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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42화 (143/144)

142화

“아, 알았어. 보상이든 뭐든 줄 테니까. 얼른 이것 좀 풀어 줘.”

구속을 풀어내자, 한참이나 투덜대며 저린 팔다리를 매만지는 파울라.

“보통 감금까지 하나?”

“…….”

처음과는 다른 꽤나 당당한 행동.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난 억울해. 네가 훔친 물건을 내놓으라고 해 봐야,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녀의 푸념에 정호는 속으로나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억지나 다름없지.’

제아무리 정호가 코인에 미치고, 보상에 미쳐 있다고 한들.

이미 얻어 낸 보상마저 다시금 내놓으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정호가 곧장 구속된 파울라를 찾아온 까닭.

- 파울라를 찾아가게, 주인.

그것은 네오 유토피아의 보스 몬스터.

아니, 이제는 자신의 아군이 된 아돌프는 역소환되기 직전에 알려 준 조언 덕이었다.

‘…….’

사실 파울라 히틀러는 정호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존재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여동생이라는, 꽤나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자이기는 했으나 그뿐.

톨비아 내에서는 그리 중요치 않은 존재다.

아니, 네오 유토피아에 그녀가 나타난 것 자체가 처음인 마당이다.

거기에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 내 동생이기 때문에 잘 보아 달라-는, 그런 의미는 아니네. 그저, 이질감이 들거든.

-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이질감과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단순히 늦은 사춘기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은가.

- 의지의 문제라는 말일세. 조금 과할 정도로 파울라는 자유로웠거든.

하나, 아돌프의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돌프는 자신이 누군가의 의지대로, 꼭두각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뿐만이 아니라, 네오 유토피아 전체에 이루어져 있는 것이고.

그 순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돌프 본인조차 이루어 내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파울라를 바라보는 정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적에게 가짜 퀘스트를 주고, 결국에는 붙으려고까지 했다고.’

아돌프는 그런 파울라를 직접 ‘감금’했다고 실토했다.

자신의 여동생을 감금했다는 게 참으로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으나.

- 무엇이든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파울라를 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정호가 총공격을 했을 때에, 아돌프는 패배를 직감했다.

톨비아의 기억이 있는 그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 흐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파울라라는 변수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 뭐, 그것도 잘 안 됐지만.

물론 그 결과는 처참했지만 말이다.

타앙-

어느새 곰방대를 하나 꺼내어 물고 있는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은 다른 의미이긴 했으나, 이질적이다.

“그래서, 진짜 원하는 게 뭔데?”

이어지는 질문도 말이다.

“뭐?”

“단순히 원하는 게 코인이라면, 적지만 줄 수 있어.”

“코인을 줄 수 있다고?”

“그래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

“…….”

당장 그 코인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정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내었다.

“태도가 바뀌었군.”

“끝났으니까.”

“끝났다니?”

“아돌프 히틀러가 쓰러졌으니까. 내 역할도 끝난 거지, 뭐.”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파울라와는 전혀 행동거지였으니까.

* * *

“과연 주목하고 있는 인재답네.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

마치 자신은 파울라가 아니라고 하는 듯한 말투.

그것에 정호는 답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모르는 일에는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이 제일이었으니까.

“뭐, 좋아. 어떻게 알아챘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파울라.

아니, 파울라가 아닌 무언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자 납득한 모양인지 한동안 곰방대의 재를 태웠다.

“많은 녀석들을 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나를 찾아내고, 직접 붙잡은 건 네가 처음이야.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정호는 파울라를 알아차리지도, 그렇다고 감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인지.

파울라는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세 가지. 네가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게. 무엇이든지.”

제멋대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질문?’

정호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당당히 말하는 파울라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가 누군데?’

녀석은 자신의 정체가 들켰다고 말했지만, 정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당이다.

그런 마당에 어떤 질문을 내던진단 말인가.

아니, 그따위 영양가 없는 질문보다는 조금 전까지 떠들어 대던 ‘적지만 줄 수 있는 코인’이 더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질문하지.”

그 상황에서 정호가 내던질 수 있는 질문의 종류는 하나뿐이었다.

“네가 누군데.”

속마음 그대로.

녀석의 정체부터 까발리는 것이다.

“…뭐?”

그 말에 파울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몸이 굳었지만.

“…정말 그게 첫 번째 질문이야?”

“그래.”

그따위 것은 정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 * *

“퀘스트 보상을 훔친 건?”

“함정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파울라를 아돌프에게 돌려보낸 건?”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진행하기 편했으니까.”

세 가지의 질문에 답해 준다던 파울라는 오히려 반대로 정호를 향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설마,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윽고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자, 파울라의 거죽을 뒤집어쓴 녀석은 고개를 푸욱 숙였다.

“아, 진짜.”

덜컥-

제멋대로 신경질을 내며,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녀석은 정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 댔다.

“헷갈리게 하지 마. 그럴 거면 감금은 왜 한 거야.”

그것은 엄연히 ‘아돌프 히틀러’가 한 행동이었으나, 녀석은 여전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네가 누군데.”

“하아… 그래, 답은 해 줘야지.”

정호의 재차 이어지는 질문에, 녀석은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관리자.”

짧은 단답.

그것에 정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관리자가 무엇이지?”

“그건 두 번째 질문?”

“그게 아니란 건 알고 있을 텐데.”

녀석은 정호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착각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알고 있으니, 그저 이 상황을 빠르게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답해라.”

미끼를 문 대어를 정호가 너그러이 돌려보내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체라면 정말 관리자야.”

“나는 관리자에 대해서 모른다.”

“그러니까, 그걸 왜 모르고 있냐고…….”

하아…….

큰 한숨을 내쉰 녀석은 결국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었다.

“관리자는 이 상황을 관찰 및 대응하는, 말 그대로 관리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뿐이야. 뭐, 이쪽 형식이라면…….”

“GM이군.”

“음. 그거야. 권한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뭐.”

“톨비아의 관리자인가? 아니면 아스텔?”

“아니. 그쪽과는 완전히 떨어진 중립적인 위치지, 뭐.”

재차 들어오는 정호의 질문에도 녀석은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에 대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정호의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이 되려면, 당연히 들어가야 할 사전 지식인 모양이다.

“그럼, 관리자는 너 혼자인가? 지금껏 만난 적은 없는데.”

“그건 두 번째 질문에 해당돼. 괜찮아?”

“아니, 그만두지.”

“…그래.”

대놓고 실망한 모습을 내보이는 녀석이 ‘관리자’라 부르는 이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정호가 실망해야 할 입장이었다.

“뭐, 사실 그 정도는 알려 줘도 상관없어. 관리자라면 이미 만난 적 있을 테니까.”

“…기억에 없군.”

“설마- 아스텔의 상점 주인장도 관리자 중 하나인걸?”

정호는 그 대답을 듣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스텔의 상점은 몇 번 들르지는 않았지만, 그 상점 주인인 ‘노인’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범상치 않은 분위기는 결코 잊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이 녀석은…….’

정호는 눈앞에 있는 관리자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파울라의 자그마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퍽이나 믿음이 가지 않는 마당에 실로 입이 가볍지 않은가.

“으음, 아무튼 나는 그 관리자 중에서 ‘관찰’ 담당이야. 너희들의 말로는… 그래! NPC의 형태로 지켜보는 거지. 권한은 별로 없어.”

정호는 녀석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스텔과 톨비아, 어느 쪽에도 상관없는데 관리자라…….’

지구는 현재 침공을 해 오는 적들을 막아 내고 있는 마당이다.

그것에 ‘관리자’라는 이름의 존재가 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녀석의 말마따나 관리자가 GM과도 같은 존재라면.

“이 모든 게 게임처럼, 누군가의 체스 판이라는 말이군.”

정호는 일부러 소리를 내어, 자신의 추론을 꺼내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 들으라고 하듯 말이다.

“…….”

물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침묵을 지키는 것 자체가 확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누가 이것을 기획하고 있지? 아스텔인가? 톨비아인가?”

“그렇게 나를 떠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한다면, 질문으로 부탁해.”

물론 녀석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곧장 의도가 들통났으나 이미 충분했다.

‘아스텔이든, 톨비아든, 그 외의 녀석이든.’

아무튼 간에 지구를 상대로 누군가가 게임판을 벌였다는 것이 확실시된 마당이었으니까.

“질문으로 한다면, 나는 답할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할래?”

관리자의 말에 정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제안은 솔깃한 것이었다.

당장 이 모든 일을 계획한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니, 혼잣말이다.”

하지만 정호는 그것을 질문하지는 않았다.

첫 질문으로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이 ‘정체’에 대해 묻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얻어 낸 정보는 상당히 많았다.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침공에 대해 알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이상으로 다음 두 가지의 질문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정말 관리자라면.’

이 모든 일을 끝내는 방법이라든가.

혹은, 아스텔이나 톨비아의 관계 또한 모조리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따위 자질구레한 것은 상관없어.’

그런 것은 결국은 알게 되는 일에 불과했다.

침공이 거듭되고, 그것을 방어하다보면 알 수 있게 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정보.

알게 된다 하더라도, 딱히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간단히.’

그렇기에, 이런 질문은 오히려 ‘간단한 것’이 포인트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

당장 이득이 되는 수단.

그것으로 질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GM이라면, 어떤 내용이든 답을 할 수 있나?”

“다른 관리자라면 제약이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관찰자인 내 입장에서는 가능해.”

“그게 설령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도?”

정호의 질문에 관리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편적인 미래라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것도 불확실해. 애당초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면 관리자의 존재가 있을 리가 없잖아. 당장 네가 언제 죽느냐고 물어봐도, 나는 그 답을 해 줄 수 없어.”

“지금 이 순간의, 그것도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라면?”

“…가능해.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쪽에는 다른 관리자의 도움이 필요해. 아으, 내가 왜 그런 말을 꺼내서.”

“좋아.”

후회하는 녀석을 향해, 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오 유토피아를 클리어하며 얻은 코인은 총 4만 5천 코인이야.”

“음?”

이상함을 감지한 관리자가 의문을 터뜨렸으나, 정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추가 보상으로 얻은 코인이 약 3만 코인. 업적 보상으로 얻은 코인이 2만 코인. 합으로 9만.”

한참동안 떠들어 대는 정호의 말에 관리자가 고개를 기울일 무렵.

정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코인을 모두 톨비아의- 화신 뽑기에 쓴다면.”

“자, 잠시만. 그건.”

이내, 의도를 파악이라도 한 듯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정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나오는 가장 높은 등급의 화신의 이름.”

그것은 분명 질문의 궤를 넘어선, 사용 방법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이걸로 하지.”

그리고 아직 한 번의 질문이 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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