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멸망(5)
* * *
자~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시스의 살벌한 말투에 굴복했습니다…. 어 흑!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다.
시스? 지구로 돌아갈 적기는 언제야?
[앞으로 1분 뒤입니다.]
그래?
그럼 바로 넘어가야겠네.
지구가 20시간 뒤에 멸망한다는데 넋 놓고 구경만 할 순 없잖아?
[10초 남았습니다.]
지구로 무사 착지하려면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할까?
[계산 중입니다…. 계산 완료! 스킬 3번과 한 번이면 됩니다.]
그러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자칫 지구가 위험해질 텐데?
[크기를 3m로 줄이시면 됩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으니 그곳에 착지하신다면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나라 꼴 잘 돌아간다.
뭐만 하면 멸망이네?
하긴…. 애초에 퀘스트 자체가 멸망 시나리온데….
,,,
기기기긱!!!!
으어어…. 내 허리 끊어진다…!
전에는 총 9번의 지플링을 중첩해서 사용했으니 그렇다 치고 이번엔 3번만 중첩했는데 뭔가 힘의 중첩이 달라졌다.
이거 왜 이렇게 허리가 땅기는 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지구와 우주는 중력 자체가 달라서 작은 힘으로도 엄청난 힘을 발생시키죠]
어.
그럼…?
[ 시나리오가 순서 상관없이 마지막 단계로 넘어갑니다.]
[멸망까지 5초 전]
어어…. 잠시만? 갑자기 급전개가 되면 난감하다고…?
내가 안간힘을 다해서 지플링을 풀려고 했지만 한번 발동된 스킬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풀리지 않는다. 다만 다른 외부의 존재로 인해 풀릴 순 있지만, 이곳에는 오로지 나 혼자 있을 뿐이다.
[4초]
[3초]
[2초]
[1초]
시발 모르겠다.
투쾅!!!
빡!!
**********
"케케케!!... 가 아니라 이제 웃지 말아야지!"
"크...으흠! 버릇이 들어서 고치는데 상당한 시간이 들겠구만 크크...흐으음!!"
무려 40시간에 걸쳐 논의를 펼친 결과 알아낸 사실은 놀라웠다.
그냥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20마리나 되는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기에 단순히 웃음소리로 그들을 구별하는 것이었는데….
"왜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까?"
"글쎄…. 왜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
"생각해 봐야겠군."
"생각해봐야겠어"
또다시 길고 긴 토론을 하려던 그때 어떤 리치 한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뭔가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걸?"
"리치가 치매 걸린 건가?"
"오오! 생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내가 해내다니!"
"해부해봐도 되겠나?"
"안돼! 내 것이야! 내가 할 거다!"
"그러지 말고 같이 합세!"
작은 메스칼을 언제 들고 나타났는지 서로 두개골을 쪼개겠다고 달려드는데 한심하게도 본인 스스로도 메스를 들고 자기 두개골을 쪼개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치들이 그러는 동안 우주에서는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달 파편이 있었는데….
콰아아아앙!!!!!!
뭔가에 부딪혔는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정작 파괴 해야 했을 리치들은 엄청난 굉음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현재 눈앞에 있는 치매걸린 리치를 연구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리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구제받을 수 있었다.
********
[띠링! 신앙심 ∞의 업보가 발동합니다.]
[사소한 불행이 크나큰 불행으로 변질됩니다.]
[원래 착지점인 미국을 크게 벗어나 중국에 착지하게 됩니다.]
아..?
잠시만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 쿠엑…!!
콰아아아앙!!!!!
[띠링! 신앙심 ∞의 업보가 발동합니다.]
[사소한 불행이 크나큰 불행으로 변질됩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던 달 파편 4호와 충돌하여 착지점인 중국에서 크게 벗어나 우주로 표류합니다.]
[목적지는 ANGUQWL 행성입니다. 예상 시간은 18년입니다.]
[퀘스트를 방해했습니다. 신의 규칙을 깨트렸기에 부작용으로 랜덤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랜덤 디버프가 적용됐습니다.]
[디버프 `봉인`이 발동되었습니다.]
[신체 능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봉인됩니다.]
[차후 레벨업을 통해서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이게 뭐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그냥 편하게 생각해요. 인생 뭐 있나? 한방이지]
야!
네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혹시나 말하지만, 사용자와 저는 영혼으로 이어져 있기에 한쪽이 죽으면 자동적으로 반대편도 따라 죽습니다? 참고로 저는 죽지 않는 신체를 가졌으니 누가 손해일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충분하죠?]
....
....
이런 썩을….
이래나 저래나 시스한테는 안된다는 소리였기에 그냥 체념하고 묵묵히 우주를 누비며 날아갔다.
거참….
18년 동안 뭐 하고 있냐…. 18년 동안….
[어째 욕하는 것 처럼 들리는데요?]
잘 아네 욕이다. 욕.
저 멀리 멀어져가는 푸르른 지구가 눈에 아른거리듯 사라진다. 거참…. 오랜만에 유셀이랑 세이린 좀 만나나 싶었더니 또다시 날아가네.
시스의 말에 의하면 모한다르 행성은 시간만 흐를 뿐 나이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즉 외부적 충격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면 불로불사의 꿈을 꿀 수 있다는 소리였기에 난 그저 멀리 여행하고 온다는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수명은 얼마나 남았어?
일반적인 지렁이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었기에 물어본 말이었는데 시스의 말이 가관이다.
[님 뒤질 때 까지요]
하…?
한편
데스킹이 우주를 표류하며 어딘지도 모를 행성으로 날아가고 있을 무렵 지구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륵….
파괴되었던 산은 물론 나무와 들판 냇가와 강 바다 등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후…. 이 짓도 상당히 지치네!"
빛을 흘리는자 이니시스가 하늘에서 돈을 와장창 뿌리고 있는데 말 그대로 돈을 쓰레기 버리듯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돈이 떨어진 자리에선 자연이 원래대로 복구가 되는 것이고….
이니시스의 신개념 돈지랄을 보고 있는 종말을 아는자 쿨레아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니시스가 뿌리고 다니는 돈은 킹덤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던 자산 겸 비자금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돈으로 자연을 살려?"
"뭐가 어때서?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세상은 돈으로 굴러가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왕이면 좀 더 품위 있는 방법으로 자연을 복구 시킬 순 없는 거야?"
촤르르~
쿨레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아름답게~ 돈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요~`라며 생지랄을 떨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휴지 대신 돈으로 똥 닦을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이니시스는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왜냐? 이래 봬도 자연을 살리기 위한 이른바 등가교환 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어떻게 됐어?"
"누구?"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
"워워 진정하라고? 당연히 장난이었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쿨레아를 째려보면서도 여전히 돈을 뿌려대는 이니시스였는데 그런 이니시스를 보던 쿨레아가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말을 이어갔다.
"지구에서 멀리 떼어내 버렸다.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분을 데려다가 지구로 돌아올 것이다."
"흐음…. 일단 그분의 곁에서 그 녀석을 떼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네"
"빌어먹게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분을 꼬드겨 영혼의 계약을 맺었다. 최우선적인 목표는 영혼의 계약 파기다."
"영혼의 계약은 상호간의 합의가 없으면 파기 불가능한 거 아니야?"
영혼의 계약은 말 그대로 육체가 아닌 혼을 이용해서 서로 간의 생명을 공유하는 것으로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무한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 녀석은 그분의 영생 적 세월을 담보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신이라고 한들 영혼의 계약은 쉽게 파기할 수 없다. 그러니 녀석이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야지"
"말이야 쉽지. 한때나마 `자연을 지키는 자`로서 그분의 신임을 얻었고 지금도 그 유지가 이어지니 혹여나 이번 일로 인해 자칫 자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둬"
"에잉…. 별 지랄 같은 년이 나대서 우릴 힘들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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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걸 어떻게 설명 해야 할까?"
[모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차등 레벨상승을 드립니다.]
[D>C>B>A>S>SS>SSS>EX 등급으로 상승합니다.]
[세계 유일의 EX 등급이신 한성태 능력자에겐 따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딱 한 번 어떠한 소원이든지 이뤄드립니다.]
[설령 우주의 파멸이 소원이라 할지라도 이뤄드립니다.]
[신중히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차후 선택 소원이 가능하니 지금 바라지 않는다면 `나중에`라고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헐…. 대박"
진태를 비롯해 시크릿의 동료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성태에게 엉겨 붙었다. 다들 어떤 소원을 빌 건지 꼬치꼬치 캐묻는데 성태로서는 막상 생각해둔 것이 없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 나중에 빌게"
[한성태 능력자의 소원이 1개 누적되었습니다.]
[소원을 빌고 싶으시다면 `내 소원을 들어줘`라고 왜 치시면 됩니다.]
"누군 뒤지라고 생명력 갈아 먹었는데 누구는 신에게 소원을 받아서 어안이 벙벙하군"
"아…. 미안"
뒤에서 흥칫뿡! 거리는 불사를 보며 성태가 미안하다며 다가가는데 불사는 성태가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난다. 누가 보면 N극 과 S극 자석을 달아놨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맨 처음 다가간 존재는 역시나 성태였다.
"뭐 하는 짓이냐?!"
"뭐 어때? 우리 사이에"
"ㅝ…. 뭐뭐ㅁ…?"
저번에도 이렇게 당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막상 성태의 말을 들으니 불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화가 나듯 머리로 피가 쏠리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후끈거리는 얼굴과 당장 저 비릿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죽방을 날리고 싶었지만, 덥석 어깨를 잡아 오는 성태의 손짓하나에 `꺅!`이라는 참담한 비명을 지르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흐음…? 어디 아픈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상태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라진 불사를 의아한 표정으로 봤는데 뒤에선 수많은 능력자가 성태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저러니 평생을 모태 독신으로 살았지…."
"저 녀석 눈치가 영…."
"최근 들어 여성화 상태로 찾아오는 불사를 보면서도 느끼는 게 없나 봐"
"저 녀석 고자 아니야?"
"아니면 게이라던가?"
자신도 모르게 눈치가 없고 고자에게다가 게이라는 오명까지 받는 성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