임의 속도, 공간 작용이 아니라 대상의 뇌 작용 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으응?”
시에라는 내 설명에 살포시 고개를 기울인 채 연신 눈을 깜빡였다.
전혀 이해 못 했구나.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우린 기초만으로 충분해. 폭발 마법에 환영 마법을 작용시키면 되는 쉬운 작업이니까.”
환영 마법의 역할은 폭발로 인한 충격량을 없애는 작업이다.
그리하면 소리와 냄새 등은 유지하며 실감 나는 표현이 가능했다.
환영 마법을 주체로 폭발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에 심화 학습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잘 할 수 있으면서 내가 직접 가르쳐줄 때는 왜 못 한 거야?”
성공에 기뻐한 것도 잠시.
나는 작게 투덜거렸다.
오늘로 개인교습 사흘째.
사실 예상대로면 시에라의 성공은 어제여야 했다.
직접 마나의 흐름을 가르쳐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첫날은 감을 잡는 식으로 치고, 홀로 연습하여 다음 날 개인교습 시간에 반복하면 끝날 일이었다.
한데 내 예상은 거하게 빗나갔다.
성공한 게 오늘.
고작 하루 차이로 이런 볼멘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돌아가서 혼자 연습하니 더 잘하는 것 같네.”
내 개인교습 시간보다 돌아가 홀로 연습한 게 효율이 더 좋았다.
어제까지도 나랑 있을 때는 마법 발현조차 힘들어하더니, 숙제 검사차 시켜봤더니 단번에 성공했다.
“그, 그러게. 왜 그럴까?”
시에라는 대놓고 수상쩍은 몸짓을 하며 대답을 피했다.
휘휘 휘파람을 부려 시도하는데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안 났다.
나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누구 따로 도와준 사람이라도 있어?”
“응?”
“토메르 경이라던가.”
“아니……? 그때 이후로는 인사만 하는 사이야. 연습은 혼자 했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만약 그놈이 끼어든 거였으면 골치 아팠다.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면…….”
머리를 굴려보니 답은 하나만 나왔다.
“내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해?”
“아, 아니야!”
“……깜짝이야.”
나는 놀라서 움찔했다.
개인실에 시에라의 고성이 메아리쳤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미, 미안. 그치만 정말 아니야. 불편하다니 안 그래. 고맙기만 한걸.”
“고마움이랑 불편함은 별개야. 딱히 이상하게 느낄 필요 없어. 남과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편이 마음 편하게 집중하는 성향도 있는 법이야.”
사람이 내향적이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나도 스터디 그룹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복습하는 편이 나은 것 같으면 아예 교습 시간을 줄여볼까.”
어차피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라곤 마나의 흐름을 알려주고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거 보아하니 요령은 주입 시켜준 대로 다 기억하고 감을 잡는 듯한데 괜찮지 않을까.
나도 시간 낭비 줄일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아, 안 되는데……아!”
안절부절못하며 중얼대던 시에라가 뭔가 떠올랐는지 돌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많이 실수해봐서 돌아가서는 잘하는 거 아닐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
“똑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실수하는 건 집중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나 정말 안 불편해. 진짜야.”
시에라는 거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매달렸다.
“……혹시 케일은 나 가르쳐주는 게 싫어?”
“싫진 않아.”
솔직히 귀찮을 뿐이다.
“난 정말 불편하지 않으니까 케일이 싫은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어.”
“…….”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뚝심 있게 밀고 나가기는 좀 그랬다.
생각 외로 불안감이 큰가.
하긴 시에라에게는 마법이고 뭐고 전부 처음 겪는 일이다.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거라면 효율을 따질 일은 아니었다.
“대, 대신 접촉은 좀 줄여줬으면 좋겠어.”
“거봐. 불편한 거 맞았잖아.”
“아니이! 불편한 게 아니라, 그, 몸에 손이 닿으니까 그쪽으로 신경이 가서…….”
시에라는 내게 미안한 눈치였다.
미안해 안 해도 되는데.
첫날 부담스러우면 말하라곤 했으나 시에라 성격에 그러긴 힘들었을 거다.
이건 괜찮다니 진짜 괜찮은 줄 안 내 실수였다.
“알았어. 대신 횟수가 줄어든 만큼 너도 잘 기억해야 해.”
“응, 노력할게.”
본인이 이렇게 의욕적인데 잘하겠지.
나는 걱정을 접었다.
“환영 마법은 내가 일러준 서킷 구조대로 변형 연습해보고, 지금부터는 분열을 새로 배우자.”
“응!”
기초를 뗐으니 변형은 알아서 하겠지.
환영이 사흘 걸렸다고 분열도 사흘 걸릴지는 모르는 일이니만큼 우선 전부 기초부터 떼는 게 중요했다.
나는 익숙하게 시에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에라는 역시 부담스러웠는지 귀를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게 뻔했는데 좀 불편하더라도 신체 접촉은 금하고 가르쳐줄 걸 그랬나.
나는 빨리 끝내주기 위해 전보다 더욱 신중을 기했다.
******
“잠시 시간 괜찮나?”
“앗, 전하.”
다음날 점심시간.
유유히 정원을 산책하던 시에라는 제게 말 걸어온 황태자를 보며 활짝 웃었다.
“저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실례하지.”
황태자는 뒤따라오는 호위들을 손짓해 물렸다.
손짓 한 번에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호위들의 신속 정확함에 시에라는 감탄하는 한편 미안함도 들었다.
“저는 괜찮으니 호위 분들이 괜한 고생 하실 필요는 없는데…….”
“네 탓이 아니라 내가 불편해서 한 명령이다. 가벼운 담소에도 남이 엿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은가?”
“으음,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네요.”
“그런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시에라는 옅게 웃음기를 띠었다.
말은 저렇게 했어도 황태자의 배려임을 모르진 않았다.
같은 반이라고는 해도 황태자가 고작 평민과 담소를 나누러 찾아오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오늘은 다른 귀족분들이랑은 함께 안 다니실 예정이신가 봐요?”
“정정할 부분이 있군. 그들이 일방적으로 달라붙은 것일 뿐 내가 그들을 이끈 게 아니야.”
“아, 그러셨군요.”
시에라는 흐린 눈망울로 황태자를 올려다보았다.
“피곤하셨겠어요.”
“피곤하다니?”
“남한테 관심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거든요. 음,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러운데 제 얼굴만 보고 사람들이 많이 꼬였거든요. 헤헤.”
어색하게 웃는 시에라의 뺨이 붉었다.
“전하와 저를 비교하는 건 좀 건방졌나요? 그치만 전하도 많이 힘드실 거라 생각해요.”
“…….”
시에라의 말이 끝나자 황태자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대는.”
시에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독특하군.”
“그런가요?”
“황태자에게 관심이 피곤했을 거라 위로하는 이는 보통 없지.”
“앗, 역시 제가 실수한 건가요?”
“고지식한 황실 학사들이었다면 실수라고 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황태자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관심이지만 나라도 피곤할 때가 있거든.”
“그럴 때면 언제든 지금처럼 불러주세요. 저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전하께서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주먹 불끈 쥔 시에라의 앙증맞은 제스처에 황태자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신기한 일이야.”
평민이라 그런가.
늘상 함께했던 귀족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목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지고 같이 있으면 고요한 숲속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7조는 벌써 조별 과제 준비가 궤도에 올랐다고 들었다. 맞나?”
그러나 오늘은 이 편안함을 즐기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남을 기획한 것이 아니었다.
황태자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네, 케일이 정말 열심히 해주고 있어요. 공녀님도 그렇구요. 저는 음, 별로 도움이 안 돼서 발목만 안 잡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케일은 천재다. 아이린 영애 또한 나쁘지 않은 재능이지. 아직 많은 걸 배우지 않은 학기 초이니 같은 A반이라도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큰 성과야.”
“……사실은 그래서 케일이 자기 시간 내면서 개인교습까지 해주고 있어요.”
“개인교습?”
황태자가 무심한 척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론 복습이라도 해주고 있는 건가?”
“그, 그게요…….”
시에라가 말하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황태자는 직감할 수 있었다.
뭔가 있었구나.
“제가 마법 발현에 미숙해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게 다예요. 정말로요.”
필요 없음에도 덧붙인 뒷말이 의미심장함을 부여했다.
“……알겠다. 그만하면 됐어. 경쟁 상대가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으, 그런 건 아닌데요.”
“케일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흔치 않은 행운이다. 열심히 하도록.”
“네.”
황태자는 자연스럽게 바쁜 척 시계를 살폈다.
“그럼 미안하지만 약속이 있어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 네. 저는 괜찮으니 언제라도 지금처럼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황태자는 인적 드문 그늘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큰일이군.”
정탐 완료.
확보한 결과물은 컸다.
“공녀와 케일의 재결합이 쉽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이것이 그의 입장에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시에라.
개인적인 호오는 제쳐두고 아이린과 성립시킨 거래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그녀였다.
개인 교습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신체 건강한 남녀 둘이 한 방에 함께 있었으니 핑크빛 교감을 나눴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호만.”
“예.”
호위대장 호만은 황태자의 부름에 깊은 충심을 담은 저음으로 대답했다.
“이혼한 약혼자 사이를 회복시켜 재결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
“참고로 남자에게는 새 애인이 생길 기미가 보인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내일까지 답변을 고민해 오도록.”
“…….”
황태자 유리스 엘하임.
아이린에게는 자신하며 거래를 제안하였지만.
사실 그는 연애 관계에 있어 생초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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