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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 112화­평행선을 맞닿게 하는 방법(5) (112/131)

〈 112화 〉 112화­평행선을 맞닿게 하는 방법(5)

* * *

“주현 누나아!”

나는 애타게 부르며 누나를 뒤쫓아갔다.

주현 누나는 금방이라도 엎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내달렸는데, 그러면서도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다리를 많이 쓴 탓인지 누나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누나아!”

목청을 쥐어 짜내도 누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하필 아파트 단지에서 질주를 벌이는 탓인지 주변 행인들의 시선이 엉겨 붙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체력에 한계가 오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집념 하나로 젓 먹던 힘까지 다해 다리를 놀렸다.

주현 누나도 지쳤는지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기회는 바로 지금!

악을 써가며 달린 끝에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누나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겨우, 잡았, 다.”

나는 누나의 팔을 붙잡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현 누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아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기까지 했다.

“주, 주현 누나?”

“…….”

누나는 내 부름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잡고 있던 누나의 손목을 놓아주었고, 누나는 양손으로 아예 얼굴을 묻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던 행인들이 우리를 향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던졌다.

아, 이대로 있어봤자 좋은 꼴 못 보겠네.

“주현 누나. 우리 일단 자리 옮겨요.”

누나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곁에 쪼그려 앉아서 가녀린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이럴 때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보아도 이렇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누나의 흐느낌이 다소나마 잦아들었다.

“주현 누나. 우리 자리 옮길까요?

재차 권했더니 누나가 손등으로 눈두덩을 비비면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이번에는 누나가 도리질을 했다. 나는 일으켜 주겠다고 말했고, 누나가 승낙의 표시로 머리를 움직였다.

나는 누나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운 뒤 힘껏 끌어올렸다. 솔직히 좀 무거웠지만…… 티내지 않기로 했다.

“이, 이젠……. 설 수, 있어…….”

평소보다 갈라진 음성. 조금 전까지 계속 울었던 영향이겠지.

나는 누나의 몸에서 손을 뗐다.

“일단은, 어디든 가서 앉아요.”

“응…….”

나는 코를 훌쩍이는 누나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 * * *

우리의 발길이 멈춘 곳은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의 벤치였다. 사람이 없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나는 주현 누나를 먼저 벤치에 앉혔다. 누나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다리를 가지런히 모았다.

“누나. 혹시, 민주 누나에게 전화해도 될까요?”

의향을 물었더니 주현 누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들었다.

“왜, 왜애?”

어투에서부터 거북한 기색이 배어 나왔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을 전했다.

“누나에 대해서 여러모로 걱정하고 있거든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 누나의 도움이 절실했다. 설령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이대로 있을 건 아니잖아요.”

그러자 누나가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나는 얼른 민주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민주 누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희 지금 어디야?]

“OO정류장 벤치에 있어요.”

[알겠어. 빨리 갈게.]

나는 통화를 끝마치고 나서 주현 누나 옆에 앉았다.

“여, 영재, 야…….”

주현 누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누나. 민주 누나가 있어야 해요.”

“…….”

“저는 지금 사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아, 알고, 있어, 그, 그치만…….”

보기보다 고집이 센 사람이구만. 하지만 나 역시 만만치 않게 끈질긴 놈이다.

“민주 누나는 화해하고 싶어해요.”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영영 모를 테니까.

“음.”

곤란하게 여기는 기색이었는데,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게 불행 중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머지않아 민주 누나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금방 오셨네요.”

“그야, 걱정되니까.”

민주 누나는 양팔을 벌린 채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주현 누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눈길 한 번 보내는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민주 누나가 팔뚝으로 이마를 슥슥 문질렀다.

“누나. 아주머니랑은?”

조심스레 질문을 입에 담았더니 민주 누나가 곧장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말도 마. 너네 튀어가고 나서도 싸웠어. 방금 전에 혼자 쌩하니 집에 들어갔고.”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씹어뱉듯이 중얼거리는 민주 누나.

그런 뒤 주현 누나 옆에 앉았는데,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두 뼘 남짓이었다.

주현 누나는 시선을 내리깐 채 코를 훌쩍거렸다.

“주현아.”

민주 누나가 신중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망설였다.

하지만 곧 결심을 굳힌 듯 주현 누나의 등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괜찮아?”

“…….”

“아프지는 않고?”

“응…….”

주현 누나가 작게 답하자 민주 누나가 순간 토끼 눈을 했다. 그러다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뺨 잠깐, 봐도 될까?”

주현 누나는 자신의 손으로 양쪽 뺨을 덮은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래. 알겠어.”

곧바로 물러나는 민주 누나.

그러나 주현 누나의 등에 올린 손은 거두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위로했다.

“민주 누나.”

“응?”

주현 누나를 바라보던 부드러운 눈길이 내게 닿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음. 내 생각에도 그래. 지금 집에 들어갔다간…….”

민주 누나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나도 지금은 저놈의 집구석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

가만히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현 누나가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민주 누나가 신음성을 내며 엄지로 아래턱을 문질렀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른 데서 지내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을 끝맺자마자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아! 저는 가족들이 다 있는 터라…….”

“역시 어렵겠지?”

민주 누나가 다행히 자신의 의견을 금방 철회했다.

“그럼, 너네 부 애들 중에서 가능한 애는 없어?”

“한 번 물어볼게요.”

나는 스터디부 단톡방에 접속한 직후 생각에 빠졌다.

현재 시각은 밤 11시 30분.

나 같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기에는 상당히 늦은 시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현 누나를 위해 적극적으롱 움직여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불현 듯 적임자가 한 명 떠올랐고, 나는 지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영재야.]

“누나. 늦은 시간이 미안해요.”

[아냐. 괜찮으니까. 주현이는 어떻게 됐어? 잘 들어갔어?]

“그게 지금, 일이 좀 복잡해져서요…….”

나는 멤버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벌어진 사태를 최대한 요약하여 설명했다. 지아 누나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말인데, 지아 누나. 혹시 주현 누나 하룻밤 재워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마침 부모님이 출장 갔거든. 그러니까 눈치 볼 필요가 없어.]

“고마워요, 누나.”

[뭘. 그보다 어디야? 마중하러 가야지.]

나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누나. 진짜 미안해요.”

[괜찮대두. 택시 타고 갈게.]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된대?”

나는 민주 누나를 향해 그렇다고 하며 고개를 움직였다.

“다행이네.”

민주 누나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짤막한 한숨을 흘려보내자 나도 따라서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 참 정신없네요.”

“그러게 말야.”

나와 민주 누나는 서로를 마주 본 채로 쓴웃음을 지었다.

* * * *

지아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민주 누나가 주현 누나의 교복을 챙겨왔다.

“지금쯤이면 그 아줌마 자고 있을 거거든.”

자리를 뜨기 전 민주 누나가 한 호언장담이었다.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민주 누나는 백팩을 멘 채 위풍당당하게 돌아왔다.

그로부터 20분쯤 흘렀을 때 지아 누나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주현아. 괜찮아?”

다들 주현 누나부터 챙기는군.

“응…….”

웅얼거림에 더 가까운 대답.

“지아, 라고 했지? 우리 주현이 좀 부탁할게.”

“네. 걱정 마세요.”

걱정스러워하는 민주 누나를 향해 지아 누나가 활짝 웃어 보였다.

나도 옆에서 한 마디했다.

“지아 누나. 도와줘서 고마워요.”

“친구잖아. 같은 스터디부 멤버고. 이건 당연한 거야.”

“진짜로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보답해.”

지아 누나가 귀여운 윙크를 발사했다.

“꼭 그럴게요.”

나는 힘주어 답했다.

민주 누나가 지아 누나에게 백팩을 건네주었다.

“주현아. 가자.”

지아 누나가 주현 누나의 손을 이끌며 택시에 함께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택시가 빠른 속도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누난 오늘 어떻게 할 거예요?”

“나? 글쎄, 친구 집에 가든가 해야지.”

누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너도 이제 집 가야지. 시간 많이 늦었네.”

“네. 누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민주 누나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섰다.

참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 * * *

다음날.

날씨가 다소 선선해진 덕에 도보 통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참 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지아 누나가 보낸 개인톡이었다.

지아 : 지금 주현이랑 등교준비 중~

채팅 아래에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올라왔다.

윤희와 규원이는 아직 상황을 모를 테니, 오늘 중으로 두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해야겠군.

사진을 한동안 감상(?)한 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애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한결 같은 일상이었다. 마치 어젯밤에 겪은 사건이 꿈이었다는 듯이.

나는 쉬는 시간에 윤희와 규원이를 호출했다. 그런 뒤 층계참에서 어젯밤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두 사람 다 경악했다. 특히 아주머니가 주현 누나를 때렸다는 부분에서.

“와나! 세상에 그러는 게 어딨어!”

규원이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성을 냈다.

“너무하네.”

윤희의 어조에도 노기가 서렸다.

점심시간을 지나 어느덧 수업이 끝났다.

나는 윤희, 규원이와 함께 스터디드림으로 향했다. 근 2주만이었다.

원래라면 들뜬 기분을 만끽해야 할 상황.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부실 앞에는 지아 누나와 주현 누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실에 도착했다.

“주현 누나. 어제 잠은 잘 잤어요?”

“…….”

내 질문을 받은 누나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윤희와 규원이도 주현 누나의 안부를 걱정했다.

“영재야. 스터디부 오니까 어때?”

지아 누나가 이쪽을 물끄러미 보았다.

윤희는 열쇠로 부실 문을 열고 있는 중이었다.

“좋기는 한데, 찝찝하기도 해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지아 누나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우리는 모두 스터디부 안으로 입장했고, 각자의 자리에 착석했다. 그런 뒤 언제나 해왔던 대로 각자의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내 스마트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민주 누나의 이름이 떠 있었다.

“잠깐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실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영재야. 혹시 잠깐 통화 괜찮니?]

“네.”

민주 누나의, 피로에 젖은 한숨 소리.

[사실 말야. 오늘 아침에 엄마랑 대판 싸웠거든. 애한테 그러면 어쩌냐, 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주현이에게 선택을 종용한 일에 대해서도 엄청 따졌고.]

이 누나, 성깔 정말 장난 아니군.

“큰일하셨네요.”

경외심을 담아 말했다.

[진짜 꼭지 돌겠더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몰라. 아무튼 그래서 엄마가 주현이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 아주머니가 드디어 무언가 깨달은 걸까.

[그래서 한 번 둘이 만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주현이는 뭐 하고 있어?]

“같이 스터디부하고 있어요.”

[잘 됐네. 혹시 이 얘기 좀 전해주겠어?]

“그럴게요.”

[그럼 부탁할게.]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곧바로 주현 누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나, 난……. 싫어.”

세상에서 가장 확고한 거절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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