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쓸모없는 휴일 2
* * *
넘칠 듯한 인파 한가운데에 있던 김예림과 윤현수는, 느닷없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 찾을 수 없었다.
"…사라졌습니다."
"어? 진짜네?"
유민하는 천진난만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태도라서, 서혜은은 더욱 불편했다.
서혜은은 거부할 틈도 없이 유민하에게 끌려와 윤현수와 김예림을 미행하는 중이었다. 유민하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능력으로 은폐장까지 펼친 상태다.
왜 이렇게까지? 그리고 왜 나까지?
서혜은은 유민하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왜 이런 엉뚱한 짓에 끌어들인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이제 놓쳤으니까 집에 가도 되지 않나? 그렇게 현실 도피에 빠져있던 서혜은은 유민하의 다음 행동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단검은 대체 왜?"
단검을 뽑아들어 날을 살피던 유민하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잡아야지."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고는 싱긋 웃었다.
"따라와 줄 거지?"
*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그러니까 저번에 거미 여왕을 잡으러 갈 때 일상용 의수를 차고 간 것은 그냥 실수다. 자랑은 아니긴 한데, 딱 한 번 그런 거잖아.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실수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 내가 그 전투에서 죽도록 구르면서 배운 것은,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평화에 찌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일상용 의수, 이게 문제였다. 편의성과 사용감만을 중시한 결과 급박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헌터는 언제 어떤 상황에 불려나갈지 모르는건데, 감이 둔해졌나 보다.
그래서 지금 착용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일상용 의수였지만, 단순히 일상 생활을 위한 물건은 아니였다. 최소한의 스킬 보조 능력과 내구도를 갖춘 준전투용 의수인 것이다.
인파에서 빠져나와 골목길로 들어간 나는 전투를 준비했다. 감각을 깨우고, 스킬을 사용해 검을 만든다. 그러면서 휴대폰으로 신고를 넣었다.
도시 내 괴물 목격 보고. 야수종, 부르젤 타입.
새빨개진 얼굴로 손을 매만지던 예림이는 곁눈으로 신고 내용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었다.
좋은 선배 밑에 나쁜 후배 없다고, 예림이의 준비도 즉각적이었다. 순식간에 결정이 맺혀가 한 자루 검이 되었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생명체 감지].
"윽…"
"괜찮아?"
예림이가 사용하는 방식은 숨어있는 놈도 확실하게 잡아낼 만큼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몸에 걸리는 부하가 크다. 특히 바로 옆에 북적이는 인파가 있으니 더 버거웠을 것이다.
표정을 찡그리고 비틀거리는 예림이의 어깨를 부축해주었다. 예림은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잠시 안겨 있다가 조용히 나를 밀어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고 집중하려는 기색이길래 급히 제지했다.
"아, 잠깐만."
그리고 칼로 바닥을 긁어 대략적인 주변의 약도를 그렸다.
"흔적이 여기, 여기 있었거든? 그리고 이놈이 축축한 곳을 더 좋아하니까…"
그리고 기억을 뒤져가며 최대한 단서가 될만한 정보를 추합해 구역을 특정했다.
"특정 방향으로 감지할 수 있었지? 이 구간으로 찾아봐."
예림이는 잠시 약도를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 집중을 시작했다.
그녀가 스킬로 괴물의 행방을 쫓는 동안 나는 맥락 없이 출몰한 이 괴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야수종 중 부르젤 타입. 주둥이가 짧은 악어처럼 생겼는데, 도망치는 속도가 빠르고 투명액으로 잠시 몸을 감출 수 있다.
문제는 그 액체가 시간이 지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것. 놓치기도 쉽지만 뒤쫓기도 쉽다. 그래서 어지간히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데, 왜 도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근처에 괴물이 출몰했다는 보고는 없었다. 게이트도 없고, 교전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튀어나온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흔적이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자니 예림이가 다시 눈을 떴다.
"찾은 것 같아요."
예림이 가리킨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니 대피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곧 가드가 도착하여 상황을 통제하고 수색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별다른 소란 없이 미리 끝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런 생각 속에서 우리 둘은 더욱 서둘러 달려나갔다.
문득 흘러나오는 피 냄새가 걸음을 붙잡았다.
먼저 다리를 멈춘 것은 예림이었다. 골목길 앞, 그늘이 그 안쪽을 어둑하게 감춰버린다.
나는 예림이의 앞을 지키듯 몇 걸음 더 나아가 검을 비껴들었다.
익숙한 냄새, 낯선 상황이었다.
부르젤 타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짧은 거리로 뒤뚱거리는 꼴이 우습다가도 그 놀라운 속도에 깜짝 놀라게 되는 골치 아픈 녀석.
머리가 박살난 채로 벽에 박혀 있지만 않다면 제법 성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람이 있다.
풀 페이스 헬멧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전신 전투복과 덕지덕지 착용해 놓은 장비들로 몸의 윤곽도 감춰져 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늙었는지 어쨌는지 도무지 짐작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장갑 낀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그것을 증명했다.
"타이탄즈 시가지 사냥팀입니다."
나는 검을 내려 들고 인삿말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직접 잡으신 겁니까? 대단하시네. 수고를 덜었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잠시 확인할게 있으니, 협조 부탁 드립니다."
그렇게 세 걸음 앞, 검이 닿는 간격.
"어이쿠."
놈이 쏘았고, 내가 막았다.
"허락 없이 총 같은 거 쏘고 다니시면 안되는데."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놈의 손이 허리춤을 스치나 싶더니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총구가 망설임 없이 정확히 내 미간을 향했다.
섬찟했다. 공격할 줄은 알았지만 예상 이상의 실력자였다.
보통 이런 곳에서는 장비만 믿고 날뛰는 애송이가 나오는데.
"…막을 줄 몰랐는데."
상대의 목소리는 괴상하게 변조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알아채기는 힘들었지만, 아마 당황했다기 보다 아쉬웠다는 어조였으리라.
"누구는 빗나갈 줄 알고 쏩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한 바퀴 돌려 날을 확인했다. 제법 단단하게 만들어둔 물건인데 총알 한방에 완전히 우그러졌다.
그 사이 놈은 흐르는 듯이 손을 움직여 권총을 집어넣고 단검을 오른손 역수로 뽑아 들었다.
"이런 곳에서 총 빵빵 쏘고 다니면 잡혀갑니다. 알아요? 10분이면 올 텐데."
"10분? 치안이 좋은 곳이었군."
그렇게 짧게 중얼거리더니 달려든다. 직선으로 곧장.
직선적이라고 해서 단순하지 않다. 가장 취약한 각도를 선점하듯이 몸을 밀어 놓고 몸통으로 단검을 슬쩍 가린다.
목. 감춰졌던 단검이 순식간에 목을 노려 날아온다.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한 걸음, 그리고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손목을 쥐어 챈다.
실수였다. 아니, 잘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손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충격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의수가 살짝 삐꺽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맞았다면 충분히 내 목이 부러졌을만한 힘이 실려 있었다.
높은 등급의 신체 강화.
어설프게 쥐어 채려 한 것은 실수, 안일하게 맞아주지 않고 막아낸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
이것으로 스코어는 동등한 것 같지만, 숨은 실수가 하나 더 있었다.
온갖 무장을 두른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바짝 붙었더니, 그곳이 바로 놈의 영역이었다.
팔꿈치, 무릎, 가볍게 주먹, 다시 팔꿈치.
고도로 단련되어 있는 격투술의 연격이 급소를 노린다.
그리고 그 박력 넘치는 연타에 잠시 주의를 빼앗기면, 존재감이 흐릿해졌던 단검이 다시 살기를 벼려낸다.
그 끝에는 내 오른 어깨가 보란 듯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단검이 쉬익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어깨가 꿰뚫린다. 더할 나위 없는 타이밍이었다.
"나이스."
찔린 것은, 내가 아닌 상대 쪽이었다.
예림이가 던진 얼음 단검이 놈의 어깨에 명중하여 빠드득 얼음 갈리는 소리를 내었다.
날에 흐르는 한기가 어깨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놈은 즉시 뒷걸음을 쳐 물러났다. 어깨의 상태를 살피더니 다시 이쪽을 주시한다.
고민이 많겠지.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예림이가 먼저 달려들어 검을 맞댔다.
날 끝에서 피어오르는 서리 바람이 궤적을 그대로 그려내었다. 정신없이 몰아세우는 검격을 단검이 겨우겨우 막아내고 받아칠 때마다 그 궤적은 더욱 더 복잡해져간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녹색 빛이 골목을 덮었다.
"…여러 번 놀래키네."
아무런 특색도 없어 보이던 단검이, 어느새 빛으로 이루어진 녹색 도신을 팔뚝 길이로 길쭉하게 뽑아내고 있었다.
갑자기 무기가 길어졌다. 게다가 미리 알지 않았더라면 나라도 당할 수 밖에 없었을 타이밍이었다.
그런 까다로운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낸 예림이는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귀신 같은 년… 잘했다.
이번에는 동시에 달려들었다. 셋이 싸우기에 좁은 골목이었지만, 저 이상한 무기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이 골목을 통째로 커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놈은 다친 왼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여 단검 하나를 새로 꺼내들었다.
오른손에는 에너지 한손검. 왼손에 단검 하나. 물론 그냥 단검일지 어쩐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림이 가벼운 걸음으로 골목 벽을 타고 머리 위를 노린다. 나는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검을 내질렀다. 단순하지만 처리하기 어려운 두 방향 합공.
놈은 첫 공격을 힘겹게 막아낸다. 이어지는 공격에 전투의 흐름을 잃어버린 채 맥 없이 버텨내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곧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을 휘두르면서, 되도록 죽이지 않고 제압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예림이의 움직임이 흔들렸다.
마치 갑자기 보이지 않는 공격이라도 발견한 듯이 행동이 굳어졌다. 페이크 모션이나 숨겨진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의미 없이 몸이 멈췄다.
놈은 그 적나라한 틈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포위망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놈은 우리 둘 사이를 빠져나가 골목길을 달렸다.
혀를 한번 차고 놈을 쫓아 달리려는 차에, 파팡, 하고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걸음을 멈췄다.
"어휴… 선배 또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요."
담벼락 위, 민하가 가벼운 외출복 차림으로 태평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권총처럼 세워둔 손가락 끝에 바람 구슬이 일렁거렸다.
뒤이어 혜은이도 도착하여 반대편 담벼락 위에 바로 섰다. 손에는 보라색 불꽃을 피워올린 채였다.
솔직히, 고맙기에 앞서 당황스럽다.
"너희가 여기 왜 있어?"
"고맙지 않아요?"
"아니 그건 맞는데…"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하는 몇 발의 바람탄을 더 쏘아냈다.
놈은 팔을 휘둘러 손쉽게 공격들을 쳐내더니 어깨 부근을 매만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추적 스킬이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저거 도망치는데요? 점점 멀어져요."
"도망치는 거면… 에이, 됐다. 그냥 냅둬."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게 있었다. 나는 검을 흡수하여 갈무리한 후 예림이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방금 전의 실수도 그렇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예림이는 조금 창백한 얼굴로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아무런 상처도 없는 깨끗한 목이었다.
입술이 몇 번 달싹거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아까, 만약 선배였으면 단검은 버리고 다음 무기를 꺼냈을 거에요."
묘한 말이었다. 다음 무기가 있었을 때 이야기겠지만, 나도 일단은 염두해두고 있던 가능성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예림이는 마치 확신한다는 듯 움직임을 멈추어 대비를 했고, 그게 패착이 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실수와 핑계로 보기에는 너무 단호한 어투였다.
혹시.
"아는 얼굴이야?"
상대의 습관에 지나치게 익숙해졌을 때 나오는 실수가 있다. 예림이 암시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 같았다.
예림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얼굴이고 뭐고 보이지도 않았으니 알아볼 방법이 없긴 한데.
나는 자세하게 묻지 않고 대신 가드에 연락을 넣었다.
"선배, 진짜 안 쫓아가도 돼요?"
"우리 일도 아닌데 뭐. 신고만 넣으면 돼."
민하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정체야 대충 짐작이 갔다. 어디 기업에서 비밀 장비 테스트를 하러 왔거나 그런거겠지… 옛날에 진짜 엄청 많았는데.
보통 잡아봤자 그 기업이랑 괜히 얼굴 붉힐 일만 생기거나, 아무튼 간에 뒤처리가 귀찮다. 가드한테 맡겨 놓는 게 낫다.
그러니까 그건 미뤄 놓고.
"그래서 니들 여기에 왜 있냐고?"
"…기껏 도와줬는데 그런 거 물어보기에요? 너무하다."
"혜은아."
"민하씨가 끌고 왔습니다. 전 따라온 것 뿐입니다."
"야!"
*
"씨발, 그 새끼가 거기서 왜 나옵니까?"
"미안하게 됐군요. 그래서 사체는?"
"거, 뻔뻔한 소리나 할 거면 아가리 닥치십쇼. 딱 소각하려는 차에 왔으니."
"…그래. 어쩔 수 없죠. 죽였으면 그거로 충분해요."
"그래서, 그게 그놈 맞습니까?"
"맞습니다. 일이 잘 풀렸더라면 당신이 사용하는 장비는 그의 것이 되었겠죠."
"하, 그러면 나도 이딴 동네 안오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건 뭐, 그렇기는 한데."
그녀는 씨익 웃었다.
"저도 그 자식한테 흥미가 좀 생겨서 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