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16화 (16/40)

〈 16화 〉 저 아이를 뺏길 순 없다

* * *

점심이 끝난 뒤의 집무실.

탁, 타악─

가르텔은 탁상에 앉아 업무 서류를 훑었다.

수많은 문서가 그의 주변에 흩뿌려져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세 어절의 제목을 가진 서류 하나가 가장 눈에 띄었다.

[아스트라한 교관 추천서]

그는 종이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은은한 미소를 띄었다.

예나에게 줄 편지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녀석이었어.’

그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흐뭇함이 피어올랐다.

아무리 아버지가 프로이센 마도술을 개량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건 웬만한 재능을 요했다. 더군다나 예나는 1학년 이잖는가.

아직 마도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3학년 생도가 널린 마당에, 고작 후보생 신분이 마도술을 완벽히 깨우치다니.

천재다.

훗날 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재능을 지녔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안타깝지.”

만약 마나만 충분했다면. 하다못해 월프 수준이라도 되었다면, 사관학교 단연 최고로 손꼽혔을 텐데.

가르텔은 단안경을 벗으며 수납장에서 성냥을 꺼냈다. 곧이어 품에 있던 파이프에 연초를 넣고,

칙, 치익, 화르륵─!

불을 붙였다.

“후우…….”

매끈한 올리브 나무로 이뤄진 흡입구를 여물고, 멍하니 예나 프로이드라는 이름이 적힌 추천서 상단을 바라봤다.

신은 무색하게도, 예나에게 허약함을 넘어 끔찍한 능력치를 안겨줬다. 아무리 몸놀림이 좋다고 한들, 그녀는 마도 장교다. 마나가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마도전술 계획부라면 그 아이에게 충분한 장래를 보장할 수 있겠지.”

연구부서에 대한 추천도 그런 배경들을 고려하여 결정한 사안이었다. 그녀에게 일종의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몸이 나쁘면, 머리를 매우 좋게 만들면 되잖아? 전술 및 전략연구 분야의 최고를 달리는 계획부로 보내, 예나를 천재적인 군사가로 성장시킨다.

그렇게 성공적인 발전을 이륙하면…….

‘제국 행정부로 데려간다.’

그게 최종적인 목표였다.

예나도 싫을 게 없는 제안이었고,

가르텔은 등받이에 몸을 뉘인 뒤, 천장으로 하얀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일평생 본 적 없는 유형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장점을 가진 아이이기에 절대로 놓칠 마음은 없었다. 행정관의 시선에서 꼭 얻고 싶은 인재였다.

그래서 추천서를 쓰는 노고까지 감수하면서 예나를 후임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하나 걱정이라면 루츠 담당관의 행동인데.’

데리안 담당관을 후임으로 두고 마도전술 계획부를 총괄하는 인물인만큼, 나쁘지 않은 안목을 지녔을 테니 예나를 욕심내어 가로챌 지도 몰랐다.

루츠는 연구부서 총괄 담당관이라는 높은 직책을 가졌기에, 충분히 그럴 만한 권한이 있었으니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다행히 루츠가 성격이 괴팍하고 딱딱하기도 할 뿐더러, 지금은 타지에 가 있으니 한시름을 놓겠지만, 만일이라는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가.

가르텔은 계획부와 마찰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끼익─!

그런 자잘한 생각을 하던 중, 불현듯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음?”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

가르텔은 자신이 격식을 차려야만 하는 상대임을 확인하고, 곧바로 재떨이에 파이프를 털었다.

풀어헤쳤던 코트의 단추를 채우고 정모를 똑바로 눌러썼다.

“총책임장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남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몇 년 동안 본 사이인데 아직도 그런 예를 차리는가. 그만 허리 펴고 편하게 앉지.”

게르트 폰 루스테트, 입학식 연설의 당사자인 그가 인자한 노인네의 얼굴로 가르텔을 찾아왔다.

“이쪽에 앉으시죠.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래, 설탕 없이 부탁하네.”

가르텔은 노년의 남성을 소파로 안내했다.

치이이─

얼마 지나지 않아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끓여 대접했다.

“고맙군.”“항상 드시는 맛으로 준비했습니다.”

“허허, 그래.”

루스테트는 원두의 향을 느끼며 목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서명이 필요하다고?”

“후보생에게 추천서를 써주려고 합니다.”

“자네가?”

그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사관학교에서 몇 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처음으로 가르텔이 기피하기만 하던 추천서를 쓰려는 상황이 흥미로웠으니까.

“예나 프로이드라는 학생을 계획부에 입부시킬 예정입니다. 성적은 낮지만, 머리가 무척 좋은 거 같아서요.”

가르텔은 교장의 질문을 평온하게 답하고, 추천서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루스테트는 목에 걸친 돋보기안경으로 종이를 확인한 뒤, 헛웃음과 함께 눈앞의 교관을 흘겨봤다.

“성적이 최하위인데 자네가 추천한다니. 오래 살 고 볼 일이군.”

삭, 사악─!

이내 만년필을 꺼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서명했다.

가르텔은 믿었으니까, 예나 프로이드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였지만, 절대로 거짓말을 고할 녀석은 아니라고 확신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추천서를 쓰는 건 사관학교 최초 아닌가? 심지어 전교에서 가장 낮은 성적인 생도를 말이야.”

그래도 자세한 내막은 알아야겠지.

“무슨 연유가 있나?”

루스테트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궁금증은 해결하고 지나가야 속이 후련하지 않은가. 당최 예나 프로이드라는 생도가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가르텔이 이리 푹 빠졌는지 알고 싶었다.

“개량된 마도술을 선보이더군요. 심지어 종합 능력이 4등급에 준하는 생도마저 대련에서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

“뭐?”

루스테트는 가르텔의 대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난치는 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들은 내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단 이틀 만에?”

“예.”

“기초 훈련소에서 마도술의 형태를 배우기에도 급급한데, 그 기술 전체를 개량했다는 말인가.”

“참전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거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많은 장교들을 배출했던 만큼, 저 말이 얼마나 허황된지 알았다.

“허허.”

하지만 저 가르텔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보면 또 혼란스러웠다. 저런 얼굴을 지을 때면 진실된 이야기만 한다는 걸 잘 알아서, 초를 치기에도 애매했다.

“흐음.”

그렇다면 기회를 한 번 줘볼까.

이렇게까지 확언하는 건, 본인이 예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거니 거절하기 애매하기도 하고.

‘그의 말이 맞길 바래야겠지.’

루스테트는 그동안의 신임을 믿어보기로 했다.

진정으로 가르텔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언급한 예나 프로이드라는 생도는 장차 제국에 좋은 동력이 될 인재니까.

“이름이 예나 프로이드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자네 안목이 맞았으면 좋겠군.”

터억─

“서명은 아까 끝났으니, 그대로 생도에게 주면 돼, 그럼 가보도록 하지.”

루스테트는 책상에 문서를 올려놓곤, 몸을 일으켰다.

“예, 들어가십시오.”

“커피는 잘 마셨네. 원두 맛이 좋더군.”

덜컥─!

마침내 집무실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교관이 욕심을 내는 생도라.’

덤덤한 표정에서 자그마한 웃음꽃을 피웠다.

* * *

몇 분을 걸은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찾았다.”

난 드넓은 부지를 바라보며 땀을 닦았다.

허수아비 형상의 단단한 철골 구조물과 다 사용하면 쓰라는 용도로 쌓여있는 여분, 그리고 입구에 걸려있는.

[제 43 단련장]

나무 간판까지, 누가 봐도 여기가 수련을 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뀐 게 하나도 없네.

쿵, 쿠웅─!

땅에 깊이 박혀있는 철골을 두들기자 뭉툭한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단단했다. 언뜻 보면 고철덩어리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마력석을 조합해 제작한 합금이어서 엄청난 강도를 자랑했다. 강철과는 비교도 안되겠지.

마나 저항력도 대단했다.

슬쩍 마력을 흘려보내자, 블랙홀처럼 전부 빨아들였다. 각성자를 대상으로 만든만큼, 힘이든, 마법이든. 웬만한 공격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내 최종적은 목표는, 최선을 다해 이 무식하게 두꺼운 덩어리를 박살내는 것이다.

원래라면 가볍게 부쉈겠지만, 힘이 있어야지.

찌이잉─!

난 손가락 끝에서 일렁이는 얼음 구체를 흘겨봤다.

현재로선 이 한 가지 마법을 십 분 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절대적인 양 자체가 줄어들었기에, 과거보다 더욱 정교하고 밀집된 마나 운용을 해야 됐다.

결국 수련이 답이야.

매일 몸을 깎고, 또 깎아, 예전의 마나와 육체를 되찾아야지. 적어도 돌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은 있어야 돼.

스륵, 스르륵─

난 팔에 걸쳤던 코트와 정모를 내려놓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쳤다.

“하아.”

뒤이어 꼬물거리는 손바닥 위에 새하얀 서리 결정을 형성했다.

과연 현실에선 마법이 어떻게 발동되고, 어떤 타격을 입힐까. 한 번 마나가 고갈되면 얼마가 걸려 회복이 되고, 최대로 위력을 내면 여파가 어느 정도일까.

“프으으…….”

침착하게 숨을 갈무리했다. 손목까지 내리앉은 서리의 차디찬 온도를 느끼며, 눈앞의 철골 표적에 집중했다.

사락─

이내 바람이 멎어 휘날리는 머릿결이 내리앉고, 주변 나무의 흔들림이 잦아들자,

타다닥!

땅을 세차게 박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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