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40화 (40/40)

〈 40화 〉 드디어 확인할 때가 되었다

* * *

“오셨군요.”

굵직한 음성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목소리의 주인인 월프는 지척의 남성을 바라보며 유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서, 계획이 뭡니까?”

눈빛만큼은 매서웠지만.

“하하…….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리원은 즉시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친절한 어조의 물음이었지만 속에 담긴 감정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빨리 입을 열라는 듯 재촉하는 월프의 표정이, 아니 슈트레만 가문 장남의 시선이 냉랭했으니까.

터엉─!

그는 지체 없이 탁상 위에 문서 뭉치를 올렸다.

종이의 양은 대단히 많았다.

그 위에 함께 있던 커피잔이 세차게 흔들렸을뿐더러 조용했던 월프의 방이 순간 소음으로 가득 찼으니.

“쯧, 조심 좀 해주세요.”

“아하하, 죄송합니다.”

지금은 한밤중이다.

혹여 누가 깬다면 곤란했다.

교관이 시끄러운 소리에 방문을 열기라도 한다면 더더욱 난처했다, 남들은 절대 보면 안 될 비밀스러운 만남이었으니까.

생도와 관리원이 독대하는 건 명백한 부정행위이며 중대한 교칙 위반이었다.

‘일만 잘 처리했어도…….’

다시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텐데.

“쯧.”

월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오늘 작전이 성공했어야 했다.

예나가 잠수 장비의 고장으로 인해 깊은 심해 속으로 빠지고, 기절하든지 돌부리에 치이든지 등의 심한 부상을 입었어야만 했단 말이다.

그래야.

합동 훈련을 못 하지 않겠는가.

일주일 내내 골병이 들어 의무실에 처박혀 있으면 자연스레 평가 점수 또한 나락으로 갔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나?

이 망할 관리원의 소홀함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정말 한심하군.’

열등하다.

우매하다.

당장이라도 놈의 정강이를 차고 싶었다.

그러나 애써 참아냈다.

녀석은 관리원이었고 자신은 생도였기에.

아무리 가문이 지닌 위상이 극심한 차이를 보이더라도 사관학교에서는 상급자를 존중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래서 이 종이들은 뭡니까?”

“지금부터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월프는 자신의 착한 마음으로 용서하자 생각하며 관리원을 쳐다봤다.

일단 새로운 방도를 가져왔으니 한 번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이 귀족적인 품성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못 배워서 그랬으리라.

머리가 좋지 않아서 그랬으리라.

“우선 이거부터 봐주십시오!”

월프는 그리 마음을 다스리며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또 보호구군요.”

“하하! 이번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만큼 준비 중이긴 하지만……, 오전과 같은 불상사는 다신 없을 것입니다.”

관리원의 손가락 위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검게 칠해진 철제 표면.

상세하게 구현된 관절 부위.

사관학교 수업 중 생도 간 대련 수업 때 착용했던 장비라고 착각할 정도로 유사한 외관을 가졌다.

‘아니 똑같은 건가.’

갖가지 장치가 추가된 점을 제외하면 동일한 보호구였다.

“단체 훈련마다 쓰이는 물건입니다. 여기 보이시는 설비를 통해 위치 추적이나 심박 수 확인, 그리고 사망 판정 등! 최첨단 과학화 시스템을 자랑…….”

관리원은 또다시 전문 분야에 대한 설명이라는 고질병이 돋아, 부릅뜬 눈으로 끝없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걸 들어줄 리가 있겠는가.

월프는 그의 말을 곧바로 잘랐다.

“이걸 어떻게 할 겁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본론에 들어서라고 눈치를 줄 뿐.

“마, 말이 길었군요, 죄송합니다. 이건 아직 남은 수많은 수업 중에서도 마지막 시간, 개별 대련 교육 때 사용할 물품입니다.”

“흐음, 마지막 날이군요.”

“워낙 급하게 수립했는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전에는 무리일 거 같습니다.”

관리원은 재빨리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월프의 반응이 좋지 않았기에.

계획이 실행되려면 거의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낯빛이 싸늘해졌으니까.

‘그래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관리원의 우려와는 다르게 월프는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어쨌든 예나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소리로 받아드렸으니. 그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혀를 할짝댔다.

‘성공하기만 하면 돼.’

지금껏 참아왔는데 이 잠깐을 참지 못할 리가 있나.

예나를 철저히 짓밟을 수만 있다면 며칠이라도 감내할 수 있다. 그만큼 그녀에 대한 앙심이 컸다.

“계속 이야기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크게 내색하지 않고 머리를 까닥였다.

“이번엔 월프 님의 장비도 함께 손을 댈 생각인데 말…….”

관리원은 냉큼 받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월프는,

후릅─

고급스런 풍미의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며 조소했다.

“흐음?”

들으면 들을수록.

관리원의 작전이 매력적이었기에.

──그 때문일까.

관리원과 월프 모두가 대화에 몰입한 이유에서였을까.

그들은 전부 듣지 못했다.

찰칵!

저 밖, 지붕 너머에서 울려퍼지는 카메라의 셔터음을.

* * *

쉬익, 쉬이익─!

수많은 생도들이 물 위를 거닐었다.

말 그대로 걸어다녔다.

­야, 부딪칠 뻔했잖아!

­죽을 뻔했네.

­이거 왜 이리 어려운 거야?

그리 잘 움직이진 못했지만.

“다들 마지막 한 바퀴만 돌고 복귀한다!”

밑에선 가르텔의 크게 손짓하며 외쳤다.

[각성자 전용 수중 훈련장]

그의 옆으로는 위와 같은 문구가 크게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마련한 바닷가 해변, 그리고 그 내부에 듬성듬성 세워져 마치 이곳을 통과하라는 듯 손짓하는 콘크리트 장애물까지.

모두 교육에 최적화된 설비였다. 당장 초짜 티만 나던 생도들의 움직임을 봐도 효과를 체감했다.

휘잉, 휘이잉─!

처음 훈련에 돌입했던 저번과는 달리 능숙하게 잠수하는가 하면, 이제는 교관의 인솔 없이도 자유자재로 바닷가 위를 돌아다니기에 이르렀다.

­으, 으아아!

­원 하나 통과하기 존나 어렵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직 이동에 난항을 겪는 건 그때와 매한가지였다.

“예, 예나! 왜 이리 능숙해?”

“아버지가 마도 장교였잖아.”

“배운 거야?”

“응.”

“그, 그렇구나…….”

그렇기에 나의 몸놀림이 더욱 빛을 바랬다.

과거 하늘에서 날아가는 폭격기를 만으로 찢어발긴 적도 있는데 이런 구식장비 하나 통제하지 못하겠는가.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 코앞에서 에리카가 마치 하늘을 날려는 닭처럼 버둥거리는 모습을 하품하며 감상하고 있을 수준이었다.

쉬이잉!

장애물과 가까워지면 시멘트로 축조된 원형의 구조물을 손쉽게 지나 에리카의 경외를 샀다.

“음?”

그렇게 편안히 휴식을 만끽하던 와중,

후웅─!

난 불현듯 옆을 스치는 세찬 바람에 눈을 크게 떴다.

“대단한데.”

그리고 감탄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쟤는 뭐든지 다 잘하냐…….

­마나도 높고, 실력도 좋고 인생 참 공평하네.

생도들의 말소리대로였다.

“리, 리나는 정말 엄청나네.”

에리카의 중얼거림대로였다.

과거 황녀였던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몸을 가눴다.

당연히 따라잡을 수 있는 빠르기였지만, 장비를 다룬 데 두 번째이며, 나처럼 미리 이용해본 전적이 없다는 걸 고려하면 무시무시한 재능이었다.

­진짜 안 움직이네!

­야, 야 흥분하다가 떨어진다.

저기 애를 부득부득 쓰는 월프에 비하면 더욱.

둘의 실력 차가 극명했다.

성격도 실력도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달까. 리나는 내게 안 좋은 음모를 꾸민 전적이 있어도, 적어도 훈련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그러나 월프는 이조차도 업신여겼다. 저리 뒤편에서 훈련하는 척, 친구들과 떠들고만 있지 않은가.

……오늘이면 확인할 수 있겠지.

그나마 리나보다 나은 점이라면 따로 나에 대해서 흉악한 일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지만, 이 시간부로 그 장점마저 사라질지도 몰랐다.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헬레나에게 자료를 받을 예정이었으니.

“슬슬 가자.”

“으, 으응.”

난 에리카를 데리고 지상으로 하강했다.

다가온 점심시간.

길고 길었던 활동이 마침내 끝났다.

“죽이려 했다라.”

하지만 움직이는 와중에도 고민은 끝맺지 않았다. 전날 죽을 뻔했던 상황이 강렬하게 기억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잠수 장비에 장난을 쳤으리라.

연방과 제국의 합작 훈련지의 장비 관리가 소홀할 리는 없었다. 하물며 높은 경도를 지닌 마력석이 자연적으로, 우연히 부서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는 건 혹자가 훼손했다는 건데.

난 그 배후를 월프라고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확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나의 짓이 아니라는 건 확인했으니 용의자는 그놈밖에 없었다, 아직 심증만 있기에 단언하지 않을 뿐.

그렇기에 헬레나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얻길 희망했다.

“저쪽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그렇네.”

난 땅으로 도착해선 질서를 맞춘 생도들 사이에 섰다.

“다들 주목!”

“예!”

가르텔은 모든 이가 모인 걸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다들 멀미를 참고 극복하려는 노고에 박수를 보내주마, 수고했다. 기초 적응 훈련은 금일로 종료다. 내일부터 전문 시설에서 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알겠습니다!”

“이만 해산하도록 하지.”

그는 평소대로 수업을 끝마쳤다.

공지 하나를 빼면.

­드, 드디어 괴수를 볼 수 있는 건가?

­기대된다…….

드디어 사관학교 때와 다를 것 없는 학급별 교육이 끝나고, 세비르폴 훈련지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전문시설 훈련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생도들은 웅성거렸다.

“……괴수 훈련이라.”

나 또한 그들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다만 여타 아이들처럼 처음으로 괴수와 마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리는 게 아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대감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괴수는 어제 충분히 겪어봤다.

모든 실력을 전부 보일 순 없었기에 상한선을 두어 적당한 등급의 녀석들을 불렀긴 하였어도, 온몸이 흠뻑 피로 젖어 들 때까지 흥겹게 싸웠다.

재밌었지.

당장이라도 다시 방문하고 싶도록 즐거웠다.

그래서 표정을 굳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할 거 같았으니까.

“에리카, 오늘도 같이 못 갈 거 같아.”

“우, 우응…….”

“대신 내일 숯불 돼지고기 꼬치 사줄게. 다음부터는 별로 떨어질 일 없을 거 같으니까 함께 훈련할 수도 있을 거야.”

“저, 정말? 알겠어!”

하늘색의 머리를 휘날리고 주먹을 꽉 쥐며 보조개를 짓는 에리카 너머,

“먼저 들어가 계실 수 있겠습니까.”

“음? 무슨 일 있어요?”

“……파견과 관련해서 교장과 면담을 진행해야 해서 말입니다. 함께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기숙사에서 봬요.”

리나에게 열심히 거짓말을 하는 저 시녀장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눠야 할 거 같으니.

또각─! 또각─!

경쾌한 군홧발의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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