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2화 개인교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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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인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당연히 첫인상이다.
사람은 0.3초 만에 호감 비호감을 판단하고, 3초 정도면 첫인상이 결정된다고 하던가.
일반적으로 첫인상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는 하니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랐다.
그리고 첫인상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외견이다.
속에 어떤 위험한 사상을 품고 있더라도 외견이 깔끔하다면 괜찮은 사람이라 평가되기 마련.
밀런 토메르는 그러한 인식을 파고든 교묘한 인물이었다.
“…….”
나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외모야 말해 입 아프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명문가의 기품이랄 것이 흐르는 듯했다.
이것이 첫 만남이 맞는지 은연중 헷갈릴 만큼 살가운 태도.
경계심이나 거리낌이란 것이 전혀 없었다.
절로 마주 웃음기를 띠게 만들고, 초면의 스킨십 요청에도 마치 죽마고우처럼 거리감이 편하기만 했다.
“……?”
그렇기에 그는 원작 속 첫 악역임에도 인상에 강렬히 남았다.
원래 이런 외모에 이런 태도로 다가오는 놈은 남주 후보임이 기정사실이지 않나.
한데 이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악역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꽤나 놀라워 한 것으로 기억했다.
“……으흠.”
하여 진상을 아는 나는 여태 그와 연관되기를 일부러 피해왔다.
같이 어울리다 괜히 나조차 미혹을 품게 될 수도 있던 탓이다.
선한 외견도 그렇고, 같이 있으며절로 호감을 품게 만드는 건 밀런의 천성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구슬려질 가능성이 0%는 아니니 경계는 아무리 심해도 모자랐다.
“제가 너무 서슴없이 굴었나 보군요. 미안합니다. 알베지아경의 이름은 익히 들어온지라 제 속에서는 친근감이 있었거든요.”
내가 악수 요청에 침묵으로 일관하자 밀런은 슬그머니 손을 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에 불쾌감은 편린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이 무례했다며 어색하게 사과했다.
백작가의 자제가 이런 순수한 반응을 보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백을 데리고 오면 한 명이 될까 말까다.
경계한 이가 무안하고 잘못했다 느껴지게 만드는 성숙한 대응.
그러나 나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예, 뜬금없이 악수를 청하여 놀랐습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직접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인데 거리감이 불필요하게 가깝더군요.”
한술 더 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의 행실을 탓했다.
“제가 경계심이 많은 편이지라 그런 쪽으로는 주의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으, 으음……그렇다면야. 제가 실수했군요.”
“예, 그쪽이 잘못했습니다.”
“…….”
내 잘못 따위 없다는 듯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탓하자 그는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가면이 안 벗겨진 건 칭찬해줄 만했다.
막 나가는 나도 어련하지만, 얘도 참 독한 놈이었다.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 케일.”
어색해진 분위기에 시에라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나는 깔끔히 무시했다.
부외자는 빠져라.
걸리적거린다.
“알베지아 경은……자기주장이 강하시군요. 능력 있는 사람의 특징이죠. 본인이 이뤄낸 성취에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니 부러운 일입니다.”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아하…….”
대화를 이어갈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
설마 이렇게까지 철벽을 치는 사람은 못 만나봤을 밀런에게 드디어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더 할 말 없으시다면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에라와는 제가 먼저 약속했던지라 양해해 주시죠.”
“아, 그러셨군요.”
진짜냐는 의미를 담아 밀런이 눈짓하자 시에라가 말했다.
“네, 같은 조원이라 과제 건으로요. 시간 내서 말 걸어주셨는데 죄송해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선약이 있음을 모르고 시간을 빼앗았으니 오히려 제 잘못이지요. 안 그래도 저 또한 조원끼리 만날 약속이 있었답니다.”
밀런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발언했다.
과례는 비례라는 말도 있긴 하나 저 얼굴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저도요. 기쁘게 기다릴게요.”
“알베지아 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지금보단 좋은 분위기일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한동안 바쁠 예정이라 그럴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
어딜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밀런은 민망한 듯 목덜미를 매만지더니 내게 조용히 말했다.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그렇게 노골적으로 경계하지 마시죠. 시에라 양이 느끼기에 좋은 인상은 아닐 겁니다.”
“……?”
“가볍게 이야기만 나눴을 뿐이고 그럴 속셈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뭔 소리야.
눈살을 찌푸리자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흘렸다.
“다음엔 이와 관련해 이야기하죠.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긴 한데 경험이 많은 편인지라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소리신지 모르겠지만 그럴 시간 없을 겁니다.”
“한 번만 믿어보시면 후회 안 할 거예요.”
무슨 사이비 종교 권유하듯 달라붙네.
나는 영문 모를 그의 제안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가자.”
“응.”
나는 더 시간 끌리기 전에 앞장서 이동했다.
바빠 죽겠는데 시간 낭비했네.
“……아.”
성큼성큼 교실의 문을 나섰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지근거리에 위치한 아이린의 얼굴에 내심 깜짝 놀랐다.
“앗, 공녀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아무것도요.”
시에라의 물음에 아이린은 웬일로 말을 더듬더니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그, 이제시에라를 가르쳐주러 가는 건가요, 케일?”
“응.”
“어디로요?”
“개인실로 생각하고 있긴 해.”
“개인실…….”
아카데미 내에서 마법 사용이 허가된 장소는 제한적이다.
내가 명상에 이용하는 개인실이 그중 하나였다.
상식적인 답변이었거늘 말을 들은 아이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겠어요.”
복잡한 눈빛이다.
어쩐지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
“어제 내가 보낸 서킷 도면은 읽어봤지?”
“가문 마법사에게 검수도 마쳤어요. 흠잡을 데가 없다더군요.”
“다행이긴 한데, 보면 알다시피 좀 어려울 수 있어. 그래도 네 실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시에라가 환영에 분열.
내가 공간 좌표 이동.
아이린이 폭발에 형상 변화.
이렇게 나열하니 아이린이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긴 했다.
하지만 상대적일 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불안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아이린은 내 격려에도 씁쓸히 중얼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봐요. 열심히 하고요.”
“나보단 얘가 열심히 해야지.”
엄지로 시에라를 가리키자 그녀가 열정적으로 각오를 밝혔다.
“네, 공녀님 발목 안 붙잡도록 힘낼게요!”
“……당신은 너무 힘내지 마세요.”
“공녀님 설마 지금 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마음대로 생각해요.”
아이린은 갑자기 짜증이 난 듯 툭 내뱉곤 떠났다.
“공녀님이 걱정해주셨다.”
시에라는 그마저 기쁘다며 싱글벙글거렸다.
나는 꽃밭에서 노는 그녀가 안타까워 진실을 밝혀주었다.
“걱정이 아니라 저번 미팅 때처럼 실수하지 말라고 경고한 게 아닐까.”
“헉! 그래서 너무 힘내지 말랬나?”
“아니면 뭐겠어.”
역시 아이린과 시에라가 친해지기는 아직 힘든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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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실.
명칭은 개인실이지만 사실 최대 수용 인원은 3명, 교수의 허락하에 4명까지 허용됐다.
천장의 마나석으로부터 방출되는 마나는 명상에도 좋지만, 마법 수련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개인실이라 정보 보안이 철저하기도 했고.
내가 교습 장소로 개인실을 택한 건 합리적인 논리 전개의 결과였다.
“토메르 경이랑은 무슨 얘기를 한 거야?”
“응?”
나는 본격적인 개인교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궁금증부터 풀었다.
“그건 왜?”
“그냥.”
내게 했던 맥락 없던 이야기가 시에라와의 대화 내용과 이어지면 해석의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내용은 속으로만 말했다.
시에라는 의뭉 떠는 내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음, 별 이야기하진 않았어. 그냥 자기소개하고, 수업 이야기하고, 수업이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했고.”
“흐음.”
진짜 별 이야기 안 했네.
그럼 그놈은 나한테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걸까.
……됐다, 관심 두지 말자.
그런 식으로 내게 흥미를 일으켜 접근하려는 속셈일 수 있었다.
그럴 것이었다.
사람 다루는 데는 워낙 선수인 놈이니.
멀리서 낌새를 감시하되 직접 얽히지는 않는 편이 상책이었다.
“……아까 대화할 때 느낀 건데, 혹시 케일은 토메르 님이 싫어?”
아이린은 맑은 눈으로 빤히 날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자애와 배려, 상냥함이 몸에 밴 시에라에게는 밀런을 배척하는 내 태도가 거북하게 느껴진 걸까.
밀런의 시꺼먼 속내를 모르는 시에라로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고로 나는 딱히 답답함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조언해줄 수는 있어도 시에라의 행동을 강제할 순 없었다.
그럴 입장이 아니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싫다면?”
“그럼 나도 토메르 님이랑은 친해지지 않을게.”
그런데 시에라의 발언은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케일이 그렇다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
시에라는 나와 눈을 마주한 채 배시시 웃었다.
“케일은아무 이유 없이 남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눈에 담긴 감정은 나에 대한 온전한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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