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3화 아카데미 입학(3)
* * *
“쓰읍…….”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거울에 내 얼굴을 비쳤다.
곱슬기가 있는 갈색 머리카락.
진한 눈썹과 반듯한 코, 날렵한 턱선에서는 소년과 남성의 매력이 공존했다.
시선을 내리면 널찍한 어깨와 근육이 선명한 몸이 눈에 띄었다.
내 얼굴에 금칠하는 일이긴 하나 객관적으로 보아 내 외모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전 약혼자였던 아이린과 있을 때 적어도 내 인물이 빠진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렴 당연한 일이었다.
로판이라는 장르에서 주인공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선남선녀라는 점이다.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격언이 가장 판치는 장르지 않나.
내가 원작에서 언급 한 번으로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긴 해도 제국 제일 미녀라는 아이린의 전 약혼자다.
외모에 급이 맞아야 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였다.
“어떡해, 아직도 붓기가 안 빠지셨어요.”
그러나 매일 아침이 짜릿한 그 외모도 지금은 빛이 바랬다.
볼은 눈에 띄게 부어있었고, 이마에는 푸르딩딩한 멍이 들어있었다.
루나가 눈망울에 걱정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내 볼을 건드렸다.
“아야야.”
“앗,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네?”
빈말로라도 멀쩡하다곤 못 말했다.
이건 회복에 적어도 몇 주는 걸릴 부상이었다.
“히잉, 죄송해요.”
“네 잘못 아니니까 풀 죽지 마.”
나는 시무룩해진 루나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친 주인을 간호해주려는 시종에게 뭔 잘못이 있겠어.
“고상하게 말로 끝내자는 거 굳이 매를 든 아버지 잘못이지.”
아버지가 나를 부른 용건이 아카데미 건이라는 루나의 추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거기다 내 염려마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버지가 정말 날 두들겨 팬 것이다.
명목은 좋았다.
수도에서 망신 안 당하도록 실력을 점검해주겠다는 거였으니까.
하나 누가 봐도 구실이었다.
본심은 마탑은 거절해놓고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청개구리 아들의 괘씸죄 처벌이었다.
“진짜 어디 뼈라도 부러지지 않은 게 기적이네.”
“지금이라도 제대로 몸 상태를 검진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냐, 아버지 나름대로 잘 조절했겠지.”
자기 몸 관리뿐만 아니라 남 굴리는 데도 이골이 난 분이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나를 굴릴 만큼 경우가 없으시진 않았다.
“그래도 이 상태론 어디 움직이지도 못하겠네.”
단정한 외양이란 귀족의 기본 소양이다.
얻어맞은 흔적을 누군가에게 보였다간 품위가 크게 실추될 망신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관에는 이런 상황에 쓰일 만능 대책이 존재했다.
“포션 좀 찾아서 넘겨줘.”
“네, 제가 뿌려드릴게요.”
“부탁할게.”
포션.
병이면 병, 저주면 저주, 상처나 체력마저도 회복시켜주는 만능 물약이다.
물론 포션이 진짜 만능은 아니었다.
포션엔 질적 차이가 존재하며, 최하급의 경우엔 타박상에나 듣는 파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귀족이었다.
웬만해서는 구하기 어렵다는 중급 이상의 포션도 가문엔 상비약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또 개인적으로 포션 제작자와 연이 있기도 했다.
덕분에 마음껏 포션을 사용해도 나는 떳떳했다.
화아아!
루나가 깨끗한 면포에 포션을 적셔 내 상처에 두들겼다.
개미가 기어가듯 간질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이내 화한 상쾌함과 함께 상처의 붓기 등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글쎄…….”
포션의 효과는 확실했다.
괜찮을 것 같은데?
“윽.”
섣부른 판단이었다.
나는 순간 엄습해오는 지독한 편두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괘, 괜찮으세요?”
“잠깐만…….”
나는 포션을 쏟아부으려는 루나의 움직임을 막았다.
안타깝게도 이건 포션으로 치료될 문제가 아니었다.
슬슬 약 먹을 시간이네.
내가 루나의 귀에 소리 낮춰 속삭였다.
“그거 좀 줘.”
“……그거요?”
“어,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
“잠시만요.”
내 조용한 속삭임에 루나는 바짝 긴장하며 문밖을 살폈다.
그렇게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가 조심스레 물건을 건넸다.
그것은 중지 길이의 종이 막대였다.
빻아 말린 식물을 내부에 채우고, 종이로 둘둘 만 물건.
한 마디로.
담배다.
“저는 바깥에서 망볼게요.”
루나가 창문을 활짝 열곤 바깥으로 나갔다.
나 또한 혹시 몰라 창문 밖의 인기척을 살폈다.
이건 그만큼 유난을 떨 일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렇듯 담배란 유해한 물건이다.
그에 반해 중독성은 강한 만큼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가 힘들었다.
마법사이든 기사이든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깨끗한 몸을 목표 삼는 이들에게 백해무익했다.
그렇기에 영식이나 영애의 흡연은 불법은 아닐지언정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아버지에게 발각되면 진짜 어디 한 군데 부러져도 할 말이 없었다.
“흐읍.”
나는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쉬었다.
불에 탄 마력초의 연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곤 혈관을 따라 전신을 내달렸다.
“후아.”
포션이 상처를 치유할 때보다 몇 배는 농후한 청량감이 휘몰아쳤다.
지끈거리던 편두통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정신이 맑아지며 시야가 환히 밝아졌다.
겉보기로는 담배이나 내용물이 담배와는 달라서 그렇다.
이건 마력초와 허브 등을 배합해 내가 주문 제작한 특제 궐련이다.
그렇지만 몸에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라고 했다.
마력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찻잎으로 우리는 정도라면 각성제로 제격이지만, 태운 연기를 직접 흡수하는 건 과했다.
“좀 살 것 같네.”
예외적으로 내 몸은 그 과한 독성을 필요로 했다.
주기적으로, 또한 마력을 쓰기 전후로 이를 피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니.
이것이 내가 마탑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루나, 누구 온 사람 없었지?”
나는 흡연의 증거를 인멸한 뒤 밖으로 나왔다.
“아, 집사장님께서 잠깐 다녀가셨어요.”
“집사장이? 왜?”
“가주님께서 주인님이 깨어나셨으면 세안 마치는 대로 바로 조찬을 들러 오라 하셨대요.”
“끙.”
화풀이는 어제 끝난 거 아닌가.
무슨 용건이 남아서 부르는 건지.
“알겠어.”
일단 불렀으니 가자.
나는 아래층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늦었다.”
아버지께서는 먼저 식당의 상석에 자리 잡고 계셨다.
얼굴 보자마자 날아온 퉁명스러운 인사에 기분이 썩 좋지가 못했다.
“하나 있는 아들 밤새 아파서 끙끙 앓도록 만들어놓고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네가 밤새 앓은 걸 왜 내 탓인 양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예?”
“네가 맞을 짓만 안 했어도 내가 매를 들 일이 있었겠느냐?”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귀족의 식사치고 아침은 소박한 편이었다.
잘 삶은 달걀에 잘게 찢은 닭가슴살, 걸쭉한 수프.
퇴역 기사라면서 여전히 현역처럼 관리하는 아버지를 위해 마련된 식단이었다.
식사에 집중하고 있자 아버지가 말했다.
“있는 대로 엄살을 부린 것치곤 멀쩡해 보이는구나.”
“포션 발라서 그런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포션으로 치유가 된다는 것 자체가 멀쩡하단 얘기다.”
“더 심했으면 입학식 날짜에 못 맞췄을 텐데요?”
“그러라고 하는 소리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손에 턱을 괴고 뚱하니 날 바라봤다.
“차라리 네가 마탑 대신 후계를 잇겠다고 했으면 내 이리 답답하진 않았을 거다.”
아버지는 타는 속을 잠재우려는지 호쾌히 냉수를 들이켰다.
“마탑을 버리고 선택한 게 아카데미라. 모두가 네 선택을 비웃을 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말을 번복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미 떠나버린 열차다.
이제는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내가 마탑에 입문하기란 불가능했다.
“지나간 일에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정신 건강에 안 좋습니다.”
“…….”
아버지는 떨리는 주먹을 참아내며 깊이 한숨을 토해냈다.
“아카데미로는 언제 출발할 셈이냐?”
“오늘 점심 즈음입니다.”
“이런 일엔 아주 잽싸구나.”
“아버지가 아시기 전에 준비는 대충 마쳐놓았으니까요.”
남은 절차는 가주인 아버지의 허락뿐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리라 생각한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집사장에게 검토를 맡아라.”
“네.”
“더 필요한 건 없고?”
“필요하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연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긴 한 모양이다.
결국 아버지께서도 고집을 접고 아닌 척 내 의사를 존중해주셨다.
“내 듣기로 이번 아카데미 입학 기수에 황태자께서 포함되어 있으시다던데.”
“예, 알고 있습니다.”
황태자는 원작의 주요 등장인물이니 나와 같은 기수였다.
“네 전 약혼자인 아이린 공녀도 입학할 것이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외에도 고위 귀족의 자제들이 다수 입학한다고 했다. 교회 쪽에서도 사람을 보냈다는 것 같긴 한데,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니니 대충 마음에 두고만 있어라.”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입을 닦는 척 표정을 숨겼다.
교회를 배경으로 둔 입학생.
이는 내가 아는 한 원작의 주인공이 가진 배경이었다.
아버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으나 확실한 게 맞았다.
원작의 시작 시점이 다가왔으니 주인공은 반드시 등장할 것이었다.
“아카데미에 가면 고위 귀족의 자제들 앞이라고 해서 기죽지 마라.”
아버지가 나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비록 우리 가문이 남작가일지언정 힘이 없는 건 아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저 말이 진실임은 알베지아의 후계인 내가 잘 알았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거라. 남부는 평화로우니 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수도로 올라갈 여유는 충분하다.”
“그럴 일이 생기면 잊지 않고 꼭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오늘 기사단과 함께 훈련할 예정이니 준비가 끝나면 알아서 떠나거라.”
말해놓고 쑥스러웠는지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가 무슨 꿍꿍이인지 굳이 캐묻진 않으마.”
그러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시곤 목소리를 흘렸다.
“다만 폐하께서 하사하신 가문 명에 먹칠하는 일만 없도록 해라.”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보겠다. 그리고.”
아버지가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가서 잊지 말고 자주 편지 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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