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화 첫 만남(1)
* * *
“우와아.”
루나가 마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놀라움이 담겼고, 한껏 벌린 입에는 감동이 어렸다.
두 팔을 파닥거리는 모습에서 주체 못할 흥분감이 전해져 왔다.
“그렇게 신기해?”
“네! 신기한 차림을 한 사람들도 많고, 건물도 막 이렇게 높잖아요! 주인님은 안 신기하세요?”
“응, 그다지 새롭진 않네.”
보름 나절을 달려 도착한 제국의 수도, 알트헤임.
잘 정비된 도로는 도심 이곳저곳 빠짐없이 널리 연결되어 있었고, 반듯하게 나뉜 구획마다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반대편에서 마주 달려오는 마차에는 알만한 귀족 가문의 문양이 번쩍거렸으며.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또한 고급진 원단의 의복을 자랑했다.
루나는 그러한 광경을 보고 흥분했으나, 정작 난 별 감흥이 없었다.
“그치만 이렇게 화려한데요?”
“우리 영지랑 비교하면 화려하긴 하지.”
남부 시골 영지를 수도와 비교하면 그야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장 수도에선 발에 치이는 고층 건물이 영지에선 손에 꼽았다.
도시의 금전 유동량은 또 어떤가.
황족, 고위 귀족의 금전 소비량은 전문 인력을 두어 계산할 만큼 천문학적 규모였다.
어릴 적부터 영지에서만 생활한 루나에게 수도란 별천지가 맞았다.
“그치만 현대랑 비교하면 별로야.”
비교하자면 내가 아는 전생의 도시가 압도적이었다.
별에 사람도 보내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시대이지 않았나.
수도에 왔다고 들뜰 구석이 없었다.
“저기 수인도 있어요!”
루나가 손가락질한 곳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동물의 귀와 꼬리를 드러낸 채 살랑거리고 있었다.
아인(?人)으로 분류되는 종족 중의 일원, 수인이었다.
“이건 좀 신기하네.”
그제야 나도 흥미가 좀 동했다.
판타지 세상인 이곳에서도 아인과의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다.
아인의 국가가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국가도 교류에 적극적이지가 않은 탓이다.
당장 사람들끼리만 해도 외국인과는 어색한 판국이다.
아인과는 생김새에다 종족마저 차이가 나니 교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덜컹!
그렇게 얼마 뒤, 마침내 마차가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도련님.”
마차의 문이 열리자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우와아.”
루나가 또다시 감탄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난 크기의 저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저택까지 거리가 한세월이고, 길을 따라 정돈된 정원이 또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제국의 수도에 이만한 크기의 저택을 마련할 수 있는 건 단 한 부류다.
고위 귀족.
그것도 성골이라 칭해지는 중앙 정계의 거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집사장 하인즈라고 합니다.”
하인즈는 말끔한 정장에 모노클을 낀 초로의 노인이었다.
허리를 숙였음에도 비굴함은커녕 세련된 예의가 느껴졌다.
“크라운 백작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케일 공자님.”
“케일 알베지아입니다. 환영에 감사합니다, 하인즈.”
크라운 백작가.
백작이라는 작위도 작위이지만, 가주가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뽐내는 고위 귀족가다.
신흥 귀족가의 후계인 나로서는 우러러봐야 할 진짜 귀족인 것이다.
그런 크라운 백작가에 내가 어찌 방문할 수 있었느냐.
의외겠지만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손님이기 때문이었다.
“이쪽은…….”
“제 시종인 루나입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루나라고 합니다.”
루나가 긴장된 기색으로 인사했다.
하인즈는 탐색하듯 그녀를 훑곤 말했다.
“시종 분은 저희가 잠시 데리고 가겠습니다. 생활에 있어 알아야 할 부분을 우선적으로 인수인계하려 합니다.”
“그러시죠. 오래 있지는 않을 테지만 실수하는 일 없게 잘 배워.”
“여, 열심히 할게요.”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공자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하인즈의 안내를 따라 저택의 내부로 이동했다.
겉보기만큼이나 저택의 내부도 화려했다.
복도에 배치된 금빛 조각상, 벽에 걸린 아름다운 회화.
얼룩 한 점 없는 양탄자는 푹신하게 발에 밟혔고, 장식처럼 양옆으로 자리한 시종들은 우아하게 인사를 올렸다.
귀족 가문으로서의 품격이 이런 것임을 과시하는 듯했다.
신흥 귀족인 내 가문은 따라 하지 못할, 전통에 따른 격의 차이였다.
똑똑!
발을 멈춘 곳은 거대한 방문 앞이었다.
두 기사가 문을 지키는 가운데 하인즈가 공손히 문을 두드렸다.
“하인즈입니다. 케일 공자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이거라.
허락이 떨어지자 두 호위가 문을 열었다.
화려했던 바깥과 달리 방의 내부는 고풍스러운 편에 가까웠다.
나는 촌티나게 눈동자를 굴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정면에 자리한 미부인의 존재가 절로 시선을 끌었으니.
“어서 오렴.”
하인즈가 문을 닫자 미부인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요염한 인상과 달리 젊은 아이들처럼 밝은 음성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라운 백작님.”
크라운 백작 부인이 아니다.
그녀가 바로 크라운 백작가를 이끄는 가주, 이반젤 크라운이었다.
“얘는, 우리 사이에 너무 딱딱하게 인사하는 거 아니니?”
이반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중년의 나이에도 군살 하나 없이 잘 관리된 몸매는 순수하게 감탄을 자아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래로 향하려는 시선을 돌렸다.
“알베지아의 후계자 입장으로 서 있는 거니까요.”
“공적으로 대하자면 너희 가문 사람은 내 저택에 발도 못 들일 텐데?”
“…….”
내가 입을 다물자 이반젤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장난이니까 얼굴 펴고 편히 앉으렴.”
소파에 앉은 그녀가 톡톡 옆자리를 두들겼다.
“자식처럼 대해주겠다고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란다.”
곱게 접힌 눈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대모와 대자 관계잖니?”
이반젤 크라운.
그녀는 사적으로 내 후견인, 대모임을 자청한 인물이었다.
******
대외적으로 알베지아 남작가와 크라운 백작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신흥 귀족과 성골 귀족.
북부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신흥 군벌 가문과 오랜 기간 중앙 정계에서 활약한 전통의 가문.
정치 파벌로 따지자면 군부와 중앙 정계.
영지의 위치를 따지자면 남부와 동부.
단 하나라도 맞는 게 없었으니 교류가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섭섭하게 왜 반대편에 앉고 그러니?”
“대화는 얼굴을 마주하고 해야죠.”
“부모 자식간의 대화는 더 가까워야 한단다.”
그렇기에 뭇 귀족들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놀라서 두 눈을 의심할 것이었다.
크라운 백작이 알베지아 소남작과 농담을 건네며 붙어있다니.
꿈에도 상상 못 할 장면이었다.
충격을 받을 이는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반젤과 내 관계는 철저히 개인적으로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반젤은 내 철벽에 입술을 삐죽이더니 흥흥 코를 울렸다.
“웬일로 내게 신세를 지겠다고 하길래 마음을 열었나 했더니, 네게는 대모가 아니라 물주가 필요했을 뿐이구나?”
나이가 나이이니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확실히 외모가 깡패였다.
한데 묶어 땋아 내린 붉은 머리카락과 아이처럼 탄력적인 피부.
주름 한 점 없는 이목구비를 보고 누가 그녀가 중년의 여인임을 믿을까.
그러니 저런 철없는 행동도 주책이라고 느껴지질 않았다.
“아니, 그게요…….”
장난임을 뻔히 아는데도 나는 그녀에게 쩔쩔맸다.
작위의 차이도 차이인데다, 엄밀히 생판 남인데 가족처럼 대하라고 해도 어색할 따름이었다.
전생이고 현생이고 일찍 어머니를 여의어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익숙지 않은 점 또한 한몫을 했다.
내가 진땀 빼는 표정을 충분히 즐긴 이반젤이 깔깔 웃었다.
“얘는, 곧 성인이라는 애가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니.”
“어으으.”
“알베지아 남작이 이렇진 않을 테니 남작 부인을 닮은 건가?”
그녀는 내 볼을 쥐고는 가볍게 꼬집었다.
외모는 동안이라도 스킨십이 자유로운 걸 보면 아줌마가 맞긴 한 듯했다.
“뭔가 실례되는 생각 하지 않았니?”
“예? 제가요? 설마요.”
“흐응.”
눈치도 빨랐다.
다행히 가볍게 찔러본 거였는지 금세 화제를 돌렸다.
“아카데미 입학까지 신세를 진다고 했지?”
“네, 다음 달이면 기숙사로 들어갈 테니 그때까지면 됩니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입학식이 끝남과 동시에 배정된다.
고로 신입생들은 그전까지 대기할 숙소가 필요했다.
처음엔 여관이나 호텔에서 생활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수도의 물가를 생각하니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입학은 내 독단이니만큼 차마 아버지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중앙 귀족인 이반젤이었다.
어차피 수도에 오면 만날 생각이 있었던 지라 내가 제안하자 그녀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쭉 여기서 지내지 그러니? 교칙으로 기숙사 입주를 강요하진 않던데.”
“그렇게까지 신세 지면 제가 죄송하죠.”
“나는 괜찮단다.”
“자식분 말씀도 들어봐야지 않을까요?”
“걔는 무시해도 돼. 같은 저택에 살면 뭐 하니?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여줄까 말까인데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반젤이 풍만한 가슴 아래 팔짱을 끼곤 불만을 토했다.
“크라운 영애는 아직도 그렇게 생활하나요?”
“그러게나 말이야. 일에 열성인 것도 좋지만 저게 사람의 삶이니?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하여간 마법사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나사 하나씩은 빠져있다니까.”
“일단 저도 마법사인데요?”
“어머, 내가 말한 건 마탑 소속 마법사란다.”
다 알면서 왜 그려냐는 듯 두 눈이 깜빡였다.
“나머진 마법사임을 칭하기도 부끄러운 어중이떠중이잖니. 안 그래?”
이반젤에겐 발언의 자격이 있었다.
그녀가 여자의 몸으로 백작이 될 수 있던 이유.
그녀에게 전 마탑 소속 마법사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 현 크라운 영애였다.
“물론 넌 예외란다. 마탑 입문을 거절하였어도 네 재능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반젤의 눈동자엔 깊은 신뢰가 담겨있었다.
“크라운 영애와 만나고 싶은데 미리 기별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뭐라 대답하기 껄끄러웠던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미리 너 온다고 얘기는 해놨단다. 아마 저녁 전에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크라운 영애와는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입학식 전까지는 반드시 만날 생각이었다.
“참, 내 정신 좀 봐. 수도까지 올라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대충 회포를 나눈 듯하자 그녀가 자리를 정리했다.
“먼저 온 짐은 미리 정리해놨으니 하인즈에게 네 방 위치만 확인하렴.”
“네.”
“그리고 미안하지만 잠깐 나 대신 외출해서 한 군데만 들렀다 올 수 있겠니?”
“그건 괜찮긴 한데 어디를……?”
이반젤이 찡긋 윙크하며 대답했다.
“마침 교복 맞춰놓은 게 완성됐다고 연락을 받았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