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대망의 다음 날.
“마님, 마님!”
아침 일찍 발코니에서 상쾌하게 햇살을 맞고 있을 즈음, 비비가 호들갑을 떨며 침실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뒤를 돌았다.
“비비, 아침부터 왜 이리 소란스럽니?”
“으아, 죄송해요. 너무 놀랄 만한 소식을 들어서요….”
“놀랄 만한 소식?”
“아침부터 번화가가 난리래요.”
예상했던 말에 삐쭉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응? 번화가라니.”
“글쎄, 광산 하나를 두고 싸운다던 메리 후작가와 올슨 백작가 말이에요. 아가씨도 아시죠?”
“응, 알지. 그 광산, 곧 메리 후작가 쪽으로 넘어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상황이 달라졌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묻자 비비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게 있죠, 백작 부인 말이에요. 사실 광산을 욕심내던 게 아니래요!”
“응?”
“그 광산 근처에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돌아가신 백작과의 추억이 담긴 곳이라나요? 백작저에서 일하던 사용인 하나가 익명으로 벽보를 붙였어요! 다들 그걸 보려고 인산인해래요.”
“어머나.”
아연한 얼굴로 탄식하며 조용히 입을 가렸다.
“그것참….”
계획대로구나.
낄낄 웃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킨 채 비비를 쳐다보았다.
“혹시, 마님도 뭔가 알고 계셨어요? 저번 주말에 올슨 백작가에 방문하셨잖아요.”
비비의 물음에 시치미를 뚝 뗐다.
“아니, 난 몰랐단다. 그런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어서….”
“세상에, 마님도 모르셨군요!”
비비는 엄청난 반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자보를 직접 읽지 않은 비비가 이 정도 반응이라면, 지금 번화가의 상황은 대충 가늠이 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테라스 너머로 시선을 던진 내가 부드럽게 웃었다.
“비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해지는구나. 한번 번화가에 나가 볼까 하는데, 채비를 도와주겠니?”
“네!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비비도 대자보의 내용이 여간 궁금했던 게 아닌지, 평소보다 배로 빠른 속도로 내 준비를 도왔다.
채비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공교롭게도 또다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계단 아래쪽 로비, 다이닝 홀로 향하던 이안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예전에는 머리털 하나 안 보이더니 요새는 왜 이렇게 자주 나타나?’
누가 보면 일부러 얼쩡거리는 줄 알겠어.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다이닝 홀과 외출복 차림의 나를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조찬도 들지 않고 나가십니까?”
의문스러움을 감추지 않은 말투였다.
순수한 의문이라기엔 이번에도 삐딱함이 첨가되어 있었지만.
“아, 그게.”
그제야 내가 난감하게 볼을 긁었다.
사실 이번엔 너무 신나서 이안과 함께 하는 조찬마저도 잊고 있었다.
‘아니, 근데 지금 조찬이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내가 붙인 대자보로 번화가가 들썩이고 있다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
입을 몇 번 달싹이던 내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음…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주말 내내 바쁘시더니, 오늘도 바쁘시다고요.”
묘하게 비꼬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토요일부터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긴 했다.
‘집에만 박혀 있던 백수 유령이 바깥으로 나도니까 신경이 쓰이긴 쓰이나 보지?’
흥, 코웃음을 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바쁜 날도 다 오네요. 그래서 그런데, 조찬은 함께 들기 어려울 것 같으니 이따 오찬이라도….”
“지금 바로 나가십니까?”
“네?”
“보아하니 번화가 쪽으로 가시는 것 같은데.”
“어, 네… 보다시피요?”
내가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이안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가 다이닝 홀로 향하던 몸을 돌렸다.
“그럼 동행하죠.”
“네?”
화들짝 놀라 음이탈까지 터졌다.
아니, 갑자기 동행을 왜 해. 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자, 이안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약속된 주말에 별다른 만남이 없었으니까요. 마침 오늘은 별다른 업무 일정이 없어 부인과 동행할 정도의 시간은 있습니다.”
어쩐지 말에 뼈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왜 이래? 약 먹었어?’
사람이 너무 당황스러우면 말문이 막힌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반면 이안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하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가벼운 외출이니 채비는 오래 걸리지 않겠군요. 기다리십쇼.”
“…….”
“부인?”
“아, 네. 그렇게… 하죠.”
“예.”
깔끔한 대답과 함께 이안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드레스 룸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얼 탄 채 서 있던 내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것도 교육의… 성과라고 해야 하나?’
***
비비와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던 나들이가 얼떨결에 거창해졌다.
대공저의 문양이 떡하니 박힌 대형 마차가 등장했고, 비비를 포함한 세 명의 사용인, 그리고 이안의 심복까지 동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카일’이라고 하는 그 심복은 묘하게 나랑 이안을 흐뭇한 눈으로 보기까지 했다.
저택 마법사라고 했던가.
만일을 대비해 동행하는 거라고 하던데, 어쩐지 호위보단 구경꾼에 가까운 태도였다.
애초에 이안이 소드마스터인데 무슨 호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마차도 크고 사용인 인력도 넉넉해서 몸이 편한 건 좋은데… 이렇게까지?’
내가 당혹스러워하든 말든 이안은 날 에스코트했고, 마차는 출발했다.
그렇게 번화가 중심부 근처까지 왔을 때 나는 마차 바깥의 인파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파는 중심부 한쪽 광장에 몰려 있었는데, 다름 아닌 대자보가 붙은 자리였다.
“와… 사람 많네.”
아리아 소식지 1면에 날 정도로 떠들썩한 일이니 어느 정도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의 반응이었다.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차를 세우고 이안의 에스코트를 받아 내렸다.
저번엔 이렇게 내리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선이 집중되더니, 오늘은 대자보 덕에 조금 덜했다.
대신 그들은 모두 올슨 백작과 백작 부인의 이야기를 쑥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그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게 20년 전 그 비자나무 아래였다죠?”
“그즈음이면 둘 다 겨우 열 살을 넘었을 즈음이네요.”
“어머… 그렇게 만나니까 정말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군요.”
“올슨 백작 부인이 사용인들에게 참 잘해 주었나 보네요. 전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나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곳곳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졌다.
이번엔 다른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럼 올슨 백작 부인은 백작과의 추억을 지키고 싶어서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걸까요?”
“어쩐지, 지금 가진 광산도 방치하면서 구태여 넘겨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게 이상했어요.”
“세상에,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이게 사실이라면 올슨 백작 부인도 참 안됐네요.”
“그러게요. 메리 후작가에서는 알고 있었을까요? 대자보 내용을 보니 백작가 사용인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모양인데….”
“설마, 메리 후작가가 알고도 그랬겠나요? 몰랐겠죠.”
“역시 그렇죠? 그래도 참 곤란하게 됐네요….”
저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삼켰다.
‘나 아직 안 죽었다니까?’
더 해라, 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