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반갑지 않은 얼굴 2
* * *
"당황스러우실 겁니다. 흔한 일은 아니죠. 예. 이해합니다. 안심하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곳이 지옥이고, 당신이 죄인이라면.
시간을 되돌려주겠다는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까?
*
우리가 헌터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사냥을 한다. 전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의 가장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사냥꾼들에게 미리 합의된 전장은 없다. 괴물들은 언제나 숨어있고, 우리가 그놈들을 찾아내는 순간 그곳이 바로 전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군인도 아니고 파수꾼도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 괴물을 죽이는 것보다 놈들의 흔적을 찾고 발자국을 훑어 놈들의 보금자리를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지금, 시가지 사냥팀에 전례 없는 호황이 찾아왔다. 아무도 반가워하지는 않지만.
좌표 E9Q3A1A3 충귀형 변태 흔적 발견.
"수신 양호. 현지 집합할 것. 이상."
밤의 하늘을 가른다. 건물의 옥상과 옥상, 거리와 거리를 징검다리 건너듯이 펄쩍. 그렇게 도착한 곳에 놈들이 있으면 1점, 아니면 계속 술래. 물론 득점을 해도 술래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술래는 항상 우리로 정해져 있다.
"안에 있어?"
"…제 스킬로는 다섯 정도 잡혀요."
"미약하게 흙이랑 풋내가 나요. 텃밭이나 화분은 아니겠죠?"
오늘도 1점이다. 내가 평생 동안 쌓아온 점수는 대체 몇 점이나 될까? 세어본 적은 없지만 무척 많을 것이다. 그게 마일리지라면 추첨 상품으로 프라이팬이라도 받았겠지.
"나랑 예림이 먼저 돌입한다. 민하, 혜은. 둘은 옆 건물. 각각 2층, 3층에서 대기."
"허가는요?"
"이미 받았어. 투입."
어쩌면 전자레인지도.
"상황 종료. 회수팀 불러."
냉장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새 좌표 뿌렸다. 이동."
자동차가 한 대 뽑혀 나올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점수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끝도 모르고 계속 쌓여가기만 한다. 쌓여가는 것은 점수뿐만이 아니다. 창고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사무실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어깨에는 피로가, 풋내기의 조막만 한 골통에는 경험과 지식, 그리고 회의감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렇게 우리는 끝없이 쌓여가는 것들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골목을 헤메이다가 마침내 두 손을 들고 환영 인사를 한다. 퇴근 시간이 당도했음을. 두 손 들고 항복을 외치는 병사처럼 얼굴에는 조금의 웃음기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혜은이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투지는 강건한 육체에서 나오고, 육체는 충분한 영양과 휴식 속에서 꽃피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나는 이제 집에서 쉴 권리가 있는 거야…"
혜은이는 문양으로부터 크아악하고 울려 퍼지는 신음 소리를 울리며 은근슬쩍 사라지려 들었지만, 아직 보내줄 수 없다.
"헤은아. 헛소리 말고 돌아와."
눈이 죽어 있는 채 기계적으로 다가온 혜은이의 손에 지도 몇 장을 얹어주었다.
"오늘 좌표 3번이나 잘못 알아들었지? 돌아가서 다시 확실하게 외워 놔."
"죽…여줘…"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에 마침내 감정이 돌아왔다. 그 감정은 분노, 증오, 후회, 절망,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려서.
하지만 어림도 없다. 외우라면 외워야지.
네비게이션이 항상 제 역할을 할지 말지는 알 수 없다. 긴급 상황에서 좌표만 듣고 제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다행히 요즘은 둘 다 모자람 없이 충분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넘친다.
"할 일은 없고 대우는 좋대서 왔는데… 선배한테 속았어…"
"미안하다. 나도 이럴 줄 몰랐지."
툴툴거리는 민하에게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죽을 노릇이다. 하지만 쉴 틈은 없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헤임달 이전의 혼란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헤임달은 멀쩡하다. 도시에 열리는 게이트들을 하나하나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대체 왜 게이트 반응도 없던 곳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건지, 그 괴물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그것들을 밝히는 데에 있어 헤임달은 한없이 무능했다.
혹자는 도시 외부에서 몬스터가 숨어들었노라고 주장했다. 도시 안 어딘가에 몬스터들의 둥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종류와 위치가 지나치게 제각각이었다. 결국 머리를 굴려 해결하려는 시도는 좌절되었고, 해결을 위해 헛걸음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재구축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가드와 솔저는 출몰한 괴물을 제압하고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이를 지원한다.
나머지 사냥팀들은 도시를 수색하며 숨겨진 괴물들을 찾아 도륙 낸다.
이를 위해 시가지 사냥 부서에서는 3교대로 휴식조, 지원조, 사냥조를 팀을 나눠서 활동 중이었다.
그러니까, 죽을 맛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민하가 우리 팀에 합류하지 않았으면 일이 몇 배는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민하는 자신의 특기 능력인 풍계 조작, 감각 강화, 광 굴절을 활용하여 넓은 범위를 고속으로 수색할 수 있었다. 김예림의 [생명체 감지]로도 저 정도의 수색 활동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현재 우리 팀의 핵심적인 존재로 부상 중이었다.
하지만 민하의 합류가 마냥 호재인 것은 또 아니었다.
"…전 먼저 갈게요."
예림이 차가운 목소리로 통보하듯이 말하고는 그대로 말릴 겨를도 없이 사라졌다.
팀 내의 분위기는 끝 모르게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김예림이 있었다. 예전에 공략팀에 있을 때도 저런 분위기였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더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특히 민하를 대하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쌀쌀맞아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알 수 있을 수준이었다.
"나도 가야겠어.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정말 쉴 틈이 없군."
혜은이까지 어색하게 변명 조의 말을 늘어놓으며 떠난 뒤에는 공터에 남은 것은 나와 민하, 둘 뿐이었다.
원래는 일이 끝나면 같이 뒤풀이도 하고, 저녁도 먹고, 그럴 계획이었는데…
"선배, 가요."
답답한 상황에 한숨을 내쉬는 와중 민하가 스스럼없이 어깨를 툭 두드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갔다.
건물 위를 뛰어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10분만 천천히 걸어도 정류장이 나온다. 굳이 힘을 빼기에는 너무 고된 하루였다.
그리고, 지금 민하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다.
아마 다른 팀원들이 없는 자리에서 꺼내야 할 이야기일 것이다.
괴물이 숨어있는 곳은 대부분 조금 외곽진 곳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도 낙후된 곳이 많아 가로등도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살짝 흐릿한 조명 아래 민하가 입을 열었다.
"선배. 예림 씨, 저 싫어하는 거죠?"
"왜?"
"그냥, 어쩐지 쭉 쌀쌀맞잖아요."
고민을 털어놓는 민하의 표정은 뚜렷하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다가 적당한 변명을 떠올렸다.
"중간에 들어왔으니까 조금 낯을 가리는 걸 수도 있지. 걔 보니까 원래 좀 내외하고 그러더라."
무어라 대신 변명하듯이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부터 쭉 김예림이 민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숨길 기색조차 없다는 것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고민에 잠겨 잠시 말을 멈춘 사이 풋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외, 내외… 선배, 너무 아저씨 같이 말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는 또다시 꽃이 피듯 웃음을 터뜨린다. 근심이라고는 티끌도 없는 투명한 웃음이었다. 그게 어쩐지 미안했다.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는 말이었지만 받아줬다. 편을 들어주지는 못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편을 들어주지도 못했는데 배려를 무시하기까지 할 수는 없으니 말을 돌리는 것을 받아줬다.
"얘는 진짜 오락가락하는 꼴 보면 병원 가야 돼. 특히 머리."
"선배가 데려다주면 갈게요. 아니다. 선배도 검사 한번 받아요. 특히, 머리는 꼭."
"싫은데? 내가 병원을 왜 가?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냥 인정하죠? 선배 진짜 맨날 아저씨같이 말하는데, 사실 서른 넘었죠? 나이 속인 거죠?"
"죽는다, 진짜."
그렇게 실속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와중 갑자기 팟, 하고 가로등이 꺼졌다.
갑작스러운 어둠과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끊어져 버린 대화의 맥을 선뜻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둠 속에서는 좀 더 솔직해진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그래서 입을 여는 것이 망설여졌다.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민하였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선배한테도, 예림 씨한테도."
나는 거의 넘어질 뻔했다. 굳을 뻔한 발을 겨우 움직여 가까스로 자연스럽게 다시 한 발을 내디뎠다. 민하가 이렇게 울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예를 들면 왜 계속 선배가 예림 씨한테 슈트를 만들어주는지, 방호 코트도 있으면서. 그리고… 또, 왜 예림 씨가 공략팀에서 이곳으로 옮겼는지, 올 이유도 없는데, 대체 왜 저한테 그렇게 쌀쌀맞은지, 그리고 왜 선배를…"
불이 켜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순간적으로 밝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에 민하는 말을 멈추고 싱긋 웃고 있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민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상상을 해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헛된 노력을 이어가는 대신 나는 입을 열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본인이 정리될 때까지 캐묻지는 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운하다고 생각했을까. 밝은 전등 아래에서의 침묵은 어둠 속에서의 침묵보다 무겁고 뜨거웠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려는 찰나에 또다시 민하가 선수를 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잖아요. 계속 저만 기다려야 되요?"
예림이한테 하는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고민하며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에 또다시 가로등이 꺼졌다.
어두웠다. 어둠이 천천히 발밑을 적셨다. 어둠 속에 한층 편하게 표정을 감추면서 고민했다.
쭉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 팀을 위해서도, 그냥 서로를 위해서도.
김예림과 유민하가 화해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어떻게?
충분히 어두워진 거리에 다시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민하는 서운한 듯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연기중입니다'하는 티를 냈다. 그래서 살짝 우습기도 했고, 마냥 웃기에는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데, 선배."
손질이 잘 된 램프처럼, 그 눈에 아련하고 따뜻한 빛이 살짝 서려 있었다.
"저, 오늘 선배 집에 가도 되요?"
지금 시간은 8시 20분.
야식을 먹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