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스킬은 배우는게 아니야 먹는거지(1)
* * *
그나저나….
내가 정말 많이 자긴 했나 보다.
<899일 5시="" 32분=""/>
거참…. 겨울잠 자는 곰도 이것보다는 덜 자겠다.
200일 넘도록 내리자는 지렁이가 세상에 여기 있구나…?
우와.
미치겠다.
만약 인간들이 사냥한답시고 떠들지 않았으면 얼마나 잤을지 똥구멍이 다 쫄깃해진다.
잠은 최대한 나중에 자야겠네.
아니면 알람을 맞추고 자던가.
이건 쓸데없이 자다간 평생 자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자고 일어났더니 덩치도 나름 커진 듯 하고 길이도 많이 길어진 듯 한데 너무 길어져서 불편하다. 전처럼 4m 정도면 충분했는데.
인간들이 왔단 소리는 퀘스트를 깰 수 있다는 소린데…. 깨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지금 올라가다간 발로 밟히는 게 아니라 죽창으로 찔릴 것 같다.
힘들게 잡은 몬스터를 날름 먹어 버렸으니 오죽 하련만 누가 내 위에서 사냥하래?
내가 인간일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렁이라는 괴 몬스터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굳이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들과 마찰을 빚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니 딱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일단 정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던전이라는 특수한 공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이 찾아올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의 도움말을 살펴보니 몬스터의 부산물은 인간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하니 생계나 마법 물품을 구하기 위해서 많이 온다는데 던전중에서 제일 크다고 알려진 벨로르 던전인 이곳엔 이미 수많은 인간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단지 너무 넓어서 서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좋다는데 가끔 파티 끼리 만나게 된다면 그저 못 본 척하고 지나간다고 한다.
자칫 싸움이라도 난다면 두 파티원들 중 한쪽은 죽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누가 죽더라도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어차피 던전엔 몬스터들이 있으니 죽어도 증거물이 남지 않는다.
일부러 약한 파티원들을 골라서 살해하고 물품을 강탈해간다는 스캐빈저 들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에 일단 여기까지 알아뒀다.
지하 10층까지 있는 벨로르 던전에서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은 지하 7층 까지라고 한다. 그 이하로는 인간들 중 최고로 친다는 S급 파티원들도 도망쳐 나왔을 정도라니 말 다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하 10층까지라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당연히 마법이라고 한다.
탐지마법을 이용해서 벨로르 던전의 내부를 지도화시켜 놓은 게 있다는데 신기 한 건 던전의 형태가 항아리 모양이었는데 1층에서 4층까지는 대체로 좁은 형태라고 한다면 5층에서 7층까지 어마어마하게 넓다고 한다. 하긴 렛트들을 5층 입구에서 떨어 트려 봤을 때 부터 알아봤다. 무식할 정도로 깊으니 내부도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되는 경우다.
8층에서 9층은 1층에서 4층과 마찬가지로 좁았고 마지막 10층은 1층의 절반 수준 크기라고 한다.
일단 퀘스트 부터 깨야겠다.
`
`
`
"아! 짜증나!"
"진정하라고"
멀리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 들어본 언어였지만 귓속으로 착착 감겨들며 익숙하게 들리는데 이거도 게임 능력인 것 같았다.
계속 들어보니 아까 렛트 퀸을 잡았던 파티원인 듯 했다.
으음….
렛트퀸의 레벨이 32였다는걸 고려 하면 인간들의 평균 레벨이 30이 넘었다는 소리겠지?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겠네
비록 레벨보다 능력치가 높다고 해도 인간들은 머릿수가 많다. 거기다 마법을 사용하는 인간이 다수 존재했으며 신관도 1명이 있었기에 일찍이 포기하는 게 답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최대한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입을 벌리고 흙을 먹으며 돌진했다.
작은 진동이야 느껴지겠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항이니 어쩔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궁수로 보이는 인간이 `뭔가 온다!`라면서 일행들에게 위험을 알렸다.
계산된 범위다.
어차피 일정 거리에 도달했고 이왕 들킨 거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콰드드드!
"우왁!? 뭐야!"
"조심해! 땅밑에 있어!"
소용없어요~
쾅!
난 검사로 보이는 인간 발바닥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며 올라왔다.
그러자 내 머리 위에 있던 검사가 후다닥거리며 내려오는데….
방금 나 밟은 거 맞지?
잇힝~ 그럼 탭댄스 한번 지리고
쿠르르르르….
탭댄스 치며 인간들을 살펴보니 뭔가 많이 작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뜻이겠지만 이건 너무 비대하게 커진 상태라 뭐라 말할 수가 없네?
[서브퀘스트 <밟혀보세요. 그리고="" 정말로="" 꿈틀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세요="">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올~ 랜덤 스킬 최고이고요!
아차차! 이거 말고 우선 지금 상황부터 처리해야겠네
안녕하세요? 반가웠으니 이만 가볼게요
애초 목표인 서브 퀘스트는 깼으니 볼 일 다 봤다.
바이~
쿠르르릉….
"....?"
"뭐야?"
뒤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가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듣고 싶으면 지렁이 언어 배워서 와
우와!
이게 뭐야?
[단단해지기 LV1 (패시브)]
피부가 단단해진다.
설명이 너무 단조롭다.
아니, 나라도 저렇게 설명 못 하겠다.
실제로 저게 끝인데 더 붙일 수도 없잖아?
[포인트 상점]
남은 포인트 : 82910 PS
장착 : 고급시계
소비 버프 : 없음
야릇하고도 미끌미끌한 젤, 불끈불끈 영약, 조루의 영약, 현자의 시간 버프가 풀려있다. 자고 있는 동안 지속시간이 다됐는 가본 데 솔직히 다시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으음….
조루의 영약이랑 현자의 시간만 다시 살까?
조루의 영약은 스태미너의 소모를 줄여주는 버프였고 현자의 시간은 MP 회복 속도를 증가시켜주는 버프였다.
물론 야릇하고도 미끌미끌한 젤의 효과는 회피율 증가였고 불끈불끈 영약의 효과는 체력증가였지만….
또 뭐에다 들이박을지 누가 알아..
안 그래도 3층 벨로르 울프한테 박아댔는걸 쪽팔리게 생각하는데 그걸 인간들이 최고 많다고 하는 5층에서 하기엔 뭔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에잇! 까짓거 누가 보면 어때?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지!
영약을 몇 개 사고 장착 장비를 몇 개 구매를 했더니 포인트가 반쪽이 날아가 버렸다.
[포인트 상점]
남은 포인트 : 42510 PS
장착 : 고급시계, 멋쟁이 모자, 바람의 스카프
소비 버프 : 야릇하고도 미끌미끌한 젤, 불끈불끈 영약, 조루의 영약, 현자의 시간
[바람의 스카프]
민첩 +50, HP +200
[멋쟁이 모자]
체력 +50 HP +200
[띠링! 체력 능력치가 100을 넘었습니다.]
[<과부하 LV1="">이 <불멸화 LV1="">로 변합니다]
[불멸화]
체력 *4 + LV당 10% 초당 체력 회복력을 얻는다. 1분 지속
역시…. 인간이고 몬스터고 돈이란 걸 쥐고 있어야 하나보다. 돈으로 못사는 게 없다.
포인트만 많았다면 성장 촉진제를 사는 건데 그건 50만 PS가 들어서 포기했다.
크크.
게임은 역시 장비빨이지!
누군 쌔가 빠지게 키우는데 누구는 돈으로 지랄해서 쉽게 쉽게 키우는 걸 보면 속이 뒤틀렸는데 내가 이러고 있네?
[능력치]
레벨 : 25
경험치 764417/1677721600 칭호 :[갓 브레이커]
종족 : 작은 지렁이
HP : 1230
MP : 760
체력 : 123
민첩 : 200
지능 : 71
신앙심 : 200
보너스 능력치 : 68
특이사항: 윤회의 끝자락에 다다른 존재로서 마지막 환생을 겪고 있다.
특권 : 전생 기억, 게임 능력
스킬 : 흡수 MAX, 지렁이 헤드 어택 MAX, 지렁이 꼬리치기 MAX, ME끼 MAX, 자기투척 MAX, 지룡보 LV12, 독니 LV 10, 불멸화 LV1, 지렁이지렁 LV1,단단해지기 LV1 (패시브)
능력치 봐라.
특히나 HP가 예외 없이 높다.
렛트의 공격력이 50이었으니 이 정도면 20방을 맞아도 죽지 않는 체력을 가진 것이 아닌가? 거기다 불멸화를 사용하게 된다면 초당 500의 회복력을 가지게 되니 아예 안 죽는다고 보면 됐다.
단지 아쉬운 건 보너스 능력치 6을 사용해서 민첩 200을 만들었지만, 추가적인 보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능력치로 받을 수 있는 보상 최대치는 100이 끝인 것 같았다.
아직 지능이 남아있으니 상관없잖아?
지능이 50이 되어서 받은 <지렁이지렁 LV1="">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렁이지렁]
지정 대상을 일시적으로 지렁이로 만든다. 1초 지속
비록 1초간 지렁이로 만든다지만 위급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엔 이걸로 렛트를 지렁이로 만들어서 엉덩이나 물어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렛트의 성별은 하나같이 수컷뿐이 없었다. 내가 먹어버린 렛트 퀸 말고는 오로지 수컷이었기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암컷이면 몰라도 수컷 엉덩이를 무는 건 조금 그렇잖아?
그렇기에 이번에 5층으로 내려가서 한번 사용해볼 생각이었는데 내 계획은 아주 철저하게 박살이 나 버렸다.
*********
으엉!
님아 제발 살려줘요
파팍! 팍!
저 미친 쉐리…. 언제까지 쫓아 오는 거야!
지룡보를 사용하며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했지만, 저놈은 끝까지 쫓아온다.
으아! 내가 왜 버프 먹으면서까지 내려왔는데!?
아니…. 그것보다 이러면 민첩을 많이 올린 의미가 없잖아!?
괜히 흥분해서 살펴보지도 않고 내려왔더니 이 꼴이다.
이동속도가 빠르면 뭐하나 렛트처럼 전광석화를 이용해서 나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이놈처럼 나한테 뭘 달아서 딸려오듯 쫓아오는데!
[벨로르 퍼펫]
레벨 : 17
종족 : 인형
HP : 100
MP : 800
체력 : 10
민첩 : 1
지능 : 80
스킬: 동화, 추적, 저주
처음엔 그저 낮은 체력에 꼬리로 한방만 치면 죽겠구나 했다. 허나 동화라는 웃기지도 않는 스킬 때문에 허공만 때리고 있었고 저주라는 사기 같은 스킬 때문에 오히려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저주에 당하셨습니다.="" 최대="" HP의="" 10%가="" 줄어듭니다.=""/>
살려줘요.
제발.
님
한 번만.
안깝칠께요.
꼬리에 붙어있는 녀석을 보니 미칠 것 같다.
아무리 흔들어도 내 몸과 동화를 해버린 녀석은 절대 안 떨어진다. 아예 꼬리를 먹어도 봤지만, 뱃속에서 스멀스멀 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오는 녀석을 두 눈으로 봤는데 소름이 돋았다랄까?
이런 녀석을 어떻게 사냥하라고 배치 한 거야!?
아니 한가지 물어보자.
5층에 인간들이 가장 많다며?
공격도 안 통하는 녀석을 어떻게 죽이는 건데!?
[띠링! 메인 퀘스트 발생! 물리 무효화 상태의 벨로르 퍼펫을 처치하라 0/10]
아…. 그런 거 말고 꼬리에 달린 이 녀석이나 때어내 달라니깐?
<저주에 당하셨습니다.="" 최대="" HP의="" 10%가="" 줄어듭니다.=""/>
제발 저주 좀 그만 뿌려 네가 흑마법사니?
응.
쓸모없어
이딴 꼬리 따위 내가 잘라 버릴 거야
독니를 이용해서 꼬리 경계 부분을 쉴 틈 없이 찔러댔다.
아파…. 아프니까 청춘이다? 웃기지 마 아프면 병원이나 가라고! 왜 청춘 타령인데?
한동안 찔러댔더니 결국 꼬리가 절단되었다.
안녕 내 사랑 다시는 만나지 말자.
나는 그대로 땅을 파고들어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혹시나 쫓아올까 봐 복잡하게 이동을 하며 최대한으로 멀어졌는데 확실히 4층이랑 5층이랑 스케일이 달랐다.
메인퀘스트를 살펴보니 물리 무효화 상태라고 있는 걸 보니 마법 공격이 아니면 소용이 없는 듯해 보였는데 이게 나한테는 아주 악랄한 상황인 것이다.
마법 공격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은데….
어디 가서 마법사 한 명이라도 꿀꺽할까?
종족당 흡수 스킬이 가능하니 마법 스킬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를 먹는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뭐랄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인간을 먹기가 상당히 거북하다는 게 느껴진다.
살기 위해서니까…. 먹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인간들끼리도 죽이고 죽이는데 난 인간도 아니고 몬스터니까..
한동안 고심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보다는 내가 우선이 아닐까 한다.
남을 죽여서 내가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난 당연히 그래야겠지? 어차피 인간도 하나의 몬스터라고 본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자.
정리도 됐겠다 우선 인간을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