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39화 (39/40)

〈 39화 〉 보다 많은 기쁨을, 행복을.

* * *

반들반들한 민머리의 소유자.

“이쪽으로 오시게!”

“알겠습니다.”

“여기가 바로 제국과 연방의 합작 단련장,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력을 자랑하는 괴수 전문연구 시설이라네, 허허!”

난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세르티의 외관을 살피는 한편, 코앞의 창문 너머에 보이는 전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확실히, 아름답군요.”

“그렇지? 다른 데서는 이런 곳을 찾아볼 수 없어!”

그의 말대로였다.

콘크리트의 공동마다 방치된 수십의 괴수들.

­다들 이쪽으로!

­마법 얼마나 전개되었습니까!

­거의 다 돼…….

그에 대항하여 난투를 치르고 있는 다양한 각성자들.

가히 장관이었다.

연방의 무한한 괴수 수급과 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결정체라는 명색에 알맞게 예상보다 더 뛰어난 수준의 훈련 시설을 자랑했다.

……연구소장도 시설의 격에 어울리는 인물이고.

스윽─

난 매끈한 뒷머리를 내보이는 세르티를 쳐다봤다.

“음? 무슨 일 있는가?”

“단련장이 생각보다 대단해서 놀랐습니다.”

“으하하! 그럴 수 있지, 음음.”

저 호탕한 웃음을 자아내는 중년이 연방 최고의 과학자, 아니 전 세계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능력자라는 걸 누가 알겠는가.

물론 지금도 이곳을 감독하는 만큼 대우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세비르폴 훈련지 이 하나만을 맡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학자였다, 추후 대숙청 시기에 희생당하는 것도 안타깝고.

그는 제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는다.

수천의 장교.

수십만의 인민.

수백의 유망한 학자 및 장군진.

연방의 서기장이 권력을 견고히 다지고자 주도한 정치적 대학살극에 휘말린 희생자 중 하나가, 바로 저 세르티 고트라프였다.

국가 예산 횡령이란 누명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니 어찌 딱하지 아니할까.

그래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상황이었다.

아직 떳떳하게 살아있으니.

대숙청이 발생하는 시기는 아직 수년이 남았다.

그 의미는 잘만 한다면 세르티를 살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제국으로 망명시킴으로써.

“그런데 괴수 대항 단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알았나? 보통의 생도들은 수업 때만 오고 잘 찾아오지 않던데.”

“지나가던 엘프 연구원분께 들었습니다.”

“흐음, 그래서였군……? 아무튼 잘 왔네. 예나라고 했나? 우선 이쪽으로 따라오게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티는 흰색의 가운을 휘날리며 단련장으로 안내했다.

“알겠습니다.”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륵─

입술을 할짝대며.

꼭 제국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죽을 때까지 국가를 위해 연구를 시키고 싶었다.

어찌 그런 욕구가 샘솟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르티의 두뇌와 재능을 활용한다면은 제국이 승전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건데.

마침 조국이 버리는 과학자렸다──

억지로 그를 빼 올 필요도 없었다, 때를 봐서 인도하면 될 뿐.

설득이 필요하겠지만.

관계를 다져야겠지만 그건 걱정하지 않았다.

충분히 자신 있었으니까.

애초에 실패할 걱정으로 망설일 리가 있겠는가,대전쟁의 승리를 꿈꾸는 입장에서 세르티의 회유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도착했네.”

“여기가 괴수 대항 단련장, 이군요.”

“그래.”

[제 21구역 훈련장]

거대한 철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위로는 연방어가 적힌 표지판이 박혀있었다.

역시 읽을 수 있나.

분명 제국어가 아닌 글씨인데 의미를 알았다.

아니 단순히 알기를 넘어 유창했다.

언어 자체가 예전 삶에서 존재했던 실제 국가에서 따온 거기도 하고, 수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레 터득했기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좋네.

불편함을 하나 던 거 아닌가.

다른 언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방어를 읽을 줄 알면 브리튼이나 갈리아 공화국의 말들도 마찬가지겠지.

좋은 장점이 생긴 것이었다.

“그럼 난 이쪽으로 가보도록 하지. 훈련장에 들어서면 확성기로 목소리가 들릴 테니 거기에 집중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세르티는 말을 끝마치곤 바삐 자리를 떴다.

반짝이는 두피를 내보이며.

“……하얗군.”

그리고 난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

끼익, 쿠구궁─!

키를 훌쩍 넘기는 대문을 힘차게 옆으로 밀었다.

녹슨 철골 덩어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휘이잉─!

입구를 활짝 열자 세찬 바람이 새어 나왔다.

때아닌 한기에 정신이 선명해졌다.

지나왔던 여타 건물들과 다를 바 없는 텅 빈 공동이었다

바닥에 듬성듬성 보이는 알 수 없는 핏자국을 빼면.

보랏빛의 혈흔──

보자마자 괴수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리 특이한 혈액은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흔적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수했다.

얼마나 많은 전투가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아. 들리나 예나 프로이드 생도?

그리 주변을 감상한 지 얼마가 지났을까.

확성기에서 익숙한 성조의 목소리가 울렸다.

슬쩍 고개를 드니, 두툼한 강화유리 너머에서 세르티가 흐뭇하게 웃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예, 들립니다.”

난 곧바로 그 물음에 답했다.

확성기 바로 아래에 위치한 무전기로.

그래도 쌍방향 통신이 가능하게 만든 건지 훈련자들을 위한 전신 기계가 따로 비치되어 있었다.

─각설하고 바로 훈련 시작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원하는가? 편견일 수도 있으나, 외견을 보아하니 그리 높은 건 좋지 않을 듯한데…….

세르티가 걱정 섞인 어조로 물었다.

비록 지직거리는 전파음이 만연한 확성기였지만 그가 혹여 상처라도 입을까 염려하는 거 하나쯤은 알 수 있었다.

“9등급, 한 마리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심려하지 않아도 됐다.

난 가장 낮은 등급에 하나의 개체, 제일 쉽다고 해도 좋을 괴수를 부탁할 심산이었으니까.

우선 적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난이도를 올리든 말든 그게 먼저였다.

과거 삶에서 인간은 많이 만나봤더라도 괴수는 난생처음 보는 것이니…….

철저히 모든 상황을 따져보는 내 성격으로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했다.

아무리 난투를 치루고 싶더라도.

“후우.“

난 밑입술을 잘근 씹으며 뒷머리를 묶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애써 수 십의 괴수를 한꺼번에 끌어모으고 싶은 욕구를 접었다.

어차피 한 마리만 상대할 건 아니니.

게임 속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망설이지 않으리라.

꽈드득─!

그리 다짐하며 가죽 장갑을 꼈다.

맨손으로 피를 만지는 건 더러웠으니까.

─준비됐나, 예나?

“바로 보내주셔도 문제없습니다.”

─허허, 알겠네. 좋은 포부구먼, 그래.

세르티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동시에 불쾌한 고철의 마찰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저기로 나오는 거군.

벽면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철창문이 있었다.

아니, 이젠 없다고 해야 하나.

바닥에 파여있는 홈에 박혀있던 수여 개의 창살이 천천히 위로 위로 올라가며 입구가 열렸다.

“크르르…….”

그 사이로는 붉은 눈의 늑대가 보였다.

─가장 나약한 개체긴 하나 조심하게.

세르티가 경고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저기서 거품 섞인 타액을 흘리는 늑대로 향해있었으니.

상세히 말하자면 늑대라고 칭하기에도 부적절했다, 어떤 동물이 눈을 세 개나 지니고 있단 말인가.

“……큰 뿔 늑대.”

난 주먹을 쥐었다 펴며 읊조렸다.

놈은 그 이름에 맞게 이마 중심에 거대한 뿔이 있었다.

안전이라는 이유로──

거의 반은 잘리고 남은 끝부분마저 두터운 헝겊에 감싸여 있었지만, 번외로 위의 사유로 이빨도 뽑힌 상태였다.

정말 훈련용,

그 목적에 걸맞은 외관이랄까.

물론 난 놈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즐거움, 전투에서의 행복을 주면 흡족하게 여길 뿐이었다.

그렇기에 딱히 불쌍하다 느끼지도 않고.

저들이 이빨이 뽑히든 무언가가 잘려 나가든 알게 뭔가,어차피 놔뒀으면 민간인에 손해를 끼쳤을 괴수일 텐데.

“캬아악──!”

마침내 큰 뿔 늑대가 다가왔다.

아무리 등급이 낮더라도 놈은 마나를 지닌 괴수, 일반적인 짐승들을 가뿐히 압살할 수준의 속도로 달려왔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서는,

사악─!

터질듯한 근육을 소유한 앞발을 휘둘렀다.

“흡!”

난 재빨리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같은 때에 체내의 마나를 이끌어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들 평범한 몸으로는 저 늑대에게 자그마한 상처 하나 내지 못하니.

“크륵!”

녀석도 그걸 아는걸까.

큰 불 늑대는 세 개의 눈으로 인해 시야각이 넓고 동체시력이 뛰어나단 이점을 살려, 지체 없이 후속타를 날렸다.

모든 공격들이 뛰어난 정확성을 보였다.

별다른 준비 시간이 없었다고 위력이 낮은 것도 아니었고.

파스슥─!

난 신체의 유연함을 살려 몸을 뒤로 굽혔다.

콧잔등 위로 괴수의 발이 지났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그로 인해 생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앞머리가 뒤로 휘날렸다.

……지금.

그렇게 공격이 지나고, 녀석의 배가 보였다.

절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난 희미하게 웃으며 찰나의 순간을 지나치지 않았다.

주먹 쥔 한쪽 손을 얇지만 단단한 얼음으로 뒤덮고는,

꽈드득─!

그대로 녀석의 배를 향해 뻗었다.

으직!

“크륵……!”

귓가에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괴수는 단말마의 신음을 질렀다.

허나 이 한 번의 주먹질로 만족을 할 리가 있겠는가.

큰 뿔 늑대의 움직임이 지체된 잠깐 동안에 날카로운 빙결체를 만들었다.

푸욱!

그대로 창을 찌르듯,

가느다란 얼음덩어리를 상체에 박아넣었다.

“캬, 캬르륵.”

놈의 숨이 죽어갔다.

재빠르던 몸놀림은 더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놈의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쉴 새 없이 팔을 왕복하며 복부를 찔렀다.

투둑, 투두둑.

그럴수록 얼굴이 피로 물들어갔다.

까맣던 가죽 장갑은 이미 물감이라도 칠한 듯 보라색으로 까마득하게 뒤덮인 지 오래였다.

마침내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돼서야,

“후우, 후우.”

난 길게 심호흡하며 손을 내뺐다.

손을 털자 콘크리트 바닥엔 보랏빛의 핏방울이 흩뿌려졌다.

드디어 괴수와의 전투가 끝이 났지만…….

전혀 웃을 수 없었다.

행복감에 젖어 들지 않았다.

“……더 강한 개체.”

너무 약했으며 식상한 싸움이었으니까.

치아도,

손톱과 발톱도,

하물며 머리의 뿔도 없는데 어찌 긴박함을 느낄 수 있겠는가.

“세르티 소장님. 5등급, 5마리 가능합니까.”

그래서 난 뺨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확성기 아래 무전기를 향해.

─크하하! 좋네, 당장 대령하도록 하지.

그의 대답을 듣고는 웃음을 지었다.

허락해주는 성싶었기에.

그도 작금의 난투가 어찌 흘러갔는지 봤을 테니 저렇게 나올 수 있는 거겠지.

“이번엔 좀 즐거우면 좋겠는데.”

난 자세를 낮춘 채로 창살을 응시했다.

끼익, 끼이익──!

이내 다시금 문이 열리고.

“캬아악!”

“꾸어어어!”

다양한 괴수들의 보이는 순간,

타다닥─!

흑색의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 나갔다.

더욱 더 많은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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