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23화 (23/40)

〈 23화 〉 국가 의사당 화재 사건

* * *

이웃 국가 홀란드인의 방화로 시작된 사건은 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순 범죄가 아니었으니까.

제국의 상징이자, 국가 주요 기관인 의사당을 불태운 건 둘째 치더라도, 범인이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무려 공산주의자, 그것도 열성 당원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가 전체에 피바람이 불었지.

노동자당의 당수와 그 지지층은 이 사태를 발판삼아, 본인들의 권력과 자경단을 이용하여 눈엣가시였던 국내 공산당 파벌을 말살시켰다.

그리고 결국, 노동자당은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곧 있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당수를 총리라는 요직까지 앉히게 되지.

어떻게 보면 제국이 대전쟁이라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는 시초가 이 사건인 셈이었다.

“후우…….”

그리고 내겐 노동자당에 입당하겠단 첫 번째 목표를 이룰 기회다. 난 혼란스러울 앞날을 떠올리면서, 휘날리는 코트 밑단을 움켜쥐었다.

제국에게는 비극적인 이날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뭐가 어찌됐든, 몇 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하는 커다란 이벤트였으니까.

심지어 아직은 노동자당이 제국을 완전히 휘어잡기 전이잖은가. 지금같이 이른 시기에 당수의 눈에 든다면,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면 훗날 내 뜻대로 움직이기 한결 편해지겠지. 승전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일 보 다가가는 셈이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하늘이 아름다워서.”

“그치?”

그러면 그 전까지는 할 일도 없는데, 한 번 에리카를 꽤 구색을 갖춘 군인으로 성장시켜 볼까.

“슬슬 일어나자.”

“벌써? 조금 더 있고 싶은데…….”

“내일 와플 사줄게.”

“음, 생각해보니까 들어갈 때가 됐네.”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국가 의사당 화재가 일어나기까진 아직 많이 남았고, 요즘 이름 모를 녀석의 미행으로 개인 훈련도 부담스럽겠다, 지금이 에리카를 도와줄 적기였다.

심지어 연구 부서 신청 기간이잖아.

추천서를 받지 않은 이상, 부서에 가입하기까지 많은 심사를 거칠 터, 미리 그녀에게 몇 가지 사항은 숙지를 시켜 놓는다면 탈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따로 단련한다고 하니, 그 때를 이용하면 되겠지.

“여기 손잡아.”

“응! 근데 내일 와플 사주는 거 맞지?”

“그래.”

난 콧물을 훌쩍이는 에리카의 손을 맞잡은 뒤, 잔디에서 벗어나 기숙사로 향하는 흙길로 걸음을 옮겼다.

“예나, 그럼 내일 보자!”

“잘 가.”

마침내 기숙사 앞에 도착하고서는, 환하게 웃는 에리카를 배웅했다.

“…….”

이내 발랄하게 떠났던 그녀의 뒷모습이 더 보이지 않자, 정모를 눌러쓰며 만연했던 웃음을 지웠다.

터벅, 터벅.

건조한 군홧발의 마찰음만을 울리며 다시금 길을 걸었다.

합동 훈련이라.

“재밌겠네.”

자그마한 중얼거림과 함께.

* * *

합동 훈련 공지가 발표된 다음 날,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정오.

『그럼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다들 합동 일정 전까지 몸조심하도록 해라. 경중에 따라,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가르텔은 여느 때와 같이 특유의 근엄한 어조로 수업을 마쳤다.

“예나!”

“그래, 같이 점심 먹자.”

“응, 헤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익숙하게 에리카가 따라왔으며, 언제나 그랬던 거처럼 식사하러 식당으로 움직였다.

“돼지고기네.”

“잘 먹겠습니다!”

다람쥐마냥 볼이 빵빵하게 부풀도록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에리카를 보듯,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오후였다.

아그작─!

난 그 잔잔한 시간 속에서, 조용히 식사를 음미했다.

역시 맛있네.

겉면은 바싹하게 구워지고, 속은 부드러운 육질을 지닌 것이 고급진 풍미를 선사했다. 제국에서 신경 써서 그런지, 음식의 질이 확실히 좋았다.

“으아, 잘 먹었다.”

“이제 와플 먹으러 갈까?”

“아, 맞다, 헤헤. 어제 사주기로 했지?”

길고 길었던 식사가 끝나자, 그녀를 데리고 나와 식당에서 가까운 매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거 먹어도 돼?”

“응. 그리 비싸진 않으니까.”

곧이어 가게에 도착하고서는, 외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의 수많은 와플 중 하나를 골라,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에리카의 손에 안겨다 줬다.

“받아.”

“고마워!”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할 거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직 하루는 길다. 난 오늘을 지루하게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었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슬슬 어제 세운 계획대로 움직일 준비를 해야지.

에리카를 가르치기로 다짐했다.

최소한 그녀가 가고 싶은 부서엔 합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쓸만한 군인으로 성장하지.

“에리카.”

“으븝?”

“수업 끝나고 단련장에 간다고 했지?”

끄덕끄덕─

“같이 갈래?”

"우으웁?"

“입에 있는 거부터 다 삼키고 말해."

“꿀꺽. 저, 정말 진심이야?”

상념을 마치는 순간, 망설임이란 없었다. 입에 잔뜩 와플을 머금은 그녀를 향해 곧바로 단련장에서 함께 훈련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래."

“난 환영이야!”

다행히 거절당하는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럼 가자."

"응!"

동의를 구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에리카는 콧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한 눈으로 봐도 싱글벙글함이 묻어나오는 몸짓으로 단련장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걸었다.

즐거워 보이네.

같이 훈련한다는 게 그리 기쁜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진지하게 단련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겠지. 흔한 생도들처럼, 간간히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리란 상상을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예상은 빗나갈 예정이었다. 탈진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결심한 지 오래였으니까.

"예나, 도착했어.“

끝내 다다른 목적지는 사관학교의 수많은 단련장 중 하나였다. 기존에 내가 수련하던 허름한 곳과는 달리, 사관학교 중심에 위치해서 그런지, 부지도 컸고 상대적으로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덕분에 움직일 맛이 나겠군.

"에리카.“

"으응?“

넓은 공터에 도착도 했겠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우리 곧 있으면 합동 훈련이지?”

“응.”

“부서 가입 심사도 받아야 하고.”

“그, 그런데?”

“그렇다면 실력을 빨리 올려야 하겠지?”

터벅─ 터벅─

시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에리카를 향해서 군홧발을 거칠게 내디뎠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진중한 어투로 이야기하여 당황한 성싶어도 멈추지 않았다.

“예, 예나?”

겁먹은 토끼같이 눈망울을 떨든 말든, 그저 그녀의 손목을 억세게 잡고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우리 대련하자."

“아?”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기면 볼 만지게 해줄게.“

* * *

콰앙─!

기숙사와 별로 멀지 않은 단련장, 그 안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새하얀 빛줄기가 번쩍였다.

“하아, 하아.”

전부 리나 고유의 신성 마법에서 비롯된 여파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으려나.'.

그녀는 이마에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바닥에 나뒹구는 철골을 흘겨봤다. 이런 수준의 힘을 보일 수 있는 생도는 별로 없었다.

끽 해봐야 월프만 할 수 있달까.

"아."

아니다. 예나 프로이드, 그 외견만은 순진무구한 아이라면 이런 위력도 식은 죽 먹기일 거야.

꽈드득!

리나는 얼굴을 닦으려던 수건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7등급이라는 최하위의 수치로 기록되어 있다지만, 현재까지의 행보는 이를 믿기 어려워지도록 만들었다. 분명 본인의 진짜 실력을 숨긴 것이다.

쉽게 볼 수 없는 영악함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비밀을 밝혀낼 테다. 리나는 헬레나가 좋은 활약을 보이리라 믿었다. 아무리 예나라도, 황가의 보금자리를 지켰던 시녀장을 당해내진 못하리라.

“훈련 다 했어?”

“응.”

옆 단련장에 있던 월프도 어느새 수련을 마쳤는지, 직접 이쪽으로 찾아오곤 물과 함께 말을 건넸다.

“역시 황녀는 뭔가 다르네.”

“…….”

리나는 그가 내민 병을 받아들면서도, 꿋꿋이 녀석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무시했다.

‘그냥 가면 좋았을 텐데.'

월프는 이처럼 매일같이 극진히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었지만, 딱히 바란 적도 없고, 그냥 귀찮기만 하였기에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집착에 가깝지. 같이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단련장에까지 따라오냐는 말인가.

"그래서 왜 왔어.“

물론 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넌 그 예나라는 년 어떻게 생각해?”

“……왜?”

“그냥, 혹시 친하게 지내나 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러면 됐어."

리나는 고개를 돌려 월프를 바라봤다. 곧이어 몸을 좌우로 건들거리며 웃는 월프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당부했다.

“우리 생도 신분인 거 잊지 마.”

“내가 언제 잊었다고 그래?”

“사관학교에서 잘리면 끝이라고.”

굳이 이런 주의를 주는 이유가 있었다.

불안해.

싫긴 해도, 같이 지낸 시간이 수년이 넘는만큼, 그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네가 만만하게 볼 애가 아니야.”

자신에게 걸리적거리는 놈을 치우거나 정리할 때마다, 저와 비슷한 말들을 내뱉었으니까.

'그래도 멍청하진 않은 이상…….‘

함부로 뭘 하진 않겠지.

여긴 연방이라는 먼 국가의 영토이며, 슈트레만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교칙을 피해갈 수 없는 엄중한 공간이기에 아무리 이 놈이라도 처벌받을 수 있었다.

그가 나이에 비해 덜떨어진 도덕심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상식쯤은 박혀있을거다.

……아마도 말이지.

당연히 헬레나처럼 은밀하게,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움직이면 괜찮지만, 저 자유분방한 남자가 이를 지킬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 가볼게.”

“응, 내일 봐!

어찌 됐든 오늘 계획한 수련을 전부 끝냈겠다, 그녀는 공터를 빠져나오며 망사로 꽉 묶었던 머리도 풀었다.

사락─

그러자 백색의 머릿결이 큼지막한 원을 그리며 등허리로 내려왔다.

‘어차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사실 월프가 퇴학을 당하든 말든, 혹은 처벌을 받는지 말든지 별생각이 없었다. 그가 이 학교를 나간다고 해서, 내게 오는 피해는 없었으니까.

되려 지긋지긋한 목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게 될 테니 좋아해야 한달까.

'지금은 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사실 누굴 신경쓸 형편이 아니었다.

어느새 턱 밑까지 부서 신청 마감 기한이 다가왔기에, 하루라도 빨리 향방을 결정해야 했다. 이어서 합동 훈련 전까지 성장에 매진할 필요성이 있었다.

’우선 부서부터 합격하자.‘

하나씩 차근차근히 하는 거야.

사그작─

리나는 미리 코트 주머니 속에 접어뒀던 서류를 꺼내고는, 가슴 속에 소중히 품으며 걸음을 옮겼다.

[마도전술 계획부 부원 신청서]

와중에는 잉크로 마감된 봉투 겉면이 햇살에 반짝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