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취향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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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존중
"유셀, 준비됐어?"
세련되고 비단결 같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눈앞에 있는 기사를 보며 말을 한다.
한눈에 보아도 우람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며 구릿빛 피부가 그의 건강함을 알려주는 모습이었는데 여인의 말에 절도있는 행동을 보이며 `그렇습니다. 세이린 황녀님`이라며 말을 한다.
"오늘이야말로 6개월 전의 수치를 갚아 주고 말겠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벨로르 던전이 위험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6층 이상일 경우잖아 난 그저 4층에서 5층을 돌아다니면서 그 빌어…. 아니 변태 몬스터를 처치하려고 하는 것 뿐이니까 괜찮아, 정 안되면 유셀이 직접 나서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세이린은 벨로르 던전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괴 몬스터를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여타 몬스터들과 달리 죽이겠다는 본능도 파괴의 행각도 벌이지 않는 그 길쭉하게 생긴 변태 몬스터를 처치할 생각이었다.
물론 한편으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을 잠시라지만 똑같은 `지렁이`라고 부르는 괴 몬스터로 만드는 기이한 능력을 사용하면서 엉덩이…. 를 물었을까? 라고.
화끈….
"황녀님?"
"으응? 왜?"
"...아닙니다."
엉덩이를 깨물릴 때 마다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상당히 곤욕스러웠는걸. 생각하면 아직까지 부아가 치민다.
"자자 빨리 가자고"
"정말 폐하께…."
"응 말 안 하고 갈 거야! 어차피 뒤에서 보고 다 하면서 뭘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이야?"
"....
6개월 전 벨로르 던전에서 엄청난 수치를 당하고 난 다음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이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폴랜 폰 아포미네였다.
여차여차해서 이렇게 됐다는 보고를 올리며 당장에라도 잡으러 가자고 하니 그저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계속된 실랑이 끝에 어느 정도 진실로 받아 줬다지만 한낮 변태 몬스터 하나 때문에 귀중한 병력을 빼기 그렇다는 아버지의 말에 삐져선 한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시간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들과 만담을 즐기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에게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일주 이주…. 그리고 한달이 지나서야 결국 포기를 했는지 병사를 내려 주셨다.
눈앞에 있는 유셀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제국의 검이라고 불리는 소드마스터 유셀은 벨로르 던전에서 8층까지 가본 존재였다. 비록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소드마스터인 유셀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공포심으로 인해 되돌아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유셀을 경호인으로 붙여 준 것만으로도 도리를 다했다고 보는 황제였다.
"빨리 가자고 난 하루라도 빨리 그 녀석을 잡고 싶으니까!"
뭔가 잔뜩 흥분한 세이린을 보며 유셀은 한숨만 쉬었다. 그가 보기엔 `지렁이`라는 변태 몬스터를 잡는 것 보다는 오히려 곁에서 보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황녀님 취향이….`
유셀은 아니라고 빌고 빌었다. 만약 황녀님이 정말로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주인인 폐하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유셀은 품 안에 있던 스크롤을 찢으며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했다.
그들이 있는 아포미네 제국에서 벨로르 던전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기에 이렇게 스크롤을 이용한 마법으로 시간을 단축 시키는 것이었다.
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바닥에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낸다. 7서클 마법인 텔레포트를 스크롤로 만들려면 8서클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하지만, 제국이라는 이름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기에 궁정 마법사가 8서클에 이르렀기에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
```
```
"와! 왔다 왔어!"
"...."
분명 몬스터를 잡으러 온 거지만 세이린은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셀은 그런 세이린 황녀를 보며 나직이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빨리와!"
먼저 벨로르 던전의 입구에 들어간 세이린은 굼벵이 처럼 느려진 유셀을 보며 손짓을 했지만 유셀의 눈으로 볼 때는 엄청나게 빠른 손짓을 하는 세이린을 볼 수 있었다.
벨로르 던전...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는 인공적인 던전으로서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던전이였다.
단지 던전 자체에 시공간의 비틀림이 적용되어있기에 던전 안에 들어간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보다 약 10배의 시간을 더 보낸다는 것이다.
"뭐야?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고작 1분 남짓 늦게 들어온 것이었지만 세이린의 입장에선 10분 동안 기다린 거나 마찬가지다.
세이린도 그걸 알기에 굳이 더는 따지지 않았는데….
"뭐지? 분위기가 왜 이래?"
"조심하십시오 황녀님"
불과 6개월…. 아니 던전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1,800일 거즘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다소 많이 흘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벨로르 던전이 세상에 알려진 지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너무나 대조적인 변화인 것이다.
1층 초입부는 분명 버그들이 벽에 붙어 있거나 날아다녀야 한다. 기본적인 능력은 약하지만 떼를 지어 다닌다는 것을 감안 한다면 상당히 귀찮은 녀석들이 분명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버그들의 씨를 확 말려버린 듯 했는데 버그들 대신에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변태 지렁이?"
"네? 저게..?"
세이린의 눈에 띄는 것은 1m 남짓한 크기의 작은 지렁이였다. 분명 그때 당시에 본 변태 지렁이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살아생전 그렇게 큰 몬스터를 본적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였는데 이건 상당히 작았다.
"새끼인가?"
"위험합니다. 황녀님!"
터벅터벅 걸어가는 황녀를 보며 기겁하는 유셀이였지만 그냥 손으로 괜찮다는 식으로 휘적휘적 저으며 여전히 앞으로 걸어간다.
평소 세이린의 만행을 자주 지켜본 유셀의 입장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고도 불안한 행동일수 아니었다.
뀩?
세이린의 등장에 새끼 지렁이가 반응한다.
`과연 그 덩치 큰 지렁이처럼 공격하지 않을까?`
단순한 호기심이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눈앞에 있는 지렁이 따위는 곧바로 처치할 수 있었고 만약 처치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뒤에 있는 유셀을 믿었다.
뀨우욱!!
입을 크게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 수백개가 달린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지렁이라면 저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개체인가….`
세이린은 공격해 들어오는 지렁이를 보며 파이어볼 수식을 빠르게 계산하여 막 발현 하려고 할 때였다.
뀨…. 뀨…….
부들부들부들!
"응?"
흉폭한 기세로 다가오던 지렁이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뒤로 기어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서 뒤돌아 유셀을 보고 있었는데 유셀 또한 뭔지 모르고 있는 걸 보면 유셀의 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뀨…. 뀨..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마치 개가 냄새를 맡는듯한 행동을 취하며 뒤로 물러나는데 호기심이 들어 도망가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뀩!!!
날카로운 이빨을 보여주며 위협을 하지만 벌벌 떠는 몸을 보면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다.
둘 사이의 거리는 1m 남짓.
그냥 몸을 쭉 뻗어 머리를 덥석 물어도 될 정도였지만 세이린은 겁도 없이 지렁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의외로…. 귀여울지도?"
슥슥 거리며 머리를 만지자 언제 떨었느냐는 듯 지렁이 또한 세이린의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여기가 어딜까?
사방에서 옥죄는 원초적 공포심이랄까? 마음속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기이한 이물감에 당장에라도 빠져나가고 싶었다.
[의 특성으로 `흉폭`에 저항합니다.]
벌벌 떨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을 무렵 시스템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고 `저항`이라는 말과 함께 공포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8층에서 서식하고 있는 생물체로부터 정보를 수집합니다.]
[효용 시간 20초 남았습니다.]
굳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생물체라면 정보 수집이 가능한가 보다. 시스템이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유독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집완료, 상세 설명을 원하십니까?]
응.
무진장 알고 싶은데?
분명 지하로 `내려`왔는데 하늘이 있다.
말 그대로 형평상 말이 되질 않는 상황이므로 시급히 알고 싶었다.
[8층의 세계관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7층과 8층 사이에는 공간의 비틀림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비틀림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8층, 흉폭의 협곡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랑 다른 곳이라는 거야?
[말 그대로 소규모 차원 이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간계와 마계의 중간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이 들어봤다.
소설 속에서도 흔히 말하지 않는가 중간계를 중심으로 위로는 천계 아래로는 마계가 있고 중간계와 동접된 공간속에 살아가는 정령계가 있으며 정령계를 중심으로 환계가 있다는 것을….
흉폭의 협곡에 대한 정보는 없어?
일단 마계든 뭐든 현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흉폭의 협곡은 말 그대로 마계에서 흘러들어온 잔존의 흉폭성이 한대 모여서 만들어진 곳으로 모든 생명체가 흉폭의 영향으로 오로지 죽음만을 원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뭘 만나든 죽든지 죽이든지 둘 중 하나라는 말이네
참 쉽다.
그냥 무작정 죽이기만 하면 되니까.
시스템의 말을 들어보니 종류도 수십 수백 가지란다.
그 말은 `먹을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간만 볼까?
쿠그그그그그…!
아무래도 70m에 달하는 몸체를 끌고 다니기엔 너무 눈에 띄니 땅속에서 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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