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정호의 요구는 실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의 일을 알려 달라는 것도 사뭇 어려울 지경인데, 그 상황에서 뽑기의 결과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답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
당연하게도 파울라의 입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안 된다고?”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관리자라고? 반쯤은 내 실수가 맞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만날 수 없는 존재라고.”
정호는 파울라가 하는 말의 의미는 제법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관리자라는 존재 자체를 만난 것이 처음이니, 당연하게도 녀석들과 대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터.
어떤 질문이라도 답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이나, 꽤나 값진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관리자든 뭐든, 알 게 뭐야.’
정호에게는 관심사가 완전히 아웃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관리자’에게 세 가지의 질문.
그에 대한 답을 받아 낼 수 있다면, 분명 정호에게는 이로울 것이다.
앞으로의 적이라든가.
침공의 주체라든가.
그 해답을 알 수만 있으면 앞으로의 침공을 막아 내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리라.
하지만.
‘그런 문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수가 없잖아.’
침공의 주체를 알아내든, 앞으로의 적이 누구이든.
그것은 정호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결국 정호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더 많은 뽑기를 통해 화신과 장비를 뽑고.
처들어오는 적들을 막아 내는 게 전부일 테니까.
‘그 대부분은 이미 갖춰져 있고.’
심지어 그 대비조차도, 정호에게는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완전한 랜덤성을 지니는 화신 뽑기조차도, 육 성 등급의 화신을 퀘스트로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마당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정호는 이 말도 안 되는, ‘미래 점지’와도 같은 요구를 내던졌다.
답을 해 준다면, 가장 득이 되는 질문이고.
답하지 않는다고 손해를 보는 법도 없었으니까.
“으으, 정말로? 진짜 알아야겠어?”
머리를 싸매는 관리자가 그리 말을 내던졌을 때.
정호는 솔직하게 놀랐다.
“가능하긴 한가 보군.”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미래라는 건 자그마한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 아니던가.
“미래를 알 수 있다고?”
그렇기에 재차 질문을 내던졌으나.
“미래를 알 수 있다기보다는, 단편적인 추론이 가능할 뿐이야.”
“뽑기와 추론은 조금 거리가 먼데.”
“네가 생각하는 기준과는 다를 뿐이야. 오히려 확률에 기대는 도박이 더 정확도가 높지.”
정호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한 채, 파울라를 바라보았다.
대뜸 관리자라고 모습을 드러낸 것치고는 유능한 녀석이 아닌가.
“그, 그래도 그건 취소해 주면 안 될까?”
“나한테 문제라도 생기나?”
“물론 그건 아니지만… 역시, 다른 질문이 낫지 않을까?”
자신은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한없이 곤란함을 표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정호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질문은 지금은 취소하지.”
“정말? 그렇게 해 주겠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정호가 한 걸음 물러서자, 녀석은 곧장 밝은 얼굴로 변모했다.
“하지만 곤란한데, 그 외에는 다른 질문을 내던질 만한 것이 없군. 역시 취소하지 않는 편이…….”
“그,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당장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까……!”
정호가 곤란한 듯, 다시금 같은 질문을 내던지려 하자.
무엇이 그리도 급한 것인지 녀석은 곧장 자신의 품 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어, 정호의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이건?”
손바닥 위에 올라온 물건은 참으로 볼품없었다.
간단한 버튼 하나가 있을 뿐, 네오 유토피아의 쓰레기장에서나 볼 법한 고철 덩이.
“역시 형태가 조금 그, 그런가? 이곳에서 주머니로 들어온 물건 중 하나야. 아마도, 쓰레기겠지.”
정호가 숨겨진 네임드인 ‘발터 모델’을 잡을 무렵, 파울라의 품에 들어갔던 쓰레기 중 하나였다.
“형태는 상관없어. 내 손에 닿았던 거라는 게 중요하니까. 언제든 질문하고 싶어지면, 그 버튼으로 나를 부르면 돼. 앞으로 두 번 질문할 수 있으니까, 두 번. 나를 부를 수 있게끔. 그 정도면 됐지?”
“그때도 문제가 되는 질문이라면?”
“소환 형태로 세, 세 번으로 할 게……!”
품속에 고철 덩어리를 넣은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가 봐도 되나?”
“그래. 얼른, 얼른 가 버려.”
“뭐?”
“아니, 가도 좋다는 말이야.”
관리자라는 녀석이 한낱 유저 중 하나인 자신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실로 보기 힘든 장면이었으나.
정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뒤로했다.
끼이이익-.
낡은 문의 비명과 함께.
“…큰일 날 뻔했어. 그런 질문에 답하면 완전 규칙 위반이잖아.”
안도한 듯, 파울라의 한숨과 함께 혼잣말이 들려왔다.
“후우.”
물론 그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은 파울라뿐만이 아니었다.
‘큰일 날 뻔했네.’
손쉽게 정호가 물러난 것은 파울라, 아니 관리자를 배려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정호 또한 이 질문을 반드시 철회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게.
‘겨우 9만 코인으로 물어본 것 자체가 잘못되었지.’
자신이 원하는 화신의 기댓값에 미치지 못하는 코인의 수.
관리자가 답을 해 줬다면 ‘no’가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휘익- 탁.
품 안에서 녀석이 준 고철 덩이를 공중에 띄우고 받아 낸 정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조금 더 코인을 모으고 물어야지.’
기댓값에 충족했을 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물어봐야 최대의 이득이 아닌가.
그런 정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낡은 집에서 굳게 다짐하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드르륵- 드륵-
캉- 캉-
독재자로부터 해방된 네오 유토피아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족도를 위해, 대부분 정호가 직접 전투에 나섰던 터라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아주 피해가 없지는 않았던 탓에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자네도 만족할 것이라 믿네.”
개중에는 롬멜의 휘하에 있는 백장미단에 의해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쓰레기 더미.
아니, 기계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상 제작도 있었다.
‘신상.’
신상 제작은 톨비아에서 꽤나 중요한 스펙 업 요소다.
크라켄의 역습에서 얻어 낸, 신상의 효과인 뽑기 확률 증가와도 같은 이로운 효과를 내기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신상 제작에 정호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그리 색다른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걸 본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크라켄의 역습 때와는 달리, 네오 유토피아는 단 하나의 던전일 뿐이다.
단 한 번의 기회.
다시 지을 수도 없거니와, 어떤 효과가 일어나든 간에 정호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긴 해야겠지만.’
그렇기에 다음 던전으로 향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정호는 신상 제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기만 할 뿐이었다.
“쯧…….”
하나, 그것은 정호가 마냥 신상의 효과를 보기 위함은 아니었다.
‘언제 오는 거야. 이 새끼들은…….’
정호 또한,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을 따름이다.
완전히 공략이 완료된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감사의 의미로 주는 주민들의 골동품뿐이었으니까.
‘이 미치광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두 명의 미치광이, 알디니와 데미코프다.
언제고 복수하겠다고 하고서 사라진 녀석들을 네오 유토피아에서 만난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녀석들이 가져온 키메라는 정호에게 좋은 재료를 퍼다 주다시피 했으니까.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건지.’
하나, 네오 유토피아에서 만난 녀석들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알디니의 ‘디아볼로스’라든가.
데미코프가 꺼내었던 ‘드래곤 키메라’ 같은 종류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들은 네오 유토피아에서 멩겔레라는, 히틀러의 부하에 붙어 있는 신세에 불과했으니까.
‘틀린 모양이군.’
그래도 네오 유토피아를 클리어한 시점에 녀석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등장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 기다림도 한계에 다다랐다.
‘아쉽네.’
녀석들이 가져올 생물체는 분명 대단한 재료들을 퍼 줄 것이 분명했으나.
적어도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정호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떠나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었다.
물컹-
다만, 일어나려던 직후 느껴지는 기묘한 감촉.
쩌억-
새까만 슬라임과 같은 것이 손에 짚이는 것을 확인한 정호는 눈을 찌푸렸다.
마치 오래된 기름을 짚은 것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촉이 아닌가.
더더욱 이곳에 오래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 정호는 곧장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음?”
그런데, 새까만 덩어리가 떨어지기는커녕, 점차 손바닥에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망할…….”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호는 곧장 이 기묘한 물질을 떼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게 뭐야?”
질척- 질척-
정호는 크게 당황했다.
떼어내려던 반대쪽 손은 물론이거니와, 점차 달라붙어 오던 물체가 완전히 팔까지 침투하여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이윽고- 그 물체가 자신의 허리춤까지 장악했을 무렵.
갑작스레 나타나는 두 사람의 신형.
“하하, 결국 우리의 승리다!”
“어어? 무슨 소리야. 나의 승리지.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뭐라고, 이 노친네가!”
그 호들갑스러운 녀석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정체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어떠냐. 복수를 하기 위해 왔다.”
“그 녀석의 이름은 리본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지.”
“아니, 무슨 소리야? 저 녀석의 이름은 티아레 드- 앙골라로 정해져 있다고.”
또다시 시답잖은 일로 다툼을 하고 있는 둘.
당연하게도 녀석들의 정체는 미치광이들, 알디니와 데미코프다.
“그래서 이 녀석은 무얼 하는 녀석이지?”
그에 정호는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했다.
녀석들이 가져온 녀석이라면, 지금껏 기다리던 녀석이 아닌가.
“흥, 그런 여유로운 모습도 이젠 끝이다.”
“맞아.”
그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아, 쉬이 끝날 일이 아닐 것이리라.
정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품을 이리저리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검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떼어 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다.”
“녀석은 완전히 너를 파악할 거니까.”
‘파악?’
다만, 미치광이들의 말에 정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흥 그런 고상하지 않은 방법을 우리 앙골라가 할 것 같으냐?”
“리본은 너를 복제할 것이다.”
녀석들의 말을 들은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복제?’
확실히 검은 물체- 앙골라 혹은 리본이라 불리는 녀석은 정호의 온몸을 덮으려 애쓰고 있기는 했으나.
거기에 적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질척-
조금 기분 나쁜 감촉만이 있을 뿐.
위해를 가할 기미 따위는 보이고 있지 않았다.
한데, 그것이 복제하기 위함이라니?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투웅-
그렇게 힘껏 떼어 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던 녀석이 스스로 정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스믈스믈-
그와 동시에 점차 녀석의 형체가 바뀌는가 싶더니.
여전히 새까맣다는 점만이 다를 뿐.
이목구비부터 시작해, 완전히 정호와 동일한 모습의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하하, 네 모든 것은 우리 리본이 파악했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하하하-
자신만만한 미치광이들의 웃음소리.
그에 정호는 곧장 등에 짊어진 검을 꺼내어.
쉐에에에엑-
검은 물체로 이루어진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저 닮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손에서 정호와 동일한 검을 꺼내어 막아 낸 것이 아닌가.
그에 정호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앙- 캉.
좌에서 우로 휘두르고,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고.
빈틈을 찾아 제법 진지하게 휘두른 검조차도 막아 내는 녀석.
“이제 알았느냐.”
“완전히 네 녀석과 동일한 녀석이다.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이가 있을 리가 없지.”
“놀랍군.”
친절한 미치광이의 설명이 이어지자, 정호는 솔직한 마음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도플갱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또 다른 자신, 도플갱어.
톨비아에서도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그 몬스터와는 꽤 다른 종류의 까다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도플갱어가 거울처럼 느껴진다면 이 놈은…….’
카앙-.
정호가 휘두른 검을 가볍게 흘려 보낸다.
그것은 분명 정호가 자주 써먹던 수단 중 하나인 패링이다.
‘기술도? 말 그대로 리본이군.’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적이 아닐 수 없다.
“하하, 완전히 동일한 자신을 어떻게 쓰러뜨리겠다는 것이냐.”
“얼른 패배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으라고.”
알디니와 데미코프는 쩔쩔매는 정호를 바라보며, 신랄하게 조롱을 했다.
“강신, 아틸라.”
작게 울려 퍼지는 정호의 목소리와.
쉐에에에엑- 퍼석!
그 직후 휘둘러지는 정호의 검이 녀석의 형체를 완전히 날려 버리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어?”
“으응?”
날아간 리본의 형체는 다시금 제모습을 찾기는 했으나.
미치광이들의 웃음소리가 멈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게.”
“아닌데……?”
다시금 정호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녀석을 바라본 정호가 입을 열었다.
“꽤나 좋은 녀석을 구해 왔어.”
정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