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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45)화 (45/91)

45화.

‘미친, 이제야 생각났다.’

올슨 백작 부인.

광물업으로 유명한 올슨 백작가의 안주인으로, 백작이 타계하고 나선 실질적 가주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3년 후쯤 희귀 광물을 발견해 엄청난 광산 부자가 되기도 하고.

다이아나가 구두에 장식할 보석을 구하려고 올슨 백작 부인을 찾아가 삼고초려 했지만, 결국 협조를 얻어 내지 못했다.

‘다이아나의 첫 협상 실패 상대로 스치듯 언급되어서 기억을 못 하는 거였어!’

깨달음을 얻고 이마를 탁, 쳤다.

어쩐지 어딘가 익숙하더라니.

다이아나랑 상관없는 인물을 내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번 떠올리고 나니 왜 기억을 못 했나 싶을 정도로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에 의하면….’

이 광산 소유권 싸움, 올슨 백작 부인이 이겨야 할 텐데.

백작 부인에게는 그 광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주 사적인 이야기라 세간엔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치만 이대로라면 메리 후작가에게 광산을 뺏기게 될 거야.’

황명이 내려온 후 메리 후작가에서는 반반씩 나누어 광산을 소유하자고 제안하지만, 올슨 백작 부인은 절대 광산을 넘겨줄 수 없다며 고집을 피운다.

그리고 피곤해진 황제가 메리 백작가의 편을 들어주면서 광산 전체를 빼앗기게 된다.

‘애당초 이 시기에 올슨 백작가보다는 메리 후작가가 사교계에서 더 영향력이 있으니, 여론도 메리 후작가의 편을 들어 줬었고.’

사정을 알고 있는 나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올슨 백작 부인이 일부러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게 뻔했다.

지금 이 의견란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올슨 백작 부인의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나라면 엮이기도 싫을 듯.

-근데 그 광산 규모가 엄청나다면서요. 메리 후작가도 포기하기엔 아쉽겠죠. 개발만 한다 치면 대박인데!

-전 메리 후작가가 이길 것 같은데요?

-사실 황제도 메리 후작가 편들고 싶은 거 아녜요? 그쪽이 황제파잖아요.

-우리 황제 폐하 그런 분 아니시거든요?

-이 소식지 황제 폐하도 보신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폐하, 방금 전 의견은 저희 집 모란앵무가 썼답니다.

“흐음….”

콧소리를 흘리며 눈을 한 바퀴 굴렸다.

‘광산 싸움이라,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메리 후작가에 광산을 넘겨주게 되겠지만….’

내가 씨익 웃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

해야 할 일이 생긴 나는 쌓인 업무를 빠르게 끝낸 뒤, 곧장 비비를 찾았다.

“마님, 부르셨어요?”

“응, 비비. 올슨 백작가에 서신을 보낼 거야. 최대한 빨리 보내야 하니 고급 편지지를 준비해 주렴. 이왕이면 꽃물 먹인 걸로.”

“네? 올슨 백작가요?”

비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올슨 백작가라면… 요즘 광산 사건으로 별로 소문이 좋지 않은 곳 아닌가요?”

“맞아.”

내 평온한 대답에 비비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스쳐 갔다가, 이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님. 지금 바로 편지를 준비할게요. 언제 방문하실 예정이세요?”

“이번 주말.”

“…이번 주말이면 내일인데요?”

“맞아, 내일 갈 거야.”

‘지지부진하게 줄다리기를 할수록 올슨 백작가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어.’

애초에 이건 올슨 백작 부인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니까.

뭔가 비장한 내 태도에 비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빨리 편지지를 준비해 두겠다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 길로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가로질렀다.

“가만, 도서관이 3층 동쪽 날개 끝이었나?”

대공저의 도서관은 개인 소유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사람과는 담을 쌓은 주제에 허구한 날 책과 서류만 들여다보는 이안 덕분이었다.

‘아마 그쪽 영지의 광산과 관련된 자료도 어디에 있겠지?’

거기 뛰다시피 계단을 타고 오르던 중, 마침 집무실에서 나오던 이안과 마주쳤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십니까.”

“아, 도서관에서 찾을 책이 좀 있어서요. 당장 쓸 일 없으시면 제가 좀 써도 괜찮죠?”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이안이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시죠.”

“고마워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던 내가 아차, 하는 추임새와 함께 다시 멈춰 섰다.

이안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대공, 이번 주말 수업 말인데요.”

“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이번에도 나들이를 가시고 싶은 거라면 준비를….”

“건너뛰죠.”

“…예?”

“할 일이 있어서요. 이번 주 말고 다음 주에 만나요. 괜찮죠?”

지금 너랑 하는 수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 말에 이안은 잠깐 버퍼링이 걸린 듯 입을 벌린 채 서 있다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수업을.”

“한 번 정도는 안 해도 괜찮잖아요, 그렇죠?”

한 주 빼먹는다고 갱생을 못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가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달싹이기도 전에, 시계를 확인한 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미안해요, 대공. 제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싱긋 웃어 주고선 다시 총총총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이안의 허망한 시선이 느껴졌다.

근데 저 인간, 표정이 왜 저래?

솜사탕 씻은 너구리처럼.

***

내 갑작스러운 서신에도 올슨 백작 부인은 긍정의 답신을 보내왔다. 물론 답신의 말투나 분위기는 썩 흔쾌하지 않았지만.

‘3년 후에는 대부호가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연줄이 되어 줄 귀족 한 명이 절실할 테니 그럴 만도 해.’

물론, 하루 만에 방문 허락을 받은 데는 나의 대공비 신분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음 날, 나는 해가 뜨자마자 간단한 채비를 하고 곧바로 올슨 백작저로 향했다.

백작저는 대공저에서 마차로 30분 거리, 수도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통 수도의 외곽은 근처의 숲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지기 마련인데, 어쩐지 올슨 백작가로 가는 길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였다.

마침내 백작저 앞에 마차가 섰을 때, 나는 귀부인들이 ‘백작저 앞으로는 마차로도 지나가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와… 음침하네.”

오래전부터 관리를 그만둔 듯 제멋대로 자란 정원의 나무와 풀, 울퉁불퉁한 돌바닥부터 칠이 반쯤 벗겨진 외관 벽까지.

백작이 타계한 지 겨우 2년 사이에 이토록 저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본관 앞, 마차에서 내리자 칙칙한 표정의 반백 머리 집사가 내게 인사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용인도 어쩜 이렇게 음울한 인간으로 뽑아 놨어.’

아니, 여기에 있다 보니 음울해진 건가?

조금만 우중충한 날씨였어도 흡사 공포영화에 나오는 고저택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저택 내부는 온통 두꺼운 커튼을 친 탓에 바깥보다 더 칙칙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이 집이 3년 후 대부호가 된 백작 부인 덕에 눈부시게 화려한 저택으로 바뀐다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지만, 확실히 이 모습만 보고선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여기가 응접실입니다.”

두꺼운 문 앞에서 멈춰 선 집사가 한 걸음 물러나 내게 허리를 숙였다.

문 양옆을 지키고 있던 집사만큼이나 어두운 얼굴의 시종들이 문을 열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만큼이나 어두운 응접실에 앉아 있던 백작 부인이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눈 밑에 서린 짙은 다크서클과 움푹 들어간 볼, 마치 재를 뭉쳐 만든 것 같은 머리카락과 그 아래 반쯤 가려진 암녹색 눈동자는 나를 한껏 경계하고 있었다.

‘…보통 비주얼이 아니군.’

아무래도 쉽지 않은 설득이 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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