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사관생도 입학식
* * *
몸이 작아져서인지 전보다 움직임이 가벼웠다.
터벅! 터벅!
난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사관학교 본관 내부로 향했다. 이미 알고 있던 시설인 만큼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전부 똑같아.
같은 위치에 똑같은 외형의 건물이었다. 모든 것이 게임에서 마주했던 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러나 웅장함만큼은 예외였다. 이젠 이 세상이 현실이 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건물 꼭대기에 있는 독수리 동상에서 전과 다른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외벽에 그려진 규칙적인 문양에서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왔고.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이젠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인한 흥분이었다.
「너도 여기 왔냐?」
「장교 돼서 인생 역전할 거니까 지켜봐라.」
「그 전에 퇴학당할 듯.」
강당 내부로 들어섰을 때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왁자지껄한 실내, 수백의 생도들이 오와 열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란 가히 장관이었다.
그들 전부가 과거 게임에서와는 다른 다양한 반응을 내보이고 있었다.
“하하…….”
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풍경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로 여기가 디지털 조각으로 이뤄진 곳이 아님을 체감했다.
동경하던 세계를 목도한 거잖아, 이젠 내가 내딛고 있는 땅바닥이 데이터 조각이 아니라 돌과 모래로 실제하고 있고? 어찌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난 남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강당 구석으로 향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움직였는데…….
“쯧.”
이건 조금 문제인 걸.
미간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생각 외의 문제를 맞닥뜨렸다. 길을 거닐었을 적엔 몰랐지만, 강당에 들어서자 확실하게 체감됐다.
눈높이가 상당히 낮아졌다.
다른 이들의 뒤통수에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신체가 변화하면서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의 머리카락이 생긴 것이 가장 불편한 줄로만 알았지만, 키가 이렇게나 줄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본디 드넓은 단상이 보여야 할 눈앞엔 큼지막한 어깨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위화감마저 들었다.
일종의 페널티인가.
신체 능력이 낮아졌다. 과거 몸 구석구석 보였던 근육은 사라지고, 말랑한 살집만이 자리했다.
한순간에 드높았던 키와 강인했던 몸을 잃어서인지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하.”
조금 아쉽긴 하네.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낙담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던 바였으니까.
딱히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 세상이 현실이 되며 씌워진 일종의 굴레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마나로 서열이 갈리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었기에, 어차피 마도 장교의 삶에 있어서 신체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었으니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으, 으으음…….”
이처럼 까치발을 올리면 앞이 보이긴 하기도 하고.
아무렴 어떠하리. 더 이상의 상념은 그저 비생산적인 행위일 뿐, 난 까치발을 들고 턱을 치켜올려 이름 모를 생도의 어깨 너머의 세상을 둘러봤다.
역시나.
그리고 그 광경은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흑색의 독수리가 그려진 국기, 현대 유럽풍 느낌의 건축양식과 마지막으로 모국어를 쓰는 현수막 등.
전부 아스트라한 사관학교의 특징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제국의 내외적으로의 정치적인 상황도 별다를 게 없다는 거겠지.
결국 사관학교가 전과 다르지 않다는 건, 이 사관학교가 설립된 연유와 함께 현재 제국이 휩싸인 국제 정세 역시도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이 사관학교는 정치적인 이유로 설립된 곳이었기에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훗날 1차 대전쟁이라 불릴 싸움에서 제국이 패배하고, 그로 인한 강화 조약으로 인해 빼앗긴 것 중 하나인 군대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바로 이 사관학교였다.
물론 비밀리에 말이지.
현 상황에서 각성자로만 이뤄진 마도 장교단 창립은 엄연한 조약 위반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멈출 제국이면 훗날에 두 번째 대전쟁이 일어났을까?
전혀 아니지.
제국은 연방과 거래를 맺었다. 본인들의 군사 기술을 제공해주는 대신, 힘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기로.
학교의 이름에 연방의 지방 도시인 아스트라한에 쓰여있는 게 그 때문이었다.
나도 본 건물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기밀에 붙여져 있을 테니, 실제로는 마도 장교 후보생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어디 시골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리라.
「야, 야 온다!」
「시,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상념을 끝마치자 때마침 생도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재잘거리며 동기와 수다를 떨었던 이, 멍하니 주변 시설을 구경하던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단상 위를 올려다봤다.
정확히는,
『흠, 흐음──!』
어느샌가 마이크에 입가를 가져다 댄, 마치 중세 귀족 가문의 백작과 같이 좌우로 길게 뻗은 콧수염을 지닌 노인을.
난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주시했다. 깃털 형상의 휘황찬란한 견장과 드높은 계급을 나타내는 금장까지, 한 눈에 봐도 보통 인물의 외관이 아니었다.
『반갑군 후보생들』
목소리도 굵직하며 그 안에서 근엄한 게 웬만한 카리스마가 아니었다.
저러니 모를 수가 없었다, 강인한 지도력과 갈매기 수염을 지닌 인물이 사관학교에 한 명뿐이었으니까.
여기 있는 생도들마저 저 노인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저 노인은 바로,
『아스트라한 사관학교의 교장, 루스테트라고 한다.』
대전쟁 당시 유능한 참모로 소문났던 장교, 그리고 이젠 제국 동부를 총괄하는 사령관인 루스테트였으니까.
「제국을 위하여!」
생도들에겐 루스테트란 경외감이 들고도 남는 인물일 터, 강당에 자리 잡은 수많은 학생들은 그를 향해 제국식 경례를 취하며 예를 갖췄다.
『제국을 위하여.』
교장은 그 복창에 짤막한 인사로 답한 뒤, 자신의 모자에 달린 독수리를 매만지며 연설의 포문을 열었다.
『제국군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마도 장교를 육성하는 곳이 바로 여기인 건 알고 있겠지. 자네들은 특별히 선발된 각성자라는 것도.
서두는 칭찬이었다.
『난, 모두가 제국의 보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대전쟁 이후로 피폐해진 국가를, 일으켜 세울 것도 자네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 뒤로는 격려가 이었다.
그는 천장의 백열등 아래, 가슴의 메달은 수많은 훈장을 빛내며 생도 후보생의 능력을 칭찬했다.
지금껏 기초 훈련을 이수하는 데 대단히 고생이 많았다는 둥, 앞으로 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가 바로 너희라는 등, 분위기를 풀려는 듯 친근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역시 사관학교에 오길 잘했어!」
「이제 진짜 마도 장교가 되는 건가?」
그런 루스테트의 진심이 먹힌 건지, 긴장감이 굳은 얼굴을 유지했던 생도들은 점차 낯빛이 밝아져 갔다.
몇몇은 화창한 앞날을 예상하며 기대감을 품기까지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감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작금의 말들이 그저 허례허식에 불과함을 알았으니까.
『그렇기에, 자네들은 잊지 말아야만 해.』
다른 사람도 아닌 루스테트라면, 작금의 말들은 그저 본론을 입바른 소리에 불과한다는 걸 단번에 짐작했다.
『자네들이, 아니 마도 장교 후보생인 너희들이 하는 짓은 전부 제국과 귀결되는 것. 분란을 일으키면 제국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과 동일해.』
그런 내 판단이 정확했던 건지, 루스테트는 어느새 인자한 웃음을 거뒀다. 그리곤 경고성이 짙은 말들을 토해냈다.
『그래서 이 말은, 꼭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길 바라는 바이네. 만약, 사관생도라는 신분을 뒤엎고 멍청한 짓을 하는 순간!』
쿠웅─!
그는 주먹을 꽉 쥐고는 마이크가 달린 탁상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강렬한 효과음은 스피커를 통해 강당 내부를 웅웅 울렸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을 명심하도록. 알겠나?
「예……, 예!」
생도들은 지레 겁을 먹으며 대답했다.
직전의 해맑았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단 말이지.
어느샌가 차갑게 얼어붙은 강당 속에서, 나는 얕은 웃음을 내뱉었다.
저 괴팍함은 여전하군. 저 노인네의 성격은 천방지축이라는 사자성어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처음은 유하게 대하고는 그 뒤론 다시 살벌하게 경고한다.
『물론 본교의 생도들이 그런 짓을 벌일 리는 없겠지만 말이네, 허허.』
그리고 또다시 이처럼 단숨에 밝아지는 어투로 생도들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도저히 갈피를 못 잡게끔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루스테트가 신입 생도들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정신력을 검증해본다나 뭐라나.
이미 한 번 당해봤기에 기억하고도 남았다.
과거 루스테트의 저런 성격 때문에 대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애를 먹었기에 그의 성격이란 알다마다였다.
루스테트가 ‘네가 마도 중대 중에 최고의 지휘관이다!’라는 신임을 바탕으로 날 날마다 최전선에 끌고 다녀, 함께 보낸 기간이 상당해 그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함께 붙어있었던 기간만 몇 년인데…….
지금도 그때를 상기하면 머리가 절레 저어졌다.
『입학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네.』
짝짝짝─!
어찌어찌 루스테트가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는 차례가 다가오자, 난 생도들의 박수소리에 맞춰 손뼉을 마주쳤다.
이제 끝인가?
언뜻 보면 이제 입학식이 막바지에 들어선 성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기엔 찝찝하다. 썩 후련하지 않다. 분명 공지가 하나 더 남아있던 거로 아는데.
“아.”
그제야 떠오르는 나머지 연설에 관한 기억에 짧게 탄식하며, 루스테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만약 스토리의 변함이 없다면, 아직 한 마디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물론 내년엔 여기서 반은 못 보겠지만 말이야, 허허.』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저 악마 같은 웃음을 절대로 잊지 못하지.
『6개월 뒤, 모든 평가를 종합하여 적격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네. 성적순으로 정렬해 하위 3할은 탈락을 부여할 계획이고.』
『물론 아예 임관을 못 하는 건 아니네. 따로 부관 교육을 받을 이를 선별하는 거지. 제국의 재원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고, 부관도 조금 필요해서 말이야.』
쉽게 말해 탈락하면 하향 지원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부관이 된다면 추후 마도 중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지 못하기에, 어떻게 보면 장교로서 자격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루스테트는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갑작스레 공표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전혀 그런 공지는 못 들었는데?」
그런 사실을 전혀 들었을 리가 없는 생도들은 일순간에 당황으로 휩싸였다.
그들로서는 이제 연설이 끝났나 싶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셈, 사전 공지조차 없었던 만큼 루스테트의 발언은 상상 이상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럼 다들 오늘 하루 잘 보내도록. 제국을 위하여.』
「제, 제국을 위하여어─!」
그런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 소란을 즐기는 건지, 루스테트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강당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부, 부관으로 내려간다고?」
「미리 말을 해주던가…….」
생도들은 멍청한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고.
“하.”
난 학생들을 따라 인상을 쓰면서도, 반대로 입가로는 깊은 호선을 그렸다.
되려 교장의 저 말이 자격 심사 이전까지의 생도 생활이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설렘을 안겨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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